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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5.금. 목회자들과 성도들과의 동역 同役 (18P)
시133:(1)형제(兄弟)가 연합(聯合)하여 동거(同居)함이 어찌 그리 선(善)하고 아름다운고?
(2)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鬚髥) 곧 아론의 수염(鬚髥)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山)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福)을 명(命)하셨니, 곧 영생(永生)이로다.
1.고립(孤立) 되면 죽는다.
2.자기를 공개하여, 지혜를 배우라.
3.기꺼이 검증 받고, 자기를 부인하라.
4.자기의 자질(資質)과 은사(恩賜)를 발견하라.
5.인격이 문제이다.
6.오직 내 가진 것으로 섬기려 하라.
7.사람을 깊이 섬겨, 선 후배 목사들과 성령의 사람들을 얻으라.
8.성령의 동역자(同役者)들을 얻으라.
9.네 사역의 장으로 달려 가라.
10.하늘에서 받을 상급
♥ 2011년 7월 18일 세계선교사역자협회가 창립된지 벌써 1년 반이 지나 간다. 이 아름다운 “선교”와 “성령”의 동역자 모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나름대로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좋은 강사들, 아름다운 멤버들과 함께 성숙하고 성장해 왔다.
인도(引導)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참 감사하고, 대표회장 손태흥 목사님과 실무회장 홍계현 목사님께 감사하고, 세계선교사역자협회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사랑하는 동생 황성연 목사님이 사무총장으로 섬기니, 사랑스럽고 든든하고 기쁘다.
그 동안 부흥사의 길에 들어 서서 3년 간을 지내 오면서 아직은 시행착오(試行錯誤)가 많고, 배우는 경험들이 많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지난 3년 동안 150여개의 교회에서 800여 회의 부흥성회 인도를 통해 한국교회를 거시적(巨視的)으로, 또 세밀하게 볼 수 있는 지평(地坪)을 열어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
사람은 평생을 끝 없이 배워야 하니,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몇 가지 우리 세계선교사역자 멤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 1.고립(孤立) 되면 죽는다.
(시133:1)형제(兄弟)가 연합(聯合)하여 동거(同居)함이 어찌 그리 선(善)하고 아름다운고?
(잠 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목사나 성도나 고립(孤立)되면 죽는다. 특히 목회 현장이 열악하고, 교인이 없는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 목사님들, 성도들은 상황적으로 스스로 고립되기 쉽다.
사람은 고립되면 수동적이 되고, 방어적이 되고, 축소지향적인 사람이 되고, 나아 가 잘 나가는 목사나 교회(敎會)에 대하여 비판적이 되며, 비관적, 부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간다. 그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열등감(劣等感)이다. 스스로 “못났다, 가난하다, 교인이 없다, 열악하다, 나는 하층민이다, 소외된 자다, 열등한 자다, 나는 희망이 없다...” 등등의 감정에 빠져 점점 독단적이 되어 가며, 다른 사람들과 사물과 환경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그러므로 못난 자가 되어, 스스로 고립되면 아니된다. 일부러 애써 동역자(同役者)를 찾아, 나를 인도해 줄 사람을 찾아, 나의 잘못된 마음과 사역(使役)의 자세와 한계에 묶여 있는 목회와 부족한 능력과 치우친 편파적인 문제점 들을 찾아 고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넓고 어울릴 수 있는 세계로 애써서 나아 와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기도하고 밖으로, 밖으로 나와야 한다. 기도하며 사람을 찾아 나서면 하나님이 나를 인도할 동역자(同役者) 들을 붙여 주신다.
나의 상황과 여건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더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그 영감(靈感)을 따라 밖으로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물론 사람을 만나 보면 10명에 쓸 만한 사람 하나 찾기 힘들다. 이 말은 사람들이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그 만큼 왜곡(歪曲)되어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 동안 내가 속한 장로교 통합 측 서울북노회와 부흥성회를 인도한 교회들과 목사님들, 장로님들, 여러 부흥사협회, 우리 세계선교사역자협회 등에서 사람 관계의 지평을 꾸준히 넓혀 왔다.
현재 카톡, 페이스북, 밴드,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등의 매체 들을 통하여 거의 매일 10만명 이상, 수 많은 목사님들, 장로님들, 일반 성도들과 지인들과 지속적으로 영적 교통(交通)을 나누고 있다. 일주일에 평균 3-5회 정도 글들을 내보내는데, 지난 20여년 간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이유는 꾸준히 나를 공개(公開)하고, 알리고, 그 분들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이다.
