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1일
제목 지속 가능한 교회되기(전도)
본문 빌립보서 1:12-21
지속 가능한 교회를 위해 결혼과 출산,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버리고 힘써 모이며, 자원하는 헌금을 통해 교회가 유지되고 교회의 고유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네 번째 시간으로서 지속 가능한 교회가 되려면 주어진 여건을 탓하지 않고 전도하는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복음 전파를 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위해 분골쇄신하였습니다. 상을 내려야 할 바울을 옥에 가두셨습니다.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라고 원망할만합니다. 순회전도자가 갇힘은 축구 선수가 발에 부상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났습니다. 한곳에 모여 예배하고, 대면하여 전도하는 교회에게는 난감한 일입니다. 집회에 관한 정부의 과도한 간섭, 교회를 향한 비우호적인 방송과 언론들로 인하여 전도의 문은 꽉 닫히고 말았습니다. 또 경제적인 여유로 인한 종교심의 약화도 전도를 더욱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만 아니라 인생살이도 더욱 고단해졌습니다. 비싼 집값 때문에 집 마련의 꿈이 무산된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무거운 병을 얻으면 열 배나 더 힘들어집니다. 홍수로 인하여 농민들과 도시의 서민들에게 혹독한 어려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반지하 방에서 잠자다 세 가족이 한꺼번에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에 지워지지 않은 깊은 상처를 입어 아파하기도 하고 약한 정신력 때문에 심각한 혼란을 겪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아무 일 없이 살 수 없나 봅니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만났거나 만나게 됩니다. 가벼운 감기처럼 견딜만한 고통도 있지만 독감처럼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갇힌 어려움을 어떻게 대응하였을까요?
복음의 진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영어의 몸이 되었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환경을 탓하거나 핑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출옥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고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전도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12-13절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로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구금된 시위대 안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의 군인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죄수들을 전도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간증합니다.
복음의 진보는 계속되었습니다. 14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교회 형제들은 갇힌 중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바울을 보며 그들도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복음의 진보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는데, 15절에 보면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매임을 더욱 괴롭게 하려는 나쁜 뜻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명예를 얻으려는 불순한 동기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18절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막힌 일을 통해서 큰일을 행하십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막았지만 하나님이 막힌 길을 뚫으셨고 홍해에서 길이 막혀 죽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내어 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핍박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망한 줄 알았지만 흩어진 자들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방해자가 아닙니다. 막힌 듯싶은 일들을 통해서 얼마든지 일하시는 분입니다.
태국 메홍선 지역에 두왕짠이란 사람은 유명한 깡패였으나 한국 방정열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마약 밀매업자의 간계에 휘말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영화 같은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옥살이를 하면서 850명의 죄수들에게 전도하여 250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불교국가 태국 역사상 최초로 교도소 안에 예배당을 건축하는 역사를 이루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약중독자 진료소를 만들어 200명의 마약중독자들을 완치시켰습니다.
바울은 갇힌 중에서 더 많은 전도를 이루었고,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려는 삶의 목표를 더욱 분명히 했습니다. 옥에 갇혔다고 해야 할 일을 멈추거나 삶의 목표를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몸은 가둘 수 있지만 복음은 가둘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막지 못합니다.
우리도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야 합니다
코로나가 교회의 사명을 멈추거나 우리의 삶의 목적을 바꾸게 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평안할 때만 아니라, 곤란한 상황에서도 전도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코로나가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멈추게 할 수 없듯이 전도도 멈출 수 없습니다.
우선 내가 속한 구역의 가족들 중에 장기결석자들의 신앙 회복을 돕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또 내 가족들 중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바랍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이들은 대개가 가족이나 친지 이웃을 통해서입니다. 이는 평소 신자들이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직장과 마을에서 겸손과 온유함으로 신자 됨의 도리를 잘하여 칭찬받는 자로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음으로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했다고 했습니다.
방역 때문에 전도가 불편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전도는 지속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옥에 갇힘으로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편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전도 편지입니다.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꼬는 척추 결핵으로 병상에서 보낼 때 전도하기 위해 편지를 씁니다. 글 쓸 힘조차 없어 간병인에게 받아쓰게 하여 보냅니다. 대면이 불편할 때 손 편지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SNS도 대면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됩니다.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의 전파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코로나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교회의 본분인 전도를 금지할 법은 없습니다. 어려운 여건을 방해물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징검다리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 봅시다. 교회가 본분을 따라 전도하면 지속 가능한 교회가 될 수 있게 됩니다. 전도가 교회를 지속하게 하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는 내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전도를 통해 죄 사함과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전도의 문이 닫힌 듯한 상황이긴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닫힌 문 사이로 새로운 문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드라마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드시기도 하고, 막힌 문 사이로 새로운 길을 마련하시는 분입니다. 죄악으로 두텁게 막혔던 휘장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찢으사 새롭고 산 길을 내신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전도만 아니라 모든 일들 중에 막힌 일들을 뚫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뜻을 정하고 기도하고 힘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일하실 것입니다.
코로나 3년간 동안 많은 일들이 멈추어 섰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우리 교회는 예배를 멈추지 않았고, 기도생활도 계속했습니다. 헌금도 더 많이 베푸셨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만든 대대마을 골목이야기는 마을 모든 분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었고, 마을과 교회를 잇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교회 인터넷 카페, 기억의 공간에 게시된 100여 명의 천국 가신 분들의 삶과 신앙의 이야기는 그의 후손들에게 신앙의 격려가 되었고, 멀어졌던 모 교회와 가까워지게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조선일보에서 두 가지 일을 비중 있게 다루어 주었고, 교계신문과 방송에서도 소개함으로 많은 교회와 목사님들에게 목회적 영감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여수에서는 우리 교회 사역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다고 제안했고, 11월에는 광신대학교에서 우리교회 사역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막힌 길을 여시는 분입니다.
결론
바울은 갇힌 중에 있었지만 전도할 사명을 다 했고,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데에도 본분을 다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코로나의 어려움이 있지만 전도에 더욱 분발하고, 그리스도를 존귀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속 가능한 교회로 굳게 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