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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울산호남향우회 나상균 회장님은 2011년 추계 단합대회 및 등반대회를 아래와 같이 실시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언제:2011,10,23(일)07:00출발 대상산:주왕산 721M(청송) 회비: 원(추후공지) 준비물:도시락 개인 목적:신임 임직원 및 회원 간의 친목도모 및 건강증진에 목적을 둔다 참석범위 본회(고문,임원,상무위,사무처) 각,지회장 및 임원,회원 참석인원:80명(선착순) 차량:버스2대 1호차
07:10=문화예술회관 남문 07:20=태화 로타리 07:30=문수고 07:40=반천현대아파트 (도로밑지하차도) 08:00=언양시외버스정류장후문 건천휴게소
2호차 07:00=현대백화점 07:20=북구청 08:00=신복 로타리(버스정류장) 건천 휴게소
참석유무관련문의 산악사무국장=010-6761-9689 (허경안) 본회총무국장=017-581-5593 (이철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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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코스 : 9.3km(4시간 5분) ▶ 제2코스 : 4.5km(2시간) ▶ 제3코스 : 11.5km(5시간) ▶ 제4코스 : 9.2km(3시간45분) ▶ 제5코스 : 13.4km(6시간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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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국립공원은 태백산맥의 지맥으로서 부동면 상의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해발은 720m이다. 산봉으로는 연화봉, 시루봉, 향로봉, 촛대봉, 미륵봉, 관음봉, 옥녀봉, 장군봉등이 있으며 굴로는 주왕굴, 연화굴, 무장굴, 폭포로는 제 1, 2, 3폭포, 달기폭포, 계곡은 외주왕, 내주왕(절골)계곡, 월외계곡, 내원계곡이 있고 기암으로는 기암(旗巖),부암, 석병암, 급수대, 망월대, 신선암, 학소대 등이 있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찰로는 신라 문무왕때 창건한 대전사와 함께 광암사가 있으며 암자로는 주왕암과 백련암이 있다. 주왕산은 1976년 전국에서 1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바위가 병풍을 펼친 듯하다 하여 석병산(石屛山), 옛부터 난리가 날때마다 이곳에 피난 온 사람들이 많고 선유 선사들이 이 산에 살았다하여 대둔산(大遁山), 신라왕족인 김주원이 이곳에 있었다하여 주방산(周放山)으로 불리다가 그 후 고려때 나옹스님 이 주왕의 전설 때문에 주왕산(周王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중국 당나라 덕종 12년에 晋나라 왕손인 주도(周鍍)가 진의 회복을 꿈꾸며 군사 1만명을 이끌고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청하고 반기를 들고 수도 장안을 공격하던 중 곽자의에게 패하게 되자 요동을 통하여 신라 땅에 도망을 왔다고 한다.
그 후 강원도지역을 거쳐 진성(지금의 진보)땅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들었으며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게 되자 신라왕은 마일성 장군과 그의 형제들에게 토벌을 명하니 주왕은 기암에 기를 꽂고 마씨형제들과 싸웠으나 크게 패하여 주왕굴에 숨어있다가 생을 마쳤으며 그에게는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서 현재 주왕산내에서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왕산은 외주왕/내주왕 2개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주왕산은 '전설의 산'이다. 기암괴석, 동굴, 절 할 것 없이 산골짜기 곳곳에 전설이 서려있다. 그 중 주왕산이라는 이름을 낳은 전설이 대표적이다. 중국 진나라의 후예 주도가 후주의 천왕임을 자청하며,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쳐들어갔다고 대패하고, 숨을 곳을 찾아 신라 석병산(주왕산의 옛이름)에 왔다고 한다. 그 후 주도의 무리는 도적으로 변했고 신라에서는 마일성 장군의 5형제를 보내 토벌케 한다. 주도는 기암에 이엉을 씌우는 등 위장술을 이용해 저항하지만 패배하고 주왕굴로 숨어든다. 그러나 결국 마장국의 철퇴와 화살에 맞아 운명했다고 한다. 외주왕의 주왕암, 주왕굴, 연화굴, 자하성, 기암, 망월대 등이 주왕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주왕굴에서 생을 마친 주왕에게는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서 현재 주왕산내에서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경치 또한 아름다워 관광객에게 '역시 오길 잘했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외에도 학소대, 제1,2,3폭포 등이 있으며, 폭포수는 너무나 맑아 손을 담그는 것조차도 머뭇거리게 될 정도이다. 또 기암교 오른편에 왼팔로 돌을 던져 바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가 있어 사람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대전사가 있는 외주왕에 비하면 내주왕은 사람의 손길이 덜 미쳐 자연 그대로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인다. 인적이 드물어 낙엽이 쌓인 등산로의 운치는 특별하다. 부동면 이전리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주산못이 있다. 약 150년 된 능수버들과 물속에 잠긴 채 자생하고 있는 주산지를 지나 칼등고개를 넘으면 주왕굴로 갈 수 있다. 또 상이전을 지나 절골로 오르면 그 어느곳보다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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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덕종 12년에 진(晋)나라 왕손인 주도(周鍍)가 진의 회복을 꿈꾸며 군사 1만명을 이끌고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청하고 반기를 들고 수도 장안을 공격하던중 곽자의에 패하게 되자 요동을 통하여 신라땅에 도망을 왔다고 한다. 그후 강원도 지역을 거쳐 진성(지금의 진보)땅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들었으며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게 되자 신라왕은 마일성 장군과 그의 형제들에게 토벌을 명하니 주왕은 기암에 기를 꽂고 마씨형제들과 싸웠으나 크게 패하여 주왕굴에 숨어있다가 최후를 마쳤으며 그에게 대전이라는 아들과 백련이라는 딸이 있어서 현재 주왕산내에서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 주왕산은 저마다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경쟁이라도 하듯 솟아오른 기암괴봉과 깍아지른 석벽이 둘러있어 천혜의 절경을 이루는데『전설의 산』답게 봉우리와 골짜기마다 전설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학소대를 조금 지나면 제1폭포(일명: 선녀폭포)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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