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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潭上人 雅正 원담상인 아정 원담스님에게 드립니다.
潭中且無月, 담중차무월 연못 가운데에 달은 당연히 없지요,
月自在靑天. 월자재청천 달은 푸른 하늘에서 마음대로 비추고 있거든요.
明賢 敬書 명현 경서 명현선사는 공손히 씁니다.
二o一四 年 六月 2014년 6월
於韓國首你 어한국서울 한국 서울에서
敬贈 圓潭上人 座下 경증 원담상인 좌하
不是豪俠 身無劍器, 불시호협 신무검기
幷非懦夫 何來泪痕; 병비나부 하래루흔
不是冒險家, 敢問天下道; 불시모험가 감문천하도
不是中天月, 夜夜供佛前. 불시중천월 야야공불전
明賢 명현
二o一四 年 六月 2014년 6월
於首你 어서울 서울에서
<감상>
밍센(明賢)선사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 중국불교의 보석입니다. 제가 이런 스님을 일찍이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한자문화권에 태어났으면 누구나 다 갖추어할 유불선 삼교에 대한 안목이나 군자의 교양과 덕행을 모두 갖추신 스님입니다. 그는 1973년 생으로 중국불교의 새얼굴입니다. 바야흐로 중국공산당은 세계경영을 꿈꾸며 세계최강국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의 세력을 결집하고 중국인민의 정신적 중심으로 불교를 선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불교로 개종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교를 이용하여 인민대중과 화교세력을 통솔하고자 하는 책략입니다. 마치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여 통치이데올로기로 삼은 것과 같은 통치술이죠. 현재 중국에는 대대적인 중창불사와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여 승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양적인 규모에서의 불사의 팽창일 뿐이며 그 부작용으로 관제 불교화, 상업화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밍센스님께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불교, 젊은 불교,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불교를 제창하시며 뻬이징대학에 나가 대학생들을 지도하고 있고, 멀리 청해성(靑海省)까지 가서 포교하시고 계십니다. 그는 강서성 운거산 진여선사(眞如禪寺, 근세에 허운(虛雲)노사가 주석하셨던 선종사찰)로 출가하여 추운 겨울동안 안거를 나시고, 뤼산(廬山, 여산)에서 독거수행을 할 때 용수(龍樹)존자의 중론(中論)에 대한 지견이 열려 <입중론친문기, 入中論親聞記>를 저술하였습니다. 강서성 바오펑사(寶峰寺, 당나라 때 마조선사가 주석하였던 유명한 선종사찰)에서 중국불교협회 회장이신 이청(一誠)선사로부터 위앙종(潙仰宗, 당나라 때 유행했던 선종의 일파, 위산선사와 앙산선사가 개창, 얼마 못 가서 소멸하였으나 근세에 허운노사가 중흥시켰다)의 법맥을 전수받으셨습니다. 링이(靈意)선사로부터 법안종의 법맥을, 번환(本煥)선사로부터 임제종의 법맥을, 포위안(佛源)선사로부터 운문종의 법맥을, 하이인(海音)선사로부터는 조동종의 법맥을 전수받으셨습니다. 스님이 다섯 갈래의 선종법맥을 모두 전수받으시니 중국선종의 황금법맥이 모두 스님의 흉중으로 흘러들어 가히 천하의 도를 한 입에 삼키고 세간을 두루 평화롭게 하실 법왕이 되실 거라 짐작합니다. 귀하다, 인재여. 천지가 인(人)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나니, 불교계도 마찬가지라. 인물이 귀하다! 승보가 삼보를 지탱할 것이니, 밍센선사야말로 중국 승가의 동량이요, 불법의 하늘을 지탱할 주장자로구나.
이번 국제 불교 심포지엄에 초대되어 한국에 처음으로 오신 밍센선사는 과연 온화한 기품과 중후한 몸가짐으로 티베트 스님과 미얀마 스님들과 화기애애하게 잘 지냈습니다. 저와는 각별한 인연으로 여겨져 항상 동행하면서 교류하였습니다. 출국하기 앞서 위와 같은 시를 쓰고 삽화도 그려 주었습니다.
원담(圓潭), 둥근 연못이 제 법명입니다. 둥근 연못에 달그림자가 떠있을 것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이라, 본체는 어디 있을까? 하늘 가운데 둥두렷이 달이 빛나고 있음에랴. 그 달은 무시무종이며 무실무아(無實無我)라, 그야말로 진공묘유, 텅 빈 가운데 충만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신령한 비춤이라. 이름하여 관자재(觀自在), 그것이 원담이라는 지시이다. 밍센도 그렇게 지시하고 본인도 그렇게 받아드리니, 원담圓潭은 담潭에 있지 아니하고 월月에 있음이요, 월에도 있지 아니하고 관자재(觀自在)에 있음이다. 궁극적으로 어떠한고?
‘2014년 6월 모일 모시 지금 여기’이로다.
