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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서교육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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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스크랩 * 정호승 시인 ( 시모음 )
simaru 추천 1 조회 42 10.10.19 13:2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정호승 시인


1950년 대구 출생 .대구 계성중 대륜고 졸업
1976년 경희대 국문과및 동 대학원 졸업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첨성대]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편소설[위령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1979년 첫시집 [슬픔이 기끔에게] 간행후, [서울의 예수](1982)[새벽편지](1987)[별들은 따뜻하다]

(1990)[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등의 시집을 간행함.

1989년 제3회 소월시 문학상, 1997년 제 10회 동서문학상 수상.

 

 

 ( 정호승 시모음 )

정호승

 

 

1950년 경상남도 하동 출생


198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설굴암에 오르는 영희>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 당선


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위령제> 당선


1989년 제3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 으로 『새벽 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등 다수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가난한 사람에게

내 오늘도 그대를 위해
창밖에 등불 하나 내어 걸었습니다.
내 오늘도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마음 하나 창밖에 걸어 두었습니다.
밤이 오고 바람이 불고
드디어 눈이 내릴 때까지
내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가난한 마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내린 들길을 홀로 걷다가
문득 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부처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곤고히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저무는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인생의 눈부처 되리
내 죽을 때 망초꽃 되어
그대 맑은 눈동자 눈부처 되리.. 


 

 

 

슬픔으로 가는 길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감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창밖에 기대어 흰눈을 바라보며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할 수 있었으면
詩로써 거짓말을 다 할 수 있을까.
거짓말을 통하여 진실에 이르는
거짓말의 詩를 쓸 수 있을까.
거짓말의 詩를 읽고 겨울밤에는
그 누가 홀로 울 수 있을까.
밤이 내리고 눈이 내려도
단 한번의 참회도 사랑도 없이
얼마나 속이는 일이 즐거웠으면
품팔이 하는 거짓말의 詩人이 될 수 있을까.
생활은 詩보다 더 진실하고
詩는 삶보다 더 진하다는데
밥이 될 수 없는 거짓말의 詩를 쓰면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 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있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벅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래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희망을 만드는사람이 되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고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두운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기다림 만나
얼씨구나 부등켜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 눈 내리는 보리밭 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아버지의 나이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술 한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철길에 앉아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철길에 앉아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멀리 기차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코스모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차가 눈 안에 들어왔다.
지평선을 뚫고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기차는 곧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낮달이 놀란 얼굴을 하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흔들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 주지 않고
뿔뿔히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 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되라
절벽 끝에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
저 솔가지 끝에 앉은 새들이 되라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
기어이 절벽을 기어오르는
저 개미떼가 되라
그 개미떼들이 망망히 바라보는
수평선이 되라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절벽은 있다
언젠가는 기어이 올라가야 할
언젠가는 기어이 내려와야 할
외로운 절벽이 하나씩 있다

 

 

겨울강 

 

 

꽝꽝 언 겨울 강이
왜 밤마다 쩡쩡 울음소리를 내는지
너희는 아느냐
별들도 잠들지 못하고
왜 끝내는 겨울 강을 따라 울고야 마는지
너희는 아느냐
산채로 인간의 초고추장에 듬뿍 찍혀 먹힌
어린 빙어들이 너무 불쌍해
겨울 강이 참다 참다 끝내는
터뜨린 울음인 줄을.

 

 

 

 

 

 

 

 

 

 

슬픔으로 가는길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강변역에서

 


강변역에서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바람 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벼락에 대하여

벼락맞아 쓰러진 나무를 보고
처음에는 무슨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날
쓰러진 나무 밑동에서
다시 파란 싹이 돋는 것을 보고
죄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나무가 벼락을 맞는다는 것을
나무들은 일생에 한번씩은 사람들을 위해
벼락을 맞고 쓰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누가 나무를 대신해서
벼락을 맞을 수 있겠느냐
오늘은 누가 나무를 대신해서
벼락맞아 죽을 사람이 있겠느냐

 

 

 이별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강물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물이다.
사람의 용서도 용서함도 구하지 말고
청춘도 청춘의 돌무덤도 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길이다.


