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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함경도 경성판관(鏡城判官) 부임길에 오르다.
九月初四發鏡城之行至餘溪所中火抵綠楊驛宿 初五至抱川長巨里中火抵梁文驛宿 初六至豐田驛中火抵金化邑宿 初七至金城邑中火抵昌道驛宿 初八至新安驛中火抵淮陽銀溪驛宿 初九逾鐵嶺至高山驛中火抵南山驛宿乃咸境道安邊地也 初十至元山柱馬抵德源府中火至文川宿 十一至高原中火抵永興府宿 十二至草院驛中火抵定平宿 十三人咸興凡七百八十里也 留一日登樂民樓肺西門鳴釰樓豐南門 十五發至德山驛宿 十六至咸原驛中火抵洪原邑宿 十七至平浦驛中火抵北靑宿乃南兵營也登洗箭樓 十八至居山驛宿 十九逾咸關嶺登侍中臺乃麗朝尹侍中灌六鎭開拓時登臨處也至利原中火抵谷中驛宿 二十日逾摩雲嶺至端川中火抵麻谷驛宿 二十一逾摩天嶺至津城宿 二十二至臨溟驛中火抵吉州宿 二十三至古站枺馬抵明川宿 二十四歷鬼門關抵朱村關宿卽鏡城地也 二十五日至永康中火抵境城觀赴任七百七十里也 中間応經歷處有吟咏故因記之以爲事實云爾耳
9월 4일 함경도 경성으로 가는 길을 출발하여 여계소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녹양역에 이르러 숙박을 했다. 5일 포천 장거리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양문역에서 숙박하였다. 6일 풍전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김화읍에서 숙박하였다. 7일 금성읍서 점심을 하고 창도역에서 숙박하였다. 8일 신안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회양 은계역에서 숙박하였다. 9일 철령을 넘어 고산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남산역에서 숙박하였다. 여기부터는 함경도 안변땅이다. 10일 원산 주마를 지나 덕원부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문천에서 숙박하였다. 11일 고원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영흥부에서 숙박하였다. 12일 초원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정평에서 숙박하였다.
13일 함흥은 무릇 780리다. 하루를 유숙하며 낙민루, 패서문, 명인루, 풍남문에 올랐다. 15일에 출발하여 덕산역에 도착하여 숙박하였다. 16일 함원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홍원읍에서 숙박하였다. 17일 평포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북청에서 숙박하였다. 여기는 남병영 소재지인데 세전루에 올랐다. 18일은 거산역에 도착하여 숙박하였다.
19일에는 함관령을 넘어 시중대에 올랐는데 고려조 시중 윤관이 6진 개척을 할 때 올랐던 곳이다. 이원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곡중역에서 숙박하였다. 20일은 마운령을 넘어 단천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마곡역에서 숙박하였다. 21일은 마천령을 넘어 진성(요즘의 성진)에서 숙박하였다. 22일에는 임명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길주에서 숙박하였다. 23일은 고참에서 말먹이를 먹이고 명천에서 숙박하였다.
24일에는 귀문관을 지나 주촌관에 도착하여 숙박하였다. 여기부터는 경성관할지역이다. 25일에는 영강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경성관에 도착하여 부임하였다 770리이다. 중간에 경유한 곳의 내력과 읊은 시가 있어 사실대로 기록해둔다.
< 함경도 경성(鏡城) 부임여정 : 22일 >
일자 | 점심(中火) | 숙박(宿) | 일자 | 점심(中火) | 숙박(宿) |
9. 4 | 여계소(餘溪所) | 녹양역(綠楊驛) | 9.15 |
| 덕산역(德山驛) |
9. 5 | 포천 장거리 (抱川 長巨里) | 양문역(梁文驛) | 9.16 | 함원역(咸原驛) | 홍원읍(洪原邑) |
9. 6 | 풍전역(豐田驛) | 김화읍(金化邑) | 9.17 | 평포역(平浦驛) | 북청(北靑) 남병영(南兵營) |
9. 7 | 금성읍(金城邑) | 창도역(昌道驛) | 9.18 | 남병영(南兵營) | 거산역(居山驛) |
9. 8 | 신안역(新安驛) | 회양 은계역 (淮陽 銀溪驛) | 9.19 | 함관령 경유 이원(利原) | 곡중역(谷中驛) |
9. 9 | 철령경유 고산역(高山驛) | 남산역(南山驛) | 9.20 | 마운령 경유 단천(端川) | 마곡역(麻谷驛) |
9.10 | 덕원부(德源府) | 문천(文川) | 9.21 | 마천령 경유 | 진성(津城) |
9.11 | 고원(高原) | 영흥부(永興府) | 9.22 | 임명역(臨溟驛) | 길주(吉州) |
9.12 | 초원역(草院驛) | 정평(定平) | 9.23 | 고참(古站) | 명천(明川) |
9.13 | 함흥(咸興) | 함흥(咸興) | 9.24 | 귀문관 경유 | 주촌관(朱村關) |
9.14 | 함흥(咸興) | 함흥(咸興) | 9.25 | 영강(永康) | 경성(鏡城) 북병영(北兵營) |
61. 진관(津寬)(주109)
삼출진관로(三出津寬路) 진관로는 세 군데로 나가는데
차행불우연(此行不偶然) 이 길을 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네
춘화추국절(春桃秋菊節) 봄에는 복숭아 꽃 가을은 국화절기로
시주상전연(詩酒徜前緣) 시 짓고 술 마시며 놀던 인연이 있네
주109) 1849년 3~4월에 경산 유산(遊山) 시, 삼각산(북한산) 비봉의 진흥왕순수비를 보러갈 때 지났던 길이다.
62. 녹양역(綠楊驛)(주110)
녹양력로초연천(綠楊驛路草連天)
시거함관령이천(是去咸關嶺二千)
호수서생양조개(皓首書生楊皂盖(주111))
휴언가국양망연(休言家國(주112)兩茫然)
녹양역 길은 풀이 하늘로 이어져
이 길이 함관령 가는 길 이천리라네
흰머리 내린 서생이 버드나무 구유를 덮으니
말이 없어지고 집안과 궁궐이 아스라이 멀어지네
주110) 녹양역 : 현재 의정부시 녹양동, 양주목과 포천으로 가는 길목
주111) 양조개(楊皂盖) : ‘버드나무로 만든 말 먹이통을 덮는다.’라는 말은 이제 출발한다는 뜻이다.
주112) 가국(家國) : 자기(自己)의 집안과 나라. 현재 의미의 국가는 국민, 주권, 영토의 요소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임금과 사직이 있는 왕조, 곧 한양 땅을 말한다. 앞으로 여러 시(詩)에 ‘가국 또는 국가‘를 남쪽에 두고 간다.’ 라는 시 구절이 자주 나온다.
63. 증별(贈別)
호서천리객(湖西千里客) 충청도에서 천리 달려온 나그네
구월녹양촌(九月綠楊村) 구월에는 녹양촌에 있네
사일수풍우(斜日愁風雨) 날은 저물고 시름은 비바람 몰아치는데
심소대주준(深宵對酒樽) 깊은 밤 술 단지 마주대하네
촉장환유사(促裝還有事) 갈 차비 재촉하면 돌아올 날도 있겠지
임별경무언(臨別更無言(주113)) 이별이 임박하니 다시 말이 없어지네
연대남비안(聯待南飛鴈) 잇달아 기다리는데 남쪽으로 기러기 날고
위군기묵흔(爲君寄墨痕) 임금을 위해서 묵흔을 남기네
주113) 가족 또는 친지가 양주 녹양역(현재 의정부) 까지 송별배웅을 나왔다.
64. 가도야노(街道野老) 길가의 촌노(주114)
추일황황백(秋日荒荒白) 가을날 거칠고 황량한데
서풍진고타(西風振苦朶) 서풍 불어 꽃떨기 괴롭게 흔드네
상청명도이(霜晴明稻隶) 서리 내린 맑은 날 햇볕은 볏논을 쬐고
수천열어양(水淺咽魚梁(주115)) 시내 얕아 좁은 길목 물고기 잡는 어량 놓았네
역기수인원(驛騎隨人遠) 역말 타고 수행원도 멀리 가는데
정홍여객망(征鴻與客汒) 원정 가는 기러기도 나그네와 함께 분주하네
모년행역자(暮年行役者) 만년에 길가는 관리에게
야노소당당(野老笑堂堂) 들판의 노인은 당당하게 미소짓네
주114) 시 내용을 인용해 시제(詩題)를 붙였다.
주115) 어량(魚梁) : 물살을 가로막고 물이 한 군데로만 흐르게 터놓은 다음 거기에 통발이나 살을 놓아서 고기를 잡는 장치(裝置)
65. 포천도중(抱川道中) 포천가는 길
역람호산승(歷覽湖山(주116)勝) 다니며 구경하였던 충청도 산경치가 아름다왔네
청연야숙기(淸緣夜宿棄) 맑고 깨끗한 인연 맺었었는데 밤잠이 달아났네
역정추복어(驛亭趨僕御) 역의 정자를 마부가 말을 몰아 달려가는데
관도심여양(官道尋輿梁(주117)) 관도에서 가마 지나가는 나무다리를 찾네
남국가하재(南國家何在) 나라와 집을 남쪽에 두고
북관로경망(北關路更忙) 북관 가는 길은 다시금 분주하지만
오종노태수(吾宗老太守) 우리 가문의 나이 든 태수도
호수기당당(晧首氣堂堂) 백발일지라도 힘내어 당당해지자
주116) 호산(湖山) : 지금까지 지내온 충청도 보은의 산을 말한다. 아마도 북관로(北關路) 주변의 산이 많이 푸르지 않은 듯하다. 이는 주변 산의 초목이 대부분 땔감으로 쓰기 때문에 민둥산이 많기 때문이다.