敬贈 圓潭上人 座下 경증 원담상인 좌하
不是豪俠 身無劍器, 불시호협 신무검기
幷非懦夫 何來泪痕; 병비나부 하래루흔 *懦:나약할 나, 懦夫: 겁쟁이
不是冒險家, 敢問天下道; 불시모험가 감문천하도 *泪: 눈물 루(淚)와 동일한 글자
不是中天月, 夜夜供佛前. 불시중천월 야야공불전
明賢 명현
二o一四 年 六月 2014년 6월
於首你 어 서울
원담 스님에게 공손히 드립니다.
내 본래 호쾌한 호걸은 못 되니 칼이나 무기를 몸에 지닌 바 없고
그렇다고 겁쟁이 또한 아니니 눈물의 흔적이야 있을 리 없다,
내 본래 모험가는 아니나 감히 도를 물으러 천하를 주유하고
내가 하늘에 뜬 달은 아니지만 밤마다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노라.
<감상>
이 시는 스님께서 도를 묻고, 또 도를 가르치러 다니는 주유천하(周遊天下) 심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 때 실크로드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신짱성 우루무치 근처 천산산맥(天山, 티엔산)에 다다라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앞도 막막하고 뒤도 막막한 가운데, 인적이 끊어진 황량한 자연가운데 홀로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광막한 자연 가운데 홀로 서 있는 한 남자를 본 것이죠. 어떤 심경이겠습니까? 호쾌한 영웅이 아니니 날아다니는 술법을 부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을 지킬만한 칼이나 무기도 없습니다. 자비문중에 이미 출가한지 오래라, 몸과 몸에 지닌 그 무엇이라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으니 무기가 없다한들 무슨 걱정이랴? 담담하여 너럭바위와 같은 마음에 어찌 눈물의 흔적인들 있으리오? 자신은 영웅도 아니고 겁쟁이도 아니라, 그야 말로 평상의 무의진인(平常 無依眞人), 평소에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자유인이다. 출가 생애가 본래 그러하다. 평상심이 도라 하지만 짐짓 도를 구하여 천하를 주유한다. 도를 따랐던 옛 사람들의 행실을 따를 뿐이요, 무슨 별스런 모험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중원천하를 종횡으로 누비고 다녔던 옛 선사들의 생애를 보라. 밍센 또한 옛 선풍을 쫓아 장삼을 펄럭거리며 천산산맥(天山山脈)을 넘어갔던 것이다. 문득 하늘에 떠 있는 달에 시선이 가 닿는다.
고륜독조강산정(孤輪獨照江山靜), 둥그런 한 바퀴 월광이 홀로 비추는데 강산은 고요하구나.
저 달은 항상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하고 있구나. 나는 비록 저 달처럼 천하를 공평하게 비추어 주는 무한한 공덕을 실천하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공덕을 실천하고 있노라. 흉중에 넘치는 신심과 열정으로 삼보를 공경하나니 이것이 '단간심불자귀의(但看心佛自歸依)'이다. 마음속의 부처를 보는 것이 제 안에 있는 삼보에 귀의함이라. 이 말은 항상 불성에 계합하여 여여하다는 말이다. 밍센선사의 일상은 수행불행(修行佛行, 부처님의 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로서 밍센선사가 자기의 살림살이를 시에 담아 원담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대는 어떠한지, 그대의 살림은 어떠한지 묻고 있는 것이다. 끊이지 않을 문답은 바람과 구름 속에 씨앗으로 뿌려놓고 비가 되어 내리길 기다립니다.
스님의 시작(詩作) 형식을 개관해보면 앞 구절에서는 억누르고 뒤 구절에서는 드높이는 것(前抑後揚 )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不是豪俠, 나는 호방한 호걸이 아니라서: 자기가 호걸이 아니라고 낮추고 억누릅니다.
身無劍器; 몸에 검이나 무기를 지니지 아니하고: 칼이나 무기는 없지만 ‘비장한 한 칼’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不是懦夫, 그러나 겁쟁이는 아니니
何來淚痕; 어디에 눈물의 흔적이 있을소냐? : 호걸도 아니고 무기도 없지만 어떤 대상이나 환경에 처하여서도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대처한다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기개를 드러냅니다.
뒤에 따라오는 두 구절 역시 이런 식입니다. 이것은 선종에서 법을 드러내는 방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 손을 들고 한 손은 내리는(一手擡 一手搦, 일수대 일수닉)의 가풍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야야공불전(夜夜供佛前)이라는 평상사로 돌아옵니다. 발우 씻고 향 피우며, 일하고 손 씻는 일상 속에서 공부한다는 흔적도 없이(沒踪迹, 몰종적) 공부를 지어갑니다. 이것은 무위이부불위(無爲而無不爲), 무엇을 한다는 의도 없이도 저절로 할 것은 다하는 경지입니다. 진진찰찰 삼매(塵塵刹刹 三昧)요, 무위진인(無位眞人)의 삶이 이런 게 아닐까요?
