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7:24
부정한 손으로 식사하는 장면에서 더러운 귀신들린 딸을 둔(부정한) 이방 여인과 청각 장애인(더러운)을 침을 뱉어 그의 혀에 대고 고치는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예수의 치유는 정결한 것이 부정한 것으로 오염된다는 기존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전복합니다.
The scene of eating with unclean hands turns into a scene where a stranger with a dirty ghostly daughter and a deaf woman spitting and fixing it on his tongue. The healing of Jesus squarely subverts the existing worldview, in which the clean is contaminated with the unclean.
-
예수는 의도적으로 이방 지역에 들어가십니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를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보아야 했기 때문이지요.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풍성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는 새 창조가 일어나야 합니다. Jesus intentionally enters the Outlander. Because there are people there to call as God's people. Because the people there are also images of God, and they had to hear and see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The deeper the darkness, the richer the history of healing and recovery takes place, and a new creation that comes from darkness to light takes place.
-
예수님은 유대인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십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재치 있는 대답에 회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야말로 이방인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잘 보여줍니다.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달라는 이방의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예수님은 개보다 자녀에게 먼저 떡을 주어 배부르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로 거절하셨어요. Jesus is not a Jewish messiah, but a stranger's messiah. The image of Jesus answering the woman's witty answer shows Jesus who came as a stranger's messiah. As a stranger who asked her to chase ghosts from her daughter, Jesus refused, saying that it was right for her to give rice cakes to her children before dogs to fill them up.
-
구원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먼저 임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유대인이 예수를 거절하여 그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된 것은 구원이 혈통 아닌 믿음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예수의 구원 경륜을 듣고 자신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으로도 만족하겠다고 대답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어요. Salvation seems to mean that you are first to the Jews, not to the Gentiles. The Jews rejected Jesus and the salvation turned to the Gentiles because salvation is received by faith, not blood. When the woman heard Jesus' experience of salvation, she answered that she would be satisfied with only the crumbs falling from her master's table, and Jesus praised the woman's faith.
-
부스러기 은혜 만으로도 자기 딸이 온전해 질 수 있다고 믿은 그녀의 믿음은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상관 있는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수치도 감수하겠다는 겸손함과 간절함,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딸의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신학 용어를 차용하면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예수를 믿는 믿음)이 딸의 구원을 가져온 것입니다. Her belief that her daughter could be completely intact through the grace of crumbs is still being talked about today. The daughter's salvation was brought by her humility, desperation, and clear conviction in Jesus' ability to bear any shame if she could be someone who had something to do with Jesus. Theological terms are borrowed from the belief of a woman, which in turn leads to the salvation of her daughter.
-
필자는 본문을 난해 구절로 봅니다 만 주제가 아니니 패스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근방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자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당신 앞에 나타나 간구 하자 이에 그를 만지면서 '에바다'하며 고쳐주셨어요. 손가락을 양 귀에 넣고 침을 밷어 그의 혀에 손을 대며 고치셨습니다. I see the text as an esoteric phrase, but it's not a topic, so I'll pass it. When a deaf and stuttering person near Lake Galilee appeared in front of you by someone's hand and asked for it, Jesus touched it and fixed it, saying, "Ebada." He put his fingers in both ears, spit on it, and fixed it by touching his tongue
-
이 구절도 다소 해괴하지만 강요된 침묵의 강고한 세계를 깨트리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극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경험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임한(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그 나라의 해방과 자유의 역사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하기 때문일까요? 딸에 대한 구원 문제에 대하여 나는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포용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함을 상징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포용해야 할까? This phrase is also somewhat bizarre, but it seems that he made us experience the power of Jesus to break the strong world of forced silence through a dramatic performance. Is it because the history of liberation and freedom of the country that can be touched with hands (the presentness of God's country) must be concrete and real? What and how will I start with respect to the issue of salvation for my daughter? If inclusion symbolizes the arrival of the kingdom of God, to what extent should we embrace it?
-
예수께서 일어나사(24a)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24b)
한 집에 들어가(24c)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24d)
숨길 수 없더라(24e)
-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25a)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25b)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25c)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25d)
-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26a)
수로보니게 족속이라(26b)
자기 딸에게서(26c)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26d)
-
예수께서 이르시되(27a)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27b)
자녀의 떡을 취하여(27c)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7d)
-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28a)
주여 옳소이다마는(28b)
상 아래 개들도(28c)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8d)
-
예수께서 이르시되(29a)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29b)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29c)
-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30a)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30b)
귀신이 나갔더라(30c)
-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31a)
시돈을 지나고(31b)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31c)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31d)
-
사람들이 귀 먹고(32a)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32b)
예수께 나아와(32c)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32d)
-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33a)
무리를 떠나사(33b)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33c)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33d)
-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34a)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34b)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34c)
-
그의 귀가 열리고(35a)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35b)
말이 분명하여졌더라(35c)
-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36a)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36b)
경고하실수록(36c)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36d)
-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37a)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37b)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37c)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37d)
-
부정한 것의 침투_ Infiltration of uncleanness
명성에 입힌 손상_ the damage done to one's reputation
이방인의 담담한 믿음_ the calm faith of a stranger_
-
계속해서 자신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떠나 두로로 거처를 옮기셨던 주님, 말씀을 맡은 자로 유대인들 처럼 신령한 책임을 수행하지 않을때 내게 온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옮겨지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오 주여,은혜의 부스러기를 갈망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본받는 이방인이 되게 하옵소서. Remember that the gospel that came to me will be transferred to the Gentiles when the LORD, the man in charge of the Word, does not carry out divine responsibilities like the Jews, who have longed for the crumbs of grace, O Lord, so that you become a Gentile who emulates the faith of women.
2024.2.29.thu.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