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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부터 하던 법구경 조금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건강은 가장 큰 이익, 만족은 가장 큰 재산,
신뢰는 가장 친한 친척, 열반은 최상의 행복!
아주 짧지만 임팩트 있는 진실이 담긴 게송인데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덕 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이익이 뭐냐?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과 좋은 차와 이런 어떤 소유물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서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이익을 더 크게 확대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부처님께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이익은 건강이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
아마 여기 계신 분들은 다들 완전히 백퍼센트 이해가 가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돈, 명예, 권력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든
좋은 집을 사는 것이나 좋은 차를 사는 것이나
돈이 많아지는 것이든 사업에서 성공을 하는 것이든
내가 희망하는 것들을 무한정 많이 얻었다 할지라도
내가 꿈에 그리던 모든 것을 얻었지만
그 다음날 병원에 눕게 되었다면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거나 이제 더 이상 못 산다 라는 판정을 받았다면
지금까지 인생을 반백년을 지내 오면서
‘이것이 내 인생의 전부다’라고 느끼면서 달려왔던 것이
앞만 보고 달려오던 모든 것들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죠.
저는 이런 것을 간접 경험 할 기회들이 있는데요.
불과 얼마 전에도 두 분 정도와 이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오십 정도 내지는 안 돼 보이는 처음 뵙는 보살님이셨는데 울먹울먹 하시면서 오셨습니다.
지방에 사시는 분이었는데 서울 병원에 갔다가 판정을 받고 찾아 오셔서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 암 판정을 받을 일이 절대 없어야 되는 사람인데
착하게 살았고 몸 건강을 정말 끔찍하게 생각하며 살았고
나는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남편이나 자식에게도 아직 얘기를 못한 상태인데
너무 눈물이 나고 도저히 이것을 받아 들일 수가 없다 하시면서
그 동안 본인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간단하게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그 모든 것들이 일시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는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정말 그런 것들을 본다면 우리가 생각했을 때
지금 우리가 멀쩡하게 두 발로 걸어서 법회를 참석할 수 있다라는 자체 만으로도
우리가 돈을 조금 더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노후자금을 조금 더 모아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조금 더 많은 욕심을 부리고 더 많은 것을 얻고
뭔가를 더 소유하고 원하는 것을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부대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90이 다 되가는 노보살님이 계셨어요.
힘들어서 절에도 자주 못 나오시는데
가끔 오셔서 저를 볼 때마다 제 손을 꼭 잡으시고서는
내가 요즘 너무 힘들다고, 너무 힘드니까 이걸 좀 나를 위해 기도 좀 해달라고 하셔서
무슨 사건 있나 싶어서 ’왜 그러세요?’ 하고 물어보면 항상 같은 얘기를 하셨어요.
‘큰 일이 있다고’ 그래서 무슨 일이냐 여쭤 보면 ‘몸이 아파’
‘어디가 아프세요?’ 그러면
‘몸이 아파서 걷는 것도 힘들고 소화도 좀 안되고 눈도 좀 침침한 거 같고’
거의 90을 바라보는 노보살님께서 몸이 아프시다며
‘나는 왜 이렇게 몸이 아픈지 모르겠다. 조금 더 생생했으면 좋겠는데 언제쯤 나을까요?’
항상 그걸 물어보세요.
언제쯤 낫겠느냐?
큰 어떤 병이 있는 게 아니라 조금 조금씩 아프세요.
‘금생에 다 나을 수 있을까요?’ 라는 말씀을 차마 드릴 수 없었는데
큰 병이 있으신 것은 아니고 조금 조금씩 아프세요.
어느 날은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보살님, 보살님 보시기에 제가 건강해 보이시죠?’
저도 이제 아프기로 말한다면 아프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버짐을 불치병처럼 달고 삽니다, 어릴 때부터.
축농증과 비염이 항상 있어서
꽃가루 날리고 할 때는 밖에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눈이 간지러워서
비염 알레르기 때문에 너무 힘들고
그러다 보니까 코도 막히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이런 것들이 있죠
조금 더 건강해지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어지간한 아픔 어지간한 병들은 그냥 안고 가는 거에요.
그것이 문제인 게 아니라
그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고 문제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
나는 완벽하게 건강해야 한다고 느끼는 거 그게 더 큰 문제죠
술을 엄청나게 드시는 분께서 항상 속이 쓰리고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신단 말이죠.
칠십 팔십 구십 되셔서 돌아가신 분들
어찌 사고로 돌아가셔서 부검을 해 보고 보니
집안 사람들, 본인도 모르던 암을 오랫동안 달고 사셨다
의외로 그런 사람이 많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암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달고 사는 것은 그냥 몸에 축농증 하나 달고 살듯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것을 더 악화시킬 만한 의식상태 정신상태 스트레스 몸의 습관
이런 것들이 그것을 더 악화시킬 뿐이지
몸에 병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라는 거죠.
몸이 좀 아프다 그러니까 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한다? 그것이 아니라
몸이 아프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는 겁니다.
그래도 도저히 못하겠으면 그냥 못하는 것이고요.
