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에는 혼인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1 여러분이 적어 보낸 문제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그러나 음란에 빠질 유혹 때문에, 남자는 저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도 저마다 자기 남편을 두도록 하십시오.
3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와 같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십시오.
4 아내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장합니다.
5 서로 물리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에 전념하려고 하여, 얼마 동안 떨어져 있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시 합하십시오. 여러분이 절제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사탄이 여러분을 유혹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적어 보낸 문제에 관하여 말하겠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돌보며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교회가 자립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을 때 다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이 사람을 보내 바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고, 바울이 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보낸 편지에는 결혼문제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바울이 그 문제에 대해 먼저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답니다. 공동번역에는 ‘남자는 여자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예 결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인데, 그러면 음란에 빠질 유혹을 받을 수도 있으니 결혼을 하고 싶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으면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어지는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가 하는 말이 명령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처럼 독신으로 지내면 좋겠지만 각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달라서 일괄적으로 자신처럼 지내라고 말할 수는 없답니다. 그러면서 미혼자, 과부, 기혼자, 이혼자 등 여러 상황에 처한 교인들을 상대로 권면을 이어갑니다. 8~11절을 보겠습니다.
8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그들에게 좋습니다.
9 그러나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십시오.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낫습니다.
10 결혼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11 -만일 헤어졌거든, 재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남편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도 아내와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단지 대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서 의미를 강조한 것뿐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불신자와 결혼한 교인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12~16절을 보겠습니다.
12 그 밖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말이요, 주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어떤 신도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는데, 그 여자가 남편과 같이 살기를 원하면, 그 여자와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13 또 어떤 아내에게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데, 그가 아내와 같이 살기를 원하면, 그 남자와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14 믿지 않는 남편은 그의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해지고, 믿지 않는 아내는 그의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자녀도 깨끗하지 못할 것인데, 이제 그들은 거룩합니다.
15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 쪽에서 헤어지려고 하면, 헤어지게 하십시오. 이런 경우에는, 형제나 자매가 얽매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16 아내 된 이여, 그대가 그대의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압니까? 남편 된 이여, 그대가 그대의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압니까?
불신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 교인들은 배우자가 같이 살기를 원하면 같이 살고 헤어지기를 원하면 헤어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주목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본문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바울이 ‘이것은 나의 말이요, 주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랍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을 보겠습니다.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불신자와의 결혼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받아서 말하는 게 아니랍니다. 그냥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성서무오설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훗날 사람들이 자기 편지를 성서 안에 넣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했다는 걸 알았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결혼을 했건 안했건, 할례를 받았건 안 받았건, 신분이 노예이건 아니건, 그런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현재 가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이어서 25절을 보겠습니다.
25 주께서 처녀들에 관해서 내게 명령하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서,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사람으로서, 의견을 제시합니다.
여기서도 바울은 주님의 명령을 받은 게 없다고 말합니다. 그냥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거랍니다. 바울은 아니라는데 성서에 담긴 모든 기록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26~31절을 보겠습니다.
26 나는, 곧 닥칠 재난 때문에, 사람이 현재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7 아내에게 매였으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내에게서 놓였으면, 아내를 새로 맞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결혼하더라도, 그것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처녀가 결혼하더라도, 그것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내가 아껴서 하는 말입니다.
29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곧 닥칠 재난 때문에 사람이 현재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답니다.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져 버릴 거랍니다. 종말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임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믿음을 갖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바울이 이 고린도전서 7장에서 자기가 한 말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했으니 망정이지, 하나님께 받아서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7장의 종반부로 갈수록 사도 바울이 좀 횡설수설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 부분인 38~40절을 보겠습니다.
38 그러므로 자기의 약혼녀와 결혼하는 사람도 잘 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 하는 것입니다.
39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남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다만, 주님 안에서만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40 내 의견으로는, 그런 여자는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받은 게 없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더니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한답니다. 일관성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확신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확신하는 신앙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닙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신앙, 때로는 흔들리는 신앙이 확신하는 신앙보다 훨씬 더 좋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