처음에는 자신을 공개하는 것이 정말 부끄럽고, 쪽 팔리기도 하고, 무식함이 드러 나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내가 이 무슨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쓸 데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나?” 하는 회의심(懷疑心)이 들기도 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정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참 놀라운 일이 있다. 자꾸 하면 아무렇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나를 알리고 공개해야, 마침내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의 반응이 오는 법이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 난다. 고립되면 죽는다.
나는 처음에 군소 교단과 그 자격이 검증되지 않은 목사들을 무섭게 비판했다. 이들이 한국교회를 어지럽힌다고 생각했다. 지금 한국교회 내에는 1개월, 2개월, 6개월짜리 엉터리 신학 과정을 거쳐 목사가 된 가짜 목사들이 수도 없이 많다. 아마 전체 목사의 절반이 될 것이다.
150만원짜리 할부 목사가 있다. 집사인 그에게 어느 이상한 교단의 목사가 전화를 해 와서 150만원만 내면 목사 안수를 준다고 하여, 돈이 없음으로 우선 10만원 내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돈이 없어, 나머지 돈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10만원짜리 목사가 되었다. 그는 과연 목사일까, 아닐까?
엉터리 교단들의 엉터리 목사들을 맹렬하게 비판한 글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각자의 메일로 보냈더니, 한 목사님의 답장이 왔다. 그 서두를 지금도 기억한다.
“정말 당신의 교만함과 오만방자함은 하늘 끝을 찌르는군요...” 이렇게 시작하는...
며칠 동안 기도하고서 내 개인 감정을 버리고, 메일 편지로 정중하게 사과(赦過)하고, 간곡한 말로 그 글을 쓴 이유를 죽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 군소 교단의 목사님은 나를 이해를 하고, 지금 수년 째 서로 얼굴을 모르지만, 메일 지면(紙面)을 통한 친구가 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이상한 군소 교단이나 내가 소위 말하는 자격 없는 목사들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이유는 그 목사들이 나름대로 자격을 논할 때 우리가 정한 법적 기준에 비하면 미달(未達)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자격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법적인 목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실제적인 목사이다.
나는 우리 세계선교사역자협회의 모든 목사님들이 이 선교세미나에 빠짐없이 와서, 여기 강단에 차례로 서기 바란다. 이유는 잘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검증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검증 받으면서 성숙하고 자라 가는 것이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은 없다. 나 혼자 잘 나 보아야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다. 아무도 날 쓰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불평 불만해 보아야 어느 사람도, 하나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신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건 첫째는 성실함을 보여야 한다. 성실함이란 하루 아침에 주어지는 평판이 절대 아니다. 꾸준히 잘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흥성회 인도나 설교를 한 두 번 하면 벌벌 떨고, 죽을 쑬 수 있다. 청중을 쳐다 보지를 못한다. 원고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모른다. 그러나 수 십번 넘어 가면 점점 잘 하게 된다.
문제는 스스로 자기 내면을 점검하고 발전을 꾀하지 않으면 도태(陶胎)되고, 구태의연(舊態依然)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기 실생활에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이것 저것 하지 말고, 자기 삶과 비전에 꼭 필요한 그 공부만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성령(聖靈)”, “기도(祈禱)”, “부흥설교(復興說敎)”에만 오로지 매진한다. 이제 나는 나의 일이 아닌 일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나이가 너무 들었기 때문이다. 오직 이 3가지 방면에서 나는 남에게 결코 뒤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성령(聖靈)”에 있어서 독보적인 자리에 서기 원한다. “기도(祈禱)”에 있어서 정말 깊은 자리로 나아 가기를 원한다. 끊임없이 “부흥설교(復興說敎)”를 만든다.
지금 부흥설교 시리즈 15개 정도를 만들어 두었는데, 제 3시리즈까지 밖에는 부흥성회에서 설교해 본 적이 없다. 한 교회에 3번 이상 부흥회를 가 본 교회가 없기 때문이다.
좀 교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떤 탁월한 부흥사나 설교자를 만나도 나는 속으로 “나는 너보다 더 잘 할 수 있어!” 이런 자신감을 스스로 키운다.
침례교의 부흥사 장경동 목사의 설교를 수 없이 들었었다. 나 스스로 “나도 당신 만큼 할 수 있다.” 라고 자신(自信)했다. 실제로 평가해 보면 찬양도 내가 더 잘 하고, 성령의 은사와 권능도 내가 훨씬 더 크다. 스피칭은 물론 그가 더 잘하지!
사실로 내가 더 클 리가 없지! 그러나 내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감(自信感)이다.
장경동 목사의 설교는 아주 복음적이야!
목사에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에 있어?
조용기 목사가 한 말, “호랑이를 그린다고 그려야, 고양이라도 그린다.”
