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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12
고난받는 종 (이사야 53장)
2022-11-27 (대림절 첫주)
1달뒤면 크리스마스 입니다. 이번 주일은 대림절 첫주로 교회는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림절입니다. 오늘은 아침에는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듣고 믿어 순종합시다.
이사야서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 7백여 년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사야 때 처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몸을 가지고 이 땅에 계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예수께서 아직 육체를 입고 오지도 않으셨을 때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 메시아를 확신으로 전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분께서 오셔서 우리는 눈으로 볼 것입니다. 지금은 재림을 기다립니다. 재림의 날이 올 때 까지 우리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던 그 성령님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봅니다.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교회를 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고난받는 종에 대한 복음을 듣고 믿어 순종합시다.
첫째로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그분의 씨로 만드셨습니다.
둘째로 복음말씀을 믿고 순종합시다.
오늘 이 예배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 안에서 새롭게 다가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순종하는 삶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그분의 씨로 만드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그 몸은 하늘에 계십니다. 부활하셨지만 도마에게 손과 발의 십자가 상처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어떤 모습인가? 계시록 5:6절에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죽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지만, 계속 십자가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어떻게 할까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못생겼던 것 같습니다.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그렇게 못생긴 분으로, 초라했을 것입니다. 마른 땅에서 올라온 연약한 순과 같은 분이 되셨습니다. 탐낼만한 것이 없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분으로 예수님은 나타났습니다.
3절에 "사람들로부터 멸시받고 버림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병치레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주 멸시받고, 질병을 앓고, 배척되고, 고통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그 때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누가 너에게 성전에서 가르칠 권세를 주었느냐?"하면서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침 뱉고, 채찍질 했습니다.
4절에 "그분 자신은 우리의 질고(병)을 지고 우리의 슬픔(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낮아 지셨습니다. 마태복음 8:17절에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친 것은 이사야 53:4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줄 때 병의 고통을 직접 지고 가져 가셨습니다.
청각과 언어 장애를 가진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실 때였습니다. 장애가 있는 귀와 입에 손을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막 7:34). 그 장애인이 마음에 서려있던 그 "한", 화를 내도 화를 낼 수 없었던 그의 "한", 그 답답함, 불편함 그것을 그의 울부짖음을 대신 울부짖으면서 고쳐주셨습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기서 허물은 하나님을 반역한 반역죄를 말합니다. 우리의 반역 때문에 그분의 몸은 십자가에서 부서지고 창에 찔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모든 사람들의 죄에 대한 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과 평화, 하나님과 화해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우리는 망가지고, 영혼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가난하고, 겁에 질리고,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았기 때문에 채찍에 맞아서 상했기 때문에 우리는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영적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잘한다' 생각해서 교만하면서 우리 원하는 데로 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도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길로 갔습니다. 자기 좋은 데로 그냥 행해버렸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에 대한 벌을 그리스도께 내리셨습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공짜로 은혜로 구원받지만 그리스도는 그 모든 희생을 치렀습니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남을 구원한다고 말한 자여 네가 지금 너를 구원해보라" (마 27:40). 십자가에 죽으셔야지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데, 죄인들은 그의 밑에서 조롱하고 있습니다. “내려와서 능력을 보여 달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이었습니다. 내려오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시는 거기에 예수님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살장에 끌러가는 어린 양처럼(도살장이라는 것은 소나 짐승을 죽여서 고기를 만드는 곳을 도살장이라고 합니다), 털 깍는 자 앞에 양같이 잠잠하여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고 예수님 비난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침묵으로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눅 23:34,40).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백성이 하나님을 향한 반역죄 때문에 예수께서 죽임당했음을 그 백성은 알지 못했습니다.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죄없으신 그 분이 무덤이 "부자와 함께"했습니다. "악인과 함께"의 다른 말입니다. 사회가 부패할 때는 나쁠 때에는 대게 착한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또 악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그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악인들이 죽듯이 예수님도 죽으셨습니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예수님은 자기 온 존재를 "속건 제물"로 드렸습니다. 속건제는 성전에 있는 물건을 잘못 다루어 죄를 범했을 때, 무언에 대한 무언가 보상을 취해야 할 때는 속건 제물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고난보다 더 큰 고통은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버림받은 분으로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속건 제물로 그분을 드리고 죽으셨습니다.
