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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요르단 마다바와 느보산을 더투어볼까 합니다. (더투다는 전라도 사투리로 훑어보다는 뜻입니다.)
마다바는 성경에서는 메드바로 나옵니다. '메드바' 맨 첫번째 기록은 출애굽 후 모세가 아모리 왕 시혼을 토벌하고 뺏은 땅이라는 설명으로 민수기에 나옵니다. 그후 이곳은 르우벤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 그 메드바가 오늘날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암만에서 이틀간 묵었던 호텔입니다. 아침에 짐을 싸서 나와야 합니다. 오늘은 메드바와 느보산을 거쳐 알렌비 출입국관리소를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가이드 선교사님이 호텔 큰 길 가로수가 모두 '쥐엄나무'라고 하기에 한 그루를 찍었습니다.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나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완두콩, 또는 등나무 콩 모양의 열매가 매달려 있습니다. 다가가서 찍었습니다.
사진이 좀 흐렸는데, 자세히 보면 열매가 주렁주렁 길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을 따서 속에 있는 콩만 먹는 것이 아니라 통째로 요리를 해서 먹는 듯 했습니다. 마다바는 요르단 왕국 마다바 주의 수도입니다. 남쪽으로는 카락 주가 있습니다. 마다바의 인구는 6만, 92%가 무슬림이고 6%의 기독교 신자가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유대인은 아닙니다. 아랍인으로서 기독교인이지요!
버스에 올라 슬슬 출발합니다. 먼저 가볼 곳은 마다바 시에 있는 '성 죠지교회(St. George Church)'입니다. 그리스 정교회 소속입니다. 이 교회가 지어진 배경을 설명하려면 역사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다바(메드바)는 모세가 정복한 이후 르우벤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 이후 롯의 후손 암몬족속이 차지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대립구도를 형성하지요! 사울 왕 시절부터 이스라엘과 암몬은 티격태격합니다. 암몬 왕 나하스가 길르앗 주민들의 눈을 빼내고 항복을 받겠다고 했다가, 사울에게 보기좋게 역습을 당합니다.(삼상11장) 이 전과로 사울은 왕으로 순탄하게 오릅니다.
펌 자료입니다마는, 우리 버스는 이정표 옆을 달립니다. 왼쪽은 카락 성, 오른 쪽이 마다바입니다.
사울에 이어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다윗과 암몬은 또 한차례 전쟁을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그 전쟁 이름을 '수염전쟁'이라고 붙였습니다. 사연인즉, 사울에게 한번 당한 전력이 있었지만 나하스 왕과 다윗은 우호적 선린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나하스 왕이 서거했습니다. 당연히 다윗은 조문 사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하스의 아들 하눈 왕이 좀 덜 떨어진 친구입니다. 하눈이 간신배의 말을 듣고 다윗의 조문 사절들이 입고 온 옷을 엉덩이 위로 싹뚝 짤라버리고, 수염까지 싹뚝싹뚝 잘라 아주 아주 망신을 줬습니다. 세상에 이런일이!!!
다윗은 참을 수 없습니다. 군대를 보냈는데요! 바로 이곳 마다바까지 와서 진을 쳤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군사를 이끌고 원정을 왔습니다. 그 전쟁터가 메드바(마다바)입니다. 이 전쟁에서 하눈은 싹싹 빌었습니다.(사무엘에도 나오지만 역대상19장 7절에 메드바가 언급이 됩니다.) 수염을 짤랐다가 혼쭐이 났습니다. 손자가 수염을 잡아도 안 되는데, 암몬이 뭣도 모르고!
수염 전쟁에는 기가 막힌 비사 한 토막이 있습니다. 이 전쟁에 '우리야'라는 장수가 참전했습니다. 밧새바의 본 남편입니다. 남편이 전장에 나간 사이 밧새바와 다윗 왕 사이 정분이 나고 말았습니다. 참 안타까운 수염전쟁!
사람도 양과 염소떼처럼 평화스럽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꼬리를 치켜든 까만 녀석은 염소, 꼬리를 내린 흰 녀석들은 양입니다.
예수님 당시 마다바 지역은 '나바테아 왕국'이 점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바테아 왕국에는 에서의 후손 에돔족이 합병되어 있던 왕조입니다. 나바테아도 주후 106년에 로마에게 복속됩니다. 이후 나바테아는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집니다.
차창 밖으로 보니 마다바의 평원 토양이 비옥해 보입니다.
가이드 선교사님 설명에 의하면 저런 토질이 지하로 수십미터까지 똑같답니다.
