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면서도 방탕할 수 있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쉬었습니다. 감기 증상으로 두통이 심하게 와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것도 힘들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었습니다. 쉬는 중에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이 많아도 모든 것을 중단하고 건강부터 회복해야 하듯이 주님과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영성일기를 쓰기 어려울 정도로 바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무 바쁜 것이 아니라, 방탕하게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선한 일로 열심히 살았다면 잘 산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선한 일로 열심히 살았어도 방탕하게 산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21장 34절에서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를 같은 종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쓰지 말아야 할 것에 마음과 시간을 허비한 것도 방탕함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늘 교회 일에 바쁘지만 탕자의 형처럼 영적으로는 방탕한 자가 많습니다. 만약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고, 말씀을 읽고 묵상할 시간이 없었고, 주님과 하루를 돌아보면서 일기를 쓸 시간이 없었다면 목회를 했다 하더라도 방탕하게 산 것과 다름 없는 하루를 보낸 것입니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오랫동안 저는 주님을 제가 목회 잘 하도록 도와 주시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기도는 했지만 늘 “교회 부흥되게 해 주세요”, “설교 잘하게 해주세요”라는 식의 기도만 했습니다. 그 때는 주님과의 친밀함이 좀처럼 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잘 하려는 마음보다, 그저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주님과 하나 되고 친밀히 동행하기만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주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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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어제, 열심히 살면서도 방탕할 수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좋은 일로 바빴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진 것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그것은 방탕한 삶을 산 것과 같은 것이고 게으른 종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깊이 회개하고 또 애통하였습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도, 목회 계획도, 회의도 다 내려 놓았습니다. 제겐 건강 회복만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 회복이 더 필요하였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4-7).
A.W. 토우져는 말했습니다.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은 조만간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 가능성이 많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주님과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면 즉시 멈추고, 잠잠히 주님 안에 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과의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 대단히 잘못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어떤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할지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큰 사고를 당하거나 죽을 병에 걸리면 어차피 할 수 없을테니 말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그저 생수의 강이 흘러 나가게 될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담임), 페이스북에서
첫댓글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어디로 잡혀 있느냐는 더 중요합니다. 주님과의 일대일 만남에 늘 갈급해하시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과 도전을 주시는 유기성 목사님이 열심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에 대해 인상적인 체험담을 들려주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생각할 때에 감사가 됩니다. "우리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