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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도'라는 섬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쁨을 만나게 됐다. 그것은 작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여기서 사목하다보면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신자 가정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가족사항은 물론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맞출 수 있다. 대소사를 챙기며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다보니, 마치 나도 가족의 일부분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 기쁨은 이곳이 아니면 만나기도 힘들고, 또 느낄 수도 없는 '신앙의 빛'으로 다가온다. 판공성사 때가 돌아오면, 직접 가정을 방문해 가정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함께 한다. 미사 후에는 식사를 나누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누군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면 모두들 나서 병문안을 하고, 또 어느 집 자식이 결혼을 한다 하면 우르르 찾아가 축하해 주고 기쁨을 나눈다.
이제는 집안에 아주 작은 일이라도 생기면 본당신부인 나한테도 잊지 않고 꼭 연락이 온다. 이렇게 신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본당신부로서의 삶을 풍요롭게 채우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압해도에서 아주 귀한 보물을 발견하게 됐다. 늘 함께 모여 기도드리고 식사를 나누는 일이 으레 시골본당의 모습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횟수가 거듭되면서 중요한 무언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이곳의 장맛과 김치 맛이 유난히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광주대교구 소속으로 사제생활을 하며 내로라하는 남도 지방 먹을거리는 다양하게 경험한 바 있다. 특히 고마우신 신자분들 덕택에 맛있는 된장이나 고추장, 김치는 늘 풍요롭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압해도라는 섬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맛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정답은 '소금'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소금이 아닌, '햇볕과 바람과 사람이 일궈낸 인고의 새하얀 결정체'라는 천일염 말이다. 압해도에는 한국을 대표할 정도로 그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는 천일염이 있었다.
본당 신자들은 보통 5년 이상 묵은 천일염을 사용해 된장과 고추장, 청국장 등을 담그고 있었다. '장' 뿐만이 아니라 김치를 비롯한 모든 음식에도 압해도 천일염을 사용했다. 그저 '소금은 짜고 몸에 안 좋은 것' 정도로만 인식했던 무식한(?) 신부에게 씹을수록 달고 고소한 맛이 나는 압해도 천일염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곧이어, 사목자로서의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내려주신 선물이 아니겠는가. 그래. 가난한 우리 공동체에 하느님께서 얼마나 큰 선물을 내려주셨는지를 신자들에게 알려주자. 스스로를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체념하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선물이 얼마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는지를 체험토록 해주자'
그렇게 해서 '소금장수 신부'가 탄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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