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 속 헤매이다 꿈에 죽는 것이로구나
아홉 명 형제자매들이 익산콘도에서 만나 하룻밤 자고 먹고 웃다 헤어져 돌아온 다음날 익산에 일흔여덟 살 둘째언니께서 형제자매 카톡방에 올리신 글이다. 민요를 배우러 다니고 있기도 하고 정이 흘러넘치는 둘째 언니가 흥타령 중 한 대목으로 언니의 마음을 대신했다. 먼 길 익산까지 왔다가 하룻밤 만에 서울로 가버린 형제자매에 대한 언니의 애틋한 사랑이며 꿈처럼 사라져버린 일흔 여덟 해 인생길의 허무함이다.
4월 초에 아르헨티나 언니네가 오셨다. 이때다 싶어 모이기로 했다. 여든한 살 큰언니부터 예순셋 막내인 나까지 칠남매가 노인의 대열에 들어서고 보니, 앞으로 함께 모여 웃고 울 날이 몇 번이나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 되었다. 몇 번이나 만날꼬? 그 말을 웃으며 가볍게 주고받던 때도 꿈속이었단 말인가.
막내이며 가장 젊다는 이유로 남편이 운전을 맡고 나는 총무가 되었다. 익산까지 운전하는 최서방이 고맙다며 센스만점 큰언니가 차를 타자마자 오만 원을 내밀었다. 팁이란다. 팁 받는 것 싫어하는 사람 없으니 최서방 입이 헤벌쭉 벌어지면서 우리들도 덕분에 모두 호호호 하하하 후후후, 웃음으로 가족 여행을 시작하였다.
할머니 아니랄까봐 손녀딸과 손자 자랑이 압권이다. 큰언니는 이번에도 의사 손녀딸과 장관 통역사 역할을 맡은 손녀딸 자랑이다. 세째언니와 네째언니는 어린 손자손녀 자랑이다. “연서가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아니? 민진이가 제 용돈 모은 것으로 꽃다발을 사오지 않았겠니? 그걸 보더니 샘이 나서 글쎄 집에 있던 꽃화분과 제 엄마 가방에서 봉투를 들고 와 나에게 주는 거 있지” 넷째언니도 지지 않는다.“시욱이 딸이 얼마나 얄밉게 이쁜지 말이야 남이라면 미워할 정도라니까” 나는 아직 손자손녀가 없으니 맞장구나 칠 수 밖에.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요즘 들어 어린 아가들을 엘리베이터나 산책길에서 만나면 꼭 이렇게 조심스레 말한다. “에구 귀여워라 발 한번 만져 봐도 되요?” 보드랍고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그 발! 할머니가 될 때가 된 것이다.
익산시 대붕암리 콘도에 가까워질수록 벚나무들은 울울창창 도로 양쪽에 즐비한데 만개해있을 거라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아직 꽃봉오리 채로다. 일주일 뒤에 올걸 그랬다고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 없는데 감성이 풍부한 아르헨티나 네째형부가 말씀하셨다. “자 벚꽃이 활짝 피었다고 상상하면서 보세요” 숭불사 옆 도로는 양쪽 벚나무가 어우러져 긴 터널을 이루었다. 벚꽃이 만개한 터널을 상상하면서 달려갔다. 때로는 상상이 아름다운 길을 안내한다.
형제자매들이 모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고스톱으로 보내고는 했다. 그러다보니 고스톱을 치지 않는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마련이었다. 무주 콘도로 갔을 때는 고스톱을 치느라 저녁에 그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남편만이라도 나와 함께 나서기를 바랐으나 고스톱 인원이 부족하다나 뭐라나. 혼자 쓸쓸하게 구경하다가 돌아왔다.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언니와 오빠와 형부들한테 화를 버럭 내고야 말았다. “가족 여행이 고스톱여행이네” 불만스런 내 말에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있겠는가.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하겠단다. 고스톱 한 판을 끝내고 금강 하구 쪽 공원 구경도 하고 배도 타고 배 안에 노래방이 있으니 놀아보자나.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이 불었고 금강 하구 쪽 강물은 푸르게 일렁였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두세 시간 뒤면 멋진 노을도 마주칠 만한데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뿌연 하늘을 통과한 햇빛이 뿌옇다.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하필이면 배는 아직 운항을 시작하지 않았단다. 기와로 지붕을 덮은 배는 물살에 출렁이는데 노래방이라도 열어줄테니 노래라도 부르란다. 누구보다 둘째언니의 끼와 흥을 구경하며 즐거워지고 싶은 네 자매들은 얼씨구나 배에 올라탔는데 노래방 기기가 보기에도 심하게 구닥다리다. 마이크 성능이 나빠서인지 목소리도 작게 나오고 자매들 셋은 한 곡씩 부르고는 목이 아파 못 부르겠다고 뒤로 물러서는데, 그래도 둘째언니의 춤과 어깨춤과 발놀림은 어찌나 자유롭고 유연한지 우리를 환호하게 했다. 깔깔거리게 했다. “저 언니는 누굴 닮았지? 외갓집 식구들이 흥이 많잖아 엄마도 얌전해보여도 어깨춤을 얼마나 잘 추셨게”
