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安樂死) 와 존엄사(尊嚴死)
李 泰 浩
2014년 10월 30일(木) 단양관광호텔에서 安師 12回 總同期會에 61年度 卒業하고선, 53年만에 처음 參席했더니 첫 눈에 비친 同期生들의 모습……
學校 다닐때 覇氣어린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머리가 희끗희끗하거나 머리가 벗겨진 典型的인 老人 그대로였다. 人生의 黃昏期 모습은 어쩔수 없는 가보다.’라고 되내어 보는 時間을 가진것이 慰安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老益壯을 과시하듯 팔팔한 靑年과 같은 모습으로 健康을 유지한 同期들도 있었다. 벌써 故人이 된 친구이야기, 지금 病苦에 鬪病하고 있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 옛 聖賢의 말씀 ‘人生 七十 古來稀’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世代는 어떤가? 100歲 時代가 到來한듯 100歲 사는 것은 당연시 된 것이 오늘의 現實이 아닌가? 그러면 100歲 時代에는 그냥 수명만 긴 것만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人生 黃昏期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일까?’를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壽命이 길다고 幸福한 것이 아니고 壽命이 짧다고 不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壽命과는 상관없이 어떻게 사는냐? 가 重要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同期들 나이 70중반을 넘어섰으니 來世를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여겨진다. 이젠 몸이 예전같지 않아 몸이 쑤셔되는가 하면 어딘가 아파 苦痛을 呼訴할 때도 있고, 換節期엔 氣候 變化에 適應을 못하여 感氣를 달고 다니기가 일수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人生은 有限한 것이다. 이 世上을 괴로움과 苦痛 속에서 살았든, 즐거운 가운데 幸福과 祝福속에서 살았든, 언젠가는 生을 마감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必然이다. 조금 앞서거니 뒷서거니 할 따름이다. 그 죽음을 맞이할 때 더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보다 이 生을 便安하게 마감하고 後孫들에게 ‘나는 이 世上에서 後悔없이 살다 가노라.’고 告白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苦痛 속에서 마칠 것인가? 便安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安樂死 혹은 尊嚴死인 것이다.
尊嚴死의 辭典的 用語 - 不治의 病이나 障碍로 因해 意識 不明이나 심한 苦痛 狀態에 있는 患者에 대하여 延命만을 目的으로 하는 治療를 中止하고 人間으로서의 名譽를 有志하면서 죽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하는 見解. 또는 그와 같은 죽음.
安樂死 - 安樂死는 患者의 죽음을 人爲的으로 앞당기는, 즉 人爲的 措置로 生命을 豫定보다 빨리 中斷하는 것을 積極的 安樂死라 하고, 患者나 家族의 要請에 따라 生命有志에 必須的인 營養供給이나 藥物投與를 中斷하는 消極的 安樂死가 있다. 積極的 安樂死는 不法이지만 消極的 安樂死는 尊嚴死(death with dignity)라는 완곡한 表現으로 바꿔 認定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우리 刑法에선 尊嚴死를 消極的 安樂死로 분류하고 있다.
2014년 11월 4일 朝鮮日報 A20면 “난 오늘 존엄사를 선택했다.”는 기사의 중요내용을 살펴 보면 - 美國 20代 女性이 2014년 11월 1일 死亡 直前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尊嚴死 支持 市民團體인 ‘연민과 선택’은 ‘르리트니 메이나드(29)가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自宅에서 家族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平和롭게 죽음을 맞았다.’고 2일 밝혔다. 그녀는 醫師가 處方해준 痲醉藥과 劇藥을 차례로 먹고 自身의 寢臺에 누워 잠들듯 世上을 떠났다.
명문 UC버클리를 卒業하고 UC어바인에서 敎育學 碩士學位를 받은 메이나드는 네팔의 고아원에서 몇 달 동안 敎師로 自願奉仕를 할 만큼 積極的인 性格이었다. 放學마다 베트남·캄보디아·코스타리카 같은 低開發國을 돌며 自願奉仕를 했다. 그런 그에게 올해 1월 1일 惡性 腦腫瘍이란 試鍊이 닥쳤다. 4월 말 “6개월을 넘기기 힘들 것”이란 時限附 判定을 받았다. 5년 戀愛 끝에 2012년 結婚한 新婚 새댁에겐 靑天霹靂 같은 消息이었다. 메이나드는 죽기 전 이루고 싶은 所願들을 적은 버킷리스트를 作成했고, 지난달 21일 男便·親庭어머니와 함께 마지막 所願이었던 그랜드캐니언 觀光을 다녀왔다. 메이나드는 지난달 6일 ‘남편 댄의 생일 이틀 뒤인 11월 1일 家族이 지켜보는 가운데 醫師가 處方한 藥을 먹고 좋아하는 音樂을 들으며 平和롭게 世上과 作別하겠다.’는 內容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 동영상은 900萬 件 以上의 照會數를 기록하며 美國에 뜨거운 贊反 論爭을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苦痛이 極甚했으면 그랬겠느냐’는 同情論에, ‘다른 患者들의 삶에 대한 意志를 弱化시키는 公開自殺일 뿐’이란 批判도 나왔다.
