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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재복이는 (2015년 현재 만11세 )서울 서원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35개월 때 아빠 고향인 통영 한산섬에 갔다가 맑은 하늘을 보고는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시를 지었어요. 2013년 동생 순영이와 남매 동시집〈동그라미 손잡이 도넛〉과 동화책 〈투명인간 노미〉, 2014년 피아노 연주 음반을 넣어 단독 영한 동시집〈나,쿠키〉그리고 엄마와 동화책〈애플드래곤〉을 출간했어요. 일본 구루메에서 열린 국제바하음악경연대회에 참가해 피아노부문 은상을 수상했고, 2014년과 2015년 부암아트홀에서 열린 우수 콩쿠르 입상자 피아노 콘서트에서 바흐와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어요. 아주 작은 꽃 한 송이에도 미소를 짓는 고운 마음이 재복이의 가장 큰 보물입니다.올가을 선화예중에 합격한 재복이는 아주 작은 꽃 한 송이에도 미소를 짓는 고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화성
화성으로 갈 사람을 모집한다면
두렵지만 지원할 거야
그곳으로 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해도
나는 갈 거야
화성은 특별할 것 같아
공기는 빨갛고 모래바람밖에 없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지구는 더 이상 비밀스럽지 않아 보여
엄마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지만
상상하지도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용감해져야 해
화성은 점점 나를 용감하게 만들어
아직 발길이 닿지도 않았지만
내 꿈의 길은 벌써 그곳에 닿아 있어
생각은 어디든 닿을 수 있고
그것이 나의 진짜 크기야
지구에만 머무를 수 없는
마시멜로
내일은 꼭 마시멜로를 먹을 거야
보들보들 혀에서 살살 녹는
흰색 핑크색 마시멜로
진공 상태의 병 안에 넣으면
그것은 크게 부풀어올라
먹음직스러워져
바깥으로 꺼내면 다시 작아져
피시시시 쪼그라들어
재미있어서 더 맛있는 마시멜로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
오늘은 온통 마시멜로 생각 뿐
마시멜로 꿈을 꿀 것 같아
흰색 고양이가 나오면 마시멜로 고양일 거야
꿈도 보들보들 할거야
달콤할 거야
코코아 속 강아지
까만 코코아 위에
하얀 강아지가 떠 있다
마시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강아지가 눈을 감았다
앞 머리카락이 내려와 있다
커다란 코가 있다
뺨에는 주근깨가 있다
마시면 마실수록 없어지는 강아지
눈코입이 사라지고 머리만 남은 강아지
내 사진 속에만 남겠네
나를 먹지 말라고 말하면서
검은 코코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한 순간인 인생처럼
재복이가 꾸는 꿈, 혹은 감추고 싶은 꿈
이재복의 시세계
이재훈 시인
평소에 나는 동시를 즐겨 읽는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자연스레 동시를 읽게 되었다. 누구나 부모들이라면 아이들에게 동화나 동시를 한번쯤은 읽어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동화보다 짧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긴 동화를 읽어주는 일은 참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시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이라는 자의식이 만들어낸 읽어주기 육아법인지도 모르겠다. 시인들이 출간한 동시집을 가끔씩 받으면 대부분 한 번 이상씩 읽어주었다. 그 이후론 딸아이가 스스로 동시집을 찾아 읽는다. 동시를 써본 일은 많이 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저절로 동시가 써지는 날들이 있다. 썼다기보다는 씌여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 글을 쓰거나, 동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동시의 해설자로서 적당한 필자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복의 동시집에 대한 글을 선뜻 받아들이게 된 것은 오로지 그의 시 때문이다. 이재복의 동시를 읽으며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재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몇 가지 정보뿐이다. 이 정보 또한 재복이의 어머니인 김바다 시인을 통해 들은 정보이다. 이재복은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며,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 들어가는 학생이다. 