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을 바라보면서/전성훈
도봉문화원 10월 역사문화 탐방은 경북 영주시 일원이다. 탐방에 참가하려고 신청하며 제발 내가 탑승할 버스 좌석 주변에 조용한 분들이 앉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하느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지 이번에는 대부분 탐방객들이 조용했다. 지난 9월 장성 지역에 갈 때는 수다스러운 탐방객이 많아서 정말 곤혹스러웠다. 오죽하면 잠깐 잠깐 귀를 틀어막고 있을 정도였다.
집을 떠나 자동차나 기차 혹은 비행기나 여객선을 타고 여행길에 나서면 누구나 마음이 설렌다. 게다가 함께하는 일행이 있으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 때문에 흥분되기 십상이다. 연인을 찾아 사랑 노래를 부르는 숲속의 새처럼 쉴 새 없이 종알종알, 지지배배 한시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럴 때에는 본인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웃음소리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진다. 그렇게 너 나 없이 크게 함빡 웃음을 터뜨리며 수다를 떨다보면 그 곳은 순식간에 통제 불능의 오락실이 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옆 길가에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나이 드신 분들은 안개가 걷히면 날씨가 더워진다는 것을 지나간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안다. 부석사에 도착하니 가을날의 따가운 햇살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늦더위를 참지 못하는 여성들은 겉옷을 벗고 반소매 차림의 시원한 복장으로 사뿐사뿐 걸어간다.
다시 부석사를 찾으며 40년도 넘는 가물거리는 옛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느 것 하나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대학에 들어가 고적 답사로 안동과 영주 일원에 갔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밤새 술을 많이 마시고 목이 말라서 툇마루에 있던 콜라병을 집어 들었다. 콜라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맛이 이상하였다. 다음 날 아침 확인하니 탁본을 위하여 미리 갈아 놓은 먹물이 담긴 콜라병이었다. 창피하고 달갑지 않은 추억의 작은 조각조각 하나 그대로 자세히 기억되는데, 부석사에서의 일들은 전부 망각의 강 저편으로 건너가 버렸다.
맛있는 사과의 고장 영주, 수확 철이라 그런지 한창 사과가 주렁주렁 탐스런 열매를 맺은 채 가지에 달려있었다. 사과의 무게 때문에 어떤 나무는 밑으로 가지가 축 늘어졌다. 어느 집 과수원에는 사과 밭 울타리가 철조망 대신 탱자나무로 주욱 빙 둘러쳐져 있다. 탱자나무에는 가시가 상당히 뾰족하게 나왔고 노란색의 탱자가 작은 모습으로 소담스럽게 열렸다. 탱자나무 숲을 통해서 보이는 사과나무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그 풍성한 사과 밭들을 지나면 부석사 일주문이 우리를 맞는다. 역사문화탐방 덕분에 우리나라의 많은 절집을 다녔다. 대부분의 절은 주차장에서부터 일주문을 지나 어느 정도까지는 포장도로이었다. 그런데 부석사는 주차장을 지나 조금 걸으니까 뜻밖에도 절집 안 뜰까지 비포장도로이다. 절정의 단풍 시기가 아니라 아직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지 않았고 숲길에 떨어져 있는 낙엽도 그다지 없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주문부터 양쪽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속계(俗界)와 진계(眞界)를 구분하는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절집으로 발길을 옮기며 갑자기 떠오른 의문 하나. 육체와 몸이 하나로 이루어진 인간이 일주문을 경계로 승속을 구분한다는 그 깊은 뜻은 무엇일까? 아둔한 머리로는 전혀 그 뜻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을 보면서 한국미의 순례자라고 칭송받았던 혜곡 최순우 선생이 떠올랐다. “배흘림기둥에 서서”라는 아름다운 말씀으로 무량수전의 기둥을 멋지게 노래하셨던 최순우 선생.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재직하시면서 암 투병을 하시던 시절, 선생이 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 우리 정부는 병가 기간이 종료되었다며 가족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연락을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규정대로 집행한다지만 인정머리 없는 통보에 울음을 터뜨리셨던 최순우 선생 부인의 한 많은 원망과 슬픔이 새삼 떠올랐다.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셔진 아미타불, 아미타불은 서쪽에 있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이다. 천주교 신자이지만 신발을 벗고 무량수전에 들어가 머리를 숙이고 예를 올렸다. 잠시 동안 다른 종교에 대한 마음의 벽을 열고 아미타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서쪽 측면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계신 자태가 너무나 자비롭고 평안한 모습이다. 아미타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아미타불이 다르게 보이는 것일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보면 아미타불 본래의 진면목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조금은 숙연한 마음으로 무량수전 밖으로 나와 부석사 경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말로만 들었던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으로 둘러싸인 무량수전의 바깥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토록 아름다운 절집을 지은 우리 조상의 장인정신과 미적 솜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부석사를 둘러싼 주위에는 수많은 산들이 실타래처럼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듯이 느껴진다. 저 멀리 있는 먼 산을 바라보는 순간에 따가운 햇살사이로 저 혼자 떨어진 산새가 잃어버린 짝을 찾아 짹짹하고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온 한 마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2015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