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대한 작은 느낌 ...................................................................................................문학을 시작하는 자리(이인성)
1 문학은 눌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 달변을 믿을 수 없으므로, 그것은 ‘저들’의 체계이자 함정이므로, 문학은 더듬거리며 허우적거리며 자기 말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지. 마치 모든 것을 처음으로 말하듯이 그토록 어렵게. 눌변이란 침묵이 최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침묵할 수 없는 자들의 서투름이라고나 할까. 더듬거리는 꼴에도 결국 삶을 사랑하므로 침묵으로 초월하지 못한 자가, 또는 그런 초월을 거부한 자가 침묵하듯 말하는 방식. 덧붙여, 이 모순을 끝끝내 밀고 나가는 방식. 고쳐지지 않는 서투름 때문에 그는 언제나 실패하겠지만, 그렇지만…
2 우리가 살아내는 모든 것이 현실이라면, 현실은 ‘저들’이 단언하는 바와 같지 않다(필경‘저들’이란 ‘우리’의 쌍생아겠지만). 현실은 끝끝내 단언의 형식을 취할 수 없는, 취해서는 안 될 무엇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문학은 절망적으로 허구를 택한다(어쨌든 살아갈 터이니, 절망적이라는 표현은 물론 과장이지만). 과연 허구가 온 현실이 되는 그곳까지 갈 수 있을까? 믿음도 보장도 없지만, 거기에 내기를 걸 수밖에 없다면? 그러나 그렇게 버텨 나갈 수는 없을까? 견디고 견디고 또 견뎌내, 그래서 남는 어떤 형태가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신 없는 순교에의 도박, 도박에의 순교. 도박과 순교를 동시에 행하기…
3 당연하지만, 글쓰기는 말을 짜맞추는 행위 자체를 현실의 삶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그렇다면, 글쓰기-삶쓰기의 중요성은 그 끊임없는 현재진행형의 형태 속에 있는 것이 아닐지. 다시 그렇다면, 글 속의 모든 마침표는 의미상의 쉼표에 불과하며, 모든 문장은 보이지 않는 물음표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지. 아마도 글은 그 첫 순간부터 매순간 제 등뒤의 모든 말-삶을 한꺼번에 미정된 미래로 끌고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확신에 찬 하나의 짜맞춤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것을 다음 순간의 의혹과 시련 속에 풀어버리고, 새로 짜맞추며 다시 시작함으로써 이루어져 나감, 그것일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최초의 의도대로 쓰여지는 글은 글이 아니라 제품이다.
4 거듭 되뇌건대, 문학은 정녕 저 드높은 말씀도 저 드깊은 침묵도 아니거늘. 반대로 저 드높은 침묵도 저 드깊은 말씀도 아니거늘. 문학은 여기, 낮게 혹은 얕게, 우리 현실의 말 가까이 있거늘. 실현의 말 가까이, 그러나 그 말들 자체는 아니고, 다만 그 말들 바로 곁에, 말과 말 사이에 번지며 어른거리는 말 아닌 말로 있거늘. 천국으로의 초월이려 해도 초월이지 못하고, 지옥으로의 심연이려 해도 심연이지 못하고, 떠도는 말들 사이에서 그 사이의 실체로서, 텅 빈 실체로서… 만져지진 않지만 분명히 거기 있는, 공기의 젖가슴처럼 느껴지는 그 무엇인가로서… 그러므로 문학을 그저 ‘의사 소통’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부족하다. 문학은 비정형의 형태로서의 그 무엇, 몸으로 직접 감각되지 않는데도 몸으로 먼저 나누려는 그 무엇인 것이다. 그렇듯 문학은 우리의 몸을 감싸며 동시에 우리의 몸 안을 훑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발길을 아지 못할 그 어디엔가로 향하게 한다. 그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우리는 우리 몸의 구체적 움직임을 머리로 의식하게 되겠지만, 그래서 우리의 움직임을 명명하는 어떤 사유의 언어를 우리 곁의 누구에겐가 내뱉게 되겠지만, 그때쯤이면 문학은 벌써 우리가 걷는 길목의 저만치 주막에서 언어-술의 향기를 익히고 있을 것이다. 당신들의 의식에 다른 취기를 주기 위해서.
5 문학의 끝간 욕망은, 물론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지만, 입의 언어를 폐기시키고 글의 언어로 세상을 덮는 것이다. 구차한 생활인 입은, 그 자체로, 그 전체로, 허구의 전체라는 존재 방식을 채택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눈뜬 장님으로 코끼리의 한 부분을 더듬는 데 그치고 싶지 않은 문학은, 자꾸 보이지 않는 전체를 향해 허구의 조각들을 꿰어 나간다. 무모한 열정,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열정만으로 진실은 보장되지 않는다. 허구이므로 길은 스스로 열려주지 않고, 문학에게는 나침반조차 없다. 그리고 필경 현실의 덫이 문학에게 보복을 가하고, 끝내 문학을 타락시키려 들리라. 그러나 문학은 상처투성이로 여전히 모든 것을 무릅쓰고 밀고 나가는 것? 그래서 그 무릅씀 자체만이라도 허구로 살아 숨쉬게 되기를 꿈꾸는 것? 철저한 인내가 그만한 허구만이라도 구제할 수 있다면(이 또한 엄청난 욕심이지만), 욕망이여, 욕망의 사랑이여, 문학의 언어에 인내를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