피아노를 치며 일본바하국제음악경연대회에 나가 은메달도 딴 경험이 있는 재능있는 친구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모자랄 것 없는 환경 속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일상을 보내는 학생이다. 한 마디로 잘 자라고 있는 엄친아인 것이다. 그런 그가 왜 시를 쓸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 점이 중요한 대목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시집을 다 읽을 즈음, 이재복이 시를 쓰는 이유를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짐작은 재복이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의 생각은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의 생각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믿으니까. 그런저런 생각에 다다를 쯤 시를 쓰는 주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동시를 쓰는 여러 주체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이 쓴 동시,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쓴 동시, 중년이 쓴 동시, 엄마가 쓴 동시 등등이 있을 것이다. 또한 또래 어린이들이 쓴 동시가 있을 것이다. 이재복의 동시는 시를 읽는 수용자와 창작 주체의 세대가 비슷하다. 즉 목적의식이 희박한 자발적인 동인으로 시를 생산해내는 입장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재복의 시는 또래집단이 생각할 수 있는 일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또래집단이 느끼는 공통의 관심사뿐 아니라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생각과 감각을 시에 잘 그려놓았다. 무엇보다 이재복은 창의성이 풍부한 아이다. 시적 대상을 잘 관찰하는 능력, 유머러스한 비유, 이러한 수사 속에 자신의 생각을 한 마디로 벼릴 수 있는 재기까지 모두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이미 “내 안에 들어가서/다른 사람 밖으로 나오는 시” 혹은 “시인은 미로에서 태어나/미로에서 살다가 죽는다”라고 시에 대한 특별한 자의식까지 가지고 있다. 뒤이어 그에게 시란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허물고/작은 개미에서 태양을 보는/그것이 진정한 시”(「시 2」)이다. 시를 훈육과 자기반성의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심미성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놀랍기만 하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시를 쓸 때에는 시인으로서의 특별한 자의식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은 꼭 마시멜로를 먹을 거야
보들보들 혀에서 살살 녹는
흰색 핑크색 마시멜로
진공 상태의 병 안에 넣으면
그것은 크게 부풀어 올라
먹음직스러워져
바깥으로 꺼내면 다시 작아져
피시시시 쪼그라들어
재미있어서 더 맛있는 마시멜로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
오늘은 온통 마시멜로 생각 뿐
마시멜로 꿈을 꿀 것 같아
흰색 고양이가 나오면 마시멜로 고양일 거야
꿈도 보들보들 할 거야
달콤할 거야
― 「마시멜로」 전문
이재복은 어떻게 하면 시적으로 ‘잘 빚은 항아리’가 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먼저 마시멜로라고 하는 소재를 잘 관찰하고 있다. 소재를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으로 시적 대상의 특성을 파악한다. “보들보들 혀에서 살살 녹는” 감각과 “흰색 핑크색”의 관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거기에 “진공 상태의 병 안에 넣으면/그것은 크게 부풀어” 오르고 쪼그라든다는 다른 공간에서의 관찰 정보를 더한다. 그리고 시적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간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마지막 두 연에서 ‘마시멜로’라는 시적 대상을 ‘꿈’이라는 이상의 관념과 동일시시키는 장면이다. 오감으로 실제 감각한 물질과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관념과의 결합은 가장 이상적인 동일시이다. 게다가 ‘달콤하다’라는 유사성을 발견한 측면을 놓고 보면 마시멜로와 꿈은 잘 어울리는 짝패인 것이다.