나 스스로 호랑이라고 생각해야, 고양이라도 되는 법이다. 사람이 내 밥 내가 먹고 살면서, 괜히 남에게 꿀릴 것 없다. 세상에 특별히 잘 난 사람이란 없다. 다 소로(笑路)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다. 물론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진 교만은 절대 안되지!
고신파의 부흥사 김0훈 목사 설교를 수 없이 들었었다.
내가 본 장경동 목사는 설교에 복음(福音)이 있는데, 김0훈 목사는 복음이 없었다. 그저 웃길 뿐이었다. 언변(言辯)이 유려(流麗)할 뿐이었다.
침례교 목사들의 설교는 항상 복음이 그 속에 있다. 정말 배울 점이다.
그런데 우리 장로교 통합 측 목사들이나 다른 교단들은 가만히 보면, 복음이 없는 설교가 정말 많다. 가장 비복음적인 설교가 그들에게서 나오는 주제 설교 들이다.
나는 김0훈 목사 설교를 들으면서, 확실히 내가 그보다는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언변(言辯)도, 찬양도, 성령의 권능과 은사도...
물론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면 다르겠지! 그가 훨씬 탁월하겠지. 그는 지금 깃발 날리며 쓰임 받고 있으니까!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觀點)이 있다. 나는 지금 단지 하나님께 부름 받은 나의 자신감(自信感)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감과 교만함은 스스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단지 나는 이제 시작한 부흥사이며, 아직 세상에 뜨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2류고, 그들은 일류일 뿐이다. 좀 있으면 그들은 물러 가고, 내가 일류(一流)가 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기준은 밖으로 다 드러 나지 않음으로, 절대 내가 저 일류 부흥사들 보다 잘났을 리가 없다. 그러나 내 속에 그런 자신감(自信感)이 있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 스스로의 自家撞着(자가당착)이 아니라, 하나님이 실제로 나를 들어 쓰셔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어떤 목사가 자기 속에는 온 세계가 다 들어 와 있는데, 자기는 대단한 종인데 아직도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때가 아직 멀었거나, 덜 성숙했거나, 스스로의 독단과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는 것이다.
검증 받고, 더 빚어져야 한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하나님이 쓰셔야 장땡이다.
나는 부흥사의 길에 들어 선 이후 단 3년 만에 우리 통합 교단의 TOP 부흥사 반열에 올라 섰으니, 자가당착은 분명 아니지!
그런데 너무 이런 티를 내면 또 사람들은 나를 잘 모르니, 교만하다고 오해할 수 밖에 없다. 절대 스스로 독단(獨斷)에 빠지거나 교만(驕慢)해짐을 경계할 일이다. 그러면 끝장 난다.
물론 이런 말이 비판을 몰고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끼리니까 한번 말해 본 것 뿐이다.
우리 홍계현 목사님, 황성연 목사님, 김재현 목사님 같은 분들은 이미 어디 내 놓아도, 어느 강단에 세워도 손색이 없다.
꾸준히 자기를 열고, 받아 들이며, 성숙해져 가고, 교만과 독단과 자가당착에만 빠지지 아니하면 얼마든지 커 갈 수 있는 한국교회의 재목(材木)들이다. “성령”에 있어서 만큼은 내일의 한국교회의 선두주자(先頭走者)들이다. 할렐루야!
이런 저런 사람(목사) 들을 가까이서 지켜 보면서, 저절로 터득(攄得)하게 되는 영적 비결 들이 있다.
미숙(未熟)함을 고집하며, 자기 껍질을 깨고 도무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무조건 남을 부정적으로 보며, 공격하려는 사람이 있다.
인격이 너무나 실망스러운 사람이 있다.
얻어 먹으려는 사람이 있다.
힘 있는 쪽에 빌붙으려는 사람이 있다.
달란트와 능력과 실력이 너무 미숙하여, 쓸모가 별로 없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알퍅하게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
파당을 짓고, 편을 가르는 사람이 있다.
언제나 남 앞에만 나서려는 사람이 있다.
목회(牧會)는 안 하고, 노회(老會)니, 무슨 모임이니, 정치니 이런 일에 열심(熱心)인 사람이 있다.
자기 주관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언제나 친절하고, 가능한 한 다 끌어 안고, 그리고 항상 나누고 섬기려는 마음, 손해 보려는 마음으로, 무엇보다 기도하고 사람 관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해 가야 한다.
나를 버리고 떠나 가는 사람에게도 마지막 말 하지 말고, 또 시간을 두고 기다려라. 다시 돌아 오는 수가 있다. “아! 저 사람 못 쓰겠구나. 저것 밖에 안되는 인간이구나.” 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말고, 가만히 놔 두라. 굳이 원수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는가?