주117) 여량(輿梁) : 가마가 지날 수 있는 나무다리
66. 숙양문역(宿梁文驛)
소소역기북풍명(蕭蕭驛騎北風鳴)
협수협운제점생(峽樹峽雲第店生)
향추주항령토출(香秋酒缸領土秫)
이옥벽집송명민(新泥屋壁熱松明)
민하촌읍양난료(民夏过邑襄難了)
환업진성소불성(宦業秦城少不成(주118))
려수모등청접발(旅睡暮騰淸啑發)
한공철효침변성(寒蛩徹曉枕邊聲)
시끄럽게 역말이 북풍을 향해 울부짖고
산골짜기 나무 산골짜기 구름이 차례로 점포처럼 지나가네
가을 술항아리 향기를 채우는 차조가 자라는 땅
새로 지은 진흙집 벽을 소나무를 태우며 밝게 비추네
사람들은 여름에 읍을 지나는 길 오르기가 어렵다 하는데
진나라 관리들은 이루지 못한 것이 없었다네
여행에 졸며 석양 길 달리니 사심 없이 불평소리 쏟아내고
차가운 날씨 귀뚜라미는 새벽 밝히고 벌레소리 베갯머리에 가득하네
주118) 중국 역사를 통틀어 대표전인 국가를 ‘진(秦)’ 과 한(漢)‘을 지칭한다. 이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진(秦)나라가 통일왕조를 세웠기 때문이고, 한(漢)나라가 강력한 왕조로 통일 중국의 기초를 닦았기 때문이다.
67. 풍전역(豐田驛)
풍전우졸폭호성(豐田郵卒(주119)嚗呼聲)
안사총과별사행(按使總過別使行(주120))
관노차휴노면매(官怒且休奴免罵)
비룡사취상걸각(飛龍嗄取上桀名)
풍전역 역졸이 역정 내고 큰소리 지르네
관찰사 일행이 모두 통과하니 특별한 사행이라네
화난 관원이 한참 쉬더니 관노의 욕설을 용서하고
비룡은 목 메이고 훌륭한 이름 올렸네
주119) 우졸(郵卒) : 역참(驛站)에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 역졸(驛卒).
주120) 사행(使行) : 사신행차(使臣行次)를 말하는데, 이 길은 중국 사신이 지나는 길이 아니므로 조정의 특별임무를 수행하는 일행으로 보아야 한다.
68. 야과 김화역 전계(夜過金化驛前溪) 2수 한밤에 김화역 앞개울을 건너다
장정김화북(長亭金化北) 장정은 김화 북쪽에 있는데
배마야최행(倍馬夜催行) 말을 늘리고 밤길을 재촉하네
송객계영곡(送客溪縈谷) 나그네를 보내는 시내는 계곡을 굽이치고
수인우입성(隨人雨入城) 수행인은 비를 맞고 성에 들어왔네
추풍취역졸(秋風吹驛卒) 가을바람이 역졸에 불어 닥치고
한일조서생(寒日照書生) 차가운 햇빛은 서생을 비추네
점거위전도(店炬爲前導) 여관은 횃불 밝혀 길을 안내하고
고연원수명(孤烟遠樹明) 불 때는 연기불이 멀리 있는 나무를 밝히네
장정이마석양명(長程羸馬夕陽鳴)
경국서황송반생(京國捿遑送半生)
일로진사연북새(一路塵沙(주121)連北塞)
천년산수근동명(千年山水近東明(주122))
추풍발백습난화(秋風髮白拾難貨)
성세재소한미성(聖世才踈恨未成)
요망남호미극목(遙望南湖迷極目(주123))
청천고안양삼성(晴天孤鴈兩三聲(주124))
장정에 고달픈 말이 석양에 우네
한양에 허둥대며 살면서 반생을 보냈는데
세상사 오직 한 길로 북쪽변방에 이어졌으니
천년의 산수는 이제 동명에 가깝구나
추풍에 머리는 희고 재물 모으기는 어렵지만
성군의 시대에 재주가 모자라 꿈을 이루지 못해 한스럽네
멀리 남쪽 충청도를 생각하며 아쉬워 한없이 바라보고
갠 하늘에 외기러기는 양삼성을 부르네
주121) 진사(塵事) : 속세(俗世)의 어지러운 일 세상(世上)의 속(俗)된 일
주122) 동명(東明) : 북쪽 변방에 가는 오랜 일정에 이 곳 김화와 금성을 넘어가면 동해안에 가까운 안변, 문천, 원산방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근동명(近東明)’이란 바로 동해안 쪽이 가까운 곳이라는 뜻(또는 지명)으로 보인다.
주123) 극목(極目) : 시력(視力)을 먼 데까지 다함. 눈으로 볼 수 있는 한계(限界)까지 한없이 봄. 남호(南湖)란 단순한 남쪽의 호수로 지칭하는 것 같지 않고 최근에 재직한 충청도 보은지방 또는 선대의 관향인 공주 이인지방(금서 錦西)으로 생각된다.
주124) 양삼성(兩三聲) : 김화를 지나며 두 수의 시를 읊는다.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의 서시에 양삼성이란 구절이 있다. 무이산은 중국(中國) 복건성(福建省)과 강서성(江西省) 경계에 있는 1,300미터의 산이다. 배를 타고 절승을 유람한다.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가 무이산(武夷山)에서 노닐며 지은 한시(漢詩)가 무이구곡인데, 서시와 1곡(一曲)부터 9곡(九曲)의 시가 연작으로 이어져 있다.
< 무이구곡(武夷九曲) 서시(序詩) >
무이산중유선령(武夷山中有仙靈) 무이산에는 신선이 있으니
산하한류곡곡청(山下寒流曲曲淸) 산 아래 푸른 강물은 굽이굽이 맑구나
욕식개중기절처(欲識箇中奇絶處) 개중에 기이한 절승을 알고싶다면
도가한청양삼성(櫂歌閑聽兩三聲) 뱃노래 양삼성을 한가로이 들어보소
69. 금성 피금정(金城披衿亭)
방로고정열고금(傍路孤亭閱古今) 길 가에 외로운 정자가 옛 부터 서있는데
청풍부절매피금(淸風不絶每披衿) 맑은 바람 쉼 없이 매양 피금정에 부네
남천교수횡란거(南川橋水橫欄去) 남천교 물은 난간 아래 가로지르고
만관유인람물심(謾管遊人覽物心) 나그네 한가한 피리소리 물심을 살피고있네
< 겸재 정선의 피금정 >
70. 과금강산(過金剛山) 금강산을 지나며
북협추선도(北峽秋先到) 북쪽의 산골짜기엔 가을이 먼저 오는데
서풍적엽소(西風赤葉踈) 서풍에 붉은 단풍은 아직 듬성듬성 하네
산심문괴조(山深聞恠鳥) 깊은 산에는 괴이한 새소리 들려오고
수천견천어(水淺見洊魚) 물이 얕은 시내에 물고기 자주 보이네
마영비잔조(馬影飛殘照) 석양 남은 빛에 말 그림자 날아가고
용회온제여(容懷蘊𢔪(주125)餘) 산천의 모습을 종이 여백에 품었네
차주다준령(此州多峻嶺) 이 고을은 준령도 많아
전로문여하(前路問如何) 앞길이 어떠한가를 물어본다네
풍국사차만(楓菊時差晚) 단풍과 국화는 시차가 늦은데
금강기아선(金剛待我先) 금강산이 우리를 먼저 기다리네
나변응숙기(郍邊凝淑氣) 어찌나 주변에 자연의 맑은 기운이 맺혔는지
태상절진연(太上(주126)絶塵烟) 최고의 경치는 세속을 끊게 하네
승지명천고(勝地鳴千古) 경치의 아름다움이 천고에 명성을 울렸는데
부생소백년(浮生少百年) 뜬세상은 많아야 백년이라네
일유족위쾌(一遊足爲快) 한번 놀다가는 세상 유쾌하면 그만이지
하필원성산(何必願成仙) 어찌 신선이 되기를 원한단 말이오
주125) 저(𢔪) : 자전에 없는 글자인데, 「139. 필(筆) 붓」에서 동일 글자가 나오는데, ‘닥나무 저(楮) : 종이’의 뜻으로 사용해도 무방할 듯하다.
주126) 태상(太上) : ①가장 뛰어난 것. 극상(極上) ②천자(天子)
71. 증 병인 김명철(贈倂人金明哲) 동행(同行) 김명철에게 보냄
관북동위객(關北同爲客) 관북으로 같이 가는 나그네인데
귀기자막선(歸期子莫先) 돌아오는 기한은 아들이 먼저가 아니라네
야련김화침(夜聯金化枕) 밤을 연이어 김화에서 잤다는데
효기녹양인(曉起綠楊烟) 새벽에 일어나니 푸른 버드나무에 안개 서렸네
전로이천리(前路二千里) 앞길은 이천리
양안사십년(襄顔四十年) 낯이 익은 것은 사십년이네
명구다절승(名區多絶勝) 이름난 고장과 절승지가 많으니
계근시진선(戒謹是眞仙) 조심하고 삼가는 것이 바로 참된 신선이라오
72. 견판(見坂) 비탈길을 만나다
삭립천심판(削立千尋坂) 깍은 듯이 서있고 몹시 비탈진 벼랑길
창연견마전(敞(주127)然見馬前) 말 앞을 보니 매우 높다
양장비독험(羊腸非獨險) 구불구불 그냥 험한 것이 아니고
조도사공연(鳥道似共連) 새가 나는 길과 나란히 있는듯하네
강색음내흑(江色陰仍黑) 강물의 색은 그늘져 검은 색에 가깝고
암형노경현(岩形露更懸) 바위 모양은 이슬이 맺혀 매달려 있네
위도소복철(危途少覆轍(주128)) 위험한 길 적어도 수레가 뒤집힌 자리라서
조리이선견(操履已先堅) 조심해서 끄는 것이 미리 단단하게 하는 것이네
주127) 원문은 ‘상:창(敞)+하:패(貝)’인데 자전에 없다. 뜻으로는 창(敞)을 써도 무방할 듯하다.