이재복은 시의 화자가 가진 생각과 태도를 적절하게 시의 전개에 융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의 사례들을 이재복의 시집에서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까만 코코아 위에
하얀 강아지가 떠 있다
마시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강아지가 눈을 감았다
앞 머리카락이 내려와 있다
커다란 코가 있다
뺨에는 주근깨가 있다
마시면 마실수록 없어지는 강아지
눈코입이 사라지고 머리만 남은 강아지
내 사진 속에만 남겠네
나를 먹지 말라고 말하면서
검은 코코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한 순간인 인생처럼
― 「코코아 속 강아지」 전문
코코아는 어린이들이 많이 먹는 음료이다. 시를 보면 코코아 위의 하얀 강아지는 바리스타가 모양을 낸 거품을 표현한 것이다. 화자는 그 모양을 사진 찍었고 강아지가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다. 거품 강아지를 그냥 먹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세밀하게 관찰한다. 즉 “앞머리카락이 내려와 있”고 “커다란 코가 있”고 “뺨에는 주근깨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찰 이후에는 “마시면 마실수록 없어지는 강아지”가 시적 인식이 일어나는 시적 순간임을 넌지시 전해준다. 관찰 이후에 시의 화자와 대상과의 교감이 비로소 일어나는 단계이다. 그리고 사라진 코코아 위 거품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연의 “한 순간인 인생처럼”이라는 구절이다. 열세 살의 이재복 시인이 인생을 얼마나 알겠는가. 하지만 시의 화자가 아직 미성년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마지막 구절은 화두처럼 우리의 머리를 잠시 뒤흔들어 놓는다. 존재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채집하는 것,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은 얼마나 귀한 물음인가. 어린 화자라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위의 시는 잘 전해준다.
이러한 시적 장면은 시 「red berries tea」에서도 드러난다. 레드베리티는 허브차의 일종이다. 차를 타면 매혹적인 붉은색이 우러나온다. “따뜻한 물에 우러나는 진한 빨강”의 시각적 이미지와 “상상으로만 가능한 어떤 맛”이라는 미각적 이미지가 잘 조화되어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마시면 마실수록 중독성이 있다/현대 예술처럼”과 같은 표현은 비유가 참신하다. ‘중독성’이라는 유사성을 차와 현대예술이라는 먼 거리의 시적대상과 잘 조화시켰다. 또다른 시 「은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은행과 가을을 ‘독’이 있다는 유사성으로 결합시킨다. 이것은 은행의 속성을 잘 파악하여 쓴 작품이다. ‘독있다’와 ‘맛있다’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소재로 가장 적합한 것이 은행인 것이다. 또한 “냄시나”와 같은 구어체의 활용은 시의 맛을 더욱 잘 느끼게 해준다.
피구에서 나를 아웃시킨 건
친구의 공이 아닌
아주 작고 예쁜 꽃
아침에 먹은
참외씨보다 약간 큰 꽃
가운데가 노랗고
가장자리가 흰 작고 예쁜 꽃
아웃이 된지도 모르고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어
너는 아웃이야
친구가 말할 때까지
속상했지만 그 꽃을 보니
마음이 다시 좋아졌어
꽃도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어
― 「아웃」 전문
시 「아웃」은 시인이 가진 특별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즉 다른 자리를 볼 줄 아는 시인의 눈을 경험할 수 있다. 1연에서 곧바로 “피구에서 나를 아웃시킨 건/친구의 공이 아닌/아주 작고 예쁜 꽃”이라고 말한다. 화자는 게임을 하면서 소통해야 하는 공에게는 관심이 없고, 공과는 전혀 무관한 혹은 다른 자리에 존재하는 꽃에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 꽃은 화자에게 특별한 꽃이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존재와 사건들을 특별한 시적 순간으로 만들어놓는 장면이다. 2연에서는 자세하게 화자가 바라본 꽃을 묘사하고 있다. 