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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주의에 대한 신념, 혹은 확신은 또한 논의와 공개성에 대한 보다 원칙적인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적인 논의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실제로 실행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 칼 슈미트, “의회민주주의의 위기(1923)” 중
5. 늑약(Diktat)
1919년 6월, 승전 4개국(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이 독일에게 내민 영수증은 매우 가혹했습니다. 대전쟁의 책임이 오롯이 독일과 그 동맹국에게 있다는 전제 하에, 영토 할양, 라인란트 비무장화, “총액이 정해져 있지 않은” 배상금 납부 확약, 병력 제한, 해군 함정 백지신탁, 각종 경제적 제한조치, 그리고 독일어권 국가와의 영구적 통합금지를 명시한 것입니다. 라인란트에서 독립된 국가를 세우자는 뜬금없는 선언이 발표되고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에서 다시금 전쟁이 불붙는 상황에서 이 조건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죠. 논의에 일절 참가하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따돌려진 상황에서 “죽음이냐 불명예냐”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은 독일 대표단은 진지하게 이 조약에 서명하고 자신들이 1년 뒤에도 살아있을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사민당의 오토 브라운마저 길길이 날뛰며 “엘베 강을 방어선으로 삼아 국민저항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외치던 중, 군 경험이 있는 이들은 직감적으로 알아챘습니다. 현재의 독일은 ‘미국이 지원하는 영불연합군’을 막아낼 수 없으며, 심지어 프랑스와 단독으로 맞붙더라도 파멸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심지어 뜬금없는 라인란트 독립운동이 ‘독일이 조약을 거부할 시‘에 대비한 프랑스의 플랜 B, 즉 독일을 산산조각내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점이 밝혀지자 분위기는 더더욱 암울해졌죠.
그래도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뵐러는 자신이 이탈리아 공사의 부인이라고 주장한 의문의 여성과 접선해 “독일이 이탈리아의 달마티아 획득을 도와주면 이탈리아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통합을 지지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쿠노 베헤(B-H)는 오스트리아(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고위인사와 만나 지금 당장이라도 민족통일 국민투표가 가능하다는 확약을 들었고, 슈타틀러는 미국측과 접촉해 “독일이 국제법과 민주적 통제에 근거한 신체제에 확실히 협조한다면 더 유화적인 조건의 강화도 가능하다”는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공화국의 멸망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휩싸인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이 정보의 조각들을 얼기설기 모아, [독일민족 통일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고 이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낸다]는 그럴듯한 계획을 완성했습니다. 중부유럽에 독일민족의 통일국가가 들어서는 것은 영국에게도, (특히)프랑스에게도 악몽같은 일이었기에, 그들의 회유와 압박을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조건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죠. 독일의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범독연맹(Alldeutshcer Verband)이라는 민족주의 극우조직을 몰래 재건해 대규모 가두시위를 조장하고, 안 그래도 독립운동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라인란트에서 동부로 산업기반을 이전하는 등 정말로 결사항전하겠다는 신호도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위험한 작전은 뛰어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러다 프랑스가 망할 판”이라는 클레망소 총리의 절규에도 미국과 영국은 독일을 워털루 이후의 프랑스처럼 대우하는 데 동의했고, 조약의 조건은 대폭 개선되었습니다. 영토 할양조항은 분쟁지역에 대한 주민투표로 수정되어 사실상 대부분의 자원산지가 독일에 남는 결과로 이어졌고, 배상금은 ‘전쟁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금’으로 한정되어 최대 250억 금마르크로 고정되었으며, 병력 제한과 비무장화는 사실상 없는 조항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파급효과가 작지는 않았습니다. 독일의 모든 극우파들을 한데 모아놓은 범독연맹은 “극좌같은 극우”, 즉 파시스트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라인란트의 독자성을 주장하던 이들은 CVP 중진들과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캐파플로에서 프랑스로의 인도를 기다리던 대양해군은 자침함으로써 프랑스를 파멸의 길로 이끌었죠. 또한, 이때까지는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갈등의 씨앗이 독일 내부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도리나 리하르츠슐러가 칼 페터젠 총리에게 비밀리에 제안한, [민족주의적 광풍에 잡아먹힌 이들의 살생부를 작성하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져 정권의 핵심인사들에게까지 그 마수가 미친 것이었습니다..
