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 이야기
사적121호(1963.1.21 지정)
시대; 조선시대 태조 3년 (1934년)
위치: 서울 종로구 사직동1-28(9,091㎡)
지금의 사직단 모습은 19c초 그림을 기초로 완성 되었으리라 짐작되며 정문인 신문은 외담 북쪽에 서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쪽으로 세워져 옛 모습을 전하고 있다. 그 모습은 앞면이 3칸 옆면이 2칸으로 넓이는 57.42㎡로 보물제177호로 지정되어있으며 神이 드나드는 문은 중앙에 사람이 드나드는 문은 측면에 분리 하였다. 지붕 모양은 책을 덮어 놓은 것 같은 맛배 지붕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泥土(니토)로 깔고 사방 정사각 모양의 담장을 대하게 되는데 외벽 담을 墻(장)이라하고 내측 담을 壝(유)라한다. 담 안의 흙은 淨土(정토)로 깔아 반열지로 동반 서반이 나누어 서며 정부 중신을 사직 지신이라 이르며 성스러움을 나타내고 북 신문은 삼문으로 신과 사람이 분리된 길로 다닐 수 있게 하였다.
어도 신도를 들어서면 판위 혹은 배위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선왕을 위해 절하고 제례 준비의 유무를 확인하며 헌관은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고 잠시 머무는 곳이다. 내측 담을 들어서기 전 부정한 것은 없는지 살피고 홍살문을 지나 내담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단을 대하게 되는데 동쪽에 땅의 신인 사단과 서쪽에 곡식의 신인 직단이 자리하고 있다.
단의 사면에는 사방 신이 감응 하기를 기원하는 뜻의 사단과 직단의 사방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단의 내부 흙은 국토의 신성한 지점의 흙으로 채우고 즉 동쪽은 태백산 근처의 푸른 빛이 도는 흙을 채우고 서쪽은 강화도 첨성단 근처 흰색의 흙으로 남쪽은 지리산 근처의 붉은 빛의 흙을 그리고 북쪽은 우리 민족의 영산인 묘향산이나 백두산 근처의 검은색 흙을 채우고 그 위에 황토 흙을 채웠으리라 여겨지며 사단의 한쪽에는 硅(규)라 이르는 망두석 머리 부분만 노출되어 땅속의 기운이 배출하여 하늘로 향하는 상승 작용으로 인해서 천지신명이 순조로운 조화로 풍년을 염원하는 기원이 담겨있다. 또한 하늘로부터 신성한 기운을 받기위한 망두석은 외담 밖에 서 있는 것은 조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며 아마도 직단 위에 서있었지 않을까 어림 해 본다. 내담 안쪽엔 사방 1m정도의 정 사각형의 석함이 설치되어 화재예방을 겸하는 뜻으로 소전대석이라는 예감이 설치되어 축문을 소 하였다.
이러한 제사 제도는 단군 시대부터 전해 왔음을 풍백 운사 우사로 느끼게 한다. 고구려에는 동맹에서 신라는 37대 선덕왕때 사직단을 세우고 풍백 운사 우사에게 제사 지내고 명산대천과 입춘뒤 선농에서 신성 북문에 입하뒤 해일에 중농을 입추뒤 해일에 후농에 제사 지냈다는 이야기와 백제는 풍납토성 말머리 출토 유물에서 고려시대는 성종 10년에 사직을 세웠다는 기록에서 유래를 가늠 해 본다.
이러한 뜻을 받들어 정통성을 잇기 위하여 태조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건설할 때 조성 하였다. 국사단과 국직단이 이루어 지고 왕이 문무백관을 대동하고 직접 제향을 올리고 국태민안을 기원 했던 곳이다. 해마다 사직대제를 봉행하기 위하여 어가 행열이 덕수궁을 출발 해 종로 광화문을 거쳐 사직단까지 재현된다.
1897년에는 고종이 황제위에 오르자 태사 태직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제사는 사계절 지내고 큰일이 있을때나 가뭄에 기우제 풍년을 비는 기곡제등 사단은 후토씨와 직단에는 후직씨를 함께 지냈다. 선조 18년(1585년) 8월1일 상이 친히 사직단에 제사를 올렸는데 위판이 없어 졌으므로 급하게 허위를 설치하여고 제사를 마친뒤 대대적으로 수색 사직단 나무밑에서 찾았다. 이에 의심이 가는 자를 심문하니 수복 주홍이 한 짓임이 밝혀져 대역죄로 그 처자도 참형에 참봉들도 결장 파직시켰다. 사직단의 관리 관청으로 사직서를 두었고 제사는 정시제와 임시제로 구분되며 정시제는 춘하 추동 지내지 안았을까 여겨지며 임금은 7일 동안 재계하고 직접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하나 신하에게 대행 시키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중사는 5일 소사는3일 재계하였다고 한다. 대축(제사 축문 담당자)는 희생물의 피와 털을 땅에 묻는 절차가 있었다. 이는토지신을 불러오기 위한 의식이었다. 왕이 초헌관이 되어 사직단 제사장의 기능을 갖는다. 초헌례는 예제라는 술을 올리는데 술찌기를 걸러내고 중간의 맑은 술로 쓰며 단술과 유사한 술을 사용하고 제사가 끝나면 음복하고 제사에 올렸던 퍠백과 축문을 소하고 땅에 파묻는다.
오늘 월드컵 첫 단추를 훌륭하게 꿴 선수들과 축구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며 전국 거리마당에서 응원에 동참한 붉은악마 응원단과 국민모두는 조상들의 문화가 되 살아 나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
사직단
아버지의 아버지의 마음들이 머물렀던 곳
마음의 고향이었네
그리고 그
할머니의 할머니의 가신 길 우리가 지나 왔던
아득한 옛날이어라
솔 방울 들고 솔솔 부는
바람 소리를 들었더라
날리 날리 민들레 씨방에서
하늘에 수 놓는 구름의 뜻을 읽었어라
빗줄기 처럼 휘어진 버들 나무 휘휘 흥겨운 가지엔
빗소리가 맺혔었더레요
동굴 속에서 돌 하나 들고
세상으로 나왔데
그리곤 자연의 소리를 깨달았다라
바람이 일어나니 구름이 일고
비가오니 하늘의 소리였더라
風伯 雲師 雨師 순탄 하셔야
비로서 찰진 삶이 펼쳐지니
순리 따라 겨레 염원 빌어 왔데
세상 열어가는 법 익혔네
하늘에 비는 염원은 망두석으로 세워졌네
천손의 겨레여
하늘의 순리대로 가는 것이 순탄한 삶이어라
땅의 신이여 씨의 신이여 강림하소서
온누리 祈願하니 풍요로움 열어주소서
사직단 흘러가는 저 구름은 알려나
신이 머무는 백악산으로 흐르는 나그네 구름
홍전문 세운 마음들을 혜아려
그 성산에서 社神 穀神---
神道따라 오는 듯 하여라
사직단 세우고
국조이신 단군의 거룩한 마음을
알리 알리 알리라
사람들아
이화세상 홍익인간
널리널리 널리라
숭고한 님의 뜻
오늘도 사직단 화단에는
맥문동 화초로 이어지어이
할아버님 마음의 이야기
할머님 옛 이야기
알리랑 몰리랑 흐르리라---
-역사공부에 도움주신 박기준,김종우 선생님께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