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선생의 고교동창 중에는 공교롭게도 별명에
<구>자 항렬(行列)을 쓴 친구가 셋이다.
멍구 벌구 녕구가 그들이다.
멍구야 전에 상세하게 설명한 바와 같이 고교시절부터 시작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유구(悠久)한 별명이므로
우리 동창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벌구와 녕구는 우리가 고교를 졸업한 후에
비로소 붙여진 별명이므로 아는 친구가 그리 많지 않고
더구나 그 별명의 내력을 아는 친구는 극소수인데다가
그들 별명의 유래 또한 흥미진진하여 자못 우리의 호기심을 돋운다.
항렬 얘기가 나온 김에 굳이 셋의 서열을 정하자면
멍구가 으뜸이요 대학시절에 별명이 붙은 벌구가 버금이고
한참 후 사회생활하면서 붙은 녕구가 막내이다.
이렇게 단정하면 우리 동창 중에는 6.25 피란 중에
학교가 늦은 친구도 있고 경제적인 이유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휴학하는 일이 비일비재였으므로
그중 실지 나이가 많은 친구가 발끈하여
자기가 형님이라며 펄쩍 뛸 법도 하다.
그러나 양반은 항렬로 따지고 상놈은 나이로 따진다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거역할 수 없는 선현의 말씀에 따라
별명이 생겨난 순서에 따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은가.
부디 진정하기 바란다.
녕구는 따로 기회를 갖기로 하고
이번에는 벌구가 스스로 늘어놓는 구라를
장황하기는 하지만 들어보기로 하자.
『내 별명을 말하자면 첫사랑을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명과 첫사랑? 엉뚱하기는 하지만 내 별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닐게다. 누구나 다 그럴게다.
첫사랑을 생각하면 아련하고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니 더 그리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첫사랑은 대개는 짝사랑이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첫사랑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첫사랑이라고
나이 70이 된 지금도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웃지도 눈도 깜박이지 않으며 진지하게 주장하는
내 친구 지운선생은 예나 지금이나 꿈속에 사나보다.
엉뚱한 녀석인 줄 진작에 알기는 했으나
이처럼 황당한 줄은 몰랐다.
얄미운 녀석 같으니라구…….
그러나 나는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하련다.
나의 첫사랑은 순수하나 서러움과 약간의 한(恨)이 서려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고3 휴학 중에
절친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게 됐다.
처음에는 친구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심드렁하게 예배에 참석했다.
졸리고 하품 나는 어느 나른한 봄날,
건성으로 앉아있는 내 가까운 앞자리에서 기도에 열중하는
여학생의 단발머리 아래 솜털이 보송보송한
유난히 하얗고 긴 목덜미가 눈에 띄었다.
뒤태만 보자하니 얼굴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로 예배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맨 먼저 교회 앞마당으로 나와 그 여학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한 치 빈틈없는
단정한 걸음걸이로 나오는 그녀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려 정신이 아득했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나의 천사가 되고 공주가 되고 말았다.
언감생심 말을 붙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그 후 눈으로만, 그리고 교회회지에 실린 내 글로만 그녀를 사랑했다.
글은 술술 나왔다.
무엄하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대치했기에 절절한 사랑의 글이 되었다.
그녀만은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사람들은 나를 독실하고 경건한 신앙심을 가진
기독교적 사랑으로 가득한 소년으로 볼 뿐이었다.
혼자 있을 때면 잠깐 동안 마주쳤던
그녀의 빛나는 눈을 생각했다.
고통당하는 연인들이 끝없는 어둠을 참고 해가 뜨길 기다리는 밤.
연인이 오길 기다리면서 지새는 별빛 하나 없는 밤.
다음날 뜨는 아침 해 같은 그녀.
그녀가 기도하고 찬송하는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는 체를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으면서도
모르는 체 그냥 지나가곤했다.
그해 여름이 가기 전에
반드시 그녀에게 말을 걸겠다고 혼자 다짐을 했다.