“가는 사람 억지로 막지 말고, 오는 사람 억지로 끌어 안으려 들지 말라.”
모든 일은 자연스러운 게 좋다. 물 흐르듯, 바람 불듯 그렇게 성령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가라. 마음이 맞고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보이거든, 정말 귀한 것을 투자하여 사람을 얻으라. 그러나 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지 말라.
항상 나의 평소의 그 모습,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라. 억지로 무엇을 하려고 들지 말라.
나는 우리의 대표회장 손태흥 목사님을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고, 아낀다. 한 달에 한번 그를 만나는 것은 내 영혼의 산소(酸素)와 같다.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요, 성령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의 순박함, 때 묻지 않음, 순수함, 격식 없음, 끌어 안음, 주변 사람을 키워 줌, 양보함, 설교의 구수함, 허적 허적 걷는 아름다운 걸음걸이, 자연 속에 묻혀 사시는 건강미, 적을 만들지 않는 드넓은 마음, 조직과 체계 속에 갇히지 않는 자유함, 성령의 순수함, 선교 마인드, 목회의 깊은 통찰력, 날카롭지 않은 온유함, 여유로움, 넘치는 유머... 거기다가 성령 충만하고 복스러운 사모님... 정말 멋진 따님...
정말 너무나 은혜가 되고, 배울 게 많은 영적 대스승이다. 나와 동연배임에도 불구하고...
♥ 2.자기를 공개하여, 지혜를 배우라.
(잠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3:21)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10: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잠 10: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잠 10: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잠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0:23)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잠 10:31)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잠 1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1:12) 지혜 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잠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 12:18)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잠 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3: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잠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 14:1)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잠 14: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잠 14: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잠 14: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잠 14: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잠 14: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잠 15: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잠 15:7)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잠 15:12)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잠 15: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잠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16:16)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잠 18:4)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잠 18:1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잠 19:8)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잠 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잠 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잠 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잠 23: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잠 23:23)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잠 26: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잠 26:16)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잠 28: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잠 28: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명철한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
(잠 29:3)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잠 29: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잠 29:11)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 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전 2: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 7:12)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그래서 자기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남과 어울려 보아야 나를 알고, 나를 검증(檢證) 받는다. 사람을 오랜 시간을 두고 진득하게 사귀어 보아야 한다. 절대 단기간에 스스로 나와 맞지 않다고 사람을 내치지 말라.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장점이 있고, 배울 점이 있다.
물론 내 기호(嗜好)에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니다” 라고 버릴 사람도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런 사람을 싫어한다.
위 아래를 모르는 사람, 정치에 정신이 팔린 목사 장로들, 힘 있는 자에게 들러 붙은 아류(亞流)들, 순수함이 없는 자들, 악한 자들, 못된 자들, 상식을 벗어난 짓을 하는 이들, 교만하여 자기를 주장하고, 거만(倨慢)하고, 웃지 않고 뻣뻣하고 근엄(謹嚴)한 자들, 법(法) 법(法) 하는 자들, 특히 목사를 죽이거나 궁지로 모는 이들, 공금을 자기 돈처럼 마구 쓰려는 자들, 자기 목회는 별 볼 일 없으면서 노회(老會)에 나와서 설치는 자들, 노회장 하려고 눈이 벌건 자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충만한 듯이 행세하는 가짜 성령파들, 교만과 독단(獨斷)에 빠져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들,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자들, 이중적인 위선적인 자들...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다. 모든 사람 관계는 그냥 그냥 지나 가는 것이다.
참 이상한 것은 처음에는 아닌 사람도 1년, 3년, 5년 가면 좋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정말 오래 오래 두고 지켜 보고, 사귀어 볼 일이다.
내가 속한 노회에는 항상 말할 때 큰 소리로 말하고, 거침없이 말하는 목사가 있다. 마당발이라 노회 일 구석 구석 모르는 일이 없고, 모든 사람을 다 선동(煽動)하고 규합(糾合)한다. 그는 행동파 목사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좋아한다. 이유는 그 마음이 순수하고, 노회를 위해 헌신적이고, 무슨 일이든 그의 손을 거치면 척척 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노회(老會)에는 그런 목사가 꼭 필요하다. 노회장 할 목사들은 그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나는 그냥 그를 지켜 보고 있다. 그저 치우치지 않기 만을 바라면서...
나는 말 없이, 온순한, 자기 목회를 잘 하고, 교회를 묵묵히 잘 섬기는 목사, 장로님들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목사, 장로는 자기 목회는 별 볼 일 없으면서, 사회적 신분과 자격은 별 볼 일 없으면서 노회(老會)에 나와 설치고, 자기 교회는 내팽개쳐 놓고 처돌아 다니며 노회(老會)에 살고, 자기 목사는 잘 섬기지 못하면서 노회(老會)에서 정치하는 장로들이 정말 싫다.
