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비공식 리뷰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공적인 매체에 올리지 않은 리뷰라는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쓰는 리뷰니까요. 번역 작업을 하면서 듣다가 '삘' 받아 씁니다.
아래는 항상 그랬듯이 존칭 생략. (중간에 잘못 쓴 부분이 있어 혼란을 드린 듯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노트의 말러 사이클이 대개 그랬듯이, 여기서도 정밀한 세부와 큰 스케일이라는 상호 조화되기 힘든 요소가 병치되고 있다. 마르쿠스 슈텐츠/쾰른 귀르체니히의 녹음(Oehms)와 비교해 보면 노트의 말러는 몇 가지 측면에서 미세하지만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연주의 스케일이 더 크기도 하지만, 슈텐츠는 각 세부를 전체적인 짜임새의 테두리 속에서 살려내는 데 비해 노트는 각각의 세부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확대한다. 다시 말해 노트의 말러 해석은 슈텐츠에 비해(아니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다분히 환원주의적이다. 이러한 해석 기조 때문에 그의 말러 녹음 가운데는 각각의 세부와 거기에 내포된 의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악상의 자연스러운 서사를 가로막는 경우가 꽤 있다(무엇보다도 '교향곡 9번' 녹음을 들어보라). 반면 슈텐츠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을 찾을 수 없다. 세부를 다루는 태도 역시 노트가 대체로 더 진지하고 덜 경쾌하다. 전반부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가져올 수 있는 악영향이 비교적 무난하게 회피되고 있다. 특히 치밀하고도 정교하게 계산되었으면서도 극적인 요소 또한 부족함이 없는 1악장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모든 말러 6번 녹음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큼 훌륭하다. 그러나 3악장(안단테)에서는 표현이 지나치게 엄밀해 다소 부자연스럽고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으며, 4악장은 객관적으로 보면 역시 훌륭하기는 하나 적어도 이 녹음에서는 가장 문제가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세부를 희생하지 않으려는 노트의 욕심은 필연적으로 다이내믹과 템포의 폭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으며, 해머 타격은 확실히 거창하기는 하지만 이 대목이 온전히 빛을 발하기에는 그 이전에 쌓아올린 토대가 너무 빈약하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볼 때 피날레는 정교하기는 하지만 다분히 평면적이고 극적인 맛이 부족하다. 슈텐츠의 녹음 역시 피날레에서 극적인 면이 다소 부족하다는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경우에는 1악장 첫머리부터 아예 이런 요소에 신경 끄겠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피날레에 이르면 이미 듣는 이가 지휘자의 해석에 동화되어 있게 된다(그렇지 않다면 뭣하러 피날레까지 듣고 앉아 있겠는가?). 반면 노트(수정)는 모든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고 실제로 전반부에서는 거기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피날레의 실패가 더 부각되는 것이다. 실패라고? 오해 없기를 바란다. 만약 이전 악장들을 듣지 않고 피날레만 듣는다면 이 녹음에 온전히 담긴 가공할 정보량에 경악하게 될 것이다. 모든 악구가 (다소 지나칠 정도로) 매끄럽게 처리되었고 성부 분리와 밸런스 또한 실로 완벽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는 이전의 어떤 지휘자도 미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노트 자신이 처음에 제시했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실패이다. 너무나도 훌륭한, 그렇기에 오히려 노트가 조금만 더 애썼더라면 달성할 수 있었을 비전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지는 녹음이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두고 했던 말, '천재처럼 시작해 천재적인 손재주로 내려간다'는 평가가 이만큼 잘 어울리는 녹음이 또 있을까?
첫댓글 정밀한 세부와 큰스케일 ---> Andris Nelsons에 해당되는 표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질문 두가지 : 1. 넬손스도 말러 녹음이 있나요? 2. 노트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
@Dorian 네, 최근에 보스톤에서 말러 6번공연한거 들어봤습니다. A great concert!
노트의 문제점은 말러와는 어울리지않게 너무 soft하게 sonority를 이끌고 나간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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