6. 파티를 멈춰야 할 때
외교적 승리를 자축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최대 1,000억 금마르크가 넘을 것이라 예상했던 전쟁배상금이 크게 줄었지만 이것 역시 여전히 많은 금액이었고, 결정적으로 전쟁기간 신나게 팔아치우던 전시채권의 상환금액이 무려 1,500억 마르크를 상회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진짜 영수증은 이것이었다는 현실이 다가오자 모두는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라인란트의 공업 공룡 [후고 슈티네스]가 ‘꽂은’ 기독교사회인민당(CSVP)의 노동부 차관 게오르크 치머만은 “계속 임금 인상과 통화 과발행을 반복하다가는 경제가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은행가 얄마르 샤흐트의 발언을 인상깊게 들으며 그의 새 동지들과 머리를 맞댔습니다.
사민당 내에서도 좌익으로 여겨졌지만 자본주의가 자기모순으로 붕괴하면 그 역시 어쩔 수 없다고 내심 생각한 뵐러와 힐퍼딩이 샤흐트의 말대로 긴축정책을 고안할 무렵, 쿠노 베헤와 게오르크 치머만은 보다 과감한 제안을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그 방법이란 ‘부채의 재정화’를 아예 극한까지 밀어붙여 채권을 또 다른 담보로 하는 완전신용화폐 크레디트마르크(Kreditmark)를 발행하는 것이었죠. 이왕 갚을 수 없는 금액이라면 채권을 추가발행해 그 재원으로 라인란트에 다시 공장을 건설, 국가의 산업 및 농업기반들까지 모두 담보로 설정해 국가경제를 지탱하자는 매우 급진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너무 막나가는 게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하려 했던 이들도 고강도 긴축을 택해 다음번 선거에서 자멸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기에, 이 제안은 아주 매력적인 안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제대로 안착만 된다면 사실상 국가 자체를 담보로 하는 통화체제를 세우는 것이었기에 어차피 신생 공화국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거부하기가 오히려 어려웠죠. 미국 등의 투자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으므로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더 심한 침체를 겪는 등의 위기를 겪는다면 지속되기 어려운 플랜이었지만(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힐퍼딩 역시 이 지점을 주로 지적했습니다) 실현되지 않은 위기를 기반으로 매혹적인 제안을 거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경제정책을 입안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사익을 취하려 들던 쿠노 베헤가 라테나우 경제부장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슈티네스와 사업 이야기를 주고받는 아찔한 상황이 있긴 했지만, [베헤-치머만 개혁]은 무사히 통과되었습니다. 라인란트 산업 재건 역시 폴란드에 다녀온 우익 참전군인들을 상당수 재사회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요.
