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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야의 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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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노송이 서 있는 조망 좋은 곳에서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본다. 김주현씨(런닝라이프 발행인)와 이상년씨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뒤쪽 산등성이에는 벌써 하얀 둥근 달이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한 곳에서 양손에 해와 달을 동시에 거머쥔 셈이다. 노송 넘어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도 아름답지만, 해송(海松) 위에 걸린 창백한 둥근 달은 시심에 젖게 하며 겨울의 한풍(寒風)을 더욱 차갑게 느끼게 한다.
한적한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곳곳에 펼쳐지는 기암괴석의 절경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마치 남국의 낯선 나라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키가 훌쩍 자란 종려나무의 푸른 손, 붉게 피어난 동백꽃나무, 산기슭의 아직 수확하지 못한 귤나무, 그리고 유자나무와 사철나무가 어우러져 푸르름이 가득, 을씨년스런 겨울을 온 섬이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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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려나무가 있는 어촌.
숙소에 여장을 풀고 남쪽 겨울바다 야경에 취해보려고 밤 바닷가를 걷는다. 볼을 스치는 바닷바람이 매우 차갑다. 찬 바람이 가슴을 파고드니 옷깃을 여며본다. 하얀 파도는 횟집 네온의 불빛을 방파제에 부셔버리고, 하늘에 둥근 달은 넘실대는 검은 밤바다 위에 은가루를 쏟아붓는다. 나는 추위도 잊은 채 넋을 잃고 바라보다 이 무아경(無我境)을 어떻게 화선지 위에 감동으로 표현할까 궁리해보지만,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의 신비경(神秘境) 자체가 영혼의 시(詩)이고 그림(畵)이기 때문일까. 밤바다 위에 휘영청 밝은 달빛, 밤새도록 멈추지 않는 파도소리가 바다의 정취를 깊고 그윽하게 가슴을 돋운다. 붓으로는 애시당초 표현하기 틀렸다. 먹물 같은 까만 바닷물을 퍼서 하늘 화선지에 미친 듯 뿌릴 수밖에-.
오늘이 음력으로 섣달 열나흘, 내일이면 보름이다. 오늘 밤은 유난히 달빛이 밝고 아름답다. 어릴 적 할머님 손을 꼭 붙잡고 저녁 예배당을 갈 때 신작로에 비쳤던 그 달처럼 오늘밤은 달빛이 밝다. 몇 밤만 더 자면 설날이 된다고 신작로를 이리저리 뛰며 예배당에 가던 그 때가 그립다. 그러나 이 밤 내가 혼자 있어도 행복한 것은, 저 달을 쳐다보며 지난날 그리움에 목마른 애가(愛歌)를 그 누군가를 위하여 지금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늦은 밤까지 파도와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달빛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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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최고의 비경 삼여도
다음날 아침 7시, 새천년 일출맞이 장소에서 찬란한 일출을 맞이했다. 천황산 종주코스는 해발 0m에서 392m를 오르는 부두~야포~일출봉~망대봉~노적~혼곡~할매바위~대기봉~천황봉(392m)~태고암~시금치재~약과봉~논골~재암마을~부두까지 4시간30분간 걷는 원점회귀산행이다. 천황봉은 군사시설이 있어 우회하여 태고암을 거쳐 약과암으로 올라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혼곡에서 오르거나 혼곡에서 새천년기념공원(일출맞이 장소)을 거쳐 오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새천년기념공원에서 일출맞이를 끝내고 곧바로 천황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택했다. 초입에는 등산안내도가 새워져 있고 통나무로 된 가파른 계단은 이마에 땀을 솟게 한다. 한동안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파도소리가 솔바람 소리에 실려와 자연의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소나무사이로 떠오른 붉은 태양은 또 다른 장관을 이룬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20여 분 오르다보니 아름다운 암봉 위에 시원스런 조망처가 나온다. 남쪽으로는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툭 터진 망망대해다. 그래서 먼 바다에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로 형성된 웅장하고 거친 남쪽 해안선의 기암절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건너다보이는 펠리칸 바위가 물속으로 자맥질하고, 욕지도 최고의 비경이라고 하는 삼여도가 발 아래서 파도와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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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펠리칸 바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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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의 점점이 떠 있는 연화열도를 바라보며 대기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곳곳에 조망처가 많아 일출맞이를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대기봉(355m)에 오르니 너럭바위로 된 사방이 모두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 좋은 곳이다. 섬의 동쪽자락은 마치 용이 꿈틀대는 듯한 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연화도, 한산도, 두미도, 사량도 지리산의 그림 같은 한려수도를 감상하고 천황봉으로 향한다. 천황봉 아래는 억새밭이 우거져 때 아닌 만추를 느끼게 한다. 천황봉은 군사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우회도로인 태고암으로 내려선다. 가파른 계단길이다. 고색 짙은 한적한 태고암에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니 부대가 나타난다.
