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퇴계로, 국가정보원 경제안보팀 사무실. 11월의 어느 화요일, 오전 7시 22분.
강민준 수사관은 사건 파일을 열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파일 표지에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피터 K」**
사건의 발단은 사흘 전, 한 통의 제보 전화였다. 발신자는 자신을 서울 주재 어느 외국 금융기관의 내부 직원이라고만 밝혔고, 목소리는 변조되어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나바로의 기고문을 보셨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칼럼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그 기고문이 나오기 48시간 전에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누군가는 그 정보를 이용해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강민준은 파일 안의 첫 번째 자료를 꺼냈다. 원유 선물 거래 내역. 이란 충돌 사건 발생 사흘 전부터 시작된 비정상적인 매수 포지션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수천억 원 규모의 포지션.
그리고 이란 사태가 터진 당일, 유가가 배럴당 17달러 폭등하는 순간 그것들은 모두 청산되었다.
*누가 알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가.*
그것이 사건의 전부였다.
오전 10시 15분. 여의도 IFC 빌딩 17층.
강민준은 인터뷰 대상자의 얼굴을 살폈다. 손재원. 34세. 자산운용사 수석 애널리스트. 이란 사태 당일 밤을 사무실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된 인물이었다. 거래 내역상 그의 회사가 운용하는 펀드 중 하나가 해당 포지션과 일치하는 타이밍을 보이고 있었다.
"그날 밤 혼자 계셨습니까?"
"팀장님도 계셨어요. 수진 씨가요."
"사건 발생 전 포지션을 취한 이유는?"
손재원은 조금 웃었다. 방어적인 웃음이었다.
"이란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어요. 리스크 헤지 차원에서 롱 포지션을 잡은 겁니다. 그게 범죄입니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시죠?"
강민준은 파일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재원의 개인 계좌 거래 내역이었다. 펀드와는 별도로, 그의 사적인 계좌에서도 유가 관련 파생상품이 거래된 흔적이 있었다.
재원의 입이 천천히 닫혔다.
"변호사를 부르고 싶습니다."
오후 2시 30분. 국정원 본청 3층 회의실.
강민준의 상관, 박 팀장이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었다. 그 앞에 팀원 네 명이 앉아 있었다.
"거래 자금의 출처를 역추적했더니 재밌는 게 나왔어요."
박 팀장이 보드에 화살표를 그렸다.
홍콩 → 싱가포르 역외 계좌 → 서울 증권 계좌.
"홍콩 계좌의 최종 실소유주가 특정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계좌와 과거에 거래한 이력이 있는 또 다른 계좌가 하나 있는데, 그게 베이징에 있는 국영 에너지 기업 산하 투자법인 명의예요."
팀원들이 조용해졌다.
강민준은 입을 열었다.
"중국이 개입되어 있다는 겁니까?"
"아직 단정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또 있습니다." 박 팀장이 다른 서류를 들었다. "이란 사태 직전에 중국 측 금 보유고가 급격히 늘었어요. 반면 특정 이란산 원유 수입 계약이 돌연 지연됐습니다. 석유를 살 달러가 없어서 금으로 대체하려 했다는 시장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중국은 사전에 이 사태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강민준은 화이트보드를 응시했다.
그림이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커질수록 진짜 용의자는 점점 안개 속으로 숨어들었다.
오후 5시. 강민준은 혼자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나바로의 기고문을 다시 읽었다.
*이란이라는 지정학적 악재가 사라진다면 국제 유가는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단순한 정세 분석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제보자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누군가가 이 기고문이 나오기 48시간 전에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문이 실리기 48시간 전. 그것은 기고문이 편집부에 접수된 시각과 일치했다.
강민준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정보가 새어나간 것이 아니다. 기고문 자체가 신호였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 글이 실리기로 결정되는 순간,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계산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포지션을 잡았다. 범인은 정보를 훔친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정교한 무언가를 한 것이었다.
그는 파일을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나바로는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누군가와 그는 연결되어 있었는가.*
이틀 후. 도쿄 나리타 공항 인근 비즈니스 호텔.
강민준은 카운터파트인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다나카 요시오와 마주 앉았다. 다나카는 60대 초반의 조용한 남자였고, 말수가 적었으며, 말할 때는 언제나 정확했다.
"일본 측도 같은 패턴을 포착했습니까?"
"포착했습니다." 다나카가 파일을 내밀었다. "오사카와 도쿄 소재 두 개의 투자법인이 비슷한 타이밍에 유사한 포지션을 취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한국 홍콩 계좌와 간접적으로 연결된 흔적이 있습니다."
강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한국과 일본, 그리고 홍콩을 동시에 활용했습니다. 단일 주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나카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 모든 포지션이 청산된 시각과 나바로 기고문이 발행된 시각 사이의 간격이 정확히 14분입니다."
강민준은 손을 멈췄다.
14분.
인간이 기사를 읽고 판단하고 주문을 넣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알고리즘의 속도였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강민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구름 위로 일본 열도의 해안선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범인은 하나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란 사태가 종결되면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것. 나바로의 60달러 전망이 시장에 공개되는 순간, 고점에 잡힌 롱 포지션을 청산할 최적의 타이밍이 올 것이라는 것.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내부 거래 사건으로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더 큰 그림이 있었다.
이란 이후 세계의 에너지 질서를 누가,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동북아의 세 나라가 그 재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판을 짜는 자는 누구인가.
60달러라는 숫자는 단서였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창밖이 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민준은 파일을 다시 열었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 도착, 인천공항. 새벽 4시 17분.
강민준의 전화가 울렸다. 박 팀장이었다.
"잠깐이요."
"무슨 일입니까?"
"홍콩 계좌 추적이 막혔어요. 최종 실소유주 확인 직전에 계좌가 폐쇄됐습니다. 그리고…" 박 팀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란 쪽 상황이 정리되는 시점과 거의 동시에 동중국해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문건인데, 이게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요."
강민준은 공항 로비를 걸으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의 불길이 한곳에서 꺼지면, 그 불씨는 반드시 어딘가로 옮겨간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뻗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들어가는 즉시 팀 소집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자동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하늘에는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잠시 올려다봤다.
그리고 차에 올랐다.
*— 1권 완 —*
**작가 노트**: 경제 안보 수사관 강민준의 시선을 통해 유가 조작, 내부 거래, 지정학적 공작이 얽힌 사건을 추리해가는 구조로 구성했습니다. 원본 에세이의 피터 나바로 기고문, 중국의 금-석유 딜레마, 동북아 긴장 이동이라는 세 축을 각각 단서·용의자·사건의 확장으로 변환했습니다. 2권에서는 동중국해로 무대가 옮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