7. 트로타 극동사절단
프랑스가 모두의 예상대로 휘청거리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폴란드를 끝끝내 굴복시킨 뒤 동쪽으로 눈을 돌리던 1920년 1월, 해군총장 아돌프 폰 트로타 제독을 수장으로 하는 극동사절단이 상하이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베르사유 조약에서 미결로 남겼던 산동 문제를 일본 또는 중국(북양정부)과 양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었죠. 어차피 대양함대가 사라진 지금 교주만을 지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으므로, 자연스레 초점은 “교주만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에 경제적으로 진출할 밑거름을 마련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절단의 고민을 덜어준 것은 일본측의 태도였습니다. 자신들이 엄연한 승전국이라고 굳게 믿었던 일본 대표단은 어떻게든 협상을 시도하던 막시밀리안 폰 프렌츨라우에게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내며 화를 자초했죠. 결국 중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교주만을 선심쓰듯 포기하고 그 대신 많은 이권을 챙기는 방향이 강제되는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쪽 역시 다른 측면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수용하고 니시하라 차관을 도입한 북양군벌 환계(안휘군벌)의 수장 돤치루이가 팽창한 민족주의적 여론을 등에 업은 직예군벌에게 타도당한 환경 속에서, 애시당초 독일이 “산동을 포기하는 대가로 무언가를 얻어가는” 것 자체가 매국행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을 깨달은 리하르츠슐러와 슈타틀러는 고민 끝에 [중국 정부가 붕괴되더라도 그 다음 들어서는 정부와 계속 협력해나간다]는 방침을 확정지었고, 그렇게 독중우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예상대로, 중국은 혼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은, 중화민족주의 광풍을 부추긴 것이 직예군벌의 수장이자 중국의 실세 차오쿤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매국정부를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연성 쿠데타를 일으킨 차오쿤은 그 자신이 중국의 절대자가 되기를 원했고, 의원들을 매수해 본인을 대총통에 셀프 추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돤치루이가 만들고 본인이 홀랑 가져간 신식 군대 참전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소모되는 일이 있었으나, 차오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런 혼란상 속에서도, 독일은 알뜰히 실리를 챙겨갔습니다. 홍콩에서 뒷세계의 실력자이자 엘리트 장교 출신인 [장제스]를 만난 쿠노 베헤는 그를 통해 직예군벌의 배후실력자(이자 차오쿤의 심복) 우페이푸와 연결될 수 있었고, 우창에 설립된 ’독중철강종합회사(ADC-MG)’는 사실상 우페이푸에게 무기를 공급하며 순식간에 독일을 중국 내 권력투쟁의 메인 플레이어로 등극시켰습니다. 극동에서 일본군마저 몰아내는 데 성공한 소비에트 러시아가 [유럽-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연맹(소련)]을 선언하며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사소한 일이 있었으나, 독일인들은 그래도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8. 특별 사안
1920년 10월 27일 에리히 코흐베저 법무장관이 일가족과 함께 살해당하고, 10월 30일에는 수십명의 괴한들이 프로이센 주청사에 난입해 파울 히르슈 주총리와 오토 브라운 부총리를 암살하는 대사건을 벌였습니다. 범독연맹 폭동 이래 잠잠해진 줄 알았던 극우주의자들의 테러는 그저 수면 아래 잠들어있었을 뿐이었죠. 이 사태를 주도한 자들은 “영사 조직(Organisation Consul, O.C.)”이라 불리는 테러집단이었는데, 그들의 계획이 비단 공화국의 주요인사들을 암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동시다발적 테러를 통해 중앙정부와 프로이센 정부를 동시에 전복, 정권마저 장악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모든 이들이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분노가 의회를 지배하자, 전에는 조심스럽게 제기하던 안건들, 즉 반동적인 사법부를 갈아버리자거나 독일판 체카를 설립해 공화국의 적들에게 똑같이 공포를 돌려주자는 과격한 제안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자라던 리하르츠슐러는 공산당 의원 에른스트 텔만에게 러시아의 이야기를 들은 끝에 보안본부를 정말 무소불위의 공안기관으로 바꾸어 내란분자들을 사냥하자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냈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여기에 동조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법부에서 그나마 말이 통한다는 인사인 게오르크 나이트하르트를 만난 ‘보수주의자’ 프렌츨라우가 ”역시 사법부는 갈아버려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는 사이, 국군차관인 뵐러는 “내란에 가담한 국군 구성원의 숙청은 국군 내에서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건방진 통보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저것 협상을 시도하던 그는 조금 더 주도면밀하게 기회를 노리자는 생각에 이 통보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는 국군 내 야심가들의 자멸이었죠. 쿠르트 폰 슐라이허로 대표되는 정치군인들이 역으로 숙청되고, 정작 내란의 당사자인 발터 폰 뤼트비츠 장군은 내부자의 폭로로 제거당한 것입니다.