10절, "그러면 그가 씨를 보고 날들은 길 것이요." "씨"라는 것은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죽었지만 후손을 볼 것이요. 날들은 길 것이요. 영원한 영생을 얻을 것이요. "여호와의 뜻이 그의 손을 통해 번창하리라" 속건 제물로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후손들이 생겼습니다. 예수 이름을 믿는 여기 있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새로운 후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셔서 부활 생명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들에게는 죄를 이기고 예수님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는 새로운 후손 교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누리시고,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영생을 누리도록 하셨으니까, 예수님의 날들은 엄청나게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손(孫)을 통해서 그날이 번창했습니다.
11절에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그가 그의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할 것이며" 죽었다가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은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백성들, 교회를 만드시고 아주 만족하십니다. "자기 지식으로 의롭게 하리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그것이 예수님의 지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복음에 관한 지식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일과 십자가의 복음으로 이제 우리들을 의롭게 하시고 있습니다. "나의 의로운 종" 예수님 그분이 그들의 죄를 바로 그분이 담당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12절에 몫은 상속물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상속물로 소유하십니다.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겠다"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예수 믿는 우리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부활하실 때 에베소서 4장 8절에서는 "그가 올라가시면서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단에 사로잡힌 우리들을 사로잡아서 예수님의 전리품으로 이제 받으셔서 우리를 새로운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것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12절, 이는(왜냐하면)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범죄자들, 하나님을 반역한 자들 중 한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졌고, 반역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자기 영혼을 삶과 인격 전체를 죽임당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도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 기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의심에 빠지기도 하고 연약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감당하고 계십니다. 우리 지은 죄를 그리스도께서 감당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몸을 입고 하시는 사역은 끝났지만, 그 십자가와 고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그 일은 성령을 통해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기 때문에 우릴 위해 고난 받았기 때문에 새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복음말씀을 믿고 순종합시다.
1) 믿고 고백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먼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사야가 전하는 복음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고난받는 종이 오셔서 전해조 믿지 않았습니다ㅣ. 요한복음 12:38절에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요한복음 12:41-42절에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드러나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깨닫지만 고백하는 데까지 완전한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수를 믿으면 손해가 오니까 가족으로부터 따돌림 당하니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가진 영광이었고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것도 고난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2)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로마서 10:16절에서 이사야 53:1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0:16절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사람들은 복음에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로마서 10: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바로 요한복음 10:42절에 나왔던 사람들이 “드러내어 말한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서 알고 "내가 참 예수님의 복을 얻겠구나, 천국 좋겠구나" 믿음이 어느 정도 생기지만 그것은 믿음의 시작입니다. 믿음이 완성되는 것은 입으로 분명히 시인하고 사람들에게 나는 예수 믿었다고 선언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 전할 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사람들이 두려워서 입으로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2) 세상 (국가,직장, 가정)에서 성도의 고난과 성도끼리 위로
베드로전서 3:8절에서 "형제들끼리 동정하라" ‘ 함께 고난 받는 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함께 고난을 받는 데 그 이유가 앞쪽에 계속 설명한대로,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고난 받다가 왔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도 고난 받고 직장에서도 고난 받고 가정에서도 고난 받았습니다. 그래서 서로 동정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노예들아 부당하게 고난 받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참으면 복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구원에 이른다. 불신 남편을 가진 아내들이여 너희들이 선행을 하면서 남편을 구원할지 어떻게 알겠느냐?" 그 고난의 흔적들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1:29절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 것은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 받는 은혜를 주셨다. 예수 믿고 예수 믿는 고난 때문에 우리가 은혜로 믿고 구원 받았지만 이제 믿고 고난 받은 우리는 예수님 위해서 우리도 고난 받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복입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영광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 안에서 죄 용서 받고 그 영광에 참여합니다. 믿은 우리들은 이제도 예수님이 됩니다. 고난 받으신 예수님처럼 되어서 세상에서 예수님을 대신해서 고난 받고 고난 받은 성도들을 만나서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줍니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고난에 참여하는 공동체로 계속 성숙해 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