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Middle East) 지역의 역사와 문화
5. 중동지방의 신기한 이야기들<2>
팔미라(Palmyra) 유적(시리아) / 페트라(Petra) 유적(레바논) / 통곡(痛哭)의 벽(이스라엘)
그 밖에도 이곳 중동지역에는 히타이트 고대왕국(BC 20세기)의 유물유적은 물론 이집트 파라오와의 전투장면 부조(浮彫)가 지금도 남아있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方舟)’도 이곳 이야기이다.
당시, 중국에서 낙타에 비단을 싣고 타클라마칸(Taklamakan Deser) 사막을 지나거나 천산북로(天山北路)와 천산남로(天山南路) 등을 거쳐 수만 킬로를 오가던 실크로드(Silk Road)의 종착점인 유럽과 만나는 지점도 이곳이었다.
당시 그 경유지의 한 곳이었던 고대도시 팔미라(Palmyra) 유적도 있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잃어버린 도시 페트라(Petra) 유적도 현재 이곳 중동국가인 요르단(Jordan)에 있다.
BC 6세기,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야기를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드는데 그 오페라의 대표적인 곡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또 AD 70년,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성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성벽(城壁)인 ‘통곡의 벽(Wailing Wall)’도 있는데 현재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의 성지(聖地)다.
AD 6세기,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Muhammad/Mohamet)가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로 기록한 것이 꾸란(Koran), 혹은 40세에 알라(Allah)의 계시를 받은 뒤 적었다고도 하는 것이 이슬람 성서인데 모든 종교의 완성체라 주장하고 알라(Allah)를 유일신으로 모신다. 무함마드는 출생지인 메카(Mecca)에서 냉대와 박해로 시달리자 AD 622년, 400km 북쪽의 메디나(Medina)로 거처를 옮기는데 이것을 헤지라(Hegira-聖遷)라 부르고 이슬람력(曆)의 기원(起源)으로 삼는다. 그러나 모든 기도를 드릴 때 제단(祭壇)을 자신이 태어난 메카(Mecca)로 향하도록 했고, 일반가정에서도 기도를 올릴 때 반드시 메카 방향으로 앉아 기도를 드린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바미안(Bamiyan) 불상(佛像:높이 55m)은 AD 6세기 간다라 미술 양식으로 조성된 거대한 부처님 석상인데 이슬람 집단인 탈레반이 집권 후 로켓포를 쏘아서 파괴해버렸다.
이 석상(石像)은 우리나라 신라(新羅) 시대에 혜초(慧超)스님이 인도와 중동을 두루 여행하며 쓴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도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의 막고굴(莫高窟) 중 제17호 굴인 장경굴(藏經窟)에서 발견된 혜초스님의 여행기는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알라무트 요새(매의 둥지: 이란) / 마사다 요새(이스라엘) / 바미얀 석불(파괴 전) / 파괴 후(아프가니스탄)
아시아 대초원의 유목민이었던 몽골족은 칭기즈칸이 집권한 후 중국 전역은 물론, 유럽까지 쳐들어가며 대국을 건설한다. 당시 이란 남부는 이슬람 시아파인 어쌔신(Assassin)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알라무트(Alamut) 요새를 세우고 온갖 잔인한 일들을 저질렀던 나쁜 집단이었다. 그들이 있던 요새가 ‘매의 둥지’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졌었는데 몽골족의 공격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산의 장로(長老)라 불리던 요새의 주인 하산(Hassan)은 건장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암살자(暗殺者)들로 양성하는데...
특수교육을 통하여 신출귀몰, 다양한 암살기술을 가르친 후 이슬람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돈을 받고 제거해 주는 집단으로, 성공하고 돌아오면 마약(해시시)에 취하게 하고 최고의 음식, 아름다운 미녀들로 파묻혀 천국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했다고 한다. 만약 암살에 실패하고 잡히면 그 자리에서 알라(Allah)를 위한 순교(殉敎)라고 교육받았으니 웃으며 자살...
사실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물속에서, 벽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나 목표물을 제거하고는 그림자처럼 사라진다고 했는데 이 귀신집단을 몽골족들은 하루아침에 없애버린 것이다.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은 몽골족이 지나간 자리는 풀 한 포기도 살아남는 것이 없다고 했단다.
울고 있던 아이도 ‘몽골족이 나타났다~’ 하면 곧바로 울음을 뚝 그쳤다는....
하나 더 이야기하면 기원전 1세기, 이 지역은 유대 왕인 헤롯(Herodes I)이 통치했는데 예루살렘 성전, 마사다(Masada) 요새, 헤로듐(Herodium) 요새를 건축한 왕이다.
당시 로마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가 통치했는데 세계정복을 꿈꾸던 로마가 쳐들어오자 헤롯은 마사다 요새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버티다가 병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당시 절벽 위에 세워진 마사다 요새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로마군이 몇 년을 걸쳐 공격해도 함락이 되지 않은 요새였는데 성안의 유대인들은 마지막으로 모여 회의를 한 후 제비를 뽑아 10명을 뽑았다.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전 가족을 자신이 모두 죽이고 본인은 그 옆에 누워 기다린다.
제비에 뽑혔던 열 명은 전 요새를 돌며 가족들 시체 옆에 누워있는 동료를 다시 죽인다.
그리고 모인 열 명은 다시 제비를 뽑아 한 명이 누워있는 아홉 명을 차례로 죽이고 마지막으로 본인도 자살....
이튿날 아침 로마군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시작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 몇 년 만에 비로소 요새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는 곳마다 웃는 표정의 시체들이 누워있었는데 세어보니 총 960구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로마와 유대왕국의 7년간의 전쟁은 끝났지만, 다시 50여 년 후 마사다의 비극에 응어리진 원한 때문이었을까 유대인들의 항전(抗戰)이 다시 시작된다.
이곳을 주제로 한 영화들도 수없이 많은데 ‘아라비아의 로렌스’, ‘벤허(Ben Hur)’ 등의 기억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