그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아마 지옥(地獄) 갈 것이다. 이런 자들도 그냥 두고 묵묵히 지켜 보는 것이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가?
나도 그 분 앞에 지금도 평가 받고 있지 아니한가?
내가 그들보다 더 못나고 악했으면 악했지, 선할 리는 없다. 나도, 그들도 다 같은 죄인들이다. 누가 누구를 탓하리!
그냥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정말 진국인 사람들을 만난다.
엎드려 절하고 싶은 목사님, 장로님들이 간혹 있다. 나는 마음으로 그냥 엎드린다. 그들이야말로 눈물 나도록 감동(感動)을 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우리 손태흥 목사님이 그런 분 중의 하나이다. 내가 속한 노회(老會)에서도 그런 장로님을 한 분 만났다. 너무 너무 존경스러워 말도 잘 붙이지 못할 정도로 높아 보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를 언제나 형님으로 부르고 있다.
사람은 가린다고 가려지지 않고,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밖으로 나와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과 부대끼라.
그리고 남을 지켜 보고, 나 스스로를 검증 받으라. 그러면 새로운 길도 열리고, 정말 훌륭한 사람도 만나고, 의외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도 있고, 가장 중요한 것, 나를 검증 받을 수 있다.
나는 내가 섬기는 교회가 크지는 않지만, 나의 세계에서는 상당히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 온 자신을 본다.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작은 목사, 어린 목사, 가난한 목사, 못난 목사로 보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이 사람의 고개를 드시고, 꺽으시기도 하시는 것이다. 우리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 한 분 뿐이시다.
♥ 3.기꺼이 검증 받고, 자기를 부인하라.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1>.자기를 부인하고, 2>.자기 십자가를 지고, 3>.나를 좇을 것이니라.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1>.자기를 부인하고, 2>.자기 십자가를 지고, 3>.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1>.자기를 부인하고, 2>.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3>.나를 좇을 것이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났는지 못났는지, 치우친 사람인지, 닫힌 사람인지, 무식한 사람인지는 남 앞에 나를 세워 보아야 안다.
우리는 언제나 명심할 것이 있는데, “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사실이다. 나는 열등감(劣等感), 한계(限界), 무지(無知), 경험치 못함...의 세계에 늘 갇혀 있는 사람이다. 혼자 있으면 스스로 잘 났지만, 남 앞에 내세우면 다 드러 난다. 문제는 남 앞에 나를 내세우고 공개할 열린 마음만 있으면, 나를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나이 든다고 철 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 두번 지적 받아 고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자기의 단점과 허물을 스스로 안다고 고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사람은 성령의 감화(感化), 감동(感動), 은혜(恩惠), 깊은 성령의 만지심이 있어야 비로소 변한다. 내 못난 성격(性格), 내 무지(無知)와 무능함, 나의 실력 없음, 나의 이 미숙한 특성(特性)을 누가 고치며, 누가 바로 잡는단 말인가?
남 앞에 드러 내고, 나를 기꺼이 지적 받아 고치려는 사람 만이 큰 사람이 되고, 진실로 자기를 고쳐 갈 수 있다.
세계선교사역자협회에서 나를 검증 받고, 은혜 받고, 고치면 바로 세계 선교의 지평(地坪)이 열리지 아니하는가? 이 모임이 얼마나 소중한가?
♥ 4.자기의 자질(資質)과 은사(恩賜)를 발견하라.
(고전12:4)은사(恩賜)는 여러 가지나 성령(聖靈)은 같고, (5)직임(職任)은 여러 가지나 주(主)는 같으며, (6)또 역사(役事)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각(各) 사람에게 성령(聖靈)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有益)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마다 자질과 은사가 다른데, 특히 성령의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 되고,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쓰지 않는다.
사람마다 은사(恩賜)도 각자 다르다. 스스로 공개(公開)하고, 동역자들과 늘 어울려야 나의 한계를 바로 잡는다. 서로 어울리면 성령사역의 방법도 쉽게 배울 수 있다.
나는 어떤 자리에서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신유(神癒) 사역은 자신이 있다. 방언(方言) 사역도 자신이 있다. 영분별(靈分別)과 예언(豫言) 사역은 늘 자신이 있다.
설교(說敎)도 자신이 있다. 방대한 자료가 늘 준비되어 있음으로, 어떤 상황에 맞는 서론만 간단히 묵상하여 받으면, 바로 설교할 수 있다.
