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유동수의 '감수성 훈련'을 학기 초에 읽었을 때, 책을 다 읽고도 이거다 하고 남는 것이라고는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구절 뿐이었을 때의 난감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심화코칭 수업에서 감수성 훈련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완전히 다른 책을 접하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던 내용들이 의미심장한 울림과 함께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감수성 훈련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이다. 이는 곧 나와의 만남 그리고 남과의 만남을 의미하는데, 그 출발점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의 내 기분이다.
: 정해진 주제에 대한 토론에 더 익숙한 내가 감수성 훈련을 처음 접했을 때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의 내 기분'을 읽는 것이었다. 내 생각과 연관되어 있는, 그러나 그 생각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에 적응하는데는 적어도 2~3회의 훈련이 필요했다. 그 과정은 마치 음소거가 되어있는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는 것과 유사했다.
: 내 감정 읽기가 어느 정도 되었다 싶었던 즈음, 나는 다시 내 입장만 생각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상대방의 관점에서 그 마음을 읽는 것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참가자들을 살피고 있다고 믿었는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이없게도 여전히 '나의 이야기'였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상대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내가 보고있는 상대방, 그리고 그가 알아봐주는 나 자신이 보이기도 했다.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모든 감정이 사라져버리고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깨어있는 느낌 뿐인 상태에 이르게된다. 이때가 바로 당신이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다.
: 나와의 만남 그리고 남과의 만남의 과정을 통해 알게된 나의 모습은, 의외로 많은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감정이 사라져야, 그래서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깨어있는 느낌 뿐인 상태에 이르러야 진정한 나를만날 수 있을텐데! 그 방법을 찾는데 Carl Jung의 '자기 원형' 개념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자기 원형이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순수한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자기 원형을 추구하는데는 자기를 바로 보는 단계, 자기를 이해하는 단계, 자기를 받아들이는 단계 그리고 자기를 터놓는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나의 마음공부는 아직 매우 바쁘고 시끄럽다. 언젠가는 Eureka를 통해서든, 자기 원형을 추구하는 단계를 거쳐서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순간을 기다려본다.
대화의 요령에 따라, 상대는 당신을 말귀도 못 알아듣는 사람, 대화가 되는 사람, 배짱이 맞는 사람,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 감수성 훈련 과정에서 자주 실감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화의 어려움이다. 훈련 목적으로 하는 대화마저도 처음에는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이제는 훈련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는 어느 정도 편안해지게 되었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평소의 대화이다. 감수성 훈련을 시작한 이후, 주위에서 오가는 대화를 유심히 듣는 버릇이 생겼다. Alas! 우리가 말을 배운 이후, 제대로 된 대화를 과연 얼마나 해왔을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말귀도 못 알아듣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를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화가 되는 사람 또는 배짱이 맞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첫댓글 어떤 배움의 자리에서도 큰 성찰로 가져가는 정박사님이 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