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맛] 2. 팔공산 산중식당 곤드레밥 한상
깐깐한 정성으로 만든 정갈한 맛 / 내 몸이 좋아하는 소박한 한상
상위에 또하나의 작은소반. 백종훈 기자
대구의 진산 팔공산은 영험하기로 소문난 갓바위와 동화사를 비롯해 파계사, 부인사, 은혜사 등 명찰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때문에 사월초파일 전후 수많은 사람들이 팔공산을 찾는다.
파계사에서 갓바위로 이어지는 팔공산순환도로는 대구의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로 길 양쪽 가로수 단풍나무가 아치를 이
루며 행락객들을 반긴다.
이 길에 들어서면 눈으로 즐기는 풍광만큼이나 맛집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만 간다.
신록의 계절 6월의 순환도로엔 단풍나무 이파리가 눈부시게 반짝인다.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을 한꺼번에 풀어주고 넉넉한
팔공산의 품에 안긴 듯 편안한 음식점. 식욕을 확 솟구치게 하는 근사한 맛집이 어디 없을까? 바로 팔공산로 185길 55에
자리한 ‘산중식당’이 그곳이다.
△45년 전통을 이어가는 백년가게 ‘산중’
‘산중식당’은 말 그대로 산중에 있는 음식점이다. 팔공산 자연과 함께 곤드레밥을 주제로 삼아 불주꾸미 웰빙메뉴로 상차림
하는 맛집이다.
먼저 음식점 이름이 지어진 내력도 재미있다.
“면서기가 식당 이름을 묻는데 이름이 있어야지요. 그때는 그냥 식당 이름도 짓지 않고 집밥 상차림으로 장사를 했으니까요.”
주인 김경환 씨의 어머니 김경자(80)씨에 따르면 무허가로 장사를 하다가 식당 등록을 하기 위해 서류를 만드느라 면사무소
를 찾아갔다가 팔공산 산중에 있어서 담당 공무원이 산중이라고 지어준 게 지금까지 내리 50여 년을 이어 쓰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에서 아들로, 시어미니에서 며느리로, 대를 이어 음식점을 운영 하고 있는 산중식당. 이곳은 1981년부터 부모님이 운
영하던 식당을 가업으로 이어받아 아들 김경환(53) 며느리 김유진(49) 내외가 손맛을 전수 받았다.
이곳을 찾는 손님의 주문과 동시에 가마솥에 곤드레밥은 지어진다.
밥은 갓 지어야 맛있다는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진다. 그다음 달래간장과 막장으로 만든 비빔장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2인 상차림(사랑 담다)이 기본인 고슬고슬한 곤드레밥에는 제철샐러드와 도토리웰빙전, 시원한 냉국 같은 묵사발과 돼지고
기 수육 모듬보쌈, 그리고 알싸한 가오리무침과 곤드레 우거지로 끓여 낸 된장찌개로 꾸며진다. 여기에 이 집 대표 메뉴라고
해야 할 불주꾸미볶음이 더해지는 4인 상차림(더하다) 이 산중의 대표 메뉴이다.
어찌 보면 단출한 메뉴 같지만 불필요한 메뉴를 과감하게 없애는 등 메뉴 수를 줄이고 맛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상차림
구성을 위하여 오랜 세월 궁리해 온 김경환 대표의 노력이 엿보인다. 맛은 기본이고 비법보다는 조합 즉 구성력이 관건이라
는 것을 강조한 철학이 담긴 세트메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부모님이 주신 가업을 결코 망하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또 30년 단골손님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도 말도 아니고요.
가업을 더욱 번창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맛으로 승부 해야 하기에 전국 맛집을 숱하게 다녀도 보고 매일같이 레시피 개발을
위해 노력했지요”
널찍한 주차장과 함께 동시에 180명이 한자리에 식사할 수 있는 산중식당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져 있을 정도로 확장됐
다. 부모님으로부터 식당을 물려받자마자 지난 2014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모던하고 깔끔한 실내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신속하고도 위생적인 조리로 맛깔스러운 음식을 내기 위한 주방 시스템까지 과학적으로 리모델링 돼 식사를 즐기는 고객도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들도 모두 만족도가 높도록 설계하였다고 한다.