이러한 소중하고 존귀한 은사들은 성령 하나님이 오직 내게만 주신 것이고, 지난 10년 세월에 수 없는 임상경험으로 이 은사들을 지속적으로 훈련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는 없다. 끊임 없이 훈련하고, 배우는 것이다.
형님이신 실무회장 홍계현 목사님의 저를 향한 평가는 정말 재미 있다.
“배목사님은 자나 깨나 사람들 머리에 손 얹고, 음... ‘주여! 보여 주시옵소서.’ 하고 살아야 한다.”고...
얼마나 지당한 말씀인지고...
세계선교사역자협회에서 내 마음만 열고 동역하면 성령의 지평(地坪)은 그냥 열린다.
각자의 다른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반목(反目)하면 깨어지지만, 다들 열린 마음으로 하나 되면, 우리는 멋진 하모니(harmony)를 이루어 세계 선교를 능히 감당하고, 우리의 저변(低邊)은 온 세계로 끝없이 확대될 수 있다.
드러 내어 검증 받고, 고침 받아, 나의 은사와 자질들을 끝없이 키워 가자.
♥ 5.인격이 문제이다.
(마13:4)뿌릴 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後)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氣運)을 막았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或) 백배, 혹(或) 육십(六十)배, 혹(或) 삼십배의 결실(結實)을 하였느니라.
정말 수용하기 힘든 인격이 있고, 지탄(指彈) 받는 인격이 있다. 사람마다 기호(嗜好)가 다르니, 내가 싫어하는 형의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어찌하리! 할 수 없다. 그냥 같이 사는 수 밖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목사는 어차피 많은 사람을 끌어 안아야 하는데, 우리는 다 그렇지 못한 면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인격(人格)에 문제가 있는 목사에게는 많은 사람들을 붙이지 않으며, 사역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충분한 자격과 인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련과 연단 속에서 하나님의 빚으시는 과정에 있는 분들도 당연히 있다.
사람과 자꾸 부딪치는 사람은 그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내게 붙지 않으면 나는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내 목회가 안되면 내 인격과 사람 관계와 목회 달란트와 처신과 가정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기본 인격의 틀이 있다. 성령의 열매도 바로 그런 것이다. 이건 각자가 은혜 받고, 성령께 만짐 받은 대로 가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어울리려면 만 사람을 다 이해하고, 끌어 안는 자세가 능사이다. 나를 고집하고 주장하면 아니된다. 우리 대표회장 손태흥 목사님의 인격이 만 가지 말을 다 해 줄 것이다.
갖가지 문제 있는 우리들이지만, 다 함께 가자. 서로 서로 사랑하고, 포용(包容)하고, 양보하고, 독단하지 말고, 내가 다 하려 하지 말고, 낮아지고, 섬기고, 손해 보고, 희생하고, 좀 수고하고, 나를 좀 부인하고, 남이 기피하는 십자도 지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성령의 동역(同役)의 역사를 이루자.
♥ 6.오직 내 가진 것으로 섬기려 하라.
(신 15: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잠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 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행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롬 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람마다 가진 것이 각각 다르다. 내게 없는 것으로 나누려 하지 말고, 내게 있는 그것을 나누면 된다.
나는 김명호 목사님의 40일 금식기도를 9번이나 한 그 영성을 정말 계속 안수(按手) 받음으로 전이(轉移) 받고 싶다. 나는 금식(禁食)을 하는 사람이므로, 금식의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아아! 이 세상에 금식보다 위대한 일이 어디 있으리요?
내게는 수천 기가 분량의 목회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다. 10년 동안 기도의 골방을 헤맬 때 매일 매일 모은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매일 5-10편 이상의 설교들을 읽고 정리하며, 신앙과 목회에 관한 글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모두와 나누려 한다. 일년에 수백 편의 설교들을 약 1,800여 분들에게 메일 속으로 탁탁 넣어 준다. 이유는 오직 나누는 기쁨 하나 때문이다.
나는 늘 “사진”을 찍는다. 좋은 사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금 “세계여행” 사진 들을 열심히 전송(傳送)하는 중이다. 목사님들 중에는 “이 배목사는 진짜 웃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사실이다. “세계 여행” 들을 다녀 와도, 사람들이 찍은 사진은 한 마디로 아무 짝에도 쓸 모 없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나의 사진은 좋은 자료가 된다. 내 가진 세계여행 사진들은 정말 압권이다. 나는 “사람” 찍지 않고, 오직 “풍경” 만을 찍는다. 전문가 수준으로...
나는 굶어 죽지 않는 한, 나의 돈도 남과 나누려 한다. 정말 나는 내가 배가 고프면서 남과 나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받은 나의 사명(使命)이요 은사요 십자가요 고통이다. 사모 생활비는 주지 않고, 남과 나눈다. 나의 사모는 늘 그게 불만(不滿)이다.