밍센(明賢, 명현)선사(법명: 다오지(道笈, 도급))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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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시(武漢市) 황베이구(黃陂區) 출생
12세: 1984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불교를 믿고 참선 활동을 시작
20세: 1992년 장시성(江西省) 운거산(雲居山) 전뤼사(真如寺)로 출가
21세: 1993년 미광(彌光) 스님으로부터 체도(剃刀)를 받음, 법명 밍셴(明賢)
1993년 안후이성(安徽省) 주화산(九華山) 런더(仁德) 스님에게 비구계를 하사받음.
선(禪)이 중국 불교의 핵심이라고 여기며 지속적인 선 수행.
중국 불교(漢籍),티베트 불교, 남방 불교의 경서를 광범위하게 익힘.
불교 조상(彫像) 및 반야중관(般若中觀) 학습.
25세: 1997년 루산(여산 廬山)에서 독거 수행 과정 중에 입중론친문기(入中論親聞記) 완성. 입중론(入中論) 강의.
26세: 1998년 장시성(江西省) 바오펑사(寶峰寺)에서 중국불교협회회장 이청(一誠) 스님의 위앙 종(溈仰宗) 제11대 법맥을 전수(傳受), 법명 다오지(道笈).
링이(靈意) 스님의 법안종(法眼宗) 법맥을 전수. 범명 티먀오(體妙).
27세: 1999년 장시성불교대학의 강사 및 마조도량(馬祖道場)의 상주 당주(堂主)로 초빙.
불교조상(佛教造像)․계율(戒律)․삼자경(三字經)․제자규(弟子規) 강의.
입중론(入中论)․응무소주(应无所住) 편집 및 출판.
28세: 2000년 능엄경(楞严经) 연구반 주임 및 강의
승보론(僧寶論) 출판, 선종 사전 선칠(禪七) 편집인.
30세: 2002년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입중론(入中论) 강의,《입중론석문소(入中論石門疏)》결집 (結集).
31세: 2003년 입중론도독(入中論導讀) 출판.
32세: 2004년 루산(廬山) 둥린사(東林寺) 참학(參學) 및 대불(大佛) 예술 감리 부임.
34세: 2006년 칭하이성(青海省) 하이베이티베트족자치주(海北藏族自治州) 베이하이선원(北海 禪院) 건립 계획, 베이하이선원 칭하이호(青海湖) 샹허보리탑(祥和菩提塔) 건립 시작.
번환(本煥) 스님에게 임제종(臨濟宗) 제45대 법맥을 전수, 법명 창청(常成).
포위안(佛源) 스님에게 운문종(雲門宗) 제14대 법맥을 전수, 법명 밍셴(明賢).
하이인(海音) 스님에게 조동종(曹洞宗) 제50대 법맥을 전수, 법명 밍셴.
7월19일-12월20일
대만의 후이짜이(慧在) 스님과 ‘현장법사(玄奘法師)의 서천취경(西天取經)의 길 다시 걷기’ 임 무 완성
37세: 2009년 베이하이선원 칭하이호(青海湖) 샹허보리탑(祥和菩提塔) 완공.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에서 ‘입중론미명소(入中論未名疏)’ 강의
38세: 2010년 불보론(佛寶論)․법보론(法寶論)․승보론(僧寶論) 출판.
마조도량(馬祖道場)의 후당(後堂)에 초빙, 초빙에 응하며 다음과 같은 기치를 제시. 중국 불 교의 부흥을 위해 먼저 ‘승단 사상계의 확립 및 중국불교의 선종 부흥’을 종지로 삼아야 하 고, ‘선 수행 및 그 실천’이 불교의 핵심이자 생명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함.
39세: 2011년 베이징대학에서 ‘중관견과 도덕경(中觀見與道德經)’을 강의.
베이하이선원에서 ‘중관(中觀)을 가르치고 일깨우며, 법안(法眼)으로 돌아가자’는 종풍(宗風) 제시, 그와 동시에 ‘교계중관(教啟中觀)․행귀법안(行歸法眼)’이란 종풍비 건립.
40세: 2012년 베이징대학에서 ‘중관견과 도덕경(中观见与道德经)’을 강의하며, ‘인문불교(人文 佛敎)’를 주장.
41세: 2013년 베이징대학에서 ‘중관견과 도덕경(中观见与道德经)’ 및 ‘인문불교의 건립’ 강의.
중화문화촉진회(中華文化促進會) 불교문화센터(佛教文化中心) 부주임 및 우한시(武漢市) 인문 불학원연구원(人文佛學研究院) 원장 초빙.
첫댓글 공간을 초월한 부처님의 법가족으로서의 두 분의 인연이 아름다워
보는 저희들은 환희심이 생깁니다...
사두사두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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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이 더욱 훌륭하십니다. 허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