이에 메이나드는 ‘나도 정말 살고 싶다. 하지만 每日 아침 눈을 뜬 게 苦痛이다. 狀態가 더 惡化하면 말로 表現할 수조차 없는 狀況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實際 發作이 심할 땐 男便 이름조차 發音하지 못했다고 한다. 家族들도 그의 決定을 支持했다. 그는 居住地를 캘리포니아주에서 오리건주로 옮겼다. 오리건은 美國에서 처음 住民投票를 통해 1997年부터 尊嚴死法을 施行하고 있다. 메이나드는 그랜드캐니언 旅行 後 잠시 狀態가 호전되자 지난달 29일 尊嚴死를 延期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病勢가 急速히 惡化되자 豫定대로 決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나는 自殺하는 게 아니다. 오늘을 重要하게 生角하고 즐겨라. 마음이 가는 것을 追求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2014. 11. 24(月) 朝鮮日報 A18면 ‘時限附 두 女性의 같은 運命, 다른 選擇’이란 記事가 美서 큰 反響을 일으켰다는 內容을 살펴보면
惡性 腦腫瘍으로 時限附 삶을 宣告받은 두 女性의 相反된 選擇이 美國 社會에 反響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1日 “苦痛스러운 삶을 延長하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메이나드(29)는 人間답게 죽을 權利를 뜻하는 존엄사 論爭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19세의 大學 新入生 로런 힐은 아픈 몸을 이끌고 농구 경기에 出戰, 죽음의 威脅에 굴하지 않는 强忍한 生命力의 表象이 됐다. 메니나드는 11월4일자의 신문내용과 같은 기사로 존엄사를 택한 이유를 들었으나 같은 運命에 처한 힐의 選擇은 달랐다. 고 적고 있다.
籠球 有望株였던 힐은 高3이던 昨年 11월 惡性 腦腫瘍으로 2年을 넘기기 힘들다는 宣告를 받았다. 힐의 꿈은 농구 선수로 大學 競技에 서는 것이었다. 그는 오하이오주의 마운트세인트조지프대 選手로 入學했고, 항암 治療를 받는 와중에도 틈나는 대로 농구공을 잡았다. 그리고 지난 2일 신시내티에서 열린 하이럼대회 競技에 選拔 出場해 데뷔전을 치렀다. 메이나드가 숨진 다음 날이었다.
이후 病勢가 惡化돼 팀 訓練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지난 21일 베사니대와의 親善競技에 後半 교체 멤버로 出戰해 2득점을 올렸다. 후반전 경기 終了 8分을 남기고 14점 차로 뒤진 원정팀 MSI가 1학년생 로런힐(19)을 내보내자 400여명의 觀衆이 起立박수를 쳤다. 힐은 골 밑에서 패스를 받아 한 번 드리볼 한 후 골밑 슛을 成功시켰다. 드리볼부터 슛가지 동작은 눈에 띄게 느렸지만, 상대팀 선수들은 힐을 적극 守備하지 않았다. 말기암과 死鬪를 벌이는 同僚에 대한 禮遇였다. 슛 動作과 同時에 코트에 쓰러진 힐은 同僚 選手들의 부축을 받아 다시 벤치로 向하며 “이번 競技가 내 마지막 競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여성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어떤 말을 남겼을까?
메이나드는 어머니에게 “長壽하시라”는 유언을 남겼고, 남편에겐 “꼭 再婚해서 幸福한 家庭을 꾸려 달라.”고 당부했다.
힐은 “내가 죽은 다음이라도 소아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꼭 發見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 CNN은 “메이나드는 삶의 마지막을 바쳐 말기암 환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 싸웠고, 힐은 소아암 환자의 꿈을 위해 싸우고 있다.”면서 “둘의 사연은 悲劇的이지만, 感動的이고 勇敢한 行動”이라고 傳했다.
메이나드와 힐의 行動에서 시사하는 바가 우리 人生의 마지막을 어떻게 裝飾할 것인가? 되짚어 봄직하다.
우리 同期生이나 가까운 사람들 중에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만약에, 만약에 의료진에게서 末期癌 判定으로 時限附 人生살이일 때, 現代 醫學으로는 더 以上 손 쓸수 없는 狀態가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눈을 감을 때까지 現代醫術에 맡겨 끝까지 延命 治療를 할 것인가?’ 아니면 ‘人生을 마감할 準備를 하고 尊嚴하게 安樂死를 택할 것인가?’를 한 번 쯤 苦悶해 봄은 어떨까?
첫댓글 장수하나 요절하나 시공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데 아직 삶과 죽음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고 있네. 생노병사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 가는 순간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만 ..... 좋은 글 음미하면서 좀더 찬찬히 생각해 보겠네. 나는 20대 초반에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어서인지 이판사판 저돌적으로 살고 있네. 건강코너에 목숨 성적표대로 살고 있네.
우리 세대에 절실한 화두일세.나도 오리건주 같은 지자체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면 이주하고 싶네.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이오.
ㅎ가 이제 철이 드는 모양이군 좋은 일 한다더니 생각을 많이하며 봉사를 하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