리하르츠슐러가 야심차게 제안한 소위 ‘치안유지법’이 다름아닌 본인의 발의 철회로 흐지부지되는 동안, 공화국 의회는 헌법을 개정해 반헌법행위에 대한 기소권과 재판관할권을 보수적 사법부로부터 뺏어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안본부와 법무부의 주도로 판사들이 무차별 ‘법집행’ 공격에 나가떨어지고, 사법부 자체도 법원장을 간선으로 선출하는 방식으로 개혁되는 동안 공화국의 수호를 위한 법적 기반은 사실상 완성되었습니다. 내란에 지나치게 깊게 관여되었던 DNVP가 와해되는 부수적 결과는 덤이었죠.
이 일련의 소동은 극단주의 세력에게 크게 한방 먹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 역시 보고 배우는 건 있었습니다. 극우 왕당파들이 먼지나게 얻어맞는 동안 잠시 비를 피할 수 있었던 민족사회주의자들은 아예 ‘똑같이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좌파공산주의자들과 연합하는 길을 택했고, [공화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화국 정치에 합법적으로 참여하는] 노선이 결정되었습니다. 또한, 소련 수립에 고무되고 공화국의 공안정국에 위협을 느낀 KPD는 뒷배의 필요성을 직감하고 모스크바의 품에 안기기로 결심했습니다.
8-1. 베헤-라테나우 사건
공화국 수립 이후 최악의 위기라 불렸던 베를린 테러사건은 공안정국으로 어느 정도 진정되었으나, 흑적금 3당 연정은 의외의 사건으로 흔들렸습니다. 본인의 행동이 가져올 파급력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쿠노 베헤는 공화국 정부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성명문을 발표했고, 이는 그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유지해오던 정치기반을 완전히 박살내고 말았습니다. 프로이센을 그야말로 결사옹위하자던 사람이 정작 프로이센 정부가 산산조각날 위기상황에서 마치 남 일인양 행동하며 모든 신뢰를 잃자, 그에게 원한을 품던 모든 이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라붙었습니다.
라인란트인민당(RVP)의 프란츠 폰 파펜은 베헤가 라인란트의 산업기반을 이전하던 시절 라테나우의 승인을 받아 본인의 기업체를 일종의 콘체른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에 더해 범독연맹 폭동 때 끝까지 극우주의자들의 편을 들었던 과거도 재조명되었습니다. 내란선동을 포함한 반공화국행위 혐의로 정말 인생이 끝장날 위기에 놓인 베헤는 그제서야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그가 정치에 복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은 베헤는 그 길로 중국으로 떠나 사업에 매진했죠.
정권의 핵심이던 라테나우마저 날아가자, 페터젠 총리는 “FDP가 주도권을 잃더라도 지금 즉시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옳았죠. 반공화국 세력에 대한 분노와 경계심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실시된 총선은 무려 의석의 82%를 점유하는 공화국 4당(SPD-CSVP-FDP-FKP) 대연정을 이끌어냈고, 독일 공화국은 일단 4년간의 귀중한 여유시간을 벌었습니다..
1. 대의제 민주주의 공화국을 건설하고 수호할 것.
2. 공화국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유지할 것.
