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홍선행(洪先幸)은 당성에 대대로 살아온 선비의 집안으로 고려 때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냈으며 가문의 기틀을 잡아 가세를 크게 번창시켰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남양으로 하였다.
남양 홍씨 토홍계는 조선시대에 상신 2명, 문형 1명, 청백리 3명, 부마 1명, 공신 3명 등을 배출하였다.
문희공파에서는 홍언필(洪彦弼)이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홍섬(洪暹) 역시 선조 때 영의정을 세 차례나 중임하고 청백리에 뽑혔다.
정효공파의 정효공 홍담(洪曇)은 홍언필의 조카인데, 훈구파(勳舊派)의 거두로서 선조 때 이조판서를 지내고 역시 청백리에 뽑혔다. 대호군공파에서는 홍숙(洪淑)이 병조판서·좌찬성 등을 역임하였고, 병자호란 때 척화론을 주창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홍익한(洪翼漢)은 그의 현손이다.
참의공파의 홍가신은 청난공신으로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그 손자인 홍우정, 홍우량, 홍우원 등이 판서와 청백리, 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단소가 어디에 계신지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6.11 08:00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