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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힐스 컨트리 클럽 - 박세리엔 비극, 박지은엔 희극의 무대 | |
2004년 LPGA투어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를 기억하시는지. 마지막 18번 홀, 10m 거리의 내리막 이글 퍼트를 성공시킨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예스, 예스, 컴 온(Yes, Yes, Come On!)”을 외치던 송아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2타 차 선두에서 졸지에 동타를 허용한 박지은.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1.5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면서 기어이 ‘메이저 퀸’의 자리에 올랐다. 대회 전통에 따라 시상식을 마친 뒤 18번 홀 그린 옆의 연못에 뛰어들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아널드 파머 레스토랑. 나비스코 챔피언십의 무대, 미션 힐스 컨트리클럽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란초 미라지란 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이름 그대로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신기루(Mirage)’ 같은 코스다. 4월 24일 미션 힐스를 방문했다. 필자가 수학하고 있는 골프 스쿨(PGCC)의 교장인 팀 서머빌(Tim Somerville)의 초청을 받았다. 서머빌은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력가다. “요즘 미국의 명문 코스를 소개한다며. 내가 회원으로 있는 미션 힐스는 어때?” ‘불감청(不敢請)이나 고소원(固所願):감히 청하지는 못했으나 본디 바라고 있던 바라는 뜻)’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문자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미션 힐스에는 토너먼트와 아널드 파머, 피트 다이 챌린지등 모두 세 가지 코스가 있는데 우리 일행은 나비스코 대회를 개최하는 토너먼트 코스에서 라운드하기로 했다. 4월인데도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린다. 1번 홀부터 이마에 땀이 맺힌다. 코스는 말 그대로 시원시원하다. 거리도 길고, 페어웨이 폭도 넓은 편이다. 그렇지만 페어웨이 양편에 늘어서 있는 야자수가 시야를 좁게 만든다. 조금만 방심하면 나무 밑이나 질긴 러프에서 샷을 해야 한다. 파4의 6번 홀은 거리가 346야드밖에 되지 않는데도 난도가 가장 높다. 티샷이 길면 물에 빠지기 때문에 만용은 금물이다. 페어웨이 우드를 잡고 티샷을 한 뒤 정교한 아이언샷으로 물을 건너 그린 위에 떨어뜨려야 한다. 60대의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기량을 과시하던 서머빌이 입담을 늘어놓는다. “15년쯤 지났나? 하루는 얼 우즈(타이거 우즈의 아버지)와 한 팀이 돼서 라운드를 했는데 말이야, 전반 9홀을 마쳤을 때 우리 팀이 8홀 차로 지고 있었지 뭐야. 그래서 내가 말했지. ‘여보게 얼, 이제는 우리가 반격할 차례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아나. 후반 9홀에서 모두 승리를 거둬 우리 팀은 한 홀 차로 역전승했어. 암, 극적이었고 말고. 그 후로 얼은 타이거가 거둔 어떤 우승도 여기에는 못 미칠 거라고 자랑했다지.” 다소 과장이 섞였는지는 몰라도 유쾌한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18번 홀(파5)이다. 나비스코 대회 때는 521야드였지만 챔피언 티 기준으로는 무려 646야드나 된다. 페어웨이 왼쪽과 그린 주변을 워터 해저드가 감싸고 있는 시그니처 홀. 올해 나비스코 대회 마지막 날엔 박세리가 18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물속에 빠뜨린 뒤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제까지 박세리는 통산 23승을 거뒀지만 유독 이 코스에서만은 약세를 보이곤 했다. 나비스코 대회에 아홉 차례 도전해 한 번도 톱5 안에 든 적이 없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번번이 미션 힐스에서 발목을 잡혀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미션 힐스는 박세리에겐 잡힐 듯 잡힐 듯 사라지는 ‘신기루’다. ‘미션 힐스의 워터 해저드는 박세리의 눈물’이기도 하다. 그런 사연을 떠올리며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챔피언 티에서 드라이브샷을 해보자는 서머빌의 제안을 따랐더니 4타만에도 온그린하기가 쉽지 않다. 그린 역시 무척 빠른 편이어서 조금만 세게 치면 공이 물까지 흘러내릴 판이었다. 땡볕 속에 목이 타는 듯했다. 라운드를 마친 뒤 음료수를 청했더니 서머빌이 ‘아널드 파머’를 주문했다. 아널드 파머는 아이스 티와 레모네이드를 절반씩 섞은 찬 음료수란다. ‘골프 황제’ 파머가 즐겨 마셔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내친김에 저녁 식사도 ‘아널드 파머’에서 하기로 했다. 골프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아널드 파머 레스토랑(Arnold Palmer’s Restaurant). 파머가 지분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스토랑 건물 앞에는 두 개의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고, 테라스 옆쪽엔 9홀 퍼팅 그라운드까지 갖춰져 있다. 실내에는 네 개의 방이 있는데 하나는 ‘파머의 방’이고 나머지 3개는 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 오픈 룸이다. 파머가 우승했던 메이저 대회의 이름을 따서 만든 방이다. PGA챔피언십 룸이 없는 것은 파머가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유독 이 대회에서만은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벽에는 그가 우승했던 당시의 기념품과 옷 등이 가득 걸려 있다. 파머가 미국인들에게 이처럼 인기가 높은 이유가 뭘까. 서머빌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명쾌한 답변을 내놨다. “미국에서 파머와 잭 니클로스의 인기는 비교가 안 된다. 니클로스도 훌륭하지만 파머에게는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가 있잖아. 오만하지는 않지만 겸손함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바로 파머의 매력 아니겠어?” 서머빌은 파머가 은퇴한 뒤 이 인근에 집을 마련해놓고 가끔씩 이 레스토랑에 들른다고 귀띔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레스토랑을 나서는데 식당 한편에 써놓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행복한 인생을 맛보세요(Taste the good Life)’. |
첫댓글 겸손함에서 나오는 카리스마!
Taste the good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