주128) 복철(覆轍) : 수레가 뒤집힌 자리. 곧 다른 사람이나 자기(自己)가 전(前)에 실패(失敗)한 자취의 비유(比喩ㆍ譬喩)
73. 견판구마졸(見坂驅馬卒) 급경사 길에 몰던 말이 죽다
평교불견제(平郊不見際) 넓은 뜰은 끝도 보이지 않고
절학홀무전(絶壑忽無前) 골짜기는 끊어져 홀연 앞길이 없네
중석탱장추(衆石撑將墜) 지지해주던 많은 돌들이 문득 떨어져나가
서애축욕연(西厓縮欲連) 서쪽 낭떠러지는 연달아 좁아지네
호투계심몰(乕(주129)鬪溪深沒) 범이 싸우다 계곡 깊이 빠진 꼴인데
사반지저현(蛇盤地底懸) 구불구불 가늘어지던 반석이 땅바닥에 매달려
차차구마졸(嗟嗟驅馬卒) 아아! 몰던 말이 죽었네
공쇄철제견(恐碎鉄蹄堅) 무섭게도 단단하던 편자가 부서져버리다니!
주129) 호(乕) : 호(虎)의 속자(俗字). 범, 호랑이
74. 김화역(金化驛)(주130)
우졸폭호노(郵卒曝號怒) 우졸이 노하여 사납게 부르며 역정을 내자
촌인경주장(村人競走藏) 촌노가 곳집으로 손살 같이 달려 나가
삼오열송연(三五列松烟) 세줄 다섯줄로 소나무를 지피고
혼루노광하(昏淚老眶下(주130-1)) 노인의 눈자위로 눈물이 흐르네
주130) 일정상 김화역은 금성읍(金城邑)의 전 역참(驛站)으로 이미 지나 금강산 입구를 지났는데, 어제 일을 회상한 시이다.
◾ 김화역 → 금성읍 → 창도역(금강산 분기점 : 단발령·장안사·표훈사·정양사·) → 맥판강(麥阪江) : 철령·금강산 始原 북한강으로 내려간다.) → 신안역 → 회양 은계역
주130-1) 원본에 한 글자가 빠졌는데, ‘아래 하(下)’로 보충하였다.
75. 구일철령(九日鉄嶺(주131)) 구월 구일 철령에서
남관구월금서인(南關九月錦西人(주132))
고처등림의전신(高處登臨意轉新)
풍토분강수절물(風土分壃殊節物(주133))
출하무사소연진(出河無事少煙塵(주134))
이천리외중양일(二千里外重陽日)
삼십년여노포신(三十年餘老圃臣(주135))
조국수황풍염역(早菊垂黃楓染赤(주136))
일존미기련상신(一樽弥杞輒傷神)
구월 남관 철령에 금서인이
높은 곳 오르니 감회가 새롭게 바뀌네
풍토와 지경이 나뉘어 산물이 다르고
하천을 무사히 벗어났는데 인적 아직 드무네
이천리 밖에서 맞는 중양절인데
삼십여 년을 늙도록 녹을 먹고있네
일찍 핀 국화가 노랗게 짙어지고 단풍은 붉게 물들었는데
한 단지 오랜 구기자 술 생각에 문득 마음 애태우네
주131) 철령위(鉄嶺衛) 문제 : 1387년(우왕 13) 12월에 명나라는 철령 이북의 땅이 원나라에 속했던 것이므로 요동(遼東)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철령위의 설치를 결정하였다. 이에 고려 조정은 유사시를 대비해 전국적으로 성을 수축하고, 서북면에 무장들을 증파해 수비를 굳건히 하였다. 또한 밀직제학(密直提學) 박의중(朴宜中)을 사신으로 파견해 철령 이북의 문천(文川)·고원(高原)·영흥(永興)·정평(定平)·함흥(咸興)은 물론 그 북쪽의 공험진(公嶮鎭)까지도 원래 고려의 영토였음(1107년 고려예종 때, 윤관의 여진정벌)을 주장하면서 철령위의 설치를 철회하도록 요구했으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려는 전국의 정병(精兵)을 총동원하고, 최영(崔瑩)·조민수(曺敏修)·이성계(李成桂)를 각각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좌군도통사·우군도통사로 삼아 이른바 요동정벌을 단행했으나,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명나라는 더 이상 철령위의 설치를 거론하지 않았다. 이는 고려의 북진기도를 사전에 저지하고, 압록강 부근의 민호를 초무함으로써 요동을 확실히 통치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주132) 호가 금서(錦西) 또는 금서자인(錦西玆人)이라고 하는데, 족보에는 언급이 없다. 다만, 금서 출신이라는 긍지가 있어 그렇게 호를 따왔다는 느낌이 든다. 금서(錦西)가 충청남도 금강(錦江) 지방인가?에 대하여는 문헌상 연원이 명확치 않다. 언제부터 금강(錦江)이 되었는지도 명확치 않고, 곰(熊)의 발음이 금(錦)으로 바뀌었다는 말도 있다. 다만 최근 복원된 공주 공산성 성루에 금서루(錦西樓)란 이름이 있고, 금서공의 선대의 묘소(14세 기한(起漢), 15세 유(濡), 혼(混))가 공주시 이인면에 있어, 선조의 본향을 금서지방으로 생각하여 호를 지은 것이 아닌지 추정한다.
2020년 이른 봄에 고령신문의 병암 신경식 선생께서 “금서가 금강일대인가?“ 라고 물어 오신 적이 있는데, 사용례가 많지 않다고 답변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금강은 호강(湖江)이라고 불렀고, 금강 이남의 전라도를 호남(湖南), 충청도를 호서(湖西)로 부르고, 경기·충청도를 기호지방(畿湖地方)이라 불러왔기 때문이다.
주133) 절물(節物) : 철에 따라 나는 산물(産物)
주134) 연진(煙塵) : ①연기(煙氣)와 먼지 ②병진(兵塵) ③연기(煙氣)처럼 일어나는 먼지
주135) 포신(圃臣)은 채소밭을 가꾸다는 뜻이므로 맞지 않고 ‘포신逋臣’이 바른 글자이다. 즉 30여년을 신하로 잡혀있다 라는 말이다.
주136) 원문의 ‘역(亦)’은 ‘적(赤)’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국화는 노랗고 단풍은 붉게 물들었다.’ 라고 해야 뜻과 대구(對句)가 맞다. 잘못 옮긴 듯하다.
76. 덕원 원산(德原元山)
서풍낙모칠순인(西風落帽七旬人)
철령빙고착안신(鉄嶺憑高着眼新)
함산비무쟁추순(咸山(주137)飛霧爭抽筍)
요야평포부변진(遼野平鋪不辨塵)
원기태반단입장(元氣態蟠團入掌)
청공붕운자경신(晴空鵬運竦輕身)
중암세국위수채(重岩細菊爲誰採)
궁해기관욕동신(窮海(주137-1)奇觀欲動神)
서풍에 모자를 떨어뜨린 칠순 노인이
철령 높은 곳에 기대어 안경을 새롭게 쓰네
함산에 안개 날리고 죽순처럼 솟아오르며 다투는데
먼 들판과 평평한 바다까지 속세를 가리지 않네
만물의 기운이 감싸 돌아 둥글게 손바닥에 들어오니
갠 하늘에 붕새가 빙 돌고 놀랍게도 몸은 가벼워지네
웅장한 바위에 핀 가녀린 국화를 누구를 위하여 따는가
먼 바다의 기이한 풍광을 보니 마음이 살아 움직이네
주137) 함산(咸山) : 부(府) 이름. “함흥(咸興)”의 다른 이름.
주137-1) 궁해(窮海) : 「난바다. 먼 바다 또는 먼 고장」이란 뜻으로, 문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벽지를 이르는 말
출산간해읍(出山看海邑) 산을 나오니 바다와 도시 보이고
천지시분개(天地始分開) 천지는 나뉘어 열리고 시작되네
시상재인어(市上再人語) 저자에 다시 사람 말소리 들리고
로중포여배(壚中浦女盃) 주막엔 항구의 여자와 술잔이 있네
기진통북새(奇珎通北塞) 기이하고 진기한 것이 북쪽 변방으로 통하고
대도접성외(大道接城隈) 큰길이 성 굽이에 붙어있네
경호명공저(鏡湖名共著) 거울 같은 호수는 명성이 두루 알려졌고
풍물교수재(風物較誰哉) 이 고장 풍물을 무엇과 비교하리오
77. 삼성비 서후(三聖碑序後)
삼성용찬지(三聖(주138)龍灒地) 세 성인이 천자 되어 내려오신 곳
외호송덕비(嵬乎頌德碑) 오오 송덕비 우뚝하도다!
선생추고세(先生追古世) 먼저 세상에 나시어 오래토록 세상이 따르니
자사제명시(刺史(주138)際明時) 자사하실 때 세상을 밝히셨네
기읍주풍고(岐邑周風鼓) 많은 마을이 주나라 풍속 따르고
풍향한업기(豊鄕漢業基) 나라가 부강한 한나라 기반 닦았네
천추찬대관(千秋賛對舘) 천추에 객사 마주대하여 기리니
유적상편미(遺蹟上扁楣) 유적은 처마 현판에 새겨 올렸네
주138) 삼성(三聖) : 중국의 세 성인(聖人)으로, 노자(老子), 공자(孔子), 안회(顔回)와 요, 순, 우. 문왕, 무왕, 주공을 일컬음. 주나라는 당초 은나라의 속국이었다. 문왕에 이르러 폭군 주왕(紂王)의 은나라를 멸하였다. 모든 주변 소국이 주나라 문왕의 어진 정치에 감동하여 서로 복종하여왔다. 이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은나라를 멸하였으니, 당시 서백 강태공과 백이숙제등 명현이 등용되었다. 자사는 속국인 주나라 왕을 은나라의 자사로 표현한 듯하다.