사람 살기 시작한 지 120년 된 섬
부대 앞에서 오른편으로 꺾어 약과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석성(石城)이 뚜렷하다. 지나온 길에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석성은 이곳에서는 석성의 모양이 뚜렷하게 돌담처럼 쌓였다. 이곳 성벽의 축성연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오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소가야국(현 고성) 사료 칠성지에도 욕지란 지명이 나오는데, 이 섬에서 선사시대와 삼국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삶의 터전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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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봉에서 바라본 해안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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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경 개척자들이 입도하였을 적에도 지금의 석성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조 대동여지도에도 욕지도의 석성이 표기되어 있다고 하니, 의미가 깊은 석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헌 집터 돌담 정도로 스쳐지나기 쉽다.
돌담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옛적 성황당이었다는 돌탑을 지나 억새풀이 우거진 수많은 무덤들을 지나니 암봉과 괴송이 어우러진 조망 좋은 약과봉 이다. 약과봉 주위는 사슴 서식지라고 표시되어 있다. 주위는 밀림이 우거지고 가시덤불과 온갖 약초가 뒤엉킨 골짜기마다 사슴들이 뛰어다녔다 하여 예전에는 욕지도를 녹도(鹿島)라 하였다. 섬에서 자생하는 삼지구엽초로 기른 사슴을 왕에게 바쳤다고 전해지는 옛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는 꽃사슴농장도 논골에 가면 구경할 수 있다.
조선 말기에는 왕실 궁내부(宮內部)의 명례궁(明禮宮)에 잠시 직속되기도 했다가 1887년(고종 24년) 비로소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1988년 10월 입도(入島) 100주년을 기념해 욕지면사무소 앞에 자연석으로 커다란 100주년 기념비를 세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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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황봉과 억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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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봉(315m)에 오르니 사방이 거칠 것 없는 조망처다. 산자락 끝에 조용하게 자리한 면사무소가 있는 동항리 항구는 우리나라 지형을 빼 닮은 아름다운 곳이다. 오른편으로는 대기봉이 우뚝하고 남북 능선으로 이어지던 산릉은 천황봉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약과봉에서 탕근바위로 내려서는 길은 잡목과 잡초가 엉클어져 진행할 수가 없다. 지도에는 등산로 개설예정지로 점선표시가 되어 있다, 우리는 비교적 등산로가 잘 정리된 논골로 방향을 잡고 가파른 잡목지대를 내려선다. 한양식당에 들러 욕지도의 명물이라고 하는, 생새우와 쭈꾸미가 듬뿍한 해물짬뽕에 소주 한 잔을 걸치니 약과봉 위에 뛰노는 꽃사슴과 함께 신선이 된 듯하다.
찬 바람 부는 부둣가에는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여인도 없다. 그런데 내가 자꾸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멀어지는 욕지도 천황산이 아쉬움으로 남아 욕지(欲知)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떠남일까. 선묘 아가씨 같은 괭이갈매기 한 마리가 뱃전을 맴돌며 따라 나선다.
/ 그림·글 곽원주 blog.daum.net/sejun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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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