꽃과의 교감을 시작한 시의 화자는 게임 중이던 일상의 존재가 아니라 사물과 대화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화자로 바뀐 것이다. 그렇기에 “꽃도 나를 보고/웃는 것 같았어”라고 시의 화자가 대상과 교감하며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나무늘보가 몇 시간을 자는 지 아세요? 열여덟 시간을 자요 밥 먹고 똥쌀 때 빼고는 계속 자요 얼마나 많이 자는 지 몸에 이끼가 낄 정도겠어요 저도 잠자기를 좋아하지만 나무늘보같이 되고 싶진 않아요 몸에 이끼가 끼고 싶진 않아요 나무늘보를 만난다면 작작 좀 자라고 할 거에요 나폴레옹은 남자는 네 시간 여자는 다섯 시간 바보는 여섯 시간을 잔다고 말했어요 나무늘보는 바보도 아니에요 바보보다 더 많이 자는 잠꾸러기에요 아무런 쓸모없는 잠꾸러기 무인도에 표류되었을 때 새들은 잡아먹을 수 있지만 나무늘보나 펭귄 같은 녀석은 정말 아무런 쓸모가 없겠어요 하나는 계속 잠만 잘 거고 다른 녀석은 뒤뚱거리기만 할테니까요 이런 녀석들은 잡아먹어보았자 먹는 사람들이 더 이상해질 것 같아요
― 「나무늘보」 전문
위의 시는 정보를 시화시키는 능력이 돋보인다. 시적 대상에 대한 정보를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이리저리 공글리고, 자아와 대상과의 교감을 시작한다. 산문시라는 형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듬감이 살아 있으며, 읽어나가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저도 잠자기를 좋아하지만 나무늘보 같이 되고 싶진 않아요 몸에 이끼가 끼고 싶진 않아요”라는 자아와 대상과의 교감과 “나무늘보를 만난다면 작작 좀 자라고 할” 거라는 시적 자아의 적극적인 생각이 개입된다. 이런 생각들은 동시의 주체로서 아주 매력적인 화자이다. “아무런 쓸모없는 잠꾸러기 무인도에 표류되었을 때 새들은 잡아먹을 수 있지만 나무늘보나 펭귄 같은 녀석은 정말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구절은 어린아이다운 재미를 전해준다. 어른이 화자인 경우 계몽적인 욕망을 다스리기 쉽지 않다. 이재복의 화자는 솔직하고 과감한 화법으로 재미를 더해준다.
「시소 타기」에서도 시소를 타면서 느끼는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보여준다. 시소를 타는 기분을 가리켜 “무중력을 체험하는/우주비행사 훈련처럼”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심장은 위에 있는데/몸만 아래로 쑹 내려와 버렸어”와 같은 어린 아이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표현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시작 종과 함께 돼지 멱 따는 소리
그리고 계란 깨지는 소리
달려오는 멧돼지
자기를 절제하지 못해서
방향 감각을 잃고 벽에 부딪히네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파멸은 자기 스스로 자초한 거야
― 「겨루기」 전문
「겨루기」는 제목과 내용이 은유의 관계에 놓인 시이다. 재미있으면서도 화자의 생각과 삶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시이다. 즉 화자의 일상적 체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시에서는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겨루기를 묘사하고 있다. “시작 종과 함께 돼지 멱 따는 소리/그리고 계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겨루기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이다. 겨루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렬한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시는 점층적으로 내용을 고조시키고 있다. “달려오는 멧돼지”라는 장면을 떠올리면 겨루기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내 멧돼지는 자멸하고 만다. 이것을 “파멸은 자기 스스로 자초한 거”라고 얘기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들의 모든 싸움이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 사소하고 작은 깨달음을 잘 묘파해내고 있다.
