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름 찾아 떠나는 여행 24>
춘천 닭갈비
“1958년 10월 지금의 강원은행 본점 자리에 판잣집을 얻어 김모 씨가 ‘닭불고기집’이란 상호를 내걸고 장사를 한 것이 시작이다.”(춘천시의 자료)
“1960년을 전후한 무렵에 춘천 시내의 조그마한 판잣집에서 선술집을 경영하던 충청남도 출신의 K씨네 노부부에 의해서 고안된 음식이었다. 그때 모종의 이유로 K씨네 선술집에 안주용 고깃감으로 쓰던 돼지고기의 공급이 중단되었는데 이에 대한 일종의 비상 대책으로 K씨 부부는 통닭으로부터 넓적하게 각을 뜬 닭고기를 고추장, 간장, 마늘, 생강 등등의 양념을 하루 동안 재워 양념이 충분히 배게 한 후, 이를 석쇠 위에 올려놓고 숯불을 굽는 요리 방식을 개발하였다. 이 새로운 음식에는 ‘닭불고기’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강원대 황익주 교수의 논문 ‘향토 음식 소비의 사회문화적 의미: 춘천닭갈비의 사례’)
“61년 낙원동에 ‘우성닭불고기’집이 최초로 닭불고기란 이름의 간판을 내걸었다.”(명동 뒷골목 닭갈비집 단체인 계명회 최기봉 회장)
“1960년 춘천시 조양동, 판잣집을 개조한 선술집 가게에서 술과 안주를 팔던 김영석 씨 부부는 돼지 파동으로 돼지갈비를 구하기 어렵자 닭고기를 대신 내놨다. 당시 닭갈비는 닭의 넓적다리 살을 돼지갈비처럼 포를 떠 양념에 재웠다가 연탄불에 구워냈다. 기본양념도 고추장이 아닌 달큼한 간장이나 소금이었다.”(홍동수 2019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위원장)
이상의 증언들을 종합하면 춘천닭갈비는 1960년을 전후한 시기에 닭불고기란 이름으로 시작되었던 음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70년대 초까지의 닭불고기는 지금의 닭갈비와는 달리 드럼통 안에 연탄을 넣고 그 위에 석쇠를 올려 양념한 닭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그때까지 서민들의 주요 안주였던 돼지고기보다 값이 쌌고 불 위에 연기를 피우며 먹으니 고기 먹는 맛이 더 나는 것 같아 차츰 인기를 끌어나갔습니다. 그래서 낙원동, 육림고개, 명동 뒷골목 등의 선술집 주요 메뉴로 떠올랐습니다.
춘천시의 자료에는 1958년 김모 씨가 강원은행 자리에서 ‘닭불고기’집을 시작했다고 하고, 닭갈비집 단체인 계명회에서는 61년 낙원동의 ‘우성닭불고기집’이 원조라 하며, 최근 여러 방송매체에서는 1961년 시작했다는 원조 숯불닭불고기집(033-257-5326)을 원조로 인정하였습니다. 또 ㈜ 원조촌에서는 복천닭갈비(033-255-2770)에 원조집 지정패를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70년대 초 요선동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황익주 교수와 홍동수 위원장의 일치된 증언 내용이 가장 유력한 유래설입니다.
좀 더 확실한 것은 70년대 초부터 명동 닭갈비 골목을 중심으로 4개 업소가 본격적으로 닭갈비 요리를 발전시킨 점입니다. 춘천의 명동 거리로 불리는 패션거리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0m 가까운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줄지어 들어선 대형 닭갈비집들이 저마다 30여 년이 넘는 내력과 원조집 간판을 내걸고 365일 새벽 2-3시까지 불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닭갈비’란 말도 원래 홍천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 홍천의 닭갈비는 냄비에 육수를 넣고 요리를 한 것인데, 홍천과 태백에서는 지금도 이 음식이 남아 있습니다. 춘천에서 닭갈비가 발달한 배경의 하나는 춘천지역이 양계업이 성했고 도계장이 많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1970년대 닭갈비 1대(250g)의 가격은 100원. 짜장면 1그릇 값에 먹을 수 있는 고기였습니다. ‘서민 갈비’나 ‘대학생 갈비’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습니다. 1970년대 들어 조양동의 김영석 씨 가게 주위로 닭갈비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었습니다. 조양동 닭갈비골목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춘천 시내 닭갈비 음식점만 352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7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가스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드럼통 위의 석쇠가 퇴장하고 철판이 등장해 야채와 가래떡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고기를 먹고 난 다음 밥이나 국수를 비벼주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가 되자 닭갈비 조리법이 연탄불에서 철판으로 바뀌었습니다. 채소와 밥, 우동 면을 함께 볶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철판 닭갈비가 서민들을 끌어당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닭갈비계의 권좌를 차지해온 철판 닭갈비를 숯불 닭갈비가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기름기가 쏙 빠져 담백한 맛을 내는 숯불 방식을 관광객들이 다시 찾고 있습니다. 참숯의 은은한 향이 고기에 배어 감칠맛이 뛰어나고 육질도 부드럽습니다. 철판 닭갈비는 동치미, 숯불 닭갈비는 된장찌개와 곁들이면 최고의 궁합을 냅니다.
닭갈비라는 이름은 철판 닭갈비가 유행하면서부터 불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간 닭불고기란 이름과 혼용되면서 경쟁한 끝에 닭갈비가 완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애초부터 ‘불고기’는 ‘갈비’의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최초로 명명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갈비에 대한 이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술에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갈비는 있는 자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맛있는 고기로 여기는 것이 갈비였습니다.
갈비를 뜯는다는 것은 있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식당들은 특허나 낸 듯 ‘가든’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가든’에서 갈비를 뜯는 것은 풍요, 행복, 성공 따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러한 갈비의 이미지를 ‘닭갈비’ 작명에 이용했던 것입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뜯을 게 없는 것이 닭갈비입니다. 춘천닭갈비는 닭갈비로 요리하지 않습니다. 갈비와는 전혀 무관한 재료를 사용하면서 갈비의 이미지만 씌워 놓은 것입니다.
닭갈비는 닭다리. 내장, 머리를 제외한 몸통살이 재료입니다. 닭 몸통 하나를 아홉 등분하고 두 대 또는 세 대를 1인분으로 요리합니다. 각 뜬 닭고기는 고추장, 간장, 흑설탕, 고춧가루, 참기름, 후추, 마늘, 파, 양파, 생강, 청주로 만든 갖은 양념을 하나하나 발라 하룻밤을 재웁니다. 달군 철판에 양배추, 당근, 고구마, 가래떡 등을 놓고 그 위에 닭고기를 올려 야채에서 물기가 나올 때 자르고 비벼서 익혀 먹습니다. 제대로 이름 짓는다면 ‘닭야채양념볶음’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70년대 후반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는 낭만적인 이미지 탓에 서울의 젊은이들이 최고의 데이트코스로 여겼습니다. 주말이면 경춘선 열차는 항상 만원을 이뤘고 그 청춘들은 값이 싸면서도 훌륭한 안주가 있는 명동 뒷골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갈비’를 뜯으면서 술을 마시고 거기에다 밥이나 국수를 비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 깡패가 득시글거리던 우범지대였던 곳이 ‘닭갈비 골목’이란 이름을 얻으면서 ‘춘천닭갈비’의 인기는 높아만 갔습니다. 80년대 들어 텔레비전의 ‘맛 따라 길 따라’ 류의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춘천의 오랜 향토음식인 막국수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춘천 향토음식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