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정정오
01 정원 김민철 (유영민)
02 (서성종) (신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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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역사속으로 흘러간 해태타이거스는 일단 한국시리즈에만 진출하면 100%의 승율을 올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전남야구의 일번지라고 할 수 있는 이 광주일고 역시 고교야구 결승전에만 13회 올라 9번이나 우승한 저력의 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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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49년... 적어도 한국내에서는 무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장태영의 경남중학을 연장접전 끝에 2:1로 물리치면서 호남에도 야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김양중투수의 광주서중은 바로 광주일고의 전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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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현재 전남북출신의 50-60대 지도자를 찾기가 힘들만큼 침체했던 호남야구는 70년대 전북소재 군산상고의 약진으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고.. 전북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전남/광주에서도 75년 광주일고의 첫 우승을 계기로 본격적인 야구붐은 시작되었습니다..
광주일고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광주야구의 첫 히어로는 고교야구 3연타석 홈런의 주인공 김윤환입니다.. 3루수였던 김윤환은 투수 강만식, 2루수 차영화와 함께 75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경북고의 성낙수에게 3개의 홈런, 5개의 타점을 뽑으며 6:2로 승리하며 우승했던 주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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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가 득세했던 해인 78년.. 광주일고에는 걸출한 투수 2명이 등장합니다.. 강속구의 이상윤과 변화구의 방수원이 그들로 비록 성적은 대통령배 승자결승전에 진출하는데 그쳤지만 이상윤은 그해 벌어진 세계청소년선수권의 준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에 뽑히는 활약을 했습니다..
이상윤과 방수원은 모두 프로창설시에 대학을 중퇴하고 해태에 입단한 투수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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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식과 이상윤에 이어 광주에는 한국야구역사를 다시 쓰는 대형선수가 나타납니다.. 80년 광주혁명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등장한 당시 고교3년생 선동열은 비록 1개대회 우승에 그쳤지만 모든 팀들이 두려워하는 강속구로 그해 유난히 많았던 고교유망주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의 투구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80년 광주혁명 당시 선동열의 아버지가 계엄군의 총앞에 있던 영남대학생 방수원의 생명을 구해준 인연을 계기로 일세의 변화구투수 방수원은 선동열에게 슬라이더를 전수해 주었고 그 슬라이더는 선동열의 강속구에 날개를 달아주면서 국보급투수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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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고 야구가 비로소 전국을 호령하던 시기는 83년.. 거장 김대권감독의 지휘아래 광주일고는 중앙 4개대회 중 3개대회를 차지하면서 수많은 스타들을 쏟아지듯 배출합니다..
강속구 투수 문희수와 투수,포수를 포함한 전포지션을 소화했던 야구천재 박준태에 김선진-서창기의 키스톤.. 그물망 외야수비의 김성규에 강타자 정영진 등등..
광주일고는 문희수가 졸업하던 이듬해에도 박준태와 언더핸드 이강철을 앞세워 또다시 황금사자기를 제패하면서 광주일고 전성시대를 수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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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정회열의 86학번과 김기태-강길룡-염경엽의 87학번에 이어서 등장한 이종범-성영재-박철웅-정영규의 89학번은 1988년 같은 호남권의 군산상고를 결승에서 만나 11회초에 1점을 빼았겨 패색이 짙었으나 11회말 이종범이 끝내기 2루타를 치면서 재역전.. 84학번들이 유일하게 빼놓었던 청룡기를 김양중시대이후 39년만에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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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이 투타에서 돋보이던 91년에는 경남상고와 신일고에게 막혀 아쉽게 준우승만 두차례 기록했고.. 93년의 이호준도 봉황기 8강에 그쳤지만 홈런과 타점상을 거머쥐며 투,타에 걸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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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들어 연고팀인 해태의 재정악화와 함께 광주일고에는 해외진출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습니다.. 90년대 유일한 우승인 95년의 청룡기는 이 해외파들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2학년의 김병현은 덕수상과의 결승전에서 8이닝동안 18탈삼진을 기록하면서 최우수선수상을.. 그리고 3학년 에이스였던 서재응은 우수투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4번타자로 타선을 이끌던 선수는 거구의 1학년이었던 최희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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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이 3학년이었던 97년의 황금사자기에서는 화려한 맴버의 신일고를 맞아 9회 결승타를 허용하면서 준우승에 그쳤습니다만.. 투수 김광우와 함께 활약한 최희섭-송원국-이현곤-정성훈의 내야진은 고교야구에서 두번다시 보기 어려웠던 환상의 내야라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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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90년대들어 1회의 우승에 그치면서 아직 10회우승에 한번을 채우지 못한 광주일고는 최근 동성과 진흥에 밀리는 양상이지만 전국에 단 4개교밖에 안되는 중앙 4개대회 제패팀으로서 호남 특유의 근성과 수십년간 내려오는 전통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호남의 맹주역할을 담당할 명문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