나는 인색(吝嗇)한 목사들을 정말 많이 본다. 나보다 훨씬 돈이 많은 목사들이 생전 밥 한 끼 사지 않는 것을 본다. 대접(待接)할 줄 모르는 것을 본다. 누가 돈이 남아 돌아 남을 돕겠는가?
나의 돈 씀씀이 기준(基準)은 다음과 같다.
♥ ‘殉命의 사람’ 배종부 목사의 경제 우선 원칙:
주님이 돈을 주시면 이런 원칙 하에서 쓰겠습니다.
1.최우선적으로 개척교회 선교비로 쓰겠습니다.
2.두번째로 선교사님의 선교비로 쓰겠습니다.
3.세번째로 하나님의 희망이 있는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쓰겠습니다.
4.네번째로 <성령의군대>를 위하여 쓰겠습니다.
5.다섯번째로 <새성교회>를 위하여 쓰겠습니다.
6.여섯번째로 어려운 사람의 구제비로 쓰겠습니다.
7.일곱째로 사모와 자녀를 위하여 쓰겠습니다.
8.여덟째로 저를 위하여는 가능한 한 쓰지 않겠습니다.
2012년도에 9,000만원 정도 벌어서, 3,000만원 정도 나눈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정말 잘 한 일이다.
나누라. 자꾸 나누라. 움켜 쥐지 말라. 나눈 만큼 천국의 상급이 커져 갈 것이다.
♥ 7.사람을 깊이 섬겨, 선 후배 목사들과 성령의 사람들을 얻으라.
(잠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잠 22:24)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잠 23:20)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잠 24:21)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잠 28: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잠 29:3)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고전 5: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고전 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목사(牧師)는 어느 누구보다 목사를 얻어야 한다. 깊이, 오래 사귀지 않으면 목사다운 목사는 얻지 못한다. 사람이 그냥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계속 다가 가면 어느 날 그도 내게 다가 온다.
오랜 세월 목사들과 교제하면서 그 동안 겪은 사실은 목사들의 폐쇄성(閉鎖性)이 너무 강하고, 자기 방어벽이 너무 높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기 주장과 견해, 고집이 너무 세다. 도무지 고치려 들지 않는다. 수용(受容)하려 들지 않는다. 무조건 경계하고, 무조건 판단하고, 무조건 비판한다.
목사들이 순수하지 못하다. 정말 인간미가 없는 사람들이 목사들이다. 목사들이 왜 그리 닳아 버렸을까? 못된 장로, 교인들이 목사를 그렇게 버려 놓았을까?
목사를 먹사(먹기만 좋아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수용하지 않는 사람...)라고 하지 않는가?
장로(長老) 들을 욕할 것 없다. 목사가 문제이다.
그래도 목사는 목사 밖에 없다. 목사를 사귀어야 한다. 노회에서, 또는 여러 삶의 정황에서 이렇게 저렇게 만나는 목사들을 깊이 사귀어라.
1년, 2년, 3년, 5년, 10년... 꾸준히 사귀어라. 스스로 웅크리지 말라. 나 혼자 스스로 저 변두리로 소외(疏外) 되어 가지 말라.
넓은 교제(交際)의 길로 계속 가라. 실망을 주는 목사들도 판단하지 말고, 섣불리 마음 닫지 말고, 계속 마음의 문을 열고 가라. 수용(受容)하고 또 수용하라.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목사를 만난다. 그가 나를 도울 것이다.
나는 생전 모르는 교회들에 거의 매주 부흥성회 초청을 계속 받는다.
2010년에 15개 교회 정도, 2011년에 무려 80개 교회, 2012년에는 가지치기를 하여 50여 교회에 부흥성회 인도를 다녀 왔다.
부흥성회 하고 돌아 오면 담임목사님과 만난 목사님들께 메일로 연락한다. 그리고 그 분은 평생 나의 섬기는 분이 된다. 매 주일 메일이 2-3회 늘 들어 간다.
한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 난다. “어느 날부터인가 배종부 목사의 메일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냥 지우고, 버리고, 또 버렸다. 어느 날 문득 하나 열어 보니, 내용이 상당히 괜찮았다. 일년이 가고, 이 년이 갔다. 처음에는 그냥 오다가 그만 두려니 했는데, 3년이 가도 계속 메일이 왔다. 그래서 아! 이 사람 배목사는 진짜로 하는구나!”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열었단다.
이렇게 하여, “사람(목사) 하나” 얻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부흥성회 하나 연결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부흥성회 하나 연결되면 사례가 평균 200만-400만이다. 사람 얻으면 돈이 온다.
