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매화면 신흥리의 전원과 산불화재 현장 풍경
이른 아침 풀잎마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 절기가 지나면, 고향 떠나 객지에 나가 사는 사람들
흔히 그러하듯 나 또한 고향을 찾는다. 조상님들의 산소에 풀 베러 가는 연례행사다. 올해도 추석을 두 주간을 앞 둔 주말인
지난 9월 12일에 찾았다. 일 년만에 다시 찾은 고향은 동구 밖의 느티나무가 먼저 반겨 준다. 울진군 보호수로 등록된 이 나
무는 수령 300여 년이 넘는 거목으로 마을 성황당목이기도 하다. 북수로 흐르는 마을 앞의 실개천엔 벌써 갈대꽃 한창 피기
시작해 몸을 흔들고, 산골짝 다락논엔 추석 햅쌀이 될 조생벼들이 벌써 누렇게 익고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은 산촌 중에서도 산골짝 마을이다. 내 어릴 적과 달리 젊은 이들이 거의 없는 마을은 동구 밖만 벗어
나도 산길은 풀숲이 우거져 다니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은 산골 다락논들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
는 숲을 이뤘고, 소 꼴먹이러 다니던 옛 산비얄 오솔길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때론 낫으로 나뭇가지들을 쳐내면서 이런
숲길을 걸어 산소를 찾다보니 벌초하는 시간보다 산소를 찾아 가는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나 즐겁다. 오래토록 잊고 지내
던 어릴 적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 절로 흥이 난다. 알피엠을 높이는 예초기의 엔진소리에 산골짝은 경기(驚起)를 하
고, 함께한 형제들과 아이들의 쉼 없는 정담(情談)에 묘역에 핀 야생화를 찾았던 나비들도 흥겨워 춤춘다.
서둘러 벌초를 마치고 금장지맥 노루목(재)을 찾아 올라 보았다. 매화면 신흥리와 기성면 삼산리를 잇는 임도를 따라 남쪽
이울재를 오르면 기암(奇岩) 부처바위가 나오고, 임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노루목(재)이 나온다. 금장지맥 신흥리 구간 마
루금에 위치한 이곳 노루목 일원은 예로부터 목재는 물론 산약초의 보고였다. 왕죽처럼 올곧게 자라는 금강송이 능선마다
우거지고, 그 솔밭에 나는 가을 한 철 송이버섯은 이마을 사람들의 일년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옛일이 되었
다. 지난 2007년 4월 매화면 (당시 원남면) 갈면리 뒷산에서 일어난 산불 화재로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었다. 당시 갈면리
와 신흥리 그리고 기성면 삼산리 일원의 이 산불은 도하의 각 신문과 방송에서도 연일 보도되었던 화재였다. 올해로 8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곳은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잡풀만 있는 민머리 벌거숭이 산이다. 한 순간의 화마에 수백년 송림 간 데
없고 고사리 밭 관목 숲이 되어버렸다. 다시 예전 모습으로의 자연 복원에는 최소 사 오십 년이 걸린다. 이곳 산촌마을 사
람들의 송이버섯등 수입원이 그 기간만큼은 없다는 예기다. 그 아름답던 옛 산천을 그리려고 올라 본 노루목의 안타까움
에 화를 참느라 한참을 서성거린다. 소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아야 할 현종산의 안태나가 눈앞에 선명하다. 그 모습 오
히려 처연해 애써 외면하고, 송이 따던 인가지골(人家址谷) 능선을 카메라에 담으며 옛 송밭들을 마음으로 그려본다.
▼ 매화면 신흥2리 이울 - 1
- 수령 300여 년의 느티나무 -
▼ 매화면 신흥2리 이울 - 2
▼ 동막골 현종산 능선 풍경
▼ 금장지맥 이울마을 갈림길의 솔뫼언덕
▼ 신흥2리 마을 풍경 - 1
▼ 신흥2리 마을 풍경 - 2
▼ 금장지맥 이울재에서 본 남수산
▼ 금장지맥 이울재의 부처바위 - 1
▼ 금장지맥 이울재의 부처바위 - 2
▼ 산불 휩쓸고 간 인가지골(人家址谷) - 1
▼ 2007년 산불 휩쓸고 간 인가지골- 2
▼ 산불 휩쓸고 간 인가지골- 3
▼ 대령산 연봉
▼ 금장지맥 신흥2리 노루목(재) - 1
▼ 금장지맥 신흥2리 노루목(재) - 2
▼ 노루목에서 바라본 삼산재 / 매화면 신흥리와 기성면 삼산리의 경계(현종산 능선)-1
▼ 삼산재 / 매화면 신흥리와 기성면 삼산리의 경계(현종산 능선)-2
▼ 삼산재에서 바라본 노루목
▼ 다시보는 이울재 부처바위
▼매화면 신흥2리 이울마을
▼ 이울 다랭이논의 벼
▼ 신흥리 야생화 / 배초향, 물봉선, 더덕, 수크렁
▼ 묘소에 핀 야생화 / 잔대, 미역취, 층층잔대, 며느리밥풀꽃, 비짜루(용수채)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