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초고가 브랜드의 성공 비결
'로열 블루티' 의 녹차 -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이 프랑스 레스토랑서 마시는 음료… 와인 병에 담아 취급도 간편하게
3만원짜리 '르셋' 식빵 - 비싸도 더 맛있는 빵 먹겠다는 30~40代 전문직 여성이 타깃… 日100개 한정… 인터넷 예약 판매
지난 3일 저녁,
도쿄 긴자(銀座)의 백화점
'미쓰코시(三越)긴자' 지하 식음료 매장.
한눈에 봐도 고급 제품이 즐비한 이곳 한쪽에 20㎡ 면적의 미니 바(bar)가 눈에 띈다.
20대 여성 고객 한 명이 바 앞쪽에 앉아 와인 잔을 홀짝인다.
그런데 이 여성이 마시는 건 와인이 아니라 녹차(綠茶)다.
'로열블루티(Royal Blue Tea)'라는 회사가 만든 제품으로 와인 병에 담겨 와인과
비슷한 방식으로 유통된다.
한 병에 평균 5000엔(약 5만원),
가장 비싼 제품인 '마사(Masa) 수퍼 프리미엄'은
32만4000엔(약 320만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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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열블루티의 최고급품‘마사 수퍼 프리미엄’. 750mL 1병에 32만4000엔(약 320만원)이다. / 로열블루티 제공
지난 6일 오후 도쿄의 일급지(一級地) 이케지리(池尻).
아이가 줄어든 탓에 10년 전 폐교한 한 중학교 건물.
예술가·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집단 공방(工房)으로 변신한 이 건물의 1층 한가운데서
구수한 빵 냄새가 풍겨 나온다.
'르셋(recette)'이란 인터넷 판매 전문 빵집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흰색 옷과 모자 차림의 여성 작업자 3명이 분주히 움직인다.
빵 냄새와 함께 모차르트의 음악이 흐른다.
클래식 음악을 틀면 빵 반죽의 발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대표 제품은 식빵.
세 덩어리짜리 식빵 한 봉지에 3300엔(약3만3000원)이며,
100% 인터넷 예약제다.
아카호시 게이코(赤星慶浩) 르셋 공동 대표는
"매일 100개 한정으로 만드는데,
예약 접수 후 며칠 만에 한 달치 판매가 끝난다"고 말했다.
300만원짜리 녹차,
3만원짜리 식빵….
상식을 뛰어넘는 가격이다.
어떻게 이런 초고가 제품을 파는 회사들이 수익을 내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일까?
성공 비결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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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시모토 사장(왼쪽)이 미쓰코시긴자 백화점 지하 로열블루티 전용 바에서 자사의 와인병 녹차를 와인잔에 따른 뒤 빛깔을 보고 있다. 오른쪽 위는 르셋의 3만원짜리 식빵, 아래는 이 식빵 택배 용 포장 패키지. / 도쿄= 최원석 기자
①세상에 없던 가치를 제안하라
두 회사는 이전에 없던 가치를 고객에게 제안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로열블루티는 고객에게 '와인 병에 담긴 녹차를
와인 잔으로 즐겨달라'고 제안한다.
요시모토 게이코(吉本桂子) 로열블루티 사장은
'술 못 마시는 사람이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즐길 수 있는 음료'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세상의 모든 고급 레스토랑은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의 천국이에요.
하지만 저처럼 술 못 마시는 사람이 세계 인구의 절반은 될걸요.
이 많은 인구가 사실은 프랑스 요리와 와인의 멋진 마리아주(음식 궁합)를 즐기지 못하는 겁니다."
요시모토 사장의 둘째 제안은
고급 녹차를 마시는 기존 스타일의 파괴다.
그는 "다도(茶道)는 물 끓이기부터 찻잎을 우려내 마시는 것까지 번거로운 일투성이"라며
"소믈리에도 쉽게 취급할 수 있고
손님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스타일로 차 소비 문화를 바꿔야
녹차의 브랜드화·글로벌화가 더 가능할 것이라 봤다"고 했다.
르셋은 '비싸지만 더 맛있는 식빵'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아카호시씨는 "맛있는 빵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합해 판매 가격을 정했다"고 했다.
②참여자 모두를 즐겁게 하라요시모토 사장은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우선 소비자를 보자.
로열블루티는 와인을 좋아하지만 못 마시는 소비자에게
와인과 흡사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들은 300만원짜리 녹차를 즐기는 최적 온도가 레드와인과 비슷한 섭씨 17~18도라고 홍보한다.
또 프랑스의 그랑크뤼 와인이 특급 포도원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지듯,
로열블루티의 최고급 제품은 일본의 특급 녹차 밭 중에서도
몇십 ㎏밖에 나오지 않는 극상품 찻잎을 우려내 만든다고 강조한다.
세컨드 와인(같은 특급 포도원 포도지만 최상급보다 급이 약간 낮은 포도로 만든 와인)과
같은 녹차도 물론 있다.
술을 못 마시는 바이어나 연인을 대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떨까?
상대방에게 와인과 비슷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니 좋고,
자신도 술 못 마시는 상대에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와인을 즐길 수 있으니 좋다.
다음은 생산자다.
로열블루티의 존재가 일본 최고급 녹차 산지가 모여 있는 가나가와현,
시즈오카현의 농가에서 환영받는 것은 당연하다.
요시모토 사장은 작년 일본정책투자은행이 시상하는 여성창업인상 대상을 받았는데,
녹차 농가의 이익을 도모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번에는 레스토랑 업주다.
"레스토랑은 술을 팔아 이익률을 높입니다.
술 못 마시는 고객은 레스토랑 주인 입장에서 달갑지 않겠지요.
하지만 와인 가격으로 내놓을 수 있는 녹차라면 레스토랑 매출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③나와 비슷한 고객과 함께 가라르셋의 3만원짜리 식빵 소비층은
30~40대 전문직 여성이 70%를 차지한다.
아침에 좀 더 맛있는 빵을 먹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제과점 들러 빵 살 여유도 없는 바쁜 이가 많다.
그렇다고 집 근처 편의점 식빵으로 배를 채우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이들에게 3만원짜리 식빵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사치'다.
아카호시씨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와 가치관이 같은 고객과 함께 오래가는 게 르셋의 목표"라고 말했다.
④가치에 집착하라녹차를 와인 병에 넣은 것은 단순히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극상의 맛을 내려면 온도 유지와 공기 차단이 잘돼야 한다.
녹차 성분인 카테킨은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빛이 잘 가려져야 한다.
결국 와인 병이 관리나 유통에 최적이었다.
대신 마개를 코르크 대신 공기가 완전히 차단되는 유리로 바꿨다.
또 로열블루티는 일본 최고 녹차 밭 가운데서도
특급 지역의 가장 품질 좋은 찻잎을 전용으로 사들인다는 점을 강조한다.
르셋은 밀가루와 물, 천연 효모를 최상급으로만 쓰는 것은 물론,
통상의 5배인 24시간 발효를 거친다.
방 안에는 공기 정화기를 통해 청결한 공기가 유지된다.
배달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르셋은 일부러 하룻밤 지나야 더 맛있어지도록 빵을 만들어 보낸다.
⑤관행과 타협하지 말라르셋의 모토 중 하나는
'기존 제빵업계는 지켜보지도 따라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이다.
르셋 창업자나 직원 중 기존 제빵업계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로열블루티의 공동 창업자인 요시모토 사장과 사토 세쓰오(佐藤節男) 회장 역시
기존 녹차 음료 업계와 관계없는 녹차 동호인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