“사람 관리”란 없다. 사람은 관리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오직 섬기는 존재일 뿐이다. 섬기고 또 섬기면 언젠가는 내 사람이 된다.
매 주일 나에게 답장을 해 오는 수십 분의 목사님들은 나를 무언(無言)의 글로 격려해 준다. 나는 신나서 더욱 더 열심이다.
사람을 알팍하게 대하지 말라.
작은 것들을 미끼로 던지지 말라. 크게 던지라.
진짜로 대하고, 오랜 시간을 대하라.
사람에게 성질 부리지 말라.
내 견해(見解)를 주장하지 말라.
함부로 사람을 내치지 말라. 결국 나 자신만 고립될 뿐이다.
우리 교회에서 예배 시간마다 늘 “큰 믿음”을 설교했더니, 정말 큰 것을 던지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자라고 있다.
나는 훗날 무슨 하나님의 큰 일을 낼 것이다.
♥ 8.성령의 동역자(同役者)들을 얻으라.
(롬 16: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롬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롬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후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몬 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몬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결국 성령의 동역자(同役者) 외에는 참된 동역자는 없다. 인간적인 목회, 설교, 사역의 열매는 쭉정이이다.
나는 오직 성령으로 살고, 성령의 열매 만을 찾는다. 정말이지 사람에게 투자해도 날아 가는 것이 많다. 댓가가 없음이 많다. 댓가를 바라다니... 댓가는 커녕 실망만 줄 때가 대부분이다.
“아! 그 정도의 인간이었던가? 그 정도 밖에 아니었던가?
치사한 놈, 못난 놈...”
나 혼자 혀를 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댓가 바라지 않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했을 뿐이다. 나의 주인이신 그 분이 다른 데서 나의 열매들을 거두게 하신다. 나는 그 분이 하라는 대로 물 위에 식물을 던질 뿐이다.
(전 11: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만일 나에게 진정한 성령의 동역자 수 십명만 있다면, 세계를 바꾸리라.
이미 내 주변에는 성령의 위대한 동역자 10여 분이 있다. 나는 그 분들에게 내 모든 인생을 걸고, 소중한 것들을 던지리라.
♥ 9.네 사역의 장으로 달려 가라.
(마 11:1)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1: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막 3:14)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눅 4: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골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딤후 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딛 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 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만 열어 주신 장(場)이 있다. “선교”와 “전도”의 대 비전(Vision) 하에 특수한 나의 사역들이 주어진다.
나는 한국교회를 위한 부흥 사역과 세계 선교의 비전으로 살아 간다. 이제 그 길이 활짝 열렸다. 하나님이 추인(追認)하신 결과이다.
내 꿈은 나의 <성령 컨퍼런스>가 한국교회를 지속적으로 움직여 나아 가는 것이다. 매주 100-200여 명씩, 매월 1,000여 명, 매년 10,000여 명이 <성령의군대>로 바뀌어 나가는 것이다.
존 웨슬레가 “세계는 나의 교구(敎區)이다.” 했는데, 나는 꿈은 온 세계가 <성령의군대> 깃발 아래 가열차게 전진하는 그 날을 보는 것이다.
그 정점에서 나는 순교할 것이다.
♥ 10.하늘에서 받을 상급
1>.‘殉命(순명)의 사람!’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다가 순교할 사람.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根本) 하나님의 본체(本體)시나 하나님과 동등(同等)됨을 취(取)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自己)를 비어 종의 형체(形體)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貌樣)으로 나타 나셨으매, 자기(自己)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服從)하셨으니 곧 십자가(十字架)에 죽으심이라.
2>.‘성령님의 侍從(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오직 모세를 섬기며, 40년을 한결같이 회막에서 수종 든 것처럼, 나는 오직 “성령님의시종”으로, 성령 하나님만 수종(隨從) 들며 살리라.
(출 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 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3>.이 땅에 내 소유, 내 흔적 하나 남기지 않으리라.
무소유, 끝없이 나눔, 그리고 순교...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 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주님! 나로 하여금 이렇게 살다가 가도록, 제 인생을 돌아 보옵소서.
1.고립(孤立)되면 죽는다.
2.자기를 공개하여, 지혜를 배우라.
3.기꺼이 검증 받고, 자기를 부인하라.
4.자기의 자질(資質)과 은사(恩賜)를 발견하라.
5.인격이 문제이다.
6.오직 내 가진 것으로 섬기려 하라.
7.사람을 깊이 섬겨, 선 후배 목사들과 성령의 사람들을 얻으라.
8.성령의 동역자(同役者)들을 얻으라.
9.네 사역의 장으로 달려 가라.
10.하늘에서 받을 상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