그러나 나뭇잎들은 빨갛고 노랗게 단풍이 들었다가
낙엽이 되어 떨어졌다.
새잎이 돋아났지만
여전히 그녀의 눈을 바라볼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내내 그녀의 부드럽게 휜 콧등만 생각했다.
그녀도 내 간절함을 이해했는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드디어 친구를 통해 첫 데이트를 허용했다.
귀가 홧홧 달아올랐다.
도저히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녀와 말을 나눌 때 아무리 애를 써도 자꾸 입이 벌어졌다.
글을 쓴다면서요? 아니면 작가라면서요? 라고 했던가.
말더듬이가 되고 말았다.
애써 만남을 주선한 친구의 과잉선전이요 허장성세였을 것이다.
하얗게 밤을 새우며 되새겨봤다.
딱 한 번 만나고 말았다.
그 후로는 비너스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에 비하여
너무나 못생긴 내 얼굴과
1류 여대와 3류 대학이라는 학벌의 차이에 더하여,
애써 우습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자위하자면
데이트 비용이 없어서 그녀와의 만남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의 시간의 캡슐 속에 완벽하게 보관 된
슬프고도 행복한 과거의 한 조각이다.
등록금을 감당할 길이 없어 장학금이 보장된
3류 대학 영문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보니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많았다.
아르바이트다 번역이다 해서 밥벌이에 열중하다 보니
강의시간은 빼먹고 시험 때만 학교엘 나갔는데,
여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내 옆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내가 잘나고 예뻐서라기보다
당연히 커닝을 하기 위해서였음은 물론이다.
사랑이라는 굴레를 쓰고 있지 않으니
그 다음부터는 말더듬이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여자 앞에만 나서면 구라가 청산유수처럼 나오는데,
그때 내 별명이 입만 벌렸다 하면 구라라는 의미로 ‘벌구’가 됐다.
구라야말로 여자를 꼬드길 수 있는 무기라는 걸 깨달았다.
조실부모하고, 눈물겨운 눈칫밥을 먹으며 성장하노라니,
나같이 돈 없고 권력 없고 부모 없는 놈한텐
아는 것이 곧 권력이라는 명제가 뼈저릴 수밖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선 구라가
돈과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첩경이라는 걸 터득했다.
그리하야 구라는 내 필생의 생업의 도구가 된 거다.
원고는 인터넷으로 보내고 원고료는 온라인으로 받는
디지털 시대에 내 글의 이미지로만 나를 평가하는
여성 팬들이 전국적으로 꽤 되니만큼,
동창 여러분은 내 못난 전생은 다 잊어주기 바라노라.
첫사랑 외에 여자라고는 마누라 외엔 곁눈질도 않고 살아왔는데
우리 마누라가 가야 때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허황후’의 후예 양천 허 씨라.
최근에 초상화로 남은 ‘허황후’의 옆모습을 보니,
아, 그 귀티 나는 옆모습이 어쩌면 우리 마누라를 닮았는지.
그걸 기념해서 노년의 내 호를 '허허허'로 정했다.
팔불출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이 나이엔 마누라에게 아부하고 재롱떠는 것만이 살길이다.
늘그막에 애써 ‘벌구’ 티를 내느라고 나불거릴 필요 없이
그냥 ‘허허허’ 하고 웃으면, 그게 부정도 되고, 긍정도 되니까.
또 그걸 한자의 뜻풀이를 하면 ‘빌빌빌’도 되니까.
여하튼 대학교수를 은퇴하여 입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이목을 통하여 또 구라를 풀 기회를 줘서 고맙기 짝이 없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요
대한민국 구라라는 백두대간 연봉 중
한 봉우리를 차지할만한 구라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벌구’가 이렇게 노가리를 까면서 지운선생에게 넌지시 권하기를,
늙어빠진 ‘매원’이나 고추말리는 늙은 여인네의 등허리나 훔쳐보는 따위 말고
소싯적의 풋풋한 사랑 얘기를 들려달란다.