주요 정파 설명
공산당(KPD) -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부 평의회 공산주의)
1919년 수립된 자유민주주의 독일공화국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합법적 의회정치를 혁명의 수단으로서 사용할 수는 있다고 믿는 정당입니다. 휘하 준군사조직으로 붉은전선전사동맹(RFB)가 있습니다. (주요 인물 : 로자 룩셈부르크, 에른스트 텔만, 클라라 체트킨, 파울 레비)
사회민주당(SPD) - 사회주의 빅텐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의 좌파정당입니다. 무산계급의 세상을 궁극적 목표로 하지만 혁명을 일으키자는 급진적 주장에는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화국을 철저히 수호하자는 입장이며, 더 나아가 공화국이 노동자의 권익에 복무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준군사조직은 더 이상 운용하지 않습니다. (주요 인물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필립 샤이데만, 카를 카우츠키, 루돌프 힐퍼딩, 후고 하세, 헤르만 뮐러 등)
자유민주당(FDP) - 경제적 자유주의, 문화적 진보주의
좌파 자유주의 세력인 진보인민당과 우파 자유주의 세력인 민족자유당이 합당해 만든 정당입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알기 쉬운 자유주의 세력입니다. (주요 인물 : 후고 프로이스, 테오도어 호이스, 발터 라테나우, 루돌프 외저)
기독교사회인민당(CVP) - 기독교 민주주의(중도좌파)
가톨릭중앙당의 후신으로서 문화적으로는 보수적 경향을 보이나 경제적으로는 계획경제 도입과 복지 확충에도 전향적인 정당입니다. 일부 세력의 경우 기독교적 이상이 사회주의의 지향과도 맞닿아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칩니다. (주요 인물 : 아담 슈테거발트,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 빌헬름 마르크스, 요제프 비르트)
자유보수당(FKP) - 가부장적 보수주의, (시민적)민족주의
옛 비스마르크의 지지자들을 모태로 한 정당입니다. 입헌군주제를 이상으로 삼았으나 현재로서는 공화국 지지 입장을 보이며, 경제적으로는 자유민주당, 사회문화적으로는 기독인민당과 유사한 성향을 보입니다. (주요 인물 :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얄마르 샤흐트, 테오도어 볼프, 에른스트 숄츠)
민족사회주의자유운동(NSFB) - 좌익 파시즘, 푈키셔 민족주의, 인종주의
인민대중의 힘으로 태고의 관념인 독일 민족공동체만을 위한 국가를 만들고, 공화국을 대체할 완전히 새로운 국체를 도입하여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으뜸가는 독일을 만들자는 파시스트들입니다. 통합 준군사조직 창설을 준비 중입니다. (주요 인물 : 아돌프 히틀러, 에른스트 룀, 에른스트 니키슈, 하인리히 라우펜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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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콘 그리고 중국 노동자들이 경영권까지 가지는 협동조합안을 가결시키고 국민정부를 몽땅 좌익에게 주는 방안은…
탐지
Roll : 3d6 + 3(to total) : 4, 3, 6, + 3, TOTAL: 16
- 경한철도 노조와 비교도 안 되는 노동조합이 생기는 꼴이니, 이들은 아예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할 것이며,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 중국인 노동자들이 실권을 가지고 독일 자본은 투자만 하는 회사를 남중국 전체로 확장한다면 분명 독일에게 정치적 이익으로 작용하긴 할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은 0에 수렴하게 되겠군요. 본국에서 이를 수용하게 하려면 상당히 공들인 설득이 필요합니다.
- 다 떠나서, 아데체 지분을 소유한 카를의 입장에서는 매우 손해보는 일입니다. 쿠노와 카를이 사이좋게 알거지가 되는 셈이죠. 쿠노의 암살시도를 대비해야 합니다(…)
@E.E.샤츠슈나이더 카를은 쿠노와 야차룰(...)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순순히 덩옌다의 제안에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카를은 우페이푸와의 군사적 협력을 심화시키는 방안을 우페이푸와 의논하고 개인적으로 국민당 우파 인사들과 접촉해서 국민당 우파의 우파적 삼민주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것을 시도했습니다.
@E.E.샤츠슈나이더 진짜 기회 균등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조약문의 구절 한구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죠(...)
@로콘 그래도 공작 1 vs 호신 3이라서 유리하긴 합니다(?) 물론 주사위 굴려서 죽을 싸움은 시도조차 안하는게 좋지만(...)
@로콘 끝끝내, 모두가 박수를 치며 [중국 국민당]이 정식으로 창당됩니다. 청천백일기가 우한에 휘날리며, [우한 국민정부]가 출범합니다. 카를이 “군사협력 심화”를 말하자, 우페이푸는 매우 기뻐합니다. 두 사람은 “모르는 루트”로 [독일 국군의 대표단]이 우한을 방문해 우페이푸와 이런저런 협의를 거칩니다. 빌헬름은 중국 내 첩보활동을 담당하는 것이 군조직인 ”해군청“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겠네요.