로마는 서로마 동로마로 나뉩니다. 이후 터키부터 동편은 동 로마가 되었고 그들의 문화를 '비잔틴 문화'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이곳 요르단의 마다바는 동로마의 지배하에 한동안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소도 키우고, 양과 염소도 키우고 농사도 짓고요! 그런데 서기 614년 페르시아가 침공하여 기독교를 말살하지요! 설상가상으로 635년에는 아랍인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발 붙일 곳이 없습니다.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을 담은 풍경입니다. 이곳이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땅입니다. 기독교는 간데 없는데 이번에는 난데없이 지진이 휘몰아쳤습니다. 747년 어간 2~3년간 지진이 계속되었습니다. 마다바는 견디지 못하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지진의 폐허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천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요르단은 여전히 아랍인들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스만 트루키 제국입니다.
천년이 흘렀어도 비잔틴 시대에 주님을 영접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던 사람들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의 일단의 사람들이 마다바 아래 쪽 카락성에 살고 있었는데, 이슬람의 핍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생각다 못해 "우리가 폐허가 된 땅 마다바에 가서 살테니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서 2천명이 마다바로 이주했습니다. 이 때가 1880년입니다. 러시아로 쫓겨간 한국의 고려인들 생각이 납니다. ㅎㅎ
버스는 달려갑니다. 세월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을까요?
마다바에 이주한 2천 명의 기독교인들을 다행히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측에서 지원했습니다. 그리스 정교회에서 오스만 트루크 황제에게 칙사를 보내서 마다바에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청원합니다. 황제는 무슨 맘을 먹었는지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비잔틴 시대에 교회가 있던 터를 하나 물색하여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보니 비잔틴 시대 교회 유적이 드러납니다. 오호 주여~
사진 왼편 윗쪽에 보면 1902년이 표기 되어 있습니다. 1894년 오스만 트루크 황제의 윤허를 얻어 교회를 짓기 시작해서 1890년 교회를 완공했는데, 그 이후의 마다바 성 죠지 교회 모습입니다. 그 동안의 수천년 역사를 되새겨 본다면 얼마나 만감이 교차합니까? 성 죠지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입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교회가 현대식으로 단장을 하고 저희 성지 순례팀을 맞이해 줍니다.
예배실 입구 현판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유명한 것은 파란만장한 역사 때문이 아닙니다. 아까 잠깐 말씀드린 옛 비잔틴 시대 교회의 유적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그 터 위에 세워졌는데요, 바닥에서 발굴된 유적은 비잔틴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모자이크입니다. 색색의 대리석을 바둑알만하게 짜르고 다듬어서 색깔을 구분하여 멋진 모양을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 그래서 유적을 발굴하다가 이런 모자이크가 나오면 이건 비잔틴 시대 것이다. 이론이 없답니다.
드러난 유적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성 죠지 성당 별관에 전시하고 설명하는 자료로 쓰이는 설치물입니다.
당초 이 지도는 직사각형으로 제작되었지만 보존되어 있는 상태를 그대로 촬영하니 모양이 조금 우습습니다.
저희가 교회에 당도했을 때는 하필 예배 시작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실물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유물을 교회의 강대상 앞 바닥이 되도록 교회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예배할 때는 보존을 위해서 카페트로 덮어 둔답니다. 그래도 교회에 들어가 보기는 했습니다.
의자 오른 쪽에 카펫이 보입니다. 조금 일찍 갔더라면 보았을 터인데, 감히 걷어달라고 할 수가 없지요!
2백만개의 조각으로 붙여서 만든 지도인데, 이 지도가 유명한 것은 가장 오래 된 성서 지도이고, 비잔틴 시대 예루살렘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표기된 지명이 고고학에서 발굴하는 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랍니다.
제작자를 알 수는 없지만, 정교하면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들어내려고 애쓴 흔적이 돋보인다는 겁니다.
그리스 정교회 예배 준비중이랍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도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곧 다가올 성도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정숙한 가운데 조심조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염치불구하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저 분이 뭐라고 꾸중이라도 하면 어쩌지? 하면서 찰칵 했습니다.
가이드 선교사님의 인도로 옆 건물에 있는 브리핑 룸으로 갔습니다. 말로만 설명을 듣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마당에 설치된 지도 사진입니다. 어째 표정이 떨떠름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야 돼? 우씨!!" 꼭 그런 표정이네요! 아쉬움에 인터넷 자료로 사진을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앞에 도르르 말려 있는 카펫트가 보입니다. 평상시는 이렇게 전시하다가 예배때는 펴서 덥고 예배, 그러나 그 위로 다니지는 않겠지요! 얼마나 소중한 사료인데요!
이 지도는 주후 55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데, 2백만개 이상의 대리석 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1/3만 남아 있습니다.
