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팀으로 나누어 체험을 하여
한팀은 풍천재에서 유의를 입고 명심보감을 배우고,
다른 한팀은 탁본과 다도 체험을 진행하였지요.
찻잔을 오른손으로 들어서 왼손 손바닥위에 놓고 천천히 마신다고 했는데
모두들 차분하게 잘 따라 합니다~
오늘 차는 연잎차와 맨드라미차,
마시고 나서 박하향이 은은하게 도는 것이 참으로 맑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성균관 유생으로 변신~~
선비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의관을 단정하게 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보니 왜 그랬을지 느낌이 옵니다~
체험이 끝날 때 훈장님이 직접 쓰신 글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효재충신이란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 임금에 대한 충성, 친구와의 신의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훈장님께서 내내 강조하십니다~
친구들도 훈장님께 답례로 논어 문장을 낭송했습니다~
아이들의 낭랑한 낭송을 들으시더니
훈장님은 흡족해 하시며 한마디를 더 해주셨습니다~
논어는 구인위기를 말해주고 있다고.
구인위기란 끊임없는 수행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서 인을 구하는 것이라고.
넵~!! 저희도 계속 갈고 닦으며 인을 구하는 선비가 되도록~
체험을 마치고 만동묘에 올라가 살펴보았습니다.
만동묘는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을 제향하는 사당입니다.
임진왜란때 도움을 준 명나라의 은혜를 기리고 싶었던 우암의 바람에 따라
우암 사후에 제자들이 만들었습니다~
만동묘 묘정비,
임진왜란 때 도움을 준 명나라를 섬기는 일이니,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는 만동묘를 좋게 볼 일이 없겠지요?
그래서 이 비문을 쪼아서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묻어버렸어요.
하지만 진실은 드러나는 법,
홍수에 묻혀진 비석이 드러나고, 지금 이곳에 만동묘를 재건하게 되었답니다.
재건 사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계속 진행중이랍니다~
만동묘에 오르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하는데
이 계단폭이 매우 좁아서 은누리처럼 옆으로 오르내릴 수 있답니다.
몸을 구부리고 예의를 갖추라는 뜻에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암 송시열이 효종 임금이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여 매일 새벽 바위 위에서 통곡하였다는
읍궁암
우암 송시열이 건립하여 학문에 힘썼다는 암서재,
이곳이 화양서원의 모태라고 할 수 있어요.
자연과 하나가 된 암서재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선비체험부터 만동묘 탐사까지 마치고 뱃속에서는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립니다.
우리들은 만동묘 옆 식당에서 맛나게 김치찌게를 먹었지요.
한 그릇 뚝딱 비우고는 물놀이를 기다렸지요.
참, 화양서원은 어디냐구요?
화양서원은 만동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문이 잠겨 있어 건물만 보았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놀이,
원래 계획은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요기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며칠 동안 계속해서 내린 장마비로 물살도 세고
제법 깊은 곳도 있어서
안전한 내암리로 물놀이 장소를 옮겼습니다~^^
다시 차를 타러 내려오는 길에
오전에 보았던 모래사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바탕 놀았습니다~^&^
촉각 감각을 기르기에 흙놀이가 최고라고 했는대,
아이들은 정말 신나게 만지고 밟고 두드리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