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8월 9일 이날은 내가 살아 숨 쉴때 까지 잊을수 없는 날이다.
6.25전쟁의 치열하던 한고비를 넘기고 중공군의 대공세도 다시반격하여 38선근처에서 소강상태가
유지되던때 후방의 지리산일대에 잔류한 북한군 패잔병과 공비들이 후방에서 공세를 더해감에 따라
이를소탕하는 일선 전투부대가 투입되고 이를 지원하는 우리통신부대는 이지역에서 통신가설 보수
작전이 전개되엿다.군데군데 배치된 소대 분대에 보급을 수송하던중 임실과 오수간의 산악지대에 미리
정보를 알고 잠복한공비들에게 기습을 받고 수송차량은 전소되고 운전병을 비롯한 3명이전사하고
울산 출신인 통신학교 동기인 김정수중사와 나는 구사일생으로 생존하였다.이날 전사자중 장상사는
육군경리단 소속으로 중대본부에 출장차 남원소대에서 만나 앞자리에태워 드렸고 채중사는 업무연락차
중대로 가는중 동승하여 희생되고 가장억울한 희생자는 운전병인 부산출신의 이영X 일병이다. 나이많은
증집된 운전기술병으로 그유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아팠을가.상부의 지시에따라 증집기사들도 현역
전환함을 실망하여 일시 부대를 이탈한그를 소환하여 그날 첫운전대를 잡혔는데 그가그만 그렇게 비참
하게 희생되다니 지금생각해도 가슴이메인다 .60년전의 내사랑하는 동료 전우들이여 명복을 빔니다.
★..60년이 넘은 오늘 그냥보내기가 아쉬워 엣 일기장을 뒤저 찾아보았다 그리고 복사하여 여기에
실려 노았다..내 孫들아....할아버지는 이런 험악한 시대에 살아왔단다..
( 1954년12월. 용두산 대화재로 모든것을 다 잃고 55년 다시 쓰기 시작한 60년전 일기장에서)
부산출신의 전우들과(나병곤.변남석)
당시 함께 생존한 김정수 중사와 기념사진 ( 1952.8뤌 571부대주둔지 )
(당시 유일하게 살아난 김정수 중사와 재회 1989년여름 범어사 근처 에서)
출처: 모래둥이 청솔들 원문보기 글쓴이: sb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