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부터는 분열왕국시대를 다루게 됩니다. 그러나 북왕국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10장에는 북쪽 10지파가 분리 독립하게 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1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려고 세겜에 모였으므로,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다.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솔로몬 왕을 피하여 이집트에 가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이집트에서 돌아왔다.
3 사람들이 여로보암을 불러내니, 그와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4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습니다. 이제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메우신 중노동과, 그가 우리에게 지우신 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
이 본문은 열왕기상 12장을 인용해온 것입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일단의 무리와 함께 르호보암을 찾아와 강제노역을 중지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르호보암의 대답을 보겠습니다. 14절입니다.
14 르호보암 왕은 젊은 신하들의 충고를 따라 백성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으나, 나는 이제 너희에게 그것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겠다. 내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셨으나, 나는 너희를 쇠 채찍으로 치겠다."
나이든 신하들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조언했지만 르호보암은 강경책을 쓰기로 한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16절입니다.
16 온 이스라엘은, 왕이 그들의 요구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왕에게 외쳤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받을 몫이 무엇이냐? 이새의 아들에게서는 받을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각자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너의 집안이나 돌보아라." 그런 다음에, 온 이스라엘은 각자 자기들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19절도 보겠습니다.
19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 왕조에 반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은, 당대 사람들이 보듯이 완전히 멸망하고 이민족과 섞여서 사마리아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오늘에 이르렀다’ 라는 말로 역대기 기록 당시의 상황을 결론으로 내렸지만, 잘 아시다시피 르호보암이 여로보암의 건의를 묵살했을 때 유다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10지파가 돌아서서 별도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이때부터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진 세월이 200년이 넘습니다. 그러다 서기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남왕국 유다는 그보다 100여 년 더 견뎌내긴 했지만 서기전 587년 또는 586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왕국 멸망 연도는 명확하지가 않아서 587년이라고도 하고 586년이라고도 합니다. 그래도 587년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아서 587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서기전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남왕국 유다가 멸망당했지만, 민족말살정책을 쓴 아시리아와는 달리 바벨론은 그래도 혈통은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기에 약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관용정책으로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의 지식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다공동체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자신들이 잘나서도 아니고 잘해서도 아닙니다. 신앙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요, 일반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덜 사나운 정복자를 만난 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는 열지파의 반역까지만 말하고, 여로보암이 왕의 자리에 올라 북왕국이 설립된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후로도 북왕국 이스라엘이 언급될 때는, 남왕국 유다와 전쟁을 할 때라든가, 협력해서 어떤 공동전선을 펼 때, 그러니까 남왕국과 연결해서만 언급될 뿐이고 북왕국을 주체로 한 역사기록은 등장하지 있습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오직 다윗의 후손이 다스리는 나라뿐이었고 그 상속자들도 살아남은 유다공동체뿐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