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錦衣還鄕)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한다. 금의환향할 날을 꿈꾸며 절차탁마(切磋琢磨)한다.
얼마전 휴일 고향의 수변공원에선 이러한 꿈이 현실로 재현되었다.
"코흘리개 소년은 강을 따라 이 앞에 놓인 도로를 속옷 바람으로 울며 따라 갔습니다. 지금은 돌 아 가셨지만, 부모님은 부부 싸움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날도 다투다 화가 난 어머니께서 친정으로 간다고 나서자 울며불며 이 길을 따라갔었는데 숱한 길을 돌아 이 자리에 서고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신현돈 장군은 15회 졸업 후 청주고 육사 졸업, 1사단장을 거쳐 삼성 장군이 되었다.
총동문단합대회 겸 특전사령관으로 취임한 동문을 축하하는 향연이 진달래, 벚꽃이 만발한 강변에서 치러졌다. 별 3이 뜨자 그를 호위하는 여단장, 참모들 20여 명이 따라 다녔고, 우린 신나서 기념 촬영을 하고 악수를 했다. 지역의 유지와 기관장도 휴일을 반납하고 축제를 즐겼다.
진행을 맡은 사무국장은 병장 제대한 몸이다. 그들에게 연단에 오르고, 축사하고, 내려가도 좋다고 말하다. 자신의 명령에 따라 무대를 오르내리는 장군, 장교에게 민망했던지 죠크를 던진다. 모교를 빛낸 패를 전달하자 장내는 박수와 웃음소리가 강 건너 바위벽에 부딪혔다가 메아리쳤다.
노래자랑 시간이 되었다.
“동문으로서 계급장 떼고 노래 부르겠습니다.”
그는 모자를 벗고, 별 3을 수놓은 군복을 벗더니 연단에 올라가, ‘누이’를 부르자 앵콜 요청을 받았고, ‘장충단 공원’을 부른 뒤 내려와 아는 것은 이 두 곡뿐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호돌이 복과 군복을 입고 온갖 재롱을 부리는 군인 아저씨 둘이 무대 위에서 함께 춤을 추며 장군이 가는 곳을 따라 붙었다.
우리 고향 산골은 하회 마을처럼 남한강 줄기가 휘돌아 나가고 높은 산들이 겹겹이 에워싸여 4선 국회의원에, 별이 지지 않고, 인재가 많이 난다고 정평이 나 있다.
촌놈들이 잘 나면 얼마나 대단할 것이냐고 하겠지만, 2반을 뽑는 그 중학교를 입학하려면 10시까지 밤공부를 하고 3/1은 재수생일 만큼 6개 초등학교의 입시 경쟁은 치열했었다.
축제를 이끈 홍순기 동창회장의 경력도 화려하다. 학창 시절 학생회장이었으며 무엇에나 일등이었고 용산고 법무관을 거쳤다. 현재 변호사 몇십 명을 거느린 로펌 대표인 그가 바쁜 틈을 내어 이렇게 큰 잔치를 벌인 것이다.
막바지로 단합대회가 막을 내릴 즈음 사회자가 회장님이 동문회를 위해 수고해준 사람 중 한 사람을 골라 이 구두를 주라고 했다. 모두들 긴장해 있는데, 나를 불렀다.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상품을 받아들고 내려오는데 나온 자리로 당당히 걸어갈 수가 없다. 제자들이 그런 나를 둘러싸고 축하해 준다. 얼굴이 붉어지며 생각은 그들의 선생이었던 날로 치달아 간다.
객지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나의 소망은 엄마 밥을 먹으며 사는 것이었다. 다른 곳으로 선생 발령을 받아 또 객지 생활을 하다 시집을 가고 싶지 않아 기원했다.
다행히 모교로 발령을 받고 첫 출근 하는 날,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모교의 교정에서 부임 인사를 하는 기분도 묘했다. 그들과 학교생활을 하는 5년 동안 이 학교엔 3명의 동생이 들어왔다. 아버지는 학부형 자격으로 오셨다가 부회장이 되고 우리 가족을 학교에선 트로이카 집안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내가 부임 인사 하는 것을 들으려고 학교 근처 밭에 나가 김을 매며 내 목소리를 들었던 얘기를 몇 번이고 하셨다.
그 때가 나에겐 작은 금의환향이었을까? 훌륭한 모습으로 단상에 선 동문들을 보니 흐뭇함도 있고, 쓸쓸한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모든 사람의 꿈인 금의환향(錦衣還鄕)을 우린 얼마만큼 이루며 살고 있을까? 그리고 외형적으로 성공한 것만이 진정한 금의환향일까? 겉보기는 소박해도 고향에 조금이라도 쓸모 있고 사회에 일익을 담당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는 나름의 금의환향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