그것을 문제라고 여길 필요 없이
어느 순간 받아들이고 OK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게 더 큰 문제가 안 되는데
그것을 머릿속에 예민하게 생각을 하면서
저 또한 그랬거든요.
20대때 생각해 보니까
비염이 그때는 지금보다 더 심했습니다.
봄가을이면 일이주는 몸살처럼 앓고
두꺼운 이불에서 자고 일어나 보면 그 다음날 두꺼운 이불이 다 젖고 그랬으니까
비염이 너무 심해 가지고 이거를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까
이것이 온 신경꺼리였어요.
이것만 없으면 좋겠다
좋다는 것 다 해보기도 하고 계속 신경이 쓰이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걸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완전히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 놓고
OK 함께 가자
내가 이 부분을 내 존재 안에 있는 병이나 나쁜 부분들은 버려서 없애야 하는 건데
없어지지 않으니까 괴로운 고통인 것처럼 살기를
내려 놓고 그 또한 나 자신이고 나의 일부분이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그게 행복이 아니죠.
직장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고 놀고 먹을 수 있다.
집에서 백수로 살면 그것처럼 스트레스는 없잖아요
하루 종일 누워 잠만 자고TV만 봐도 되지만 그것처럼 스트레스는 없는거죠.
하루 이틀 노는 거지 계속 놀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는 것처럼
그냥 인정하고 받아 들이고 오히려 사랑해주고 허용해 주는 것이죠.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 겁니다.
우리에게 온 문제에 대해서 병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문제에 대해서
가장 지혜로운 방식은
그것을 버리려고 하지도 않고 좋은 것이라고 가지려 하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인정하는 것
그것이 거기 있다 라는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그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허용해 준다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거든요.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다
이미 있는 것 자체를 흘려 보내는 것이거든요
내버려 두는 것이죠.
그렇게 됐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내 의식에서 문제 되지 않아요
신기한 것은 의식에서 이것이 나아야 하는데 하고 마음이 쓰이면
안 낫는 거에 대한 두려움 안 나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신경 쓰는 마음
그것이 더 덩치를 키워 버리게 됩니다.
두 번째 화살이 나를 더 괴롭히게 됩니다.
의식이 만들어 낸 화살이 나중엔 더 내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이죠
그걸 내버려 두고 허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더 이상 나에게 타격을 주지 않고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되는 거 같습니다.
제가 그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도 더 이상 크게 문제삼지 않다 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오는 것은 오는 거고
받아들이고 났더니 그렇게 심하게 오지 않고
그냥 잠깐 힘들다 가는 거에요.
잠깐 왔을 때 죽겠다 하는 게 아니라
올 친구가 또 왔구나
그렇게 허용해 주고 흘려 보내 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크게 나를 강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냥 그럴 수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오히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건강함에 너무나 감사하게 됩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하다 보니까
아침 저녁으로 술도 한잔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중에 알코올중독이 되게 된 친구가 있어서
면회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중독이 되다 보니까 몸이 망가지고 몸이 망가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병원에 입원하니까 술을 못 먹게 되니 이틀 딱 지나니까 정신도 확 놔 버리고
금단현상이 오는데 폭력적으로 바뀌고
본인도 자신이 뭐 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도 못 알아보면서
온 몸을 묶어 놨는데
야, 참 젊고 생생한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정상적으로 일 잘하는 친구였어요.
본인은 눈만 뜨면 술을 먹어야 하고 퇴근하면 술 없으면 못 살고
남들은 그걸 잘 몰랐었죠.
그런데, 그렇게 누워 있으니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젊은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 사람이
정말 우리가 지금 건강하다면
그런데 완벽한 건강이 아니라
이렇게 근근이 버텨가면서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이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요?
건강하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가장 큰
우리가 이 생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이익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 어떤 억만장자 그 어떤 회장님
그 어떤 돈 많은 사람 그 어떤 로또가 당첨된 사람보다
더 큰 이익을 가진 사람일 수 있죠.
만족이야 말로 가장 큰 재산입니다.
더 이상 말씀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사람과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라는 실체는 없습니다.
아무리 큰 부자라고 할 지라도 마음속에서 뭔가 더 큰 부자를 갈구 하고 있다면
아직 그 사람은 아직은 부족한 것이죠
그 사람 마음속에는 ‘부족과 궁핍감’이 연습이 됩니다.
계속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기만 하니까
단 한 순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작은 소유물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 온전히 만족하고 있다면 가장 큰 부자인 거죠.
우리가 물질적인 부유함을 꿈 꾸기 보다는
백퍼센트 정말 이것은 완전하게 백퍼센트 마음의 문제입니다
부자이냐 가난하냐 하는 것은
더군나 한국이라는 사회는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나라처럼
당장 밥 한끼도 못 먹을 정도의 사람은 잘 없잖아요
정말 우리가 그냥 밥만 먹을 수 있고 어디서든 누워서 잠만이라도 잘 수 있으면
잠 잘 아주 허름한 집이라도 하나 있고 밥만 먹을 수 있는 사람이면
정말 행복한 사람일 수 있겠다.
귀농해서 시골에 사시는 분이나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 보면
한달 수입이랄 것이 없어요.
