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제75권
59. 항가제바품(恒伽提婆品)을 풀이함
【經】 그때 이름이 항가제바(恒伽提婆)라는 한 여인이 대중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이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6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겠으며, 반야바라밀에서 말씀하신 대로 모두 행하겠습니다.”
이때 여인은 금꽃ㆍ은꽃과 그리고 물과 물에서 나는 꽃과 갖가지로 장엄한 공양거리와 금실로 짠 천[疊兩張]을 부처님께 뿌렸다.
그러자 그것은 부처님의 정수리 위의 허공 가운데서 네 기둥으로 된 보대(寶臺)로 변했으니, 단정하고 아주 아름다웠다.
이 여인은 이 공덕을 가져다 온갖 중생들과 함께 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했다.
그때 세존은 이 여인의 깊은 마음의 인연을 아시고 곧 빙그레 웃으셨다.
모든 부처님의 법에서와 같이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옥색 등의 갖가지 빛이 입으로부터 나와서 시방의 한량없고 끝이 없는 부처님 나라를 두루 비춘 뒤에 다시 돌아와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는 정수리로 들어갔다.
그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 때문에 빙그레 웃으셨는지요?
모든 부처님께서는 인연이 없으면 웃지 않으시는 법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가제바 누이는 미래 세상에 부처님이 되리니, 겁의 이름은 성수(星宿)요, 부처님의 명호는 금화(金華)라 할 것이니라.
아난아, 이 여인은 여자 몸을 마치고 남자의 형상을 받아 장차 아촉불(阿閦佛)의 아비라제(阿毘羅提) 국토에 태어나서 그곳에서 범행(梵行)을 닦을 것이니라.
아난아, 이 보살은 그 국토에서도 이름을 금화(金華)라 할 것이며, 이 금화 보살은 그곳에서 목숨을 마치면 다시 다른 지방의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서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을 떠나지 않으리니,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한 누각[觀]으로부터 다른 한 누각에 이르면서 나서부터 죽기까지 발이 땅을 밟지 않는 것과 같으리라.
아난아, 이 금화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부처님을 뵙지 않는 일이 없으리라.”
때에 아난이 생각하기를,
‘이 금화보살마하살이 뒤에 부처님이 되었을 때에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이는 것은 마치 부처님의 모임과 같다고 알겠구나’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아난의 생각을 아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금화부처님 때 보살마하살의 모임은 부처님의 모임과 같을 줄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 금화부처님의 비구승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 도저히 수로는 셀 수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나 되리라.
아난아, 이 금화보살이 부처님이 되었을 때 그 국토에는 위에서 말한 뭇 악(惡)이 없을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여인은 어느 곳에서부터 덕의 근본을 심고 선근을 심었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인은 연등부처님[燃燈佛]에게서부터 선근을 심었고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이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였느니라.
또한 금꽃을 연등부처님 위에 뿌리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였느니라.
아난아, 나도 그때에 다섯 송이의 꽃을 연등부처님 위에 뿌리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였느니라.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의 선근이 성취된 것을 아시고 나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셨으니,
이 여인은 나에게 수기주시는 것을 듣고 발심하면서 말하기를,
‘저도 장차 오는 세상에 이 보살과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하였느니라.
아난아, 그러므로 이 여인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처음 발심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여인은 오래전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익히고 행해 온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이 여인은 오래전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익히고 행하였느니라.”
【論】
【문】 이러한 많은 대중들이 국토를 청정케 하는 행에 대한 말씀을 들었는데, 무엇 때문에 이 여인 한 사람만이 국토를 청정케 하겠다는 원을 세우는가?
【답】 국토를 청정케 하겠다는 원을 세운 이들이 많았지만 다만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며,
여인은 성품이 가볍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여러 세상 동안의 습기(習氣) 때문에 말을 꺼낸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여인은 도를 얻을 분한이 있었거니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한이 없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 법은 그렇지 않아서 중생의 업의 인연을 따르니,
마치 좋은 약은 모든 병을 다 치료하면서 귀한 이나 천한 이를 가리지 않는 것과 같다.
비록 또 여인은 지혜가 얇다 하더라도 전생에 지은 업의 인연으로 수기를 받아야 했었으며,
마음이 나서 말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신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시다가 수기를 주셨다면 사람들은 의심하기를,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이 여인 혼자에게만 수기를 주실까?’라고 할 것이므로,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의 하는 말을 빌미삼아 수기를 주신 것이다.
【문】 무엇 때문에 이름을 항가제바(恒伽提婆)라 하였는가?
【답】 온갖 것에는 이름이 있어서 식별(識別)하는 것인데 그 뜻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 여인의 부모가 항가신(恒伽神)에게 공양하고 이 딸을 얻었기 때문에 항가제바라 한다.”라고 한다.
항가(恒伽)는 바로 강물의 이름이요, 제바(提婆)는 하늘[天]이라는 뜻이다.
이 여인은 복덕의 인연으로 부잣집에 태어나 부처님 법을 듣고 믿으면서 좋아했기 때문에 금은의 보배 꽃과 금실로 짠 위아래의 옷이며 아울러 자기 몸을 장엄한 영락 등의 공양거리를 부처님께 올린 것이요,
부처님께서는 수기로써 보답하신 것이며 이 여인이 전생에 했던 일을 관찰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신[微笑] 것이다.
이 빙그레 웃는 뜻에 대해서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이 가운데서는 조그마한 인연이면서도 큰일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셨다.
【문】 이 여인의 복덕은 마땅히 오래전에 여인의 몸을 바꿨어야 했거늘, 무엇 때문에 아촉불의 나라에 가서야 비로소 여인의 몸을 바꾸는 것인가?
【답】 세간의 5욕(欲)은 끊기 어려운 것이다.
이 여인은 집착과 갈망의 마음이 많았기 때문에 비록 여러 세상에서 모든 복덕을 행했다 하더라도 남자의 몸을 얻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수기를 얻고 모든 번뇌가 얇아진지라 그 때문에 아촉불의 나라에서 비로소 남자의 몸을 얻게 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여인은 전생에 사람들이 여인을 업신여긴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여인의 몸으로 수기받기를 원한 것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은 등의 인연으로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고 수기를 받은 것이다.
또 경에서는 여인의 다섯 가지 장애[女人五礙]를 말씀하셨지만 수기를 받지 못한다고는 말씀하지 않았으므로 더 따지지는 말아야 한다.
아난은 이 여인이 한량없는 겁 동안에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공덕을 널리 쌓아 장차 오는 세상에 부처님의 세상을 청정하게 할 수 있고 그 안에 있는 보살들은 모두가 32상(相)ㆍ80수형호(隨形好)와 한량없는 광명이 있다 함을 들으면서,
이 때문에 아난은 찬탄하기를,
“희유한 일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면 부처님의 모임과 같이 되겠구나.”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옳다 하시자 아난 등은 의심하기를,
‘이 여인이야말로 희유하구나. 조그마한 법을 들었는데도 큰 과보를 얻으니 말이다’고 하고,
이 때문에 아난은 묻기를,
“이 여인은 어느 곳으로부터 모든 덕의 근본을 심었는지요?”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정광불(錠光佛)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실 때에 이 여인은 금꽃을 가지고 부처님께 뿌리며 원을 세우되
‘이 사람이 뒤에 부처님이 되셨을 때에 저에게도 수기를 주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나니,
그곳에서 선근을 심었고 이제 과보를 얻었느니라”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