흐느끼는 푸른 댓잎 하나
날카로운 붉은 난초잎 하나
강의 중심을 향해 흘러가면 그뿐
그동안 강물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강물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그동안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강물이 아니었다 회망이었다.
 


가을꽃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 꽃이여
 


폭포 앞에서

 

이대로 떨어져 죽어도 좋다.
떨어져 산산이 흩어져도 좋다.
흩어져서 다시 만나 울어도 좋다.
울다가 끝내 흘러 사라져도 좋다.

끝끝내 흐르지 않는 폭포 앞에서
내가 사랑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내가 포기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는 이제 증오마저 사랑스럽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폭포가 되어
눈물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되어
머무를 때는 언제나 떠나도 좋고
떠날 때는 언제나 머물러도 좋다.
 


사랑

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
내가 기도할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
내 영혼이 가난 할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
모든 애인들이 끝끝내 지키는 깨끗한 눈물

오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날보다
원망하는 날들이 더 많았나니
창밖에 가난한 등불 하나 내어 걸고
기다림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는 결국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아무리 걸어가도 끝없는 새벽길
새벽 달빛 위에 앉아 있던 겨울산
작은 나뭇가지 위에 잠들던 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사막의 마지막 별빛
언젠가 내 가슴 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꽃

 


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 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새벽 편지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위에
몸을 던졌다.
 


끝끝내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가에 무더기로 핀
흰 싸리꽃만 꺾어 바쳤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눈물도 지나치면 눈물이 아닌 것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너에게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 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 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까닭

내가 아직 한 포기 풀잎으로 태어나서
풀잎으로 사는 것은
아침마다 이슬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 한 송이 눈송이로 태어나서
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싸리빗자루로 눈길을 쓰시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도 없이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고이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도 쓸쓸히 노래 한 소절로 태어나서
밤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별을 바라보는 것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잠이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
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기 위하여
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 달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느님의
눈물도 받아 둔다
누구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집을
한번 들여다보면
간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이
고단하게 코를 골며 하느님 눈물이
새들의 깃털에 고요히 이슬처럼
맺혀있다.
 

 

洗足式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가르치지 마라
세족식을 위하여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물 속에 계속 발을 담글지라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마라

지상의 모든 먼지와 때와
고통의 모든 눈물과 흔적을 위하여
오늘 내 이웃의 발을 씻기고 또 씻길지라도
사랑을 위하여
사랑의 형식을 가르치지 마라

사랑은 이미 가르침이 아니다
가르치는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밤마다 발을 씻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는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거것 앞에 서 있다

가르치지 마라 부활절을 위하여
가르치지 마라 세족식을 위하여
사랑을 가르치는 시대는 슬프고
사랑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의 시대는 슬프다


 

갈대


오늘도 내 마음이 무덤입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강가에 살겠습니다.

들녘엔 개쑥이 돋고
하루하루가 최후의 날처럼 지나가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을 때는
또 일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을 다하고 마침내 통곡을 다하고
광야에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누가 보자기를 풀어
푸른 하늘을 펼쳐 놓으면

먼길 떠나는 날 이 아침에
오늘도 내 마음이 무덤입니다.

 

어떤 사랑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
너는 이미 숨져 있었고
네가 나를 사랑했을 때
나는 이미 숨져 있었다

너의 일생이 단 한번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라면
나는 언제나
네 푸른 목숨의 하늘이 되고 싶었고
너의 삶이 촛불이라면
나는 너의 붉은 초가 되고 싶었다

너와 나의 짧은 사랑
짧은 노래 사이로
마침내 죽음이
삶의 모습으로 죽을 때
나는 이미 너의 죽음이 되어 있었고
너는 이미 나의 죽음이 되어 있었다


 또 기다림



그대를 기다리다가
밤하늘에 손톱 하나 뽑아 던졌습니다
그대를 기다리다가
손톱 하나 뽑아 던지고 별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아직도 죽지 않았다기에
봄밤에 별 하나 뜨지 않는다기에
오늘도 손톱 하난 뽑아 던지고 밤새 울었습니다
기다릴수록 그대는 오지 않고
바라볼수록 그대를 바라볼 수 없어
산도 메아리도 끊어질 때까지
한 사람 가고 나면 또 한 사람
붉은 손톱 뽑아 던지고 별이 되었습니다