그나마 자식들이 다만 얼마라도 보내 주면 그거라도 가지고 사시는 건데
시골에 농사 짓고 사시는 어르신들
정말 한 달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란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입니다.
근근이 전기 값 내고 할 정도 근근이 다달이 내야 할 거 겨우 내면 끝나는 정도
당신이 농사 짓지 않으면 하루를 먹기가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제가 전에도 ‘공으로의 명상’ 이런걸 한번 얘기를 했었는데
우리가 본래 텅 비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모든 걸 잠시 내려 놓을 수만 있다면
내가 서울 아파트에 이 정도 살아야 하고
주말에는 결혼식도 몇 군데 찾아 다녀야 하고
시골에 가서 모든 걸 내려 놓고 사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서울에 있을 때는 이 모든 것을 안 하면 안 될 거라고 굳게 믿었었대요.
주말이면 당연히 결혼식도 가야 하고 이런 삶을 살았는데
당신이 더 이상 살 수 없다 보니까 어쩔 수 없어서 딱 끊고 시골에 가서 사시는데
정말 작은 돈을 가지고 시골에 사시는데
서울에 있을 때처럼 이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산다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없어도 살아지더라는 겁니다.
내가 결혼식 안가도 친구들도 그렇게 욕을 안 하더라
돈도 없고 시골 가서 나오기 힘든 친구라고 생각을 하니까
나도 더 이상
그렇게 사시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더라
오히려 시골에 가니까
제가 여러 분에게 시골 가서 살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단 것이죠
많은 가능성들에 대해서 덮어 놓고
내가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만 쥐고 있으면
그게 하나의 집착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저 또한 그렇습니다.
공으로의 명상으로 제가 이름을 붙여 봤는데
공이란 것은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거잖아요.
이 생에 와서 다양한 인연으로 살았지만
사실은 보살님들은 내 남편은 내가 없으면 하루도 못 챙겨 먹는다고 생각하시고
내 자식들도 내가 없으면 뒷바라지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굳게 믿으면 굳게 믿는 분일수록 내가 가족들에게 너무 잘했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이 사람들이 못한다고 굳게 믿어서
손발이 되어 그들을 다 해줬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었던 것인데
내가 완전히 딱 끊어버리고 어디 가거나 하면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본인이 본인을 챙겨야 될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다 하거든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문제인 것이지
사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하나의 집착이죠.
자식? 내버려 둬도 알아서 삽니다.
물론 힘들게 살겠죠
이 세상에는 부모님 모시고 살다가 어느 날 아버님이 돌아가시거나 어머님이 돌아가시거나
이런 집들 많거든요.
제가 옛날에 시골에 있을 때
새벽예불 나오던 젊으신 보살님이세요.
딸만 셋이 있었는데 남편이 다달이 월급을 갖다 주니까 그걸로 살림만 하시고
한번도 직장생활 해 보신 적도 없고
갑자기 남편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나니까
딸 셋이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하나씩이었는데
이제 한참 돈이 들어갈 땐데 이 보살님은 단 한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분인데
돈을 벌어본 적이 없으니까 어떻게 버는 지도 모르시고
시골이니까 일자리가 없어서 식당 같은데 가서 도와주고 아르바이트 비슷하게 해서
그때 당시 몇 십만원 못 받으신 거 같아요
그걸 가지고 애들 셋을 데리고 사는 거죠.
처음에 그렇게 많이 눈물도 흘리시고 그러시다가
어느 순간 이걸 받아 드리시고 그러면서 자식에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내가 이제 해 줄 수 없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식들에게 이렇게 얘기를 하고
내려 놓기 시작해 놨더니
자식들도 오히려 스스로 알아서 하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자식들이 이해하기 시작했고
자식들이 스스로 어머님이 일을 하시니까
내가 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됐고 스스로 하게 되는 거죠.
오히려 고등학생 딸내미가 저한테 하는 얘기가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힘들어 하시더니
어느 순간 모든 걸 놓으시더니만
우리한테 자비롭게 바뀌시고
하나하나 이렇게 해야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내려 놓으신 거 같고
우리 자식들이 어머님한테 통제만 받다가
우리가 어머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정말 서로서로가 챙겨주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더라고요.
이제 엄마한테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사는 모습들이 참 찡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보살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남편 죽었을 때 이젠 인생 끝이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처음에는 딸들 학교 가면 아빠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할까봐 너무 두려웠고
손가락질 받지 않게 해 주려고 더 집착을 하게 되더라는 거죠.
조금만 잘못해도 아빠 없는 자식 소리 안 듣게 하려고 더 혼조고
돈 없는데도 자식이 다른 사람한테 욕 얻어 먹을까봐 더 해주니까 나는 더 힘들고
처음 한 몇 달 동안은 너무 괴로워 죽을 거 같더래요.
보살님은 보살님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아버님 돌아가시고 점점 더 힘들어지고
엄마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너무 힘들게 하셨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 해서 살수가 없구나 하고
모든 걸 다 내려 놓고 났더니 그 이전보다 아이들과 더 행복해 지고 더 편안해지고
오히려 탁 내려 놓으니까 오히려 더 살길이 열리더라고요.
우리는 고정관념으로 내가 이걸 안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
그 고정관념만 내려 놓으면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이 놓입니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 딱 놓이게 됩니다.
