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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중반에 당시의 톱스타였던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영화 중에 <빠삐용(Papillon)>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은 앙리 샤리엘이라는 사람의 자유를 향한 끝없는 탈옥을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앙리 샤리엘은 이름보다 영화 제목인 "빠삐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이는 가슴 한가운데 새긴 나비 문신 때문입니다. 빠삐용은 프랑스어로 나비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나비 문신을 한 사나이"라는 뜻을 영화 제목, 이전에 소설의 제목으로 취한 것이지요. 지금은 벌써 고인이 된 지 오래지만 그의 강렬한 연기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위의 사진은 아마 홍보용으로 찍은 사진 같고 아래의 사진은 영화의 스틸 컷입니다. 가슴 한복판에 빠삐용, 즉 나비 문신이 새겨져 있고 주위에도 이런 저런 문신이 많이 새겨져 있습니다. 요즘은 문신이라 하면 좀 나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조직폭력배들의 가슴이나 등에 새겨진 용이나 잉어 같은 것을 새긴 것을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타투(tattoo)라는 표현을 많이 써서 젊은이들 사이에 크게 유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빠삐용처럼 가슴 한복판에 타투, 즉 문신을 한 것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글월 문(文)"자입니다. 금문까지의 자형은 정면으로 본 머리가 없고 가슴을 강조한 모습만 보이는 글자도 있고, 가슴에 무엇을 새긴 형태의 글자도 있습니다. 원래는 문신으로 새긴 무늬를 나타내었으므로 가슴팍에 무늬가 그려진 글자가 원래의 자형에 더 가깝겠죠? 글월 문(文) 갑골문-금문-소전-해서 글월 문(文)의 갑골문과 금문의 다른 모습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타투, 곧 문신은 옛날에는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었고 장례 문화와 상관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요즘 같이 병상에서 안락하게 임종을 맞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냥(수렵: 남성)이나 채집(여성) 등을 통하여 생산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사육이나 재배를 할 수 없었던 사회에서 제대로 된 안전 장구조차 없이 생산활동에 나서야 했던 이들은 거의가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죠. 이렇게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짐승과의 격투나 높은 곳에서의 추락 등으로 인한 출혈과다에 의한 사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의학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던 당시 사람들은 몸에서 피가 빠져나와 죽게 되자 피를 영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혼, 곧 피가 몸에서 빠져나오니 죽는다고 생각을 한 것이지요. 이런 관념은 후세에도 그대로 전해져 고령자의 타살풍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약할 미(微)"자는 바로 사회 생활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는 늙은이를 대로에서 영혼인 피가 보이게끔 몽둥이로 타살하는 모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피가 더 이상 영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관의 안쪽은 한때 영혼인 줄 알았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을 칠하게 된 것이지요. 약할 미(微) 갑골-소전-해서 미(微)자는 사거리를 나타내는 행(行)자의 일부를 나타낸 "조금걸을 척(彳)"자와 "긴 장(長)" 그리고 "칠 복(攴)"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긴 백발을 휘날리며 구부정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는 형태의 "긴 장(長)"자는 소전까지만 해도 인식하기 쉬웠는데 해서에서는 모양이 많이 변형되어 알아보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 글자가 나타내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들이 통행하는 사통팔달의 큰 네 거리에서 노인을 몽둥이로 때려서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생산성이 조금 향상된 사회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죽는 노인들에게 이런 의식을 행하는 것은 어쩌면 잔인한 행위가 아닌 당연하고 숭고한 행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느 순간부터 이런 행위를 더이상 공공연하게 행하지 못하고 숨어서 몰래 하게 되었습니다. 행위의 대상에서 나온 뜻이 "약하다"이고, 나중에 몰래 행해진 행위에서 은미(隱微)하다는 뜻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가슴에 트집(흠집)을 내어 피를 보이는 것은 아무에게나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단의 우두머리나 지도자급 인사가 죽었을 때 영혼이 빠져나가게끔 조치를 취하는 행위였던 것이지요. 저한테 글을 배우던 사람 중에는 외과의사도 더러 있었는데, 그분들 말로는 죽은 사람의 가슴에 칼로 그은 작은 상처를 내도 피부가 안으로 오그라들어 피가 나오지 않는다고 의의를 제기하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과야 어떻던 상징적인 행위이니까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나중에는 문(文)자가 원래의 뜻으로보다는 그야말로 문신 같은 무늬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문자가 무늬에서 출발하였으므로 문자(文字)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지요. 그러면 무늬를 나타내는 가장 훌륭한 것은 무엇일까요? 옷감입니다. 옷감은 실로 짜기 때문에 무늬를 나타내는 한자는 실 사(絲, 糸)자를 형체소인 부수자로 더하여 문(紋)이라고 쓰게 되었습니다. 요즘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많이 하고 있는 밸리 댄스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쁜 무희가 섹시한 포즈로 양손을 잘록한 허리 위에 살며시 얹고 있네요. 이와 같이 춤을 추는 여성이 두 손을 허리에 얹은 모습을 표현한 문자가 바로 "중요할 요(要)"자입니다. 