불주꾸미. 백종훈 기자
△대를 이어온 우리맛 ’곤드레밥과 불주꾸미‘
주문을 하자 금세 상차림이 차려지는 것으로 보아 주방일에서부터 홀 서비스까지 외식사업의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집 곤드레는 강원도 영월에서 봄철 부드러운 새순으로만 엄선하여 데쳐져 급랭시켜 저장해 쓰고 있어서
일 년 내내 부드럽고 맛과 향이 채취 당시 그대로 살아있는 곤드레밥을 낼 수가 있습니다”
산중식당에서 상차림한 곤드레 솥밥은 갓 지어낸 덕분에 보기만 해도 윤기가 자르르하다. 곁들인 표고버섯과
은행알도 입맛을 돋워준다,
따끈한 곤드레밥에는 들기름을 둘러 비벼 먹는다.
막장비빔장. 백종훈 기자
‘곤드레밥의 반은 양념장에 비벼서 맛을 보고, 반은 막장 비빔장으로도 맛을 보라’고 권한다 .
먼저 먹어 본 막장 비빔장으로 비빈 곤드레밥은 강된장의 맛과는 또 다른 맛이다. 평범함을 넘어섰다고나 할까
듬뿍 넣고 비벼도 짜지 않으면서도 된장의 깊은 맛과 함께 은은한 단맛이 느껴진다.
곤드레밥에 막장비빔장이 이렇게 어울릴 줄이야 미쳐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막장으로 만든 비빔장은 콩알이 듬성듬성 씹히는 된장에 곱게 간 돼지고기와 두부가 들어가 있다. 갖은 양념과
함께 열 가지가 넘는 비빔장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서 볶고 졸이는 과정에 기막힌 맛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된장에 거부감이 있는 외국인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곤드레밥 웰빙메뉴 상차림. 김경환·김유진씨 부부. 백종훈 기자
△상위에 또 하나의 작은 소반
작은 소반 같은 대바구니 안에는 수육과 가오리무침, 보쌈김치, 도토리묵, 곤드레장아찌가 소담스럽게 담아낸다. 모두 주인
손맛 검증이 거쳐 간 음식들이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수육은 돼지고기의 잡내가 없으면서도 육즙이 오히려 더해진 듯
하고 쫄깃한 맛도 또 하나의 조리비법을 구사했다고 한다. 비법 중 하나를 소개하면 산중식당에서는 수육을 사골국물에 삶
는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나니 수육 맛이 독특한 이유를 알게 되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불주꾸미 볶음이 먹음직하게 상에 오르니 후각, 시각이 그저 즐겁다. 곤드레밥 한 숟가락에 한 점 얹어
먹어보니 나물밥과 만난 환상의 콤비다. 야들야들 탱글탱글한 주꾸미의 식감과 적당히 매콤한 주꾸미의 맛은 이 집이 대를
이어 반세기를 사랑받은 까닭을 그제야 알 수가 있었다. 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우리 집은 다양한 식감을 주기 위해서 두 가지 크기의 주꾸미를 사용을 합니다. 크기가 굵직한 주꾸미는 부드럽고 작은
주꾸미는 쫄깃한 맛을 내지요” 2대째 이어온 산중식당은 주인장은 재료를 선택 하는 데 있어서도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식재료를 조리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양념장에도 숨어 있었다. 주꾸미 양념장에 미나리청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색이 짙고 거친 미나리를 설탕과 함께 청으로 담아 쓰면 양념장에 상큼한 단맛을 내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우리 한식이 프랜차이즈화에 성공하려면 반찬 수는 줄이고 요리 명품화를 하는 표준 레시피가 있어야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의 앞으로 바램이 있다면 산중에서 차려지는 하나하나의 반찬을 주메뉴로 하는 식품
브랜드 ‘산중’을 만들어 집밥 형태의 음식으로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싶은 게 꿈이기도 합니다” “곤드레밥
한 상차림의 의미는 저의 청춘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산중’의 모든 음식에 열의를 다해
보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 시작되는 ‘산중’의 모습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