78. 춘성관 전로(春城舘前路) 춘성관 앞길
행이소소여자동(行李(주139)蕭蕭與子同)
춘성관외로무궁(春城舘外路無窮)
산위대해봉봉도(山圍大海峯峯島)
마답사양보보풍(馬踏(주140)斜陽步步風)
정억호운미원수(正憶湖雲迷遠樹)
환수고운기고홍(還愁孤雲寄孤鴻)
곡람시기촌연헐(谷嵐始起村烟歇(주141))
분부경편임소동(分付輕鞭任小童)
행장 수레소리가 삐그덕거리는 것이 자식과 같은데
춘성관 밖에 길은 끝이 없네
산 빙 두르고 큰 바다 산봉우리 섬은 둥둥
말은 석양을 밟고 바람은 느릿느릿 불어오네
호수에 낀 구름에 옛 시절 더듬으니 멀리 나무들이 희미하고
수심 돌아와 구름 한 점 외기러기에 기대네
골짜기에 아지랑이 일기 시작하고 마을 밥 짓는 연기가 사라져
어린 하인에 가벼운 말채찍을 분부하네
주139) 행리(行李) : ①군대(軍隊)의 전투(戰鬪) 또는 숙영에 필요(必要)한 물품(物品)을 실은 치중(輜重 짐) ②길 가는 데 쓰는 여러 가지 물건(物件)이나 차림
ㅇ 대행리(大行李) : 군대(軍隊)가 숙영(宿營)하는 데에 쓰던 모든 군수품(軍需品)
ㅇ 소행리(小行李) : 작은 행구(行具). 조그마한 행장(行裝)
주140) 마답(馬踏) : 역참에는 말의 사육과 관리를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에 둔전(屯田) 등을 소유하고 있다.
주141) 촌연갈(村烟歇) : 석양지고 마을의 밥 짓는 연기가 없어진 것은 저녁이 늦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린 하인에 명해 역관까지 말에 가벼운 채찍을 분부하였다는 뜻이다.
79. 석미옥(石尾屋) 돌로 지은 집
협속석작미(峽俗石作尾) 골짜기의 풍속은 돌로 꼬리를 이어 만드는데
완뢰부비재(完牢不費財) 가축우리 짓는 데는 비용과 재산이 들지 않네
린린상한집(鱗鱗相漢集) 집의 비늘판은 상한을 모았는데
흡흡편추개(翕翕便推開) 당기고 당기고 편리하게 밀어서 여네
시유성절견(時有星節見) 시간이 있어 성절을 보면
도무우누래(都無雨漏來) 모두 비가 새는 법이 없는데
도모개수노(綯茅豈須勞) 새끼 띠 매는 것은 반드시 노고가 따르는데
판옥변기재(板屋亦奇㢤) 널빤지 집 또한 기이하지 않나
80. 문천관렵연어(文川觀獵鰱魚) 문천에서 연어잡이를 구경하다
마수평교활(馬首平郊闊) 말머리는 평탄한 교외로 트여있는데
어인방수면(漁人傍水眠) 어부가 시냇가에서 잠자고 있네
파청여람조(波淸如鑑照) 물 맑은 모양이 마치 거울 비추는 듯하고
망밀사은현(網密似銀懸) 그물은 촘촘하고 은이 매달린 듯하네
란육수풍토(卵育殊風土) 물고기 알을 키워서 잡는 풍습인데
민생귀식천(民生貴食天) 사람들은 살아서 귀하게 먹는 음식이라네
연어지원물(鰱魚知遠物) 연어는 먼 곳에 있는 물건을 안다고 하는데
금견렵전천(今見獵前川) 지금 시내 앞에서 천렵하는 것을 보네
81. 숙영흥부(宿永興府) 영흥부 숙박
최시남관천승주(最是南關擅勝州)
누대고침대강두(樓臺高枕大江頭)
장제양류추풍기(長堤襄柳秋風起)
서안황전야색수(西岸荒田野色收)
우체최장청로발(郵隷催裝淸路發)
관아진찬영소유(官娥進饌永宵留)
소소반마이천리(蕭蕭返馬二千里)
감혼서생시원유(堪愧書生事遠遊)
바로 여기 남관인데 경치가 아름다운 곳
큰 강 머리엔 누대 높이 베개 베고있네
긴 강둑 올라앉은 버드나무에 가을바람 일어나
들 풍경 보니 서쪽 강가엔 황폐한 밭 있네
역참 하인 짐 꾸리기 재촉하여 맑은 길 나섰네
밤 오랫동안 머물며 여자 종 음식 내어오고
바쁘게 말 바꾸며 가는 이천 리인데
부끄럽게 서생은 먼 곳 와 놀기에만 몰두하네
82. 우야숙정평부(雨夜宿定平府) 비오는 밤 정평부에서 숙박
세우선효청루잔(細雨旋曉晴漏殘)
행인최발북풍한(行人催發北風寒)
요린해학무수택(遙憐海鶴無愁宅)
응설관산도로난(應說關山道路難)
가랑비 멈춘 새벽인데 아직 빗방울 조금 남아
행인들이 출발 재촉하는데 북풍 차갑네
먼 길 가는 바다의 학은 시름도 집도 없는데
말대꾸처럼 말하자면 관산의 도로는 참으로 험하네
83. 함흥 풍패관(咸興豊沛舘)(주142)
한가궁삭패동문(漢家(주143)宮闕沛東門)
몽척산하체세존(夢尺山河軆勢尊)
성부저서금탕지(城府儲胥金湯地(주144))
여염기색제왕촌(閭閻(주145)氣色帝王村(주146))
함흥사자견전해(咸興使者遣傳奚)
무학신사비식존(無學神師秘識存)
만세교난양류리(萬歲橋欄楊柳裡)
행인일야부정원(行人日夜不停轅)
오랑캐 지역이었던 곳에 세워진 궁궐 풍패 동문에서
꿈속에 재어보는 산하의 기세가 높네
함흥부의 아전은 천혜요새의 땅
여염의 기색이 제왕 사는 지방의 풍모가 있구나
함흥사자 보내 무엇을 전했나
무학선사에겐 신통한 식견 있었네
만세교 난간엔 버드나무 빽빽하고
행인들은 밤낮없이 수레통행을 멈추지 않네
주142) 풍패관(豐沛舘) : 함흥부의 객사, 1935년 반룡산공원으로 이축되었다.
주143) 한가(漢家) : 과거 여진족이 지배한 적이 있던 지역이므로 ‘오랑캐 한(漢)’의 의미로 쓰였다. 관행적으로 이렇게 썼다. 함흥 지역을 ‘풍패(豐沛)’라 불렀다. 즉 풍년이 들고 물산이 풍부한 지방이라는 뜻이다.
주144) 여염(閭閻) : 백성(百姓)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
주145) 금탕지(金湯地) : 천혜의 요새, 방어의 중심 지역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영조10년 1734.5.11.> 이번 5월 11일 경기감사 조명익(趙明翼)이 인견으로 입시했을 때에 아뢰기를, “남한산성은 바로 천연적으로 된 금탕지(金湯地)인데, 근래에 수호하는 등의 일이 전만 같지 못하니, 참으로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
주146)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대인 고조부 목조(穆祖)로부터 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가 뿌리를 내린 지역이고 함흥에 태종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을 계기로 머물던 곳이므로 함흥별궁(咸興別宮)을 두었으며, 인근 지역에 선대의 묘소 및, 선원전(璿源殿)에 이태조의 영정을 모셔두었다.
< 함흥남문(咸興南門) >
< 함흥본궁(咸興本宮) >
84. 낙민루(樂民樓)
천고등림진사류(千古登臨盡士流)
풍연시주숙상우(風烟詩酒孰相優)
관남새북대도회(關南塞北大都會)
수려산명제일루(水麗山明第一樓)
객사청연감문월(客似靑蓮堪問月)
지비적벽역진추(地非赤壁亦眞秋)
낙민지가유인락(樂民之暇遊人樂)
사아무단수일류(使我無端數日留)
오래된 루에 오르니 구경하는 선비 넘치고
안개 낀 경치 바라보며 시 짓고 한잔 마시면 누구라도 서로 도탑게 되네
관남 북쪽변방의 가장 큰 도회
물은 아름답고 산은 밝으니 제일루이네
나그네는 푸른 연처럼 달 찾아 즐기고
땅은 적벽 아닌데 정말로 가을이 왔네
낙민루에서 여가 보내니 유람객은 즐겁고
나로 하여금 끝도 없이 며칠간 있으라 하네
85. 만세교(萬歲橋)(주147)
만세교두로괘평(萬歲橋頭路掛平)
행행십리답파성(行行十里踏波聲)
상전고주학초반(霜前古柱鶴初返)
천제장홍우만청(天際長虹雨晚晴)
토목준절연대야(土木竣切連大野)
마차교적접웅성(馬車交跡接雄城)
성동환북주궁누(城東還北走窮累)
우기관무여아생(宇奇觀無如我生)
만세교 머리 도로는 평야에 걸렸는데
십리를 가며 걸어도 물소리 들리네
서리발 앞 오래된 기둥자리 처음에 학이 돌아오더니
하늘 끝에 긴 무지개 서고 비는 끝나 느지막이 개었네
땅위의 나무는 끝나 큰 뜰 이어지고
마차가 스쳐가는 자국은 웅성으로 이어지네
성의 동쪽은 북쪽으로 빙 둘러있는데 가는 곳곳 막혀있고
지붕은 기이하게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나의 삶과 같네
주147) 만세교(萬歲橋) : 함경남도 함흥시 서쪽에서 함흥평야를 관류하는 성천강(城川江)을 가로질러 가설된 교량. 반룡산(盤龍山) 낙민루(樂民樓) 아래에 있는 이 다리는 함흥 명승의 하나이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퇴각하던 러시아군이 방화하여 소실시키자 일본공병대가 1906년 목조로 가교에 착수, 1908년 준공하였으나 이 역시 무진년(戊辰年 : 1928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1930년 함흥시에서 철근콘크리트조로 다시 건설한, 당시 우리나라 유수의 긴 교량이었다. 함흥시의 풍속 중에는 다리밟기[踏橋]라는 것이 있는데 정월대보름날에 이 다리를 밟으면 한 해 동안 건강하며 재액을 멀리한다고 전한다. 이 날에는 남녀노소가 이 다리를 거닐면서 호두·잣·호콩·엿 등을 사는 풍습이 전하여오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 장안세(張安世) : 호 송은(松隱), 시호 충정(忠貞)
고려 말 정헌대부(正憲大夫) 덕녕부윤(德寧府尹)의 관직에 있을 때 함주(咸州: 지금의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갈한천(乫罕川)이 해마다 범람하여 재해가 많았으나 해당 수령들이 그 대책을 세워 해결하지 못하자 특별히 함주부사로 임명되었다. 10여 년 동안 함주에 재임하여 있으면서 치수공사를 완수하였으며, 또 목판으로 길이 70간이나 되는 만세교(萬世橋)라는 다리를 놓았다.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돌아갔다. 태조가 친필의 편지로 여러 번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아니하고, 아들 장중양(張仲陽)과 함께 경상북도 구미의 인동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기우자집(騎牛子集)』의 「두문동칠십이현록(杜門洞七十二賢錄)」에 16번째로 기록되어 있다.