놀라운 어마어마한 가능성들
예를 들어 여러분들 이런 생각을 하잖습니까
나는 진짜 매일 왔다갔다 하는 직장생활에서 놓여 나고 싶다.
집안일에서 놓여 나고 싶다.
공부하는 것에서 놓여 나고 싶다.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여러 분들이 출가를 한다.
물론 여러분 머리 속에 출가는 나는 죽어도 못하는 것이겠죠.
출가는 죽어도 못하는 것은 하나의 관념입니다.
제가 출가하라는 얘기가 아니고요.
내가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면 책임져야 하는데 어떻게 출가를 합니까
그것 또한 하나의 관념입니다.
부처님은 자식만이 아니라 나라를 버리고 출가를 했는데요.
자식만 버리고 간 게 아니라 아내만 버리고 간 게 아니라
그럼 부처님도 책임감도 없고 나쁜 사람인건가요?
그렇다고 제가 출가를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한번 말씀 드려 보는 거에요.
뭘 말씀 드리고자 하는 거냐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하나의 환상이라는 거죠.
그걸 내려 놓고 살 수가 있다는 거죠
난 정말 기도만 하고 마음공부만 하고 조용한 절에서 유유자적 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니까요
바로 출가만 하면 월급 없어도 살 수 있어요.
절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다 해줘요
교육 시켜주고 기도 시켜주고
절에서 살기만 하면 되는 거에요
그런데 그 선택을 지금 당연히 할 수 없다.
당연히 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관념이라는 거죠.
‘나는 죽어도 못해’ 하는 게 하나의 관념이라는 거죠.
제가 출가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난 죽어도 못해 라는 생각을 내려 놓고 살 수 있다는 것이죠.
내려 놓고 살면 훨씬 더 편안해 집니다.
부모님이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놨을 때
자식은 훨씬 더 부모님과의 관계도 좋아지게 되고
자식은 스스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스스로 책임감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느끼는 동시에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시켜서 하면 스트레스 받잖아요
이제 시키는 사람이 없구나
엄마 아빠가 나를 시키지 않는구나
내가 좋은 대학 가던 안 가던 엄마 아빠는 상관 없는 사람이구나
이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내 책임이 됩니다.
주도적으로 바뀌는 겁니다.
출가명상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수련대회에 가면 출가명상을 시켜요.
‘눈을 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출가하자’
제가 대학 다닐 때 수련대회에 갔더니 지금 이 자리에서 출가를 하라는 거에요.
다들 못한다 그러니까 왜 못하는지 써보라고 해서
출가 못하는 이유를 사람들이 막 썼죠
첫번째를 가지고 한 두사람을 데리고 얘기를 합니다.
가정이 있는 분은 자식 때문에 아내 때문에 못한다
아내 때문에 못한다 이게 진실인가요?
아내 때문에 못한다 이게 백퍼센트 진실인가요? 물어봐요.
거사님이 없으면 아내는 정말 죽을까요?
이 세상에는 남편이 하루아침에 돌아가셔서 혼자 자식들 먹여 살리는 아내들도 있다.
거사님이 없으면 정말 아내가 자식 못 키우고 집안 망할까요?
거사님이 한참 생각해 보더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까
하기야 아내와 싸울 때도 많고 나한테 이거 하고 저거 하고 나랑 이것저것
‘처음에는 힘들 거 같지만 나름대로 적응할 거 같고 의외로 강한 사람이라서 잘할 거 같기도 한대요’
‘출가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굳이 억지로 하라 그런다면, 해도 잘 살거 같긴 하다
그러면 자식은 어떻겠느냐?
자식도 생각해 보니까 내가 솔직히 해 줬던 게 없었다.
아내가 다 알아서 하지
솔직히 자식들은, 부모님이 생각할 때 자식들은 부모 없음 죽어도 안 된다 생각하잖아요.
의외로 자식들은 부모님이 없어도
두분중에 한 분만 있으면 큰 타격은 안갈수도 있어요.
제가 어릴 때 그렇게 살아봐서 압니다.
큰 타격은 아닐 수 있어요.
제가 하려는 말의 낙처를 보셔야지 뭔 소리 하는 거야 하시면 안되고
이렇게 하나 하나 지울 수 있다는 거에요.
하나 하나씩 버려 보자는 거에요.
지금 직장
여기서 내가 좀만 있으면 내가 다음 진급을 할 수 있는데
그 진급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겁니다.
지금 그만둬도 상관 없는 거죠 사실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사람이 갑자기 병이 나고 그러면 아무리 큰 꿈이 있었어도 좌절 할 수 밖에 없는 거잖아요.
어느 순간 마음을 탁 놔 버리잖아요.
그렇게 놓아 버릴 수 있다는 거죠.
그것이 하나하나 백퍼센트 진실이냐
나는 이거는 놓을 수 없습니다에 대해서
그건 백퍼센트 진실이냐에 대해서 스스로 답해 보세요.
자식에 대해서 절대 놓을 수 없다는 거에 대해서 백퍼센트 진실인지
놓을 수 있습니다.
