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귀한 문화재다. 그런데 국가와 개인이 그 소유를 두고 감정적 극단으로 치달아 이 국보급
문화재는 오리무중 종적을 감추고 있다. 그 해결책을 생각해본다.
2012년 9월 9일 당시 무죄선고(배씨는 2011년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대법원은 훔쳤다는
확실한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로 1년만에 석방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씨가 흰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 태동의 중요한
기록을 담고 있는 해례본에 관한 기사가 자못 충격적이었다. 소위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
씨의 말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는데, 그는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가 나서 1000억원을 보상해주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당장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수조원 이상 가치가 있는 상주본에
대해 보상가는 최소 1000억 원이 가이드라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훔친 것도 아니고 개인이 갖고 있는
국민 재산을 국보급이라고 해서 국가가 그냥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인에게 10% 정도 보상을 해주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1000억! 헌납이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이 분이
마음을 바꿔먹었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다. 그러니까 속칭 상주본이
1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의
10분의 1을 주면 나머지
10분의 9는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뜻이란다. 문화재의 가치는 가늠할 수가
없을뿐더러, 한국 사람인 우리에게 상주본의 가치는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간의 이 상주본을 둘러싼
사건을 봤을 때 소유자의 이러한 요구는 무리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우리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소유자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여러 소송, 화재 등으로 발생될 수 있는 그
해례본의 존재와 그 보존상태다. 소유주가 어딘가에 감추어 두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보존상태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는가? 가장 아쉬운 것은 문화재를 우선적으로
다루는 문화재청의 안이한 태도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문화재청의 문화재에 대한
잘못된 접근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라는 힘을 가진 단체가 문화재는
국가의 것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개인의 소유에 대한 알량한 평가, 강압적 수단을 통해 획득하려 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개인으로부터 문화재를
사들이는 대신 개인을 겁박하고, 고소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협잡한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행태를 보였다. 풍문에 듣기로 처음에는
100억 정도를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화재청의 태도로 인하여
개인은 반감을 가지게 되고, 국가에게 적절한 금액으로
팔든가, 헌납할 의사를 생길 수 없게
하였다. 1000억이니 1조니 하는 금액은 결국 문화재청
스스로 만든 자가당착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는 다른 어느
세기보다, 특정한 국가들이 그 구성원인 개인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데 몰두하는 것 같다. 그런 사고방식을
21세기까지 이어가서는 안
된다. 따지고 보면 나치의
행적, 일제의 위안부와
징병, 그리고 전통가옥의 문화유산 지정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 주력했다. 권리의 박탈은 유형적 재산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까지 이른다. 전체주의 체제들은 그것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특정한 개별적인 생각들을 금지하곤 하였다. 이런 일을 보면 근대에 들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생겨난 국가가 그 본분을 망각하였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국가 대 개인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번 사건도 제국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배익기 씨의
주장이 과한 면도 많다. 그리고 허황한 면도
있다. 그러나 1000억이라는 느낌이 주는 위화감을 벗어나
우리는 잠시 사실관계를 따져보자. 법원의 판단으로는 배익기 씨가
훔쳐가지 않았고, 이미 사망한, 국가가 소유주라고 인정한 조 씨는 이
문화재를 소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가에 기증을 했는데, 이것을 누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내 눈에는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문화재청이라는 국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장본인이다. 이런 사실만 두고 본다면 국가는
그야말로 개인의 적일뿐이다. 말도 안 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법원은(그리고 국가는) 상주본에 대한 소유권자가 배 씨임을
인정하고 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 국보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취득 과정에 위법 사항이 발견되지 않은 개인에게서 국가는 그 문화재를 환수할 법적 근거가
있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얼마 전 상영된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라. 구스타브 클림트의 이 그림은 나치가
몰수하여 우여곡절 끝에 벨베데레 궁전에 남게 되었다. 이 그림은 아델 블르호 바우어의
초상화로서 당연히 오스트리아의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주인공은 죽기 전
이 그림을 자신의 조카 마리아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겼고 마리아는 오스트리아라는 국가를 상대로 이 그림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낸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굳이 오스트리아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나라의 정체성을 보장해줄만한 위대한 작가의 그림이 그 나라에 있어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그림이
마리아라는 개인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가는(문화재청은) 배 씨에게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간에 일어난 일을 사과하고
강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이 문화재를 취득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개인의 적이 되지 않는
첫 번째 길이다. 다음은 배익기 씨에 관한
생각이다. 지금 그에게는 국가가
‘괴물’(리바이어던)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는 국가에서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꼭 미덕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여야 한다고
종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한국인으로서 품위 있게 살도록 하는 문화재에 대한 권한을 어느 정도는 국가에 양도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 문화재를 장물로
판다든가,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하여 이득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국가가 개인의
적’이 아니라, 이제 ‘개인이 국가의
적’이 될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사건을 보면서, 국가는 괴물이 되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힘써야 하고, 또한 국민들은 아나키스트가 아닌
이상, 국가라는 ‘괴물’이 없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국가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토머스 홉스의
말대로, 자연 상태의 인간이 자기보존 욕구에
따라서만 행동하게 되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속에서 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가가 없이는 배익기 씨 또한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권리와 가치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동질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재청의 사과와 소유권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일정한 보상이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