< 만세교와 낙민루 >
86. 함관령(咸關嶺)(주148)
초요취령상함관(岧嶤翠嶺上咸關)
등도천반회백간(磴道千盤檜栢間)
백이오항지인도(白移杇亢知人度)
벽누청공견일환(碧漏晴空見日還)
운물천명타세계(雲物天明他世界)
풍림상만노강산(楓林霜晩老江山)
신공대각단애석(神功大刻丹崖石)
단달동전연취한(靼韃洞(주149)前蠡吹閒)
산 높은 비취빛 고개 정상 함관인데
돌 비탈길 도로는 오랜 암반 전나무 측백나무 수풀사이네
산 빛이 하예지고 높아 손 흙칠하며 오르는 것이 사람의 기량인데
비 내린 후 개인 푸른 하늘 올려보니 햇빛이 돌아왔네
구름이란 것은 밝은 하늘에 다른 세상이라서
단풍나무숲에 늦서리 내리고 참으로 신령스런 강산일세
붉은 단애 바위에 신령스런 공덕 크게 새겨
단달동 앞 서 있는데 바람만 한가로이 불어오네
입마함남제일관(立馬咸南第一關)
수문참정용운간(手捫參井聳雲間)
봉만보흘요상근(峯巒疊屹遼相近)
도로중반거복환(道路重盤去復還)
새북음풍문대해(塞北陰風聞大海)
패동숙기멱군산(沛東淑氣覓群山)
이천리외휴운원(二千里外休云遠)
감소기등누욕잠(堪笑覊燈淚欲潜)
말 타고 함경도 남쪽 들어서는 제일의 관문인데
손 더듬어 우물 살피는데 구름 높이 피어 오르네
산봉우리 봉우리가 멀리 가까이 첩첩히 솟고
도로는 자꾸 굽이를 돌아 가다오기를 반복하네
변방 북쪽에 겨울바람 불고 큰 바다소리 들리니
함흥 동쪽의 맑은 기운 산 무리에 살고 있네
한양 이 천리 밖에서 쉰다는 것은 요원한 일
참고 견디며 등잔 밑에 남몰래 눈물 흘리네
철령고난월(鉄嶺高難越) 철령은 높아서 넘기 어려운데
함관경일층(咸關更一層) 함관은 다시 일층을 더하고
상풍취면촉(霜風吹面觸) 서리 바람 얼굴 때리고
하기총거응(霞氣襲裾凝) 노을 기운 엄습해 옷자락에 엉겨 붙네
동전인상실(洞轉人相失) 골짜기를 맴돌아 사람을 서로 잃고
노위마불능(路危馬不能) 길은 위태해 말이 오갈 수 없네
견여위협속(肩輿爲峽俗) 가마를 어깨에 메는 것이 골짜기의 풍속이므로
질족사비등(疾足似飛登) 발병 나서 날아오르는 것 같네
주148) 함관령(咸關嶺) : 함흥시의 동북쪽 홍원군과의 경계에 있는 고개. 해발 462m. 예로부터 북동쪽에서 함흥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는 뜻에서 함관령이라 하였다.
주149) 달단동승전기적비(韃靼洞勝戰紀蹟碑) : 함관령 고개 마루에서 동쪽으로 약 2㎞ 떨어진 영상리에는 고려 공민왕 때 이성계(李成桂)가 원나라 군대를 물리친 전공을 기념하는 기적비를 1829년(純祖 29)에 세웠다. 조종영(趙鐘永)이 비문을 지었고, 서준보(徐俊輔)가 전면과 음기의 글씨를 썼다
태조(太祖)가 고려의 무인으로 있을 당시 원나라의 승상인 나하추(納哈出, ?~1381)와 크게 싸워 이긴 곳이다. 『고려사』에서는 공민왕 11년 7월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용비어천가』에도 전해지고 있다. 원나라의 장수 나하추가 고려 말기에 심양에 자리 잡고 스스로 행성승상(行省丞相)이라 일컬으며, 동북부 일대에 세력을 뻗쳤다. 1362년 고려 동북면의 쌍성(雙城)을 다시 손에 넣으려고 수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고려에서는 이성계를 동북면병마사로 삼아 방어하게 하였다. 이성계는 함관령을 넘어 적의 집결지인 달단동(홍원군 남쪽 30리)을 기습하여 이들을 격퇴하고, 적군을 함흥평야로 유인하여 크게 무찔렀다. 나하추는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북으로 달아났으며, 1368년 북원(北元)이 세워진 뒤 고려에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고 좋은 말 등을 선사하여 화친하였다. 이 비는 이때의 전승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적비이다.
87. 발홍원(發洪原) 2수 홍원을 출발하며
월미낙시기단정(月未落時起短亭)
해운황적해산청(海雲黃赤海山靑)
제동원수명교주(堤東遠水明橋柱)
마수한천산효성(馬首寒天散曉星)
쟁연시거상사파(爭碾柴車霜乍破)
망수어고동유성(忙收漁罟凍猶腥)
일종군완우신거(一從郡紱紆身去)
곤곤오생미유녕(滾滾(주150)吾生未有寧)
달이 떨어지지 않을 때 정자에서 잠깐 일어나니
바다 운해는 누렇고 붉고 바다와 산은 푸르네
언덕 동쪽 물은 멀고 다리 기둥 뚜렷한데
말머리 차가운 하늘에 새벽 별이 흩어지네
땔나무 실은 수레바퀴가 서리에 잠깐 부서져
급히 그물 잡았는데 얼어있는데도 오히려 비린내 나네
오로지 근심하며 관복 걸치고 몸을 구부려 가려니
곤곤하게 내 사는 것이 편안함이 없네
주150) 곤곤(滾滾) : ①(많이 흐르는 물이) 처런치런한 모양 ②펑펑 솟아 나오는 물이 세참
홍원위읍해서두(洪原爲邑海西頭)
지세망망수공부(地勢茫茫水共浮)
야수주면청효기(野叟(주151)舟眠淸曉起)
촌아포급소추유(村娥浦汲素秋遊)
양안차주홍감괴(襄顔借酒紅堪愧)
단발경상백점수(短髮經霜白漸愁)
오마사군전로거(五馬使君(주152 )前路去)
강관시부흥전수(江關詩賦興全收)
홍원이 읍이 되어 바다 서쪽머리에 있는데
지세는 넓고 넓어 물과 함께 떠있네
시골노인과 배들이 잠들어 있는 맑은 새벽에 일어나
포구에서 물을 긷는 시골 아낙네 수수한데가 가을 벗 같네
체면 버리고 술 마시니 부끄럽게 홍조 올라오고
짧은 머리 서리 내려 점점 흰빛 느니 근심스럽네
오마사군이 앞길을 갔는데
강의 관문에 시부 읊으며 흥이 완전히 달아올랐네
주151) 야수(野叟) 야옹(野翁) : 시골 늙은이
주152) 사군(使君) : 임금의 명령(命令)을 받들고 나라 밖으로나 지방(地方)에 온 사신(使臣)의 경칭(敬稱), 오마사군(五馬使君)이니 말 다섯 마리가 딸린 사자이다.
88. 절고암(節古岩)
절고암유재(節古岩猶在) 절고암이 이미 있는데
열명만구향(烈名萬口香) 열부이름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네
청년래작부(靑年來作婦) 어떤 청년이 와서 부인이 되었다는데
백세사종랑(百歲死從郞) 백세에 남편을 따라 죽었네
어복화혼냉(漁腹花魂冷) 물고기 뱃속에 혼령이 차가운 꽃으로 피었는데
파심혜질방(波心蕙質芳) 물결 한가운데 혜초가 아름답구나
행인요지점(行人遙指点) 오가는 사람이 멀리 한 곳을 가리키니
세전즉태창(細篆卽苔蒼) 오래되면 푸른 이끼 끼듯 자세히 마음에 새기리라
89. 북청 남병영(北靑 南兵營)(주153)
산출원함진북주(山出原咸眞北州)
개영청해해지두(開營靑海海之頭)
낭봉공액마운령(浪烽控扼(주154)摩雲嶺)
분첩주조세전루(粉堞(주155)周遭洗箭樓)
낭식경어유백일(浪息鯨魚游白日)
시평고각어청추(時平鼓角語淸秋)
관남노수증상식(關南老帥曾相識(주156))
은패요인음벽유(銀火市 邀人飮碧油(주157) )
산이 시작된 뿌리는 함경도니 진정 북쪽 땅이고
푸른 바다 곁에 병영을 여니 바다 머리네
북방의 수많은 봉화 지휘한 곳 마운령
성 위에 성가퀴 숨겨 오랑캐 물리친 곳에 세전루 서있네
파도 물결에 사는 고래는 한 낮에 헤엄치고
시절 태평하니 고각은 맑은 가을을 말하네
관남의 나이 드신 절도사 장군은 일찍이 아는 분인데
은패를 두르고 손님맞이할 때 녹차를 마시네
주153) 남병영 : 함경남도 지역 방어의 거점으로서, 북청에 설치한 남병영을 지키는 남도병마절도사를 약칭하여 남병사(南兵使)라고 불렀는데 함경남도수군절도사(咸鏡南道水軍節度使)를 당연직으로 겸직하였다. 참모격인 종3품 병마우후(兵馬虞候) 1명을 비롯하여 종9품의 외관직인 심약(審藥) 1명 등의 품관이 배속되었고, 각급의 군관과 수백 명의 직속 병력도 배치되었다. 그 밖에 아전 무리와 공장(工匠), 노비 등도 소속되어 있었다.