남편도 놓을 수 있고 자식도 놓을 수 있고
돈도 놓을 수 있고
돈 하나도 없어도 사실은 살 수 있습니다.
절에 가면 빈 몸으로 와도 받아줍니다
요즘은 은퇴 후 출가제도가 조계종에서 새로 생겼어요
이제 65세까지 출가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시 출가명상을 하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나는 이거 때문에 못한다 저거 때문에 못한다
잠시 눈을 감고 모두 다 명상을 하면서
내가 출가 못 하겠다는 생각을 놓아보자
그렇게 명상을 하다가 이제 나는 출가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사람은 옆방으로 가라
어떤 사람은 오분 십분만에 옆방으로 이동을 하고요.
나중에 삼사십분 됐을 때 모든 사람이 다 옆방으로 갔습니다.
진짜 여기 있는 사람 다 출가 할 수 있겠느냐
가위를 들고 가지고 나와 가지고 진짜 출가 할 수 있겠느냐
‘출가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출가하지 않는 명상을 하자
출가하면 안 된다 출가하지 말아라 왜 출가를 하냐 출가하지 말고 열심히 살자.
그러면 그 중에 두 세명은 나는 진짜 출가하고 싶은데요 이럽니다.
그 명상뿐 아니라 돈에 대한 명상
내가 돈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 보자
살수 있을까? 없을까?
나중에 대화를 계속 나누다 보니까 돈이 하나도 없어도 살 수 없진 않겠다는 거죠.
살게 됩니다.
최악의 괴로움을 당하면서 정말 집 다 버리고 돈이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빚을 안고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을 워낙 많이 봤었기 때문에
살게 되긴 살게 됩니다.
돈에 대한 명상도 해 보고 심지어는 그런 것도 있었어요.
마지막에 다 홀가분해 있는 상태에서
수련대회 마지막 모임을 가졌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주머니에 있는 전 재산을 앞에 모아 보자
앞으로 가져왔죠.
어떤 사람은 버스비만 있고 어떤 사람은 돈십만원 있는 사람도 다 걷어왔죠.
‘이 돈을 전부 다 여기 기부해라. 십원 한장 남기지 말고 기부해라’
완전 산골까지였거든요.
‘십원 한장 남기지 말고 기부할 수 있겠느냐?’
그랬더니 ‘저는 못합니다.’
‘저는 하겠습니다. 하는데 집에 갈 수 있는 버스비만 남기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안 된다고
버스비 남길거 같으면 뭐 하러 이걸 하겠느냐
버스비 남기면 안된다
십원 한장 남기면 안된다
‘그럼 집에 어떻게 갑니까?’
우리집이 포항 부산인데 집에 어떻게 가냐?
그건 내 문제가 아니다 난 보시만 받으면 된다.
그 이후 문제는 알아서 하고 전액을 보시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나중에는
이분이 하려는 본 의미는 그 돈을 받으려고 하는 거겠어요?
그 돈을 다 주고 빈털터리가 됐는데 거기서 수련대회가 끝났어요. 집에 못 갈까요?
돈 없으면 집에 못 갈까요?
걸어서 갈수도 있고 히치하이킹을 해도 되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해도 되고
무슨 일이든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는 거죠
자기가 죽을 때가 되면
마치 저것과 비슷하게
시내를 다니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못 찾았어요.
화장실이 없는 상태에서 화장실 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방법은 없는데 방법을 스스로 백프로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냐 하면
이제 더 이상 안될 거 같을 때
죽어도 못 참을 거 같이 완전히 백프로가 됐을 때
그때는 체면이고 뭐고가 있겠습니까?
아무데를 가든 뭔 짓을 해서라도 해결하고 보겠죠.
그것처럼
어떤 사람은 끝까지 스님하고 싸우는 겁니다.
나는 버스비 하나는 죽어도 못 놓겠다 하면서
나중에 기어이 그것도 놓을 수 있다.
너가 못 놓는다는 것 집착이다.
나는 버스비 없으면 집에 못 간다는 것은 내 한생각이다.
나중에 어떤 한 사람은 싸우는 거에요.
왜 스님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하면서.
결국에는 거기 있는 모든 사람 돈을 다 걷어버렸습니다.
얼마인지도 모르고 다 놔버렸어요.
그리고 OK 까짓거 한두명도 아니고
모두 같이 걸어가야 하는데 같이 걸어가자 그렇게 돼 버린 거에요.
그렇게 하고도 다 할 수 있다는 거죠.
있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아 돈? 이거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구나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출가를 할 수 있겠구나
심지어 나중엔 죽음명상을 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수 있겠느냐?
죽을 수 있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었습니다.
죽음명상 출가명상 돈에 관한 명상
이렇게 하면서 공부를 하고 났는데
마지막날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얘기를 했었냐 하면은
나는 이제 세상 속에 내려가도 더 이상 괴로울 일이 없을 거 같다.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큰 괴로움이 아닐 거 같다.
어차피 죽었다 태어난 사람이고 난 출가까지 하려던 사람이고
어차피 죽음까지 갔었고 다시 살았으니까
돈도 십원 한장 없을 때까지 가 봤고
그리고 이제 살아놨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
언제나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마음의 구조란 게 정말 신기하다.