서울 숲에 갔어
엄청 길고 경사가 심한 미끄럼틀이 기다리고 있었어
내 차례가 되자 기도를 했어
아주 천천히 내려갔어
그런데 어떤 뚱뚱보가 뒤에서 내려와 나를 쾅하고 쳤어
나는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렸어
나는 뚱뚱보에게 복수를 계획했어
뚱뚱보는 이제 끝이야
미끄럼을 탈 때 확 밀어버리는 거야
정말 복수할 거야
핫도거를 먹을때는 툭쳐서 핫도거를 엎어버릴 거야
또 야이 띠발 누구야 하면
메롱 메롱하고 도망갈 거야
녀석은 넘 뚱뚱해서 날 잡지 못해
하지만 실제 그렇게 할 수는 없어
그랬다간 뚱뚱보에게 맞아죽을 게 뻔하니까
이 시에서도 그렇게 할 수 없어
뚱뚱보들이 읽으면 성을 낼테니까
쓸수 없어 쓸 수 없는 것도 내가 살기 위해 하는 것
나는 뚱보가 아니라 뚱뚱보라 말한 거니까
이걸 읽고 아무도 화낼 필요 없어
이런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으면 영원히
황천행을 하기엔 나 아직 어리잖아
― 「서울숲 속 미끄럼틀」 전문
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거나 기록하는 범주를 넘어서 또다른 어떤 지점에 가 닿아야 한다. 현실을 더 사실적으로 상상하는 것 또한 시가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미덕이다. 위의 시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화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위의 시는 너무나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 어쩌면 다소 슬프고 힘들 수도 있는 얘기지만 시의 화자는 끝까지 대범하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시의 화자는 서울숲에서 아주 높은 미끄럼틀을 타고 있다. 그때 등장하는 뚱뚱보는 시의 화자에게 나타난 적대자이다. 이 적대자에게 가지는 화자의 감정은 “나는 뚱뚱보에게 복수를 계획했어/뚱뚱보는 이제 끝이야”는 다짐과 함께 “확 밀어버리”겠다는 구체적 행동에까지 이어진다. 그 이후에 펼쳐질 사건에 대응하는 화자의 태도에 대해서도 구체적 계획을 세워놓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화자는 잘 안다. “그랬다간 뚱뚱보에게 맞아죽을 게 뻔하”다고 솔직한 대답을 늘어놓는다. 또한 뒤에서 화자를 친 그 친구뿐 아니라 다른 많은 뚱뚱보들의 마음도 읽게 된다.
이재복에게 모든 시적 정황은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 구체적 사건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재복에게 시는 고해성사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재복은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시적 주체를 가지고 있다. “내게는 당근이 맛있지만/다른 아이들은 우웩”이라고 느끼는 시인은 솔직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시라는 기호를 통해 전달하고픈 것이다. “겉 속/이 모든 것이 하나의 뿌리”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화성은 특별할 것 같아
공기는 빨갛고 모래바람밖에 없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지구는 더 이상 비밀스럽지 않아 보여
엄마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지만
상상하지도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용감해져야 해
화성은 점점 나를 용감하게 만들어
아직 발길이 닿지도 않았지만
내 꿈의 길은 벌써 그곳에 닿아 있어
생각은 어디든 닿을 수 있고
그것이 나의 진짜 크기야
지구에만 머무를 수 없는
― 「화성」 부분
이 외에도 이재복은 시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위의 시는 이재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시이다. 자신의 시적 지향점과 정체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하게 보인다. 화성이 특별한 곳이라는 점은 시인이 잘 알고 있다. 이 특별한 공간과 접선하고 싶은 시의 화자에게 엄마는 “절대 가지 말라고” 얘기한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마 그렇게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시의 화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상상하지도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용감해져야 해”라고 말한다. 그러한 다짐의 말들이 화자를 더욱 용감하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결국 시의 화자는 “생각은 어디든 닿을 수 있고/그것이 나의 진짜 크기야”라고 얘기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지구에만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이재복은 스스로 다짐하며 생각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이재복에게 시는 그의 삶에 변변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재복이 꿈꾸는 자아인 것만은 확실하다. “좋으면서 좋지 않은 꿈/해가 아니면서 달이 아닌 꿈/내가 아닌 내가 꾸는 꿈/감추고 싶은 꿈”(「꿈」)을 매일 꾸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지구에만 머무를 수 없는” 이재복의 진짜 크기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후의 도구인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선 행복하고 재밌게 써야 한다. 아플 때도 쓰고, 슬플 때도 써야 한다. 너무 힘들면 잠시 쉬었다 쓰면 된다. 이 모든 말들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 재복군에게 앞으로 문학이 어떤 존재로 남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시의 천재성은 오래 오래 쓰는 것뿐이라는 점을 그가 증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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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명왕성 되다(민음사),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한국학술정보), 딜레마의 시학(국학자료원), 부재의 수사학(작가와비평),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팬덤북스)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현대시 부주간, 시와세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