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후조의 계절
문득 창 밖에 펼쳐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얀 구름송이들도 저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마치 물결 따라 한켠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 이따금 모습을 감추고 있던 태양이 더없이 밝게 보인다.
언제 보아도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 자연, 하늘과 태양엔 입이 없으나 항상 사람의 스승이 되어 무수히 많은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연은 절대로 인간을 속이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자연은 신의 영원한 장식일까.
그 장식 속에서 인간은 길들여져 저녁 무렵이 되면 가정을 생각하게 되고 귀가를 서두는 것일까.
만약 가정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들이 벌여질 것일까,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거개가 가정의 행복을 맛보며 인생의 햇볕을 쬔다.
무릇 가정은 이해의 따뜻한 바람이 불고 화목의 훈훈한 향기가 감돌고 애정의 행복한 샘이 솟는 인생의 안식처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하늘에 먹장구름이 덮여 천둥번개가 소나기를 불러들여 대지를 범람하게 하듯이,
뜻하지 않은 불행이나 불화(不和)로 가정이 균열되어 사랑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될까.
사랑이 없는 가정은 결코 가정이 아니다. 더더욱 미성년자가 있는 가정에서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등으로 말미암아 양친 또는 그중 한 쪽이 없는 가정의 소년소녀 가장이 날로 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자니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난해 가을에 만나 금년 춘삼월에 헤어져야만 했던, 열일곱 경아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담고서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동안 배불뚝이 경아와 짧은 기간에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연인 사이처럼 속내를 드러내며 속삭였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한겨울이라서 추위도 만만찮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단 둘이서 근교 나들이를 계획했다.
생활관에서부터 동승한 경아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몸이 점점 무거워져 특별히 하는 일없이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던 경아는 이렇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날을 무척 기다린 것 같았다. 미사리를 지나서 팔당호를 바라보았다.
검푸른 물결 가장자리는 어느새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호젓한 강변의 식당들은 긴 겨울잠을 들었는지 미식가들의 발길마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로변 한 모퉁이에는 군고구마랑 군밤을 팔기 위한 장작불이 더없이 따듯하고 포근해 보였다.
소시적 시골의 아궁이에서 보았던 아련한 향수의 불꽃처럼 나를 매료시켰다. 그래서 차를 세웠다.
따끈한 군밤 한 봉지를 건네주자,
그제서 경아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이 피어났다. 어린 나이에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운 출산을 준비하고 있는 경아가 알량한 군밤 한 봉지에 즐거워 하니, 외려 내 자신이 측은한 심정을 달랠 수가 없었다.
여느 가정집 그 또래 소녀들은 부모의 보호 속에서 응석을 부리면서 학업에만 매달려, 진학의 푸른 꿈을 그려야 하는데.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가장 소중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아는 천애의 고아로서 마치 절망의 구렁텅이에 버려진 천더기처럼 되고 말았다.
철없던 시절 그 가정은 불행의 처소마냥 경아의 슬픔이 음각되어 있는 듯했다.
그래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기쁨은 거의 없고 오로지 험난한 고통만이 늘 함께하고 있었다.
이제 희미한 기억의 뒤안길이 되어버린 지난날들. 어머니와 오빠는 아버지와 어린 경아만 남겨놓고 가출하자,
술로 나날을 보내던 아버지마저 경아만 혼자 남겨놓고 떠나고 말았다.
오갈 곳 없는 고아로 전락한 어린 소녀. 그래도 험한 세파에 부초처럼 밀리면서도 갖은 눈총과 빈정거림 속에 죽지 못해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경아의 역경을 듣고서도 선뜻 위로할 수가 없었다.
이미 지난 과거는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대응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아가 겪은 고초에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대신할 수 없을 같았다. 경아는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 듯 고개를 숙였다. 출산을 앞둔 경아가 참으로 가련하고 암담해 보였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도 없고 부모 또한 자식을 선택해 낳을 수도 없으니, 인연 끊기에 대하여 어떻게 설득할까 하고 잠시 고심하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경아는 만감이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자포자기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 어디론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세상만사 사람의 뜻대로 되는 건가.
내가 경아를 처음 만난 곳은 한국경생보호공단 서울지부에서 운영하는 딸부자집[여성청소년생활관]에서였다.
이곳에 보호대상자는 형사처분 또는 보호처분을 받은 20세 이하의 비행여성청소년들이며 열댓 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전통적 유교 가치관의 붕괴와 물질만능주의, 가정과 사회의 무관심, 잘못된 교우관계, 자신의 미약한 의지력 등으로 인하여 비행에 빠지는 여성청소년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어둠 속 등대처럼 그들을 보살피는 소장이나 교사들은, 그들이 우리의 미래의 주인공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기에 가정과 사회의 따뜻한 사랑 아래 밝고 건강하게 성장해야 한다며 불철주야 심신순화 교육에 여념이 없다.
차를 몰고 가다보니 텅 빈 논두렁 가장자리에 힘없이 서 있는 허수아비가 눈에 들어왔다. 참새 떼도 찾지 않는, 철 지난 삭막한 겨울 들판에 홀로 남아 있는 허수아비처럼 경아도 그런 입장이 아닐까.
축복 받지 못하고 태어날 아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지 간간히 들리는 경아의 목소리가 사뭇 젖어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친구의 옛집이 보였다. 그림 같은 풍경, 봄이면 바위틈에서 영산홍이 붉게 피었고 넓은 잔디 위에 소나무가 휘어져 조화로움을 더한다.
어디 그 뿐이랴. 정자 같은 거실에서 팔당호를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어 더욱 좋다. 차를 멈췄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방문객을 나무라는 듯, 진돗개는 마구 짖어댔으나 노부부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경아와 나는 팔당호를 바라보며 가슴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 나누었다. 아직도 채 녹지 않은 하얀 눈 위에 누군가 나란히 걸어간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눈사람을 만들다 내버려둔 눈뭉치도 보였고 여기저기 추억 만들기를 한 것 같은 동심이 아름답게 보였다.
자유로울 때, 자유를 잘 지키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무질서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경아의 남자 친구, 아기 아빠가 될 사람은 폭력으로 현재 소년교도소에서 수형생활 중이며, 경아 역시 절도행위를 하던 여자 친구를 돕기 위해, 망을 보던 공범으로 형사처분을 받았기에 딸부자집에 오게 된 것이다.
인벌(人罰)은 서로 용서할 수 있지만 형벌(刑罰)은 죄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천벌(天罰)은 누군들 최후의 심판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작년에 찾아들었던 철새들이 모두 떠났고 새로운 봄에 접어들었다. 이제 경아도 철새가 되어 생활관에서 떠나 출산을 위해 평택에 있는 에스더의집으로 옮겨간 뒤로 소식이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늘 마음속으로 경아의 건강과 순산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반가운 소식이 왔다. 순산이며 아들이라고,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그때는 경아도 텃새처럼 단란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어 있겠지. 남은여생에 있어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모금 줄 수만 있다면 그 길을 마다하지 않으리라.
심 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