또한 국민당 중앙위원회가 확장되며 [다이지타오]라는 자가 새로 합류합니다. 보수협동주의에 매료된 그는 장제스와 긴밀히 교류하며 국민당의 친독계열을 지킬 것입니다..
@E.E.샤츠슈나이더 이벤트를 종료합니다.
@E.E.샤츠슈나이더 수고하셨습니다
@E.E.샤츠슈나이더 수고하셨습니다!
@E.E.샤츠슈나이더 수고하셨습니다.. 도시 나온 김에 영화 한편 보고 온건데, 역시나네요.
@E.E.샤츠슈나이더 고생 많으셨습니다. 보안국이 창설되었어야 (?
@E.E.샤츠슈나이더 수고하셨습니다!
@E.E.샤츠슈나이더 이럼 북경의 독일 대사관은 무한으로 옮겨오는건가?
@렌지파일 개드립이긴 한데, 중국공산당에 접촉해 지키면서 돕고, KPO와 중국공산당 등을 접촉시켜 ICO 같은거 만드는게 가능했나요(?)
@차들어 홍차야 사실상 ‘정부’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우한정부 하나이므로(장작림의 군정부는 ‘막부(…)’니까) 대부분 옮길 겁니다 ㅋㅋ
@렌지파일 아데체를 진짜 좌익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코민테른한테 버림받은 공산당을 데려오면 이탈리아식 생디칼리스트 연합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간…
@E.E.샤츠슈나이더 미국, 소련과의 관계가 파탄나겠죠...
@E.E.샤츠슈나이더 그렇게 우한에서 스페인 독감이 재유행하며 그만..
일단 보상을 달겠습니다.
1) 도리나
- 기술 2, 지식 3.
2) 구스타프
- 매력 2, 기술 3.
3) 막시밀리안
- 매력 1, 기술 2, 지식 2.
4) 빌헬름
- 매력 2, 기술 2, 지식 1.
5) 게오르크
- 기술 1, 지식 4.
6) 카를
- 매력 3, 지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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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심한 시간에 갑자기 비덧이라니 무슨 일일까 불안하군요...
술 한잔 해씀다.. 한 김에 gm님한테 게임 관련 문의 한다고 계속 붙들고 있슴다.. 게임이나 할것을...
@통장 아 통장님이셨군요 ㅋㅋ 갑자기 안심이 됩니다(?)
@dear0904 제가 달면 주로 '다른 캐를 다 이렇게 다 보내고 저렇게 독재를 해도 엔딩 요건에 부합하나요?' 일 가능성이(?
@통장 그럼 자전거를 타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렌지파일 를 하신적 있으니까요 ㅋㅋㅋ 별개로 제가 두려워하는쪽은 안 보이는데서 까이는거라(?) 그렇습니다 ㅋㅋ
@차들어 홍차야 술먹고 위험하게 무슨 했는데 그거군요 ㅋㅋㅋ
@차들어 홍차야 ???
자전거를 본지 오래된 지역입니다(??)
@통장 오히려 도시 나가서 그런걸 보셨으면 대체 왜(...) 라고 했을테니 인정합니다 ㅋㅋ
+ 얼마나 봤나 했더니 17만명이네요 ㅋㅋ
@dear0904 오, 확실히 이젠 밈에 약하네요. 어떤건가요?
@통장 자전차왕 엄복동...
@통장 자전차왕 엄복동입니다.
그게 정말 못 만든 영화라 쫄딱 망한 뒤에 주연배우 비가 '술 한잔 했습니다.. 영화가 별로일 수 있습니다..' 하면서..
@통장 이것도 한 8년 정도 된 밈인데....
@렌지파일 아 UBD.. 어쩐지 자연스럽게 대사가 나왔다 싶더라니 오래된 밈이었네요
@통장 그러고보니 답은 만족스러우셨나요 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2.09 00:28
결국… 3화를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