 

북한강에서



너를 보내고 나니 눈물 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이 올 것만 같다
만나야 할 때에 서로 헤어지고
사랑해야 할 때에 서로 죽여버린
너를 보내고 나니 꽃이 진다
사는 날까지 살아보겠다고
돌아갈 수 없는 저녁 강가에 서서
너를 보내고 나니 해가 진다
두 번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강 건너 붉은 새가 말없이 사라진다


 

 휴전선에서



하늘이 무너질 때까지 너를 기다렸다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엎드려
하늘이 무너지고 눈이 내릴 때까지
너를 사랑했다

눈물 없이 꽃을 바라볼 수 없고
눈물 없이 별들을 바라볼 수 없어
흩어졌던 산안개가 다시 흩어질 때까지
죽어서 사는 길만 걸어서 왔다

녹슨 철조망 사이로
청둥오리떼들은 말없이 날아갔다 돌아오고
산과 산은 이어지고
강과 강은 흘러흘러

누가 내 가슴 속
푸른 하늘을 빼앗아갔을지라도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
별들을 조용히 흔들어보았다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막다른골목



막다른 골목에서 울다가
돌아 나온 사람들은 모르지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아 울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이 된 사람들도 모르지
당신이야말로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

막다른 골목에서 결국 쓰러진 사람들도 모르지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이라는 것을

막다른 골목에 핀 민들레는 알지
사막이 쓰러지는 것도 결국은
한마리 쓰러진 낙타 때문이라는 것을

 

 


 

 

 

더이상 내가 팬티만 입은 채

야산에서 알몸으로 발견되지 않기를

사람도 오가지 않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낙엽더미에

그대로 고요히 덮여 있기를

 

진달래 한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나 지리산 진달래로 피어나

섬진강 따라가는 봄바람이나 되리니

멀리 뻘배를 타고 갯벌로 나아가

게구멍이나 기웃거리며 한평생 게들과 노니려니

 

전국에 전단지를 돌리며 아들아

나를 찾지 마라

아내여 날마다 이혼하고 술이나 마셔라

과거의 들녘에는 언제나 검은 기차가 지나간다

누구에게나 먼 지옥은 가깝다

 

더이상 내가 팬티만 입은 채

갯가에서 알몸으로 발견되지 않기를

경찰들이 또 나를 찾아와

지문을 채취하고 침을 뱉지 않기를

달빛에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고

그저 개불 곁에 고요히 숨어 있기를

 

 

 

넘어짐에 대하여

 

 

나는 넘어질 때마다 꼭 물 위에 넘어진다

나는 일어설 때마다 꼭 물을 짚고 일어선다

더이상 검은 물속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하여

잔잔한 물결

때로는 거친 삼각파도를 짚고 일어선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만 꼭 넘어진다

오히려 넘어지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져도 좋다고 생각하면 넘어지지 않고

천천히 제비꽃이 핀 강둑을 걸어간다

 

어떤 때는 물을 짚고 일어서다가

그만 물속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예 물속으로 힘차게 걸어간다

수련이 손을 뻗으면 수련의 손을 잡고

물고기들이 앞장서면 푸른 물고기의 길을 따라간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일으켜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세운다 할지라도

 

 

여름밤

 

 

아파트 경비원 혼자 라면을 끓인다 

한 평 남짓한 좁은 경비실에 앉아 

입을 벌리고 졸다가 일어나 

끓인 라면을 혼자 먹는다 

한낮에 맑게 울던 매미는 울지 않고 

오늘따라 별들도 보이지 않고 

밤늦게 주차하는 자동차의 찬란한 불빛을 뚫고

키 작은 소녀 

김치 한 사발을 들고 온다 

인간에게는 왜 도둑이 있는지 

인간이 왜 아파트를 지켜야 하는지

인생을 지키기도 힘든 여름밤 

거미줄이 내 얼굴에 걸려 무너진다 

나는 아직 거미의 먹이가 되지 못하고 

거미의 일생만 뒤흔들어놓는다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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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0.29 13:43

    첫댓글 가을에 어울리고 제 마음같은시 한편 있어 감상하구 제 집으로 담아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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