내가 마음을 바꿨을 뿐인데 현실은 바뀐 게 없는데
처음에 들어올 때 무거웠던 발걸음이 지금은 너무 가벼워졌다.
오히려 가지고 있는 거 싹 다 뺐었을 뿐인데
오히려 더 가벼워졌다
삶이 그렇거든요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빼앗아 가면 빼앗아 갈수록
우리는 더욱더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삶은 더 슬슬 풀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엄청난 착각은 뭐냐 하면요.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만큼 살았지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만큼 벌었지
내가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자식들 이만큼 키웠지
자기 생각입니다.
내가 이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살았고 돈도 벌었고 자식들 키운 게 아닙니다.
우리는 물만 한모금 안먹어도 죽을 수 밖에 없어요.
공기만 없어도 몇 분 되면 죽을 수 밖에 없어요
어떻게 내가 잘 나서 사는 거에요?
공기가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난 살수가 없는데
햇볕이 나를 쏘여 주지 않으면 난 살수가 없는데
내가 입고 있는 옷, 그 옷을 만든 사람들
옷과 연결된 수 없이 많은 사람들
무한히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살수가 없습니다.
내가 쌀 농사 짓지 않아도 먹고 살잖아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 도움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해요. 쌀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시대라면 우리 살수가 없거든요.
내가 잘나서 사는 게 아니라 이 우주가 도움을 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근원은 무위입니다.
내가 애써서 이만큼 사는 게 아니고 살려주고 있는 거에요.
내가 애 쓰지 않아도 이 우주가
이 우주가 무한히 우리를 살려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머리를 가지고 우주가 이렇게 잘해줬는데
내가 잘났으니까 이렇게 살았다
내가 잘났으니까 남들이 나에게 돈을 이만큼 주는구나
내가 잘났으니까 남들이 나를 대우해 주는구나
내가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이만큼 벌었구나
내가 잘해서 이만큼 사는 줄 아는 것?
이런 엄청난 착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다 백프로 아니라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들 노력을 묵살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요
이 우주가 무위로써, 함이 없이 끊임 없이 우리를 살려주고 있어요.
아까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모든 걸 다 내려 놓는다 할 지라도
완전히 내려 놓는다 할지라도 살지 못하느냐?
아무것도 안하고 내려놔도 살 수가 있습니다.
이 우주가 우리를 살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밖에 없어요
어떻게?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돈이 십원 한장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갑자기 제로가 돼버렸어요
서울에 살다가 저기 부산이나 미국이나 아프리카나 뚝 떨어져서
혼자 떨어져서 십원 한창 없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살까요? 죽을까요?
거기에서 삽니다.
외국 배낭여행 갔다가 십원 한장 없이 가방을 다 털려서 아무것도 없이 혼자가 된 사람
죽어서 집에 못 돌아올까요?
집에 돌아 옵니다.
어떻게든 낯선 땅에서도
배가 고프면 돈 십원 한장 없어도 반드시 먹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배가 조금 고프면 그냥 배고픈 채로 온갖 생각을 하면서
나는 가난해 나는 불쌍해 나는 밥도 못 먹고 이러다 굶어 죽을 거야
온갖 생각을 하느라 괴롭죠
아직 덜 배가 고픈 거죠
정말 죽을 거 같이 배고프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한끼 줍쇼’ 합니다.
백퍼센트 그렇게 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강원도 고성에 있을 때 무전여행을 온 친구가
와서 밥을 한끼 달라 재워 달라 다음날 아침도 달라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음날 아침 주며 물어 봤더니
‘진짜 무전여행이냐? 진짜 십원 한장 없냐? ‘
그러니까 십원한장 없대요.
십원 한장 없이 7번 국도 타고 걸어왔다.
처음에는 식당 가서 밥 한끼 달라는 게 도저히 입이 안 떨어져 가지고 처음에는 굶었대요.
너무 배 고파 죽을 거 같으니까 체면이고 뭐 이런 거 다 없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가서
정말 죄송한데 밥만 주셔도 좋으니까
김치 한 조각에 밥만 주셔도 좋으니까 밥만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의외로 밥만 주는 사람 없대요.
이 친구가 노하우가 생겨서 점심 시간에 가면 절대 안 된다.
너무 아침에 가면 안 된다
두시 세시쯤 식당에 가서
아침부터 밥을 못 먹었는데 무전여행 다니는 학생인데
지금 너무 배가 고픈데 밥이랑 김치만 주셔도 좋으니까 줄 수 있겠냐 부탁하니까
밥과 김치만 준 사람 없고 내쫓은 식당 하나도 없답니다.
그 집에서 파는 정식메뉴를 차려서 주더랍니다, 어지간하면
자식 생각 난다고 하시면서
없으면 못 살 거 같지만 못 사는 게 아니거든요.
저도 미국에서 혼자 한 겨울에 돈도 없이 떠돌아 다녀 봤었고
인도, 히말라야에서 살아보니까 거기서도 삶이 살아지대요.
미국에서 돈이 없이 추운데 뭘 할 수 있는 게 없는 겁니다.
불교학생 학생증 밖에 없는 거에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혼자 고민을 하다가
절에 가면 설마 나를 문전박대 하겠나?