중요할 요(要) 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여성이 두 손을 허리에 얹어서 허리를 강조한 글자가 바로 중요할 요(要)자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요(要)자는 원래 인체의 일부분인 허리를 가리키는 글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허리가 인체의 한 가운데 있고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에 차츰 중요하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허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따로 만들어내게 되었는데 그 글자가 바로 허리 요(腰)자입니다. 허리 요(腰) 금문대전-소전-해서 허리 요(要)자는 금문대전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는 글자의 뜻이 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는 모두 중요할 요(要)자와 통용했기 때문입니다. 금문대전에서는 요(要)와 요(腰)가 모양을 조금 달리합니다만 허리 요자의 금문대전은 이미 두 글자의 소전과 모양이 똑같습니다. 두 글자가 기본적으로 같은 뜻이라는 것을 말하지요. 육달월(月)은 나중에 첨가된 요소인데, 이는 허리가 인체의 일부임을 나타내는 형체소로 쓰인 것입니다. 이런 예는 이미 "등 배(背)"자에서 본 적이 있지요. 아마 가장 섹시한 한자를 들라면 저는 이 "허리 요(要, 腰)"자를 들겠습니다. 석굴암의 본존불인 아미타불은 아마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문화재 중 하나일 것입니다. 석굴암 본존불은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있습니다. 가부좌는 두 다리를 교차해서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하여 앉는 것입니다.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 방법 중 하나인데 요즈음은 꼭 불교에서만 수행 방법으로 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도 가부좌를 한 불상을 많아 볼 수가 있습니다만 아래의 사진 같은 경우는 그냥 두 발을 교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가 없는 양식입니다. 이런 형식의 불상은 교각상(交脚像)이라고 하는데, 다리를 꼰 형태라는 말입니다. 돈황 막고굴 275번 굴에 있는 불상입니다. 이와 같이 두 다리를 교차하여 있는 모습을 표현한 한자가 바로 "사귈 교(交)"자입니다. 사귈 교(交) 다리를 꼬는 것과 사귄다는 뜻은 언뜻 잘 매칭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물며 두 다리가 교차하듯 서로 겹쳤음이겠습니까? 이 글자의 뜻은 원래 "교차(交叉)하다"였습니다. 교차한다는 것은 둘이 만난다는 것이고 만나면 자연스레 사귀게 되겠죠. 몇 차례 연역을 통해서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어떻게보면 조금 골치 아플 수도 있는 문제인 듯하지만 또한 이것이 한자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그러면 한쪽 발은 땅에 대고 한쪽 발만 들어서 다른 발의 허벅지에 올리고 있는 자세는 무엇이라고 할까요? 이런 경우는 가부좌(跏趺坐)를 절반만 하고 있다고 해서 반가좌(半跏坐)라고 합니다. 위의 불상은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보로 지정된 것만 해도 2개이고 일본에서도 국보로 지정된 것이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반가좌를 하고 생각에 잠긴 상이라는 뜻입니다. 이 자세는 의자에 앉아 있을 때만 가능한 자세입니다. 요새 같이 각종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기 전에는 어떻게 치장을 하였을까요? 아래의 사진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로 사람에게는 없는 아름다운 새의 깃털을 가지고 온몸을 장식한 것이지요. 위 인디언 추장 같이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장식보다는 춤을 추거나 사교 모임 때 자신의 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몸을 치장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만 추수감사절 같은 때는 있는 대로 몸을 치장하여 신에게 최대한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안감힘을 썼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추수감사절은 남미의 카니발이나 삼바 축제 같은 것이 아닐까요. 온 나라의 모든 일상생활은 이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완전히 정지상태가 되고 온나라가 거의 광란의 상태로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누가누가 더 화려하게 보이는가 하는 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지요. 아래 사진의 무희는 꿩깃 같아 보이는 것을 가지고 머리 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저 정도라면 장식의 무게를 몸으로 지탱해내기도 쉽지 않아 보일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깃털 같은 것을 가지고 머리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페스티발에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 사진의 인디언 추장처럼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계속 사용되어 왔습니다. 영국 버킹검 궁의 근위병들 가운데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든가 우리나라의 사관학교 같은 곳의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특별한 의식 때처럼 말입니다. 바로 아래의 사관생도들처럼 말입니다. 모자에 멋진 깃털 장식을 하고 열병과 사열을 하는 것을 보면 평상시보다 훨씬 위엄이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몸 특히 머리 부분에 깃털 장식을 하여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모습을 표현한 글자가 바로 "아름다울 미(美)"자입니다. 아름다울 미(美) 갑골-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아름다울 미(美)"자의 해서는 "양 양(羊)"과 "큰 대(大)"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서만을 가지고 보면 성인이 머리에 뿔이 바깥쪽으로 휜 양 머리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위 일러스트처럼 깃털 장식을 하고 있는 모습이 완연합니다. 실용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도 패션쇼 같은 데서 보면 머리에 커다란 깃털 장식을 하고 워킹을 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자에 깃털 장식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요. 아름다워보이려는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는 모양입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