모자이크가 보존된 곳과 떨어져 나가 소실된 곳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이렇게 보존하면서 순례객들에게 공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 사진을 보시면 물고기 두 마리가 보입니다. 오른 편은 사해이니까 물고기가 요단강에서 노닐고 있습니다. 참 정교하기도 합니다.(위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D9WV )
성 죠지 교회는 '지도 교회' 혹은 '모자이크 교회'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또 마다바는 이 교회 때문에 관광도시가 되었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성지를 찾아 나섭니다. 이제 우리가 갈 곳은 느보산입니다. 느보산이야 뭐 설명할 필요도 없는 곳이기는 하지요!
마다바를 뒤로 하고 느보산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잡은 바깥 풍경을 감상하면서 가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질곡을 반복하지만, 저 광야의 나무들이야 변함이 없습니다. 모세가 지나가도 사울, 다윗이 원정을 와도 꿋꿋하기만 했을 겁니다.
마을의 사람들이 남긴 오물의 흔적은 어쩐지 한 그루 나무만 못합니다.
베두인들이 흩어져 사는 모습입니다. 요즘에는 베두인들이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한 곳에 정착하라고 하면 질색을 한다고 합니다. 염소 털로 짠 튼튼한 천막생활을 즐깁니다. 곧 느보산에 당도합니다.
2000년에 로마가톨릭 교황이 방문한 기념으로 느보산 기념교회 입구에 세워진 기념물입니다.
느보산 기념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1932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지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내부 수리를 하는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교회 뜰에 비치된 이 거대한 원형 돌은 비잔틴 시대 수도원의 문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돌입니다.
성경은 모세가 느보산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여러차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보산은 달랑 한 봉우리로 서 있지 않습니다. 산줄기에 연해 있고 봉우리도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느 지점인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더욱기 기독교 성지 발굴은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하는 서기 313년 이전까지는 발굴할 수 없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여사의 깊은 신심이 성지를 찾아 순례에 나서면서 기독교 유적지가 성지로 거듭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느보산에 무엇을 만들면 좋을까 고민했을 겁니다. 가장 먼저 기념 교회를 건립하고 또 이 조형물을 설치했습니다. 이 조형물은 이탈리아 예술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으로 십자가 모형의 철제에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입니다. 구약 성서에 보면 모세가 출애굽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 간을 광야 생활을 합니다. 그때 백성들은 시시때때로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매일 아침 들녁에 내려져 있는 만나에도 실증을 느낄 때였습니다. 만나를 처음에는 맛있다고 했지만 몇 년을 먹다보니 지겨웠나봅니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21:5)" 이 불평을 듣고 하나님께서 광야의 불뱀들로 하여금 불평하는 백성들을 물어죽이도록 합니다.
백성들은 위기 앞에서 회개합니다. 모세를 찾아와서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들을 용서하시고 살려주옵소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쳐다보라고 명합니다. 모세는 순종했습니다. 또 백성들이 문제입니다."그까짓거 쳐다본다고 불뱀이 안 물고, 불뱀의 독을 이겨냅니까?" 그리고 안 쳐다본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모세의 말을 믿고 쳐다본 사람들은 다 살았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그게 어떻게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합니까?" 하고 안 바라보는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그곳의 시민권자가 됩니다.
광야의 놋뱀 사건이 있었던 장소가 이곳은 아닙니다. 그곳은 아론이 죽어서 묻힌 호르산에서 가까운 곳으로 모압에 당도하기 이전에 일어나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십자가 놋뱀 조형물을 여기에 설치했습니다. 이곳 느보산은 요르단 성지의 마침표 격입니다. 또한 이곳 느보산은 지도자 모세의 삶의 마침표입니다. 모세의 삶은 그리스도 예수를 예표하면서 이곳 어디엔가 묻힙니다. 느보산 십자가 놋뱀을 한 번 더 쳐다봅니다.
놋뱀 조형물 바로 앞에 있는 전망대 표지입니다. 모세가 이곳에서 저 멀리 보이는 모압평야와 요단강 건너편을 응시했을 겁니다. "주님 내가 올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란 말이지요?" 그리고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게 될 기업의 형세를 조망합니다.
눈아래 모압 평야가 펼쳐집니다. 모세를 이곳에서 장사하고 후계자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향해 접근합니다. 강 건너편은 '여리고'입니다. 여호수아는 여기서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 보냅니다. 그때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도움을 주었지요!
그러나 이 광야에는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른베 벧브올 사건입니다. 민수기에 나오는데요, 모압의 왕 발락이 이방인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그러나 발람의 뒤끝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려면 우상종교 혼음 파티를 열고 이스라엘 청년들을 초청하면 될 것이다." 발람의 이율배반으로 이스라엘은 이 꾐에 넘어갑니다. 저 골짝 어디선가 모압의 난교 파티가 벌어졌고, 피끓는 청춘, 이스라엘 청년들이 그들과 뒤섞였습니다.