그래서 그냥 절에 갔었어요.
심지어는 어떤 절에 스님께 전화해서 내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밤인데 내가 추워서 얼어 죽을 거 같은데
스님이 어딘지 당신이 찾아 가지고 오셔서 한시간반을 오셔가지고
당신 절에 데려가셔서 그 절에서 몇일 동안 먹여주고 재워 주면서
그 절 할머니들이 저를 너무나 좋아라 하시면서
용돈 주고 당신 집에 가자고 하셔서 하룻밤 신세지고 용돈 두둑이 받아왔거든요.
할머니들이 나를 왜 이렇게 좋아하나 했더니
이 총각 어쩜 이렇게 한국말을 잘 하냐고 저를 너무 좋아하는 거에요.
왜 이러시지 했더니
그 할머니들 손자들이 한국말은 못하고 영어만 하니까
자기 손자들 한국말 떠듬떠듬 하는 거 그렇게 꼴뵈기 싫다는 거에요.
이 녀석이 한국 사람인데 한국 말을 못하니까
한국말 잘 하는 총각 보니까 그렇게 기특하다고
제가 영어도 안 되는 미국 가 가지고 한국말 잘 한다고 용돈 받으며
어떻게든 살게 되더라구요
몇 달을 미국에서 지내고
어떤 절에 가서는 스님이 포교를 하고 싶은데 젊은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는데
젊은 사람들이 없다 해서
제가 여기 저기 다니면서 길거리 다니면서 보스턴 시내 다니면서
젊은 사람들 만나 가지고
타지생활 힘들지 어디 한국 절이 있는데 여기 절에 가면 스님 너무 좋으시다.
스님이 몇 년 동안 청년부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는데 한 명도 안 오더라는 겁니다.
제가 그때 두주인가 왔다갔다 하면서 절에 열몇명을 데리고 갔어요
그중에 불교에 대해 관심 있던 분이 저한테 불교를 물어보고 제가 답변해 주고 하니까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거기서 새로운 땅에 와서 아무것도 난 할 수 없을 거 같았는데
처음에 몇일은 햄버거 하나 두개 먹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 겨울에 그 추운 곳에서 어떻게든 살게 되더라고요.
그때 제가 느낀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어디에 가든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어디에 가든 그곳에 가서 새로운 인생이 살아지는구나
한국에서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고집했던 거 그거 다 허망한 거였구나
어딜 가든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구나
그런데 우린 그러리란 생각을 못하고 지금까지 내가 쥐고 있던 거 이걸 놓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걸 놓으면 난 끝장날 거라고 생각하고 착각하고 산다는 거죠.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삶에 대한 생명에 대한 집착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누구나 시한부 인생으로 곧 죽을 사람들인데
천상의 시계로 일분 이분 더 사는 것과 같은 차이인데
우리가 쥐고 있는 것들 내가 이 생에서
여러분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내가 내일 죽는다고 했을 때 죽어도 못할 이유
내가 내일 출가한다고 했을 때 죽어도 못할 이유를 적어보면
나는 이것 때문에 못 하겠다 하는 일번이 딱 나옵니다.
보통 자식 때문에 아내 때문에 돈 때문에 직장 때문에
그것들이 내가 가장 집착하고 있는 순번이에요
그런데 그걸을 다 버리라는 게 아니라 집착만 버릴 수 있으면
내가 진짜 이거 없어도 살 수 있을까 쉬운 것부터 10번부터 삭제해 나가 봅니다.
진짜 이거 없으면 내가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습니다.
실제 목탁소리 회원 이었던 분들이
칠팔년전에 정말 열심히 불교공부 하시던 분들이었는데
그때 그 분들은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이었죠.
열심히 불교 공부를 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제가 농담삼아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하실거면 차라리 출가하시라고 하니까
무슨 소리 하시냐고 저는 멋있는 남자 만나서 시집 가 가지고 마음공부 하면서 살 거라고 그러셔서 그러시라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젊은 보살님들이 붐이 일어 가지고 서너 분이 갑자기 출가를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네 분 정도가 한꺼번에 출가를 하셨어요
지금 비구니 스님이 되셔서
한 분은 인도에 계시고 한 분은 대만에 계시고 한 분은 강원 졸업해서 어디 절에 계시고
열심히 살고 계시거든요.
그때 출가할 때 그 분들 출가하시는 모습을 제가 생생히 지켜 보니까
그 동안 멋진 직장에서 돈도 많이 벌고 이렇게 살다가
괜찮은 사람들이 결혼하자고도 하고
열심히 살다가 한 순간 그냥 확 놓아 버리시더라고요.
벌었던 것이고 뭐고 내가 가꾸고 하던 것을 놓고 출가해 버리시는데
지금 하시는 말씀이 가끔 뵐 때 마다 하시는 말씀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들이 출가를 하기 위한 이 길을 가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직장이나 사랑이나 모든 것들이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냥 하나 스쳐 지나가는 과정이었던 거 같다
이렇게 얘기 하시거든요.
우리는 여행을 떠나가도 그런걸 느끼지 않습니까?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서
제가 언젠가 전라남도를 홀로 떠돌아 다니다가
바람이 엄청 불던 날이었어요.
