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7월 1일 월삭예배
○ 마가복음 5장 35-36절 죽은 자녀를 살리는 구원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사람이 살다보면 가정적인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지난번에는 혼인집에 닥친 위기 상황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결해주셨는지에 대하여 들으셨습니다. 오늘은 딸이 죽을 병에 걸린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우리도 아이 둘을 키우면서 어린 아이들이 한 밤중에 열이 오르고 계속 울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도 하면서 대파의 뿌리도 끓여 먹이면서 아이를 지켜보았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겪는 위기의 순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회당장의 딸의 경우는 그보다 더 심한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의사들에게 데려가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력있는 의사들도 하나같이 “이 아이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습니다”하며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딸을 사랑하는 이 아버지는 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써 차라리 자기 목숨을 내주면 내주었지 딸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들려온 생각은 갈릴리에 곳곳에 다니면서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선지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아무리 중한 환자도 살아나고 심지어 죽은 과부의 아들도 살려냈다는 그 예수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딸을 살려달라고 해야겠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회당장이라는 직분도 딸의 죽음 앞에서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화당장은 율법을 고수하며 지키는 직분입니다.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며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 율법도 안지키는 것같고 개념도 없어 보이는 시골의 나사렛 목수에게 찾아갔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는 바리새인이나 율법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곤욕을 면치 못하고 회당장이라는 직분조차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자신의 체면도, 염치도, 권력도, 명예도, 종교적 신념도 죽은 딸을 살려낼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가족들의 죽은 영혼을 누가 살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살릴 수 있습니까? 아니면 그 가족이 만나는 친구들이 살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구원은 예수님 외에 다른 이로써 주시지 않으십니다. 구원은 자기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냐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자기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자기 믿음으로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없고 병든 자를 고칠 수는 없습니다. 자기 믿음으로 자기도 고칠 수 없고 자기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고칠 수 없습니다. 자기 믿음의 문제는 그 대상이 누구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상을 신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자기 믿음으로 그 신에게 달려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런 저런 신앙의 체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그 신을 입증할 수 있는 교리도 없고 실제적인 경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이 회당장 때에도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셨고, 초대교회 시대에서도 베드로 안에서 다비다를 살려내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통해 유두고를 살려내셨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구원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구원은 베드로나 사도 바울,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맞춰져 있었고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증거하셨기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난 참 믿음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당장은 집에서 보낸 사람으로부터 절망적인 소리를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다가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예수님에게 있는 능력이 그 여인에게 빠져 나가 그 여인을 치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칭찬하고 계실 때 야이로의 집에서 온 사람이 야이로에게 “이제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선생을 괴롭게 마소서”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이 말을 가만히 보면 회당장이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인 수고를 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말씀을 마치시고 회당장을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네 딸이 살아나리라 그러니 나를 안내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회당장에게 있어 병들어 죽은 것보다 죽었는데도 살리시는 예수님 자신을 증거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병든 소녀를 치료하시는 것이나 죽은 소녀를 살리시는 것이나 똑같이 쉬운 것입니다.
회당장의 집에 도착해보니 이미 아이의 시신을 방에 눕혀놓고 곡하는 사람들을 불러 곡을 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구슬픈 악기소리와 곡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고 여기 저기서 떠드는 사람들과 우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예수님는 그들을 보시고는 “그만 떠들고 그만 울라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자기들이 죽은 것을 확인했는데 잔다고 하니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아무렴 죽은 것도 모르고 산 것도 모를까봐 저런 소리를 하나?’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비웃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녀의 부모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누워있는 침상으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면서 “소녀야 내가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면서 아람어로 “달리다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소녀의 영이 그에게 들어가면서 소녀가 일어나 돌아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소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는 황급히 나가 먹을 것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딸에게 주었습니다. 딸은 그 음식을 받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회당장의 집은 초상집이 생명의 부활을 한 집이 되었습니다. 초상집이 기적의 집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구원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회당장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달려간 것처럼 오늘날도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영적으로 죽어있다면 그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예수님께 믿음으로 달려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예수님 자신에게 달려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그들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능력과 힘으로 예수님께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구원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구할 때 일어납니다. 그런데 누가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구하고 여러분들이 모시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죽은 자녀들을 예수님께서 만나도록 해줘야 합니다. 교회나 목회자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에게 인도해줘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자녀와 성령에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종을 만나 하나님의 종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 스스로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가면 거기에 생명의 구원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의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여러분의 집으로 모시고 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의 가정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빌립보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보고 믿으라고 하십니까? 간수보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간수 자신이 믿어야 온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인 법칙이며 그 법칙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를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그 구원의 주님께서 이제 여러분들의 인생을 새롭게하신 것처럼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인생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난 소녀에게 먹을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죽었다가 살아난 일에 비하면 먹는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하찮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작은 소녀의 작은 욕구조차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음식을 먹는 것을 보는 그 부모와 아이가 느끼는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요?
여러분 예수님께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맡기십시오. 그들을 살려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살려주시면 여러분의 자녀들의 인간적인 필요에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들이 여러분들에게서 영적인 공급과 육적인 공급을 모두 소중히 여기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십시오. 그들의 생애 역시 하나님의 영광과 평강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가정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