그러마고 하긴 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얘기는 꺼리도 안 되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봐야 대책이 없다.
일편단심 ‘벌구’와 달리 알게 모르게 스쳐간
수많은 여자들 중 누굴 골라야 한단 말인가.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전에 지운선생이 이목에 올린
[옛사랑과의 만남]이라는 글을 읽어봤느냐고 물었더니
이목에서 찾을 수가 없더란다.
하여 지운선생 만유기 출판 이후에 탈진했는지
근래에 글도 잘 써지지 않아 당분간 머리도 쉬고
지운선생 만유기에 자료로 남길 겸,
이목에 가입한 동창들이 적은 5년여 전의 글이므로
읽은 회원이 많지 않아 괜찮을 성싶어
그걸 찾아 다시 올리기로 하는데
동창제현의 의견은 어떠신지.
비답(批答)을 기다리나이다.
Beethoven/Minuet
첫댓글 구렁이 담넘어 가는 구라에 한눈팔 놈 어디 있겠오?
역시 그냥 허허허.
龜氏마을에 전략착오로 날벼락함포가 날라왔다. 마을어귀에사는 벌구형댁에 직격탄이 날라와 지난55년의 세간살이를 온통 하늘에 뒤날려 들쑤셔놨다. 깅제, 항력, 첫사랑, 구라大聲,---들을 모두다. 처가가 어디메 皇실에 히미한 연결줄이 걸렸대능것 빼믄 다-- 서글픈 이미잣노래 가사들이다. 이런것들이 딲이고 손질되믄 샹송도, blues도 됐대더라. 숫한사람들 눈물 짜내구 恨들 끓어올리는,,, 다행히 벌구형은 반격전을 20살짜리 좀털둥이쪽으루 40년내내 쏴퍼부었대니까 다행/불행 이었다. 이제 불안한건 녕구, 멍구네 집들이다. 방공호에 미숫까루 싸들구 두더지처럼 은둔(?). 네이퍔은 불바달 맹근대메? --벌구-지운선생집 불놀이 날짠 ???
구씨 가문에 한사람 더 추천할 사람이 있소이다. 추천할 사람은 한글 전용만을 고집하는 "구"씨문중의 오리지날 " 구 "씨입니다. 함자는 " 똥 개 "라는 분으로 한문으로 바꾸면 '糞狗 ' 가 됨에 틀림없으니까 구씨 가문임에 틀림없습네다. 벌구. 녕구. 멍구에 이어 분구.....우리 Emock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명가문이 아닙네까?
멋있는 작명이오, 분구라!!
분구납시오서,,, 국회에 Coronation(작위수여식) 절차를밟꾸(문선명이 입었든 robe 빌려입구) 예술의 전당에서 도야지 머릴 밭쳐올리구 해병의장대 사열루다가 시작합쎄다.
분군 냄새 땜에 집에서 그냥 쉰데.....
옛사랑이 사실이건 구라이건 슬슬 시작해 보시기를...한참 재미있었는데...
본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삼천포로 빠저서 미안합니다. [옛 사랑과의 만남] 재연재 환영합니다. 이왕 다시 연재하시는 김에 여론(?)의 비판에 혹시 못다한 이야기도 있었으면 슬쩍 집어넣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동안 거시기로 단련이 되서 웬만한건 잘 넘어갈듯싶습니다. ^^
두째 형님 을 뵙고 나갑니다. 참고로 저는 양반 자제 임을 차제에 밝히고자 합니다.
제입으로 구라 푸는 친구치구 양반 자제 아닌 놈 어디 있간듸? 그래도 우리 녕구가 중학교만큼은 알아주던 서울중 출신인 건 내가 보증하지.
이자 보니끼니 녕구성님이레 중학3년 광화문꺼정 빗싼 뻐쓰싻내구 긴시간 오가구 하기 힘들어 고등핵꾜땐 가까운 신설동으루 제끼셨꾸먼, 잘했띠 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