바람이 너무 많이 부는 오후였는데
바닷가에 있는 사찰 대웅전에 앉아 있었는데
바닷가가 보이는 사찰이었어요.
바람도 불고 간간히 빗방울도 있으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휑하니 앉아 있었는데
문득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문득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전생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것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그냥 이 자리에 내가 이렇게 서 있구나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라고 생각했던 정체성을 지닌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정체성이 완전히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고
그런 모든 어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냥 하나의 꿈인 것처럼
아 언젠가 내가 어느 한 생에 그런 일을 지났었나 하는 것 같은
한 발짝 떨어져서 삶을 바라보게 되면서
그때 제가 써 놓은 글이 하나 있었는데
‘이렇게 휘휘 돌아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 그냥 서 있을 뿐이지’
지금까지 나랑 동일시 하고 살았던 모든 것들이
그냥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아주 낯선 땅에서 아주 낯선 어떤 느낌
낯설게 그냥 이렇게 있는 느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그게 어찌 보면 우리 본질이 아니겠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나와 동일시 하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
그 역시 관념이 만들어 낸 상일뿐이고 기억일뿐이거든요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은
누구의 남편이거나 누구의 아내이거나 누구의 자식이거나 누구의 할머니 할아버지인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 놓고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는
그냥 텅 빈
그게 공이거든요
공, 본래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본래 무일물
우린 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특정한 어떤 존재를 나와 동일시 여기고 살았을 뿐이지
관념으로 생각하고 살았을 뿐이지
나는 특정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나는 특정한 여자거나 남자거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이런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냥 지금 이렇게 있을 뿐이에요.
과거 미래 이건 다 기억일 뿐이에요.
생각일 뿐이에요.
과거 완전한 허상입니다.
미래 완전한 허상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이 세상에 생각의 대상은 허상이에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 이 자리에 우리 이렇게 앉아 있는 이것만 있을 뿐
지금 이대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전부 다 관념이 만들어 낸 허망한 착각이었을 뿐이고
우리는 지금까지 허망한 착각의 세계
내가 구축해 놓은 허망한 세계
난 이런 사람이고 나는 이러이러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고
이러한 삶의 스토리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고
나의 경제력은 이렇고 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대접을 받아야 되는 사람이야
이게 전부 다 꿈입니다.
그 꿈을 진짜 나라고 여기고 살았다 보니까
그런 대접을 안 해 주니까 서운하고
나는 이 정도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그 대접을 못 받을 때 서운하고
자식들은 나한테 이렇게 해 줘야 하는데 그걸 안해 줘서 서운하고
회사에서는 나한테 이렇게 해 줘야 하는데 그걸 못해줄때 서운하고
관념이 만들어 낸 허상이거든요
그냥 세상이 펼쳐지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삶이 그냥 드러나고 있을 뿐이에요, 매 순간
왔다갔다 왔다갔다
내 눈 앞에서 그냥 생멸하고 있을 뿐이에요.
오고 갈 뿐이에요
전부 다 왔다 가는 겁니다.
돈 명예 권력 다 꿈처럼
잠깐 내 앞에 드러났다 사라질 뿐입니다.
그런데 내 앞에 드러났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에요
자식도 남편도 왔다 가는 겁니다.
물론 내가 먼저 갈 수도 있겠죠.
돈도 명예도 권력도 지위도 삶의 이야기도
모든 게 왔다 갑니다, 눈 앞에서.
밖에 나가면 벌써 풍경이 바뀌죠
집 앞에 가면 집의 풍경이 바뀝니다.
사람들 만날 때마다 내 앞에 만나는 사람들 풍경도 바뀝니다.
대상이 끊임없이 바뀌고
이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면서
바뀌는 세상에다 대고 내가 의미부여를 하면서
이건 좋고 저건 싫고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싫고
이 사람은 도움 되고 저 사람은 도움 안되고
이러면서 끊임 없이 드러나는 꿈처럼
꿈이 온갖 스토리가 왔다 가듯이
꿈이 내 목전에서 드러났다 사라지는데 그걸 진짜라고 굳게 믿고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해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의미 부여해서
좋아하면 집착하고 싫어하면 버리려 애쓰고
그런 허망한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괴롭다 즐겁다 하면서 인생을 살아왔는데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의미 부여한 것뿐이고
왔다 가는 거뿐이죠.
진짜가 아니죠
중요한 사실은 이 목전에
눈앞에 왔다 가는 것이 아닌
왔다 가는 것이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이죠
의식의 대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
의식이 하는 것은 왔다 가는 것을 해석하는 것만 할 수 있는 게 의식입니다.
분별심이에요, 머릿속의 관념
왔다 가는 것에 대고 이건 좋고 저건 싷어
이건 내거 이건 니거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거 이건 내가 싫어하는 거
남편, 남편이라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남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남편이죠
이혼하면 남이 되는 거죠
남편이라는 게 드러났다 사라지는 것뿐이죠.
모든 것은 드러났다 사라지는 것뿐인데
생멸하는 존재일 뿐인데
불생불멸하는 게 있다는 것이죠 목전에
눈앞에 드러나 있다
목전에 드러나