1684년(숙종 10)에는 함경도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고 힘이 센 자 600명을 선발하여 친기위(親騎衛)라는 부대를 신설하였다. 초기에는 남병영에 속해 있는 6읍에서 150명을 선발하였는데, 이후 1,000명까지 늘어났다.
남병영의 소속 지역은 갑산·안변·삼수·혜산·낭성포·도안포·영흥·북청·단천·장진·원주 등이었고 그 이북은 북병영에 속하였다. 이 밖에 행영(行營)이라고 하는 이동 사령부가 설치되어 남병사가 휘하 병력을 이끌고 나아가 순회하며 주둔하기도 하였다. 관할 구역을 지나는 봉화(烽火)의 관리도 주요한 임무였으며, 벚나무 껍질[樺皮], 녹용 등을 중앙에 공급하기도 하였다. 군비에 소모되는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막대한 관곡이 환곡(還穀) 등으로 운영되거나 군대의 식량으로 비축되었다.
주154) 공액(控扼) : 휘어잡아 통제함
주155) 첩분(堞粉) : 하얀 성가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주156) 당시의 함경도남병마절도사는 이행교(李行敎)이다. 재임기간은 1848.4.2.(제수) ~ 1850.2.3. 이 때 나이가 71세이다. 후임은 오현문(吳顯文)
◾ 이행교(李行敎) 1779년(정조 3)~미상
조선 후기 무신. 자는 중육(仲育)이다. 본관은 고성(固城)이다.
증조부는 이의춘(李宜春)이고, 조부는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득준(李得駿)이며, 부친은 부사(府使) 이병도(李秉道)이다. 외조부는 현감(縣監) 조연정(趙衍禎)이고, 처부는 유도원(柳道源)이다. 1801년(순조 1) 증광시 갑과 2위로 무과 급제하였다.
강령현감(康翎縣監)‧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황해도병마절도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812년(순조 12) 강령현감 재임 시절에 황해도병마절도사 조계(趙啓)가 올린 치계(馳啓)로 인해 군사들의 훈련에 힘쓰고 말[馬]의 조련에도 능숙하고 공곡(公穀)에 손을 대지 않고 군량미도 손수 마련하는 등의 행실이 임금에게 알려져 대록피(大鹿皮) 1령(領)을 하사받았으며, 이 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1813년(순조 13) 강령현감 시절 황해도암행어사 이재수(李在秀)의 서계(書啓)로 또 한 차례의 치적이 조정에 알려져 품계가 올라갔다.
주157) 은패(銀火市 ) : ‘화(火)+시(市)’는 자전에 없는 글자이고, ‘은패(銀火市)’ 의 뜻을 알기가 어렵다. ‘은패(銀牌)’란 ‘절도사의 밀부(密符:병권 비밀부신) 패’ 또는 ‘인수(印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벽유(碧油)는 중국 백과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녹색 물’의 뜻도 있으니 ‘녹차(綠茶)’를 지칭한 것으로 생각된다.
ㅇㅇ. 개쇄로(介碎路)(주158) 3수
북해비천외(北海非天外) 북쪽 바다는 하늘 밖이 아니고
남인사몽중(南人似夢中) 남쪽 사람에겐 꿈속에 있는듯하네
촌용현입저(村容懸入底) 시골의 모습이 병영입구임을 풍겨오는데
지축단부공(地軸斷浮空) 땅은 끊어져 바다에 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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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편도(驅石秦鞭到(주159)) 돌은 말을 몰아 진나라에 채찍질하여 보내고
자염한시번(煮鹽漢市道) 구운 소금은 한나라 시장에 보내네
명시변비족(明時邊備足) 명나라 때는 변방을 방비함이 튼튼하였고
옥장와원융(玉帳臥元戎(주160)) 장수의 장막은 원나라 오랑캐를 굴복시겼네
성조중북진(聖朝(주161)重北鎭) 성조에 북쪽 군진이 중첩되어 서있네
청해이위과(靑海以爲过) 푸른바다를 지나니
부곽평임야(府郭平臨野) 북청부의 외곽은 평탄하고 넓은 들판이 마주하고
누대형출천(樓臺逈出天) 병영의 누대는 멀리 하늘에 맞닿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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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적잔매락(曉笛殘梅落) 새벽 피리소리 들리고 남은 매실은 떨어져
추진절한연(秋塵絶寒連) 가을의 물색 끝나고 추위가 따라오네
호아규불감(胡兒窺不敢) 오랑캐들이 감히 엿보지는 못하는 것은
병비어다년(兵備御多年) 군병의 방비가 여러 해 되었기 때문이네
좌래창해안(坐來滄海岸) 말에 앉아 푸른 바다 가에 오니
홍일출운간(紅日出雲間) 붉은 해가 구름사이에 떠오르네
도차심신활(到此心神豁) 이곳에 도착해 마음은 넓어졌는데
영인돈망환(令人(주162)頓忘還) 갑자기 잊어버린 영인이 생각나네
주158) 원나라 나하추를 무찌르고 회복한 고토(古土)에 대한 자부심을 알 수 있다.
주159) 진(秦), 한(漢)은 모두 중국을 말하고, 소금과 돌을 특산물로 교역한다는 뜻이다.
주160) 옥장(玉帳) : 옥으로 꾸민 장막(帳幕). ‘장수(將帥)가 거처(居處)하는 장막(帳幕)’을 아름답게 일컫는 말. 공민왕 때 윤관이 개척한 후 돌려주었던 9성을 회복하였으므로 원융(元戎)이라 썼다.
주161) 성조(聖朝) : ①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조정(朝廷) ②당대의 왕조(王朝)를 백성(百姓)이 높이어 일컫는 말
주162) 영인(令人) : 조선(朝鮮) 시대(時代) 때 정4품(正四品)ㆍ종4품(從四品)의 문무관(文武官)의 아내의 봉작(封爵). 집에 남겨두고 떠나온 아내를 지칭하는 듯하다.
90. 시중대(侍中臺)(주163) 2수
시중절대아동방(侍中(주164)切大我東方)
육진산천원척강(六鎭山川遠拓壃)
말갈제번휴야로(靺鞨諸番休野戰)
옥저천리류벽천(沃沮千里流闢天)
고대벽석추화노(高臺碧石(주165)秋花老)
고령창송해수장(古嶺(주166)蒼松海水長)
주마상봉촌수어(駐馬相逢(주167)村叟語)
여연북지낙경상(閭延北地樂耕桑)
시중공이 우리나라 동쪽지방의 오랑캐를 크게 꺾으니
육진의 산천은 개척한 영토로 멀리 넓어졌네
말갈과 모든 오랑캐가 들에서 전쟁을 멈추니
옥저 천리는 다시 하늘을 열었네
보석 같은 높은 대에 가을 꽃 시들었어도
옛 고개 푸른 소나무는 바다 물처럼 오래 살았네
시중공 진 쳤던 마령을 새로 상봉하니 시골 노인이 말하기를
마을이 늘어선 북쪽 땅 경작하고 뽕나무 심는 것이 즐겁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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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추호상객(深秋湖上客) 깊은 가을 충청도에서 온 나그네가
욱일시중대(旭日侍中臺) 아침 해 뜨는 시중대에 서있네
공저명시재(功著名時在) 공적이 현저한 때가 있었는데
풍여원지개(風餘遠地開) 먼 땅을 개척한 일이 세월에 잊혀졌네
한당전의부(漢唐(주168)專義否) 한당이 오로지 의를 거부했는데
아곽불허재(衙霍不虛㢤) 조정이 눈이 먼 것이 허무하지 않나
개아천년후(豈我千年後) 어찌 천년이 지난 후에도
비공유시래(非公有是來) 지금에 이르도록 공에게 남은 것이 없는가
주163) 시중대(侍中臺) : 함경남도 북청의 마령(馬嶺)에 윤관공이 여진정벌 때 진을 치고 계셨던 곳으로 ‘시중대’라는 비석과 각이 있었다.
주164) 윤관(尹瓘) : 미상 ~ 1111년(예종 6), 자 동현(同玄), 시호 문경(文敬), 문숙(文肅)
본관 파평(坡平).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습유(拾遺)·보궐(補闕)을 거쳐 1095년(숙종 즉위) 좌사낭중(佐司郞中)으로 요나라에 파견되어 숙종의 즉위를 알렸다. 추밀원지주사·어사대부·이부상서 등을 거쳐 1104년 추밀원사로서 동북면행영병마도통사(東北面行營兵馬都統使)가 되어 여진을 정벌하다가 실패하였다. 그 뒤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하여 군대를 양성, 1107년(예종 2) 여진 정벌군의원수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계에 출진하였다. 이때 함주(咸州)·영주(英州)·웅주(雄州)·복주(福州)·길주(吉州)·공험진(公嶮鎭)·숭녕(崇寧)·통태(通泰)·진양(眞陽)의 9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을 평정하고 이듬해 봄에 개선, 그 공으로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문하시중(門下侍中)·상서이부판사(尙書吏部判事)·군국중지사(軍國重知事)가 되었다. 그 후 여진은 9성의 환부를 요청하며 강화를 요청해오자, 조정은 9성을 지키기 어렵다 하여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정세가 바뀌자 여진정벌의 실패로 모함을 받아 벼슬을 빼앗기고 공신 호 마저 삭탈되었으나, 예종의 비호로 1110년 수태보(守太保)·문하시중(門下侍中)·병부판사(兵部判事)·상주국(上柱國)·감수국사(監修國史)가 되었다.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주165) 고대벽석(高臺碧石) : 윤관의 시중대를 벽옥(碧玉)의 보석으로 지칭한 듯
주166) 고령(古嶺) : 시중공이 진 쳤던 마령(馬嶺)
주167) 주마상봉(駐馬相逢) : 고려 때 ‘시중공이 진 쳤던 마령을 다시 상봉하니’ 라는 뜻
91. 이원 남송정(利原(주168)南松亭)(주169)
노협장림우만청(路夾長林雨晩晴)
사양물읍득허면(斜陽物邑得虛名)
연하불원중원토(煙霞不遠中原土)
요속유여말갈성(謠俗猶餘靺鞨城)
송노심산한세계(松老深山閒世界)
노부창해온평생(鷺浮滄海穩平生)
문장호탄영웅소(文章浩歎英雄笑)
서일동류내감정(西日東流(주170)柰感情)
길은 긴 숲속에 끼어 저녁 무렵에야 비가 개이고
석양의 읍내풍경은 헛된 이름만 있을 뿐이네
안개와 노을이 중국 땅에서 멀지 않아
노래 풍속에 오히려 말갈성이 남아 있네
늙은 소나무가 서있는 심산은 한가한 세상풍경이고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해오라기는 평생 동안 평안해 보이네
문장으로 탄식함은 영웅의 미소요
서쪽 해 동쪽으로 흘러가니 어찌 감정이 일지 않으랴
주)168) 이원(利原) : 옥저, 고구려 땅이었다가 진흥왕 때 신라가 점령한 영토 중 최북동 끝 지역으로 이 군에 있는 마운령 고개에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를 세웠고 지금도 남아 북한의 국보이다. 이후 발해의 영토였다가 발해 이후 여진족의 땅이 되었고 고려 중기 1107년에 윤관이 동북 9성을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여진족에 돌려줬다가 13세기 중엽에 원나라가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였으나 공민왕 때 수복되었다. 조선 건립 이후 이성현(利城縣)이 되었고 1800년에 정조의 이름을 피휘(避諱)하기 위해 이원현으로 개칭되었다.