대낮부터 무슨 노래방이냐고 공원 주변을 빙빙 돌던 남정네들이 뒤늦게 합류했다. 넷째 형부나 내 남편이나 노래에는 일가견이 있어서인지 마이크 탓은 커녕 노래만 잘 불렀다. 목소리도 우렁차게 강물 저편까지 들릴 만큼이었으니. 흥이 돋우어졌다. 재주가 없는 사람이 도구를 탓한다더니 바로 우리 자매들이 그렇다고 자매끼리 눈을 맞추며 웃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서 숭불사로 향했다. 삼층석탑이 유명하다는데 삼층석탑보다는 그곳의 풍광이 눈길을 끌었다. 세월에 닳고 깎이고 문드러진 절 전체의 고풍스런 빛깔이 그러했고 절 뒤로 까까 지른 절벽에서 기우뚱 자라고 있는 늙은 소나무들이 그러했고, 절 앞뜰에 수백 년은 됐음직한 목백일홍과 은행나무가 그러했고 앞산에 스스스 소리를 내며 일렁이는 푸른 대나무숲이 그러했다. 세월의 흔적들은 무언의 교훈을 준다. 침묵하게 한다.
둘째 언니네가 사 주시는 오리주물럭과 토끼탕과 백숙을 배불리 먹고 콘도에 도착했다. 드디어 두 번째 판 고스톱. 허리 중 마지막 꼬리뼈가 다 닳아 오래 앉아있기를 힘들어하는 네째 형부를 보라. 베개를 가슴에 받치고 엎드려서 고스톱을 치고 있다. 불편하다는 말보다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자신을 조절하면서 재미있고 여유로운 표정과 목소리로 게임을 하신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더니, 고통보다는 즐거움 쪽으로 기울여 사신다. 칠십대여도 육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음의 비결이다.
아침밥이 늘 문제였다. 매번 둘째언니가 익산에 사신다는 이유로 고생을 하셨다. 이번에는 둘째언니 고생시키지 말고 아침밥을 사 먹자는 둥 누룽지를 먹자는 둥 컵라면을 먹자는 둥 방법은 다양하게 생각해냈으나 결국 또 둘째언니가 밥을 하고 국을 끓여서 반찬을 바리바리 싸 들고 새벽같이 달려오셨다. 인절미가 많아서 그것으로 아침밥을 대신하자는 말도 허사였다.
몸이 불편하여 침대가 있는 둘째언니네서 주무시고 오신 작은오빠가 말씀하셨다. “에구 둘째 누님이 밤새도록 끙끙 앓는 소리는 내며 주무셨는데 새벽 일찍 일어나 어느새 그 많은 것을 다 준비하신거야 또 누나 고생시킨 셈이지 죄송하네” 쭈꾸미를 데치고 돼지껍질을 푹 고아 그것으로 묵처럼 쫄깃한 먹거리를 만들고 쑥국까지 끓여 오셨는데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구수하고 맛있던지 인기 만점이었다. 마치 어머니의 밥상 앞인양 모두들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아침밥을 배불리 먹었다.
누군가의 노력 없이 누군가의 행복이 만들어지겠는가. 둘째언니네는 지금까지 가진 것 다 나누며 살아오신 분들이다. 남에 집에 가기보다는 자신의 집으로 사람을 오게 하는 분들이다.남에게 받기보다는 주는 일에 더 익숙하신 분들이다. 어제 저녁을 푸짐하게 사시고도 둘째형부는 오늘 점심에 또 밥값을 내겠다고 고집을 부리실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점심을 시키자마자 얼른 밥값부터 지불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형부가 식사 후 슬쩍 일어나는가 싶더니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아닌가. 총무로서 나 자격 만점이었다.
익산에서 출발하여 남부터미널에서 작은오빠를 내려드리고 상도동에 세째언니를 내려드리고 그리고 이태원에 큰언니와 네째언니네를 내려드리고 위례집으로 왔으니. 최서방이 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연하게 자신의 몫으로 싫은 내색하나 없이 기쁘게 해내는 그를 어찌 나만 좋아하겠는가. 언니와 오빠와 형부 모두 그를 좋아한다. 사랑도 제 하는 만큼 받는 일이다.
둘째언니네와 헤어지고 작은오빠와 헤어지고 세째언니와 헤어지고 네째언니네와 큰언니와 헤어지고, 이별 없는 만남이 있을까 만은. 나이 탓인가. 둘째언니의 흥타령중 이 대목이 문풍지 사이로 새어드는 겨울바람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었으니.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속 헤매이다 꿈에 죽는 것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