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계공들은 날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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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까지 작업 일정이 잡혀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서는데 급하게 전화가 온다. 처남이다. 사고를 당해 일을 나갈 수 없으니 대신 좀 나가서 도와달라고 한다. 선약이 있다고 해도 다짜고짜다. 이미 처남 차에 유괴당하듯 올라탔다. 이팀장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안개가 짙게 깔려 한 치 앞을 구분하기 힘든 국도로 평택을 향해 달린다. 달리면서 줄곧 변명거리를 찾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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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과 광식이 형은 형제다. 둘은 공사현장에서 비계를 설치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다. 오랜 경력을 지닌 만큼(둘 다 좋이 십 년은 넘었다) 비계 매는 실력이 수준급이다. 고소공포증도 없다. 그럭저럭 삼 개월 정도 따라다녀 봤는데 대충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자신만만하다. 동생인 영식이 형이 좀 더 나은데 구조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에서 거의 만 점에 가깝다. 체구는 조그마한데 어디서 그런 힘이 뿜어져 나오는지 육 미터 강철 파이프를 어깨너머까지 들어 올려 꽂는데 웬만한 사람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술렁술렁 꽂는다고 할까. 묘기 자랑대회가 있다면 나가도 될 정도다. 그는 또한 비계 설치에 관한 한 겁이 없다. 한 번은 속초까지 따라간 적이 있는데 바닷가 근처 호텔 신축 현장이라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육 미터 파이프를 바로 세우기도 힘들 지경인데 그 형은 육층 높이의 비계 발판에서 마치 날라다니듯 파이프를 수직으로 연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술렁술렁 번쩍번쩍. 그리고 형은 여느 비계 기공들과 달리 성격이 부드럽다. 무척 인상적인 사람이다.
3
오랜만에 만나 따라가서 일한다. 설치적인 사항에 관해서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자재(클램프, 파이프-육 미터, 사 미터, 삼 미터, 이 미터, 일 미터, 그리고 발판)만 적재적소에 날라주면 된다. 그나마 힘이 부치면 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보통 대 여섯 명이 같이 다녔는데 둘이 빠졌다. 인천 철거 현장에서 떨어져 다쳤다고 한다. 죽을 뻔 했는데 운이 좋아 살아났다고 한다. 부셔놓은 콘크리트 위로 파이프를 가지러 갔다가 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떨어진 아래층에는 여기저기 철근이 많이 튀어나와 있었는데 교묘하게 그것들은 피했다고 한다.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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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현장은 여름 날씨다. 추운 가을 날씨를 대비해 두껍게 입었던 옷을 훌훌 벗고 반팔 여름 티 차림으로 자재를 나른다. 비계 일은 마치 애들 장난감인 블록쌓기 놀이처럼 파이프와 파이프를 클램프와 핀으로 연결, 혹은 고정시키고 그 위에 발판을 올려놓아 다른 공종 작업자(대부분 형틀공)들이 고공에서 원활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워낙 위험한 일이라 현장 내에서 비계공(일명 아시바)이라고 하면 모두들 한 수 접어준다. 그들은 제일 먼저 일을 시작하고 일이 끝나면 바로 철수하는데 대개 두세 시면 목표를 완수하고 유유히 보란 듯이 현장을 빠져나간다. 군대로 치면 특수 부대쯤 된다. 그리고 그들은 겨울이면 군복처럼 꾸민 작업복을 즐겨입는다. 하긴 역사 속에서 건설은 전쟁을 치루기 위한 지원부대였으니 그럴 듯하다. 특히 고대 로마 영토의 대부분의 다리나 수도 시설은 군인들이 설치했다고 하니까. 그래서 건설 현장에서는 장교 출신 기술자들이 잘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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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일 년 정도-중간에 다른 일도 병행했지만-따라다녔다고 체력이 많이 좋아졌는지 오후 세시 반쯤 일이 끝날 즈음에 이르러도 전처럼 힘들지만은 않다. 나름 많이 발전한 것이다. 덕분에 체중도 십 킬로 정도 빠졌다. 육체를 쓰는 노동은 정직하다. 그 날 일을 마치고 나면 나쁜 사람 없고, 모든 고민과 고뇌는 씻은 듯 사라져버린 채 해맑게 웃는 백 점짜리 미소를 자주 볼 수 있다. 순진한 아이들로 변해버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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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양편 계단실을 중심으로 발판 네 장 설치 높이인 구 미터를 설치하고 추가로 지시받은 엘리베이터 안쪽에 역시 같은 정도의 높이로 비계를 설치하고 일을 종료한다. 시간은 세 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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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는 인천에서 작업하다 다친 형 병문안과 더불어 일을 마치면 최고의 위로인 순대 안주에 막걸리 한 사발 한다며 작별을 고한다.
-오랜만에 만나 막걸리 한 잔 같이 걸쳐야 하는 건데.
영식이 형이 웃통을 벗은 채 웃으며 말한다. 최상의 여유로운 모습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안개가 자욱했던 새벽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이 뜨겁게 달궈진 국도를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유유히. 그야말로 유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