주169) 남송정은 이원읍에 있다. 4km 길이의 남송정 해변은 백사장과 선조 시절 형성된 방풍림이 어울린 해수욕 명소이다.
주170) 서일동류(西日東流) : ‘서쪽에서 해가 떠서 동쪽으로 진다’는 것이니 세상의 이치가 거꾸로 역류한 것을 말한다. 윤관장군이 정벌한 9성을 지키기 어렵다고 내어주고, 오히려 윤 시중을 모함하여 모든 공을 빼앗았고(후일 복귀) 아직 변변한 공적의 자취가 없음을 개탄한다.
91. 마운령(摩雲嶺)(주171) 2수
마운령출백운간(摩雲嶺出白雲間)
각시당장대답환(却視(주172)唐莊大踏還)
비관질어황화판(非關叱馭黃花坂)
지위심단순누산(只爲尋丹旬漏山)
위등총회급전찬(危磴總回伋轉壑)
현애약단홀생만(懸崖若斷忽生巒)
해광동흔승초일(海光東忻升初日)
만엽상풍전욕완(萬葉(주173)霜風戰欲頑)
마운령은 흰 구름에 묻혀
보기를 멈추어도 장중한 도로를 빙빙 돌아 걷네
말을 모는 어디라도 언덕은 누런 산국화 밭인데
열흘 동안 산에 비 내리는데 이제 붉은 색을 찾게 되겠지
위험한 비탈길을 모두 돌고 속일 듯 골짜기를 또다시 도네
낭떠러지 언덕은 자른 것 같고 갑자기 둥근 산에 사는듯하네
바다 빛이 동쪽에서 빛나며 솟아오른 초일인데
모든 나뭇잎에 서리바람 불어 싸울 의욕을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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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일섭최고산(摩雲一涉最高山)
두상청천지척간(頭上靑天咫尺間)
이백기경의신재(李白騎鯨疑信在)
강남소식문선관(江南消息(주174)問仙關)
마운령 한번 거닐어 보면 최고의 산이요
머리 위 푸른 하늘이 지척간이라네
이백이 고래 타고 왔다고 믿는 것은 의심스러우니
강남소식을 관산의 신선에게 묻게 되네
주171) 마운령(摩雲嶺) :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과 단천군 부귀면 사이에 있는 고개. 높이 416m. 함경산맥 지맥의 분수령을 통과하는 고개로 예로부터 관북의 북동부 해안지방과 중부 해안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통로의 구실을 하여 좁은 해안저지대의 함경공로(咸鏡公路)를 소통시키고 있다.
주172) 원문 글자는 ‘禾+見’인데 자전에 없다. 볼 시(視) 자로 바꾸었다.
주173) 만엽(萬葉) : 아주 멀고 오랜 세대(世代)
주174) 강남소식(江南消息) : 한성 한강 남쪽 학동 집소식.
◾ 마운령순수비(摩雲嶺巡狩碑)
< 마운령순수비 발견당시 모습: [네이버 지식백과] >
고구려가 지배하고 있던 함경남도 이원군 지역을 정복하고 568년에 이원군 동면 사동(寺洞) 만덕산 봉우리 아래에 세운 순수비.
진흥왕 시기 신라의 북방 경계를 알려주는 귀한 사료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비중 가장 북동쪽 멀리에 세운 비석이다. 조선시대의 지리학자 한백겸(韓百謙, 1552~1615)이 확인했지만 다시 위치가 잊혀져 김정희 시대에도 소문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현지 백성들은 비석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적혀있는 한문을 읽지 못해 남이장군의 비석으로 막연하게 잘못 불리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1929년 역사학자 최남선이 현지 조사를 통해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냈다. 황초령비와 내용은 물론 왕을 옆에서 수행한 인물 명단도 비슷해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이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훼손이 심한 황초령비의 내용에서 지워진 부분을 마운령비의 내용으로 대신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이것도 현재는 함흥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93. 단천도중(端川道中)
주조분첩시단성(周遭粉堞是端城)
곤보지지영상행(困步遲遲嶺上行)
등도봉인신면목(登道逢人新面目)
당노고주구심정(當壚沽酒舊心情)
소계인인장류진(小溪咽咽長流盡)
대야전전일망평(大野田田一望平)
태수질구과선마(太守(주175)疾驅誇善馬)
양년불양전번명(襄年不讓翦頗名)
오랑캐가 성루의 성가퀴를 만났던 바로 단성이네
발걸음 무거워 더디게 고개 오르는 길
길 오르는 사람을 만나 초면인데
주막에서 술 팔던 사람 같이 친근한 심정일세
작은 시내가 지치고 길게 흘러 다한 곳에
큰 뜰 이뤄 밭들이 펼쳐지니 한 눈에 평평하네
태수는 병이나 말 타고 훌륭한 말을 과시하고
나이 많아지는데 양보 없이 평판을 깍아내렸네
주175) 태수(太守) : 경성판관인 본인을 지칭한다. 북병사는 경성도호부사를 겸임하는데, 행정업무는 판관이 맡아하므로 사실상 수령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방수령을 보통 고을 원, 또는 태수라고 불렀다.
94. 마곡역경판우생조자념일절(麻谷驛鏡判遇生朝自拈一絶)
마곡역에서 경판이 아침에 우연히 생일을 맞아 한 귀절 읊다
오생육십육생조(吾生六十六生朝)
하사금년새상요(何事今年塞上遙)
각소기봉사방지(却笑棄逢四方志)
영래군수란회요(贏來郡綬(주176)爛橫腰(주177))
내가 난지 육십 육세 되는 생일 아침인데
어쩐 일인지 금년에 멀리 변방 가는 길이네
결연히 사람 만남을 포기하고 전국 어디라도 뜻을 두어
과분하게 와서 고을을 맡으니 허리띠가 빛나네
주176) 인수(印綬) : 병권(兵權)을 가진 무관이 발병부(發兵符) 주머니를 매어 차던, 길고 넓적한 녹비 끈
주177) 횡요(橫腰) : 관요대(官腰帶), 관원의 요대를 말한다.
* 사모관대(紗帽冠帶) : 사모(紗帽)(깁으로 짠 모자)와 관대(冠帶)(관과 띠, 관복(官服)). 곧, 벼슬아치가 정식(正式) 예장을 차림
95. 차경판인(次鏡判人) 차기 경성판관
모년관새우생조(暮年關塞遇生朝)
매동난정일시요(梅洞蘭庭一是遼)
휴운차세공명박(休云此世功名薄)
진중영당묵난요(珍重鈴堂(주178)墨綬腰)
만년에 국경 관문에서 우연히 아침생일 맞으니
매화 꽃피는 동리 난초 꽃 핀 뜨락이 참으로 멀게 느껴지네
이승에선 쉰다는 것은 공명이 부족함이니
소중한 것은 동헌의 먹물과 인수 끈과 관대일세
주178) 영당(鈴堂) = 영각(鈴閣) : 지방의 수령(守令)이 집무하는 곳. 鈴堂. 鈴齋. 鈴軒.