느보산 기념교회 옆에는 조그만 박물관이 하나 있습니다. 왠 박물관일까요? 비잔틴 시대에 느보산에 지어졌던 교회의 유적들이 지금도 발굴되고 있다 합니다. 비잔틴의 유적 하면 이제는 '모자이크!' 이곳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비잔틴 시대 이곳에 지었던 모세 기념교회의 유적들입니다.
박물관 안에 있는 느보산 등고선에 따른 지형도입니다.
느보산 놋뱀을 바라고고 나서 박물관의 유적을 바라봅니다.
웬 베두인 천막이냐고요? 이 안에 비잔틴 유적인 모자이크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은 상태가 좋지않아 인터넷에서 구해 올립니다.
성지 순례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비잔틴 문화의 모자이크! 이는 무엇인가?
서기 395년 당시 로마 황제는 테오도시우스였습니다. 그가 48세를 일기로 임종을 맞이하면서 로마를 동과 서로 나누어 동로마는 17세 된 장남에게, 서로마는 12세의 차남에게 분할하여 각각 황제로 임명하면서 로마는 둘로 쪼개집니다. 이후 동로마는 헬라 문화에 헬라어에 젖어들고, 서로마는 라틴문화와 라틴 언어를 쓰면서 이질화 되기 시작하지요! 점차 서로마는 힘을 일고 마는데, 동로마는 기울어가는 서로마에 대하여 형제의 정을 외면합니다.
이후 동로마는 비잔틴제국으로 불리면서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그 문화를 '비잔틴 문화'라고 부릅니다.
사해 위에 오른편으로 느보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해로 유입되는 요단강 동편에 여리고(Jericho)가 보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느보산에서도 여리고가 보인다는데, 그날은 운무가 끼어서 히끄무레하게 보였습니다. 모세는 건너지 못한 요단 강을 우리는 건너게 됩니다.
여리고로 발길을 돌립니다. 요르단에서 열정적인 안내를 해 주셨던 선교사님과 작별할 시간입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하신 요르단 선교사님이 성서 식물을 조금씩 준비하셔서 우리에게 맛 보게 해 주셨습니다.
인터넷을 더투다보니 마침 그 선교사님께서 가이드하신 한 성지순례 팀에서 포스팅한 자료 중에 귀한 사진이 있었습니다. 보겠습니다. 아래 사진 2장의 출처 http://cafe.daum.net/parkinsik/AoX1/273?q=%BF%E4%B8%A3%B4%DC%20%C0%D3%BC%BA%BC%F6%20%BC%B1%B1%B3%BB%E7&re=1
왼쪽 것은 건포도 송이입니다. 올리브 압축기로 말린 포도를 저렇게 압축하여 비상식량으로 먹는다고 합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준 것이 저것이었답니다. 가운데는 겨자 씨이고요, 오른 쪽은 회향입니다.
왼쪽 것이 쥐엄나무 열매입니다.익혀서 잘라놓은 것입니다. 가운데 것은 녹두인데요, 이걸로 팥죽을 끓인다고 합니다. 야곱이 저걸로 팥죽을 쑤어서 장자권을 후루륵 했습니다. 오른 쪽은 깟씨인데요, 광야에서 먹은 만나가 깟씨같다고 설명하지요? 임선교사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자료를 사진으로 찍어 주신 분께도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요르단에서 이스라엘 여리고로 들어가는 알렌비 출입국 관리소를 향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요르단 여행의 기회가 또 있겠지요!
보아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미흡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지적하여 주시면 얼른 얼른 수정하겠습니다!
샬롬샬롬~~
첫댓글 어설프지만 일단 완료합니다. 그러나 '포스트 성지 순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탄 이브입니다.
저녁 예배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오늘(2016.1.17) 민21:4~9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이 놋뱀을 만들라 하신 말씀, 십계명 두번째 우상 금지 계명에서 동물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고는 '만들어라?' 앞뒤가 안 맞아요! 매달아놓고 쳐다봐라! 그러면 뱀에 물려 죽을 사람들이 산다! 이치에 닿지 않아요. 이 말씀, 무조건 믿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실까요? 생각해보니, 제 아내는 늘 저에게 '놋뱀을 쳐다보라'는 식의 이치에 어긋나는 요구를 합니다. 뒤집어보면, 아내입장에서 남편인 저도 늘 그런 요구를 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 줄 아셨던 거지요! '사랑함으로 쳐다봐라!' 우리는 사랑없이는 하루도 못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