96. 마천령(摩天嶺)(주179) 2수
명파인구천오동(名播人口擅吾東)
중첩봉만반입공(重疊峯巒半入空)
연찬잔정빙야설(緣壑長程氷夜雪)
만산락엽전추풍(滿山落葉戰秋風)
등시지파의천상(登時只怕疑天上)
평지회사약몽중(平地回思若夢中)
관북관남천리국(關北關南千里國)
역연수점부동통(歷煙數点不桐通)
세상에 이름을 알려져 내가 동쪽지방에 오게 됐는데
산은 겹치고 하늘을 뚫고 있네
산골짜기 가를 따라가는 먼 길은 얼고 간밤에 눈 내리니
만산에 낙엽지고 스산한 가을바람에 떠네
오를 땐 단지 무섭고 하늘 위인가 의아하더니
평지에서 돌이켜 생각하니 그저 꿈속인가 하네
관북 관남이 한양에서 천리 길인데
지나는 구름 몇 점은 통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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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일봉고울벽궁(回日峯高欝碧穹)
양장반절목간통(羊腸盤折木間通)
탁림절학인성소(遝林絶壑人聲小)
위잔현애마적융(危棧懸崖馬跡洚)
창해탕흉유북극(滄海盪胷流北極)
산천궁발낙변풍(山川窮髮(주180) 落邊風)
등교답설단여후(藤橋踏蹯雪氈如厚)
영하천시난상융(嶺下天時(주181)暖尙融)
해는 돌고 산 높아 수풀 우거졌는데 하늘 푸르고
구불구불한 길은 바닥 무너지고 나무 사이로 길이 나있네
빽빽한 숲 깎아지른 골짜기에 사람소리 들리지 않고
낭떠러지 걸린 위험한 비계에 말 발자국 흘러내리네
넓고 큰 바다가 가슴 흔들어 북극으로 달리고
산천의 황량한 땅에 변경 바람 떨어지네
등나무 다리의 눈 밟는 것이 두꺼운 모직과 같고
고개 내려오니 날씨는 오히려 따뜻하게 녹네
주179) 마천령(摩天嶺) : 함경남도(咸鏡南道)의 단천(端川)과 함경북도(咸鏡北道) 성진(城津) 사이의 도계에 있는 재. 이판령(伊板嶺). 높이 725m
주180) 궁발(窮髮) : 북극(北極) 지방(地方)의 초목(草木)이 없는 땅
주181) 천시(天時) : ①하늘의 도움이 있는 시기(時期) ②주야(晝夜)ㆍ계절(季節)ㆍ한서(寒暑) 등(等)과 같이 때를 따라서 돌아가는 자연(自然)의 현상(現象
97. 성진(城津)
임해성문흘(臨海城門屹) 바다 끼고 성문은 산에 솟아있고
화첨세욕비(画簷勢欲飛) 처마의 기세는 날아갈듯 하네
만유여백주(謾遊餘白酒) 느릿하게 놀고 한가로이 막걸리 마셔도
장지석잔휘(壯志惜殘暉) 웅건한 뜻은 아쉽게도 빛을 잃었네
효계다청월(曉屆多淸越) 새벽에 이르러 맑은 기운 넘쳐나
청산입취미(晴山入翠嶶) 비개인 산 입구 보니 비취빛 산이네
북촌관방중(北过關防重) 북쪽 지나면 국경 지키는 곳이 겹겹이고
체장미언귀(替將未言歸) 교대 마친 장수는 말없이 돌아가네
98. 야숙길주증계성월(夜宿吉州贈桂城月) 길주 관아 계성월에 보냄
체우성서야존등(滯雨城西夜剪燈)
관아진주취성능(官娥進酒醉醒能)
간화본불무정엽(看花本不無情蝶)
오도진성유발승(悟道眞成有髮僧)
창외한성풍도괄(窓外寒聲風到聒)
침과향사몽래응(枕过鄕思梦來凝)
정공객산청조석(庭空客散淸流夕)
영월신시인득응(咏月新詩認得應)
비에 막혀 머무는 성 서쪽은 밤에 등불 꺼져있는데
관아가 술 내오니 능히 취했다 깰 정도네
여인을 바라보면 본디 나비처럼 느끼는 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짓 없는 참됨을 깨우치면 머리털 기른 스님이 된다네
창 밖에 찬바람 소리 요란하게 들려오는데
베개 재끼고 고향 생각 꿈을 꾸네
뜰은 텅 비고 손님 돌아가 맑은 공기 흐르는 저녁에
달을 읊는 새로운 시로 고맙게 화답하네
99. 명천제 증초대선엄암화춘군산옥(明川題 贈楚坮仙掩花春君山玉)
명천 초대에 숨겨진 선녀, 봄 꽃 같은 군산옥에 보냄
홍기분장백미생(紅妓粉粧百媚生)
초대운우몽중정(楚坮(주182)雲雨夢中情)
엄화춘색군산옥(掩花春色君山(주183)玉)
쟁도웅주제일명(爭道雄州(주184)第一名)
붉게 단장한 기생 백가지 아름다운 교태 흐르네
초대의 비구름 속 꿈속의 정이 있어
꽃을 감싼 봄빛은 군산의 옥이요
도를 다투는 웅주에서 제일가는 명성일세
주182) 초대(楚臺) : 초 회왕(懷王)이 고당(高堂)에서 노닐다가 대낮의 꿈속에서 무산(巫山)에서 신녀를 만나 하룻밤의 인연을 맺고 서로 작별했다는 양대(陽臺)의 꿈이야기가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堂賦)에 나온다.
주183) 군산(君山) : 상산[湘山] 또는 동정산[洞庭山]이라고도 함.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악양현[岳陽縣] 서남쪽에 있는 동정호[洞庭湖] 가운데에 위치해 있음. 전설에 따르면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남쪽을 순수할 때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군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함.
◾ 김진형의 「북천가(北遷歌)」와 군산월(君山月) 1853년 명천에 유배 온 교리(校理)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北遷歌)」를 보면, 명천의 선비들과 명천부사의 지시로 기생 ‘군산월(君山月:당시19세)’과 ‘매향(梅香)’이 칠보산으로 단풍 풍류를 떠나는데 곧바로 김진형은 유배에서 풀려 환대받으며 귀경길에 오른다. 매행은 평우조(平羽調)의 창을 잘하고, 군산월(君山月)은 해금(奚琴)과 거문고를 잘 타는데 군산월의 미모와 교태는 하늘을 찔러 늦은 나이의 영남 선비 김교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든다. 「군산옥(君山玉)」이 그 기생으로 보인다. |
주184) 웅주(雄州) : 주(州) 이름.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 지역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주. 고려 예종(睿宗) 3년(1108)에 윤관(尹瓘)이 여진(女眞)을 쫓아내고 화관령(火串嶺) 아래에 성(城)을 쌓고 영해군 웅주방어사(寧海軍雄州防禦使)를 두었다가, 그 이듬해에 성을 철거하고 이 지역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는데, 공민왕(恭愍王) 때에 다시 수복하였으며, 공양왕(恭讓王) 2년(1390)에 길주에 병합시켰다.
100. 귀문관(鬼門關)(주185)
행진부함중령위(行盡不咸衆嶺危)
귀문지험야금헌(鬼門之險也䃢巘)
일산중벽청니활(一山中劈靑泥滑)
양벽사감유석의(兩壁斜嵌黝石欹)
입여천정추장몰(入如天井甃將沒)
상처운관육점이(上處雲關陸漸夷)
해구추산비개희(海口秋山飛盖喜)
치성성곽망위이(雉城(주186)城郭望逶迤)
가는 길 다 왔어도 모두는 아닌데 사람들은 고개는 위험하다하고
귀문은 특히 위험한 곳이라 산 높고 가파르네
하나의 산 중에 벽은 푸른 이끼 끼어 미끄럽고
양 벽은 기울어진 굴인데 검푸른 돌에 기대야하네
입구는 천장과 같은데 벽돌담이 곧 무너질듯하고
위쪽의 운관(雲關)은 육지가 오랑캐 땅에 가깝네
바다 입구 가을 산은 어느덧 날아와 기쁘게 맞이하고
치성(雉城) 성곽은 구불구불 비스듬히 뻗어있네
< 귀문관(鬼門關)과 경성 북병영(北兵營) : 고려대학교 고지도 >
주185) 귀문관(鬼门关) : <중국어사전> 1. 위험한 곳 2. 생사의 갈림길. * 입귀문관(入鬼门关) : 죽다. * 재귀문관(在鬼门关) :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
주186) 치성(雉城) : 함경북도 경성(鏡城)에는 김경서(金景瑞)가 눈 위에 나타난 꿩의 발자국을 따라 쌓았다는 치성(雉城)이라는 성이 있다
101. 도경성(到鏡城) 경성에 도착하다
행도경주로이천(行到鏡州路二千)
의산분첩해지변(依山粉堞海之邊)
황화시절리향객(黃花時節離鄕客)
호월루대파유연(好月樓臺把酒筵)
대막무정통한새(大漠無庭通漢塞)
장성위계격진연(長城爲界隔秦烟)
삼라무기영전도(森羅(주187)武騎迎前導)
옥장장군의곡연(玉帳將軍(주188)意豁然(주189))
경성에 도착하는 길이 이천리인데
산에 의지해 성가퀴 숨기고 가장자리에 바다가 있네
노란 국화 피는 시절에 고향 떠난 객이
달 밝은 누대에 올라 술자리 여네
뜨락은 없고 삭막한데 중국의 국경과 통하니
장성을 경계로 중국과 나뉘어 있네
수없이 늘어선 무장 기마가 영접하여 선도를 하니
옥장 장군의 뜻이 참으로 화통하시네
주187) 삼라(森羅) : 숲의 나무처럼 무척 많이 벌려 서 있음
주188) 옥장장군(玉帳將軍) : 옥 휘장을 친 장군, 즉 병마절도사를 지칭. 1849년 8월 당시 북병사는 이규철(李圭徹)이다. 재임기간은 1849.3.11. 제수~1850.4.4. 이임발령
주189) 활연(豁然) : ①눈앞을 가로막은 것이 없이 환하게 터져서 시원스러운 모양 ②의문(疑問)되던 것을 막힘없이 횅하게 깨달은 모양
* 활연대오(豁然大悟) : 마음이 활짝 열리듯이 크게 깨달음을 얻는 일
* 활연관통(豁然貫通) : 환하게 통(通)하여 이치(理致)를 깨달음
< 경성 남문 >
< 경성 원수대비와 비각 >
102. 경판운(鏡判韻) 경성판관의 시운
서생칠십소화명(書生七十髾華名)
통판과주족가영(通判(주190)过州足可榮)
친기삼천마하주(親騎三千摩下走)
호비이팔장전영(胡婓二八帳前迎)
조정덕의유수속(朝廷德意柔殊俗)
절제군용중본영(節制軍容重本營)
융무민우수우좌(戎務民憂酬右左)
양년파역건신정(襄年頗亦健神精)
서생 나이 칠십에 백발상투로 이름났는데
통판이 이 지방을 살펴보니 넉넉함이 가히 왕성하네
친위기마 삼천이 말달리기 연마하고
젊은 여진 계집종이 두 줄 여덟 명으로 장막 앞에서 안내하네
조정의 덕의로 유순하게 따르는 풍속이 있고
중요한 본영인데 군대의 모습이 절도 있고 통제된다네
오랑캐 관한 일과 백성의 근심은 좌우에서 대처하니
나이 들어 치우침 역시 정신이 건강해지네
주190) 통판(通判) : 고려(高麗) 때 대도호부(大都護府)의 판관(判官)
제4장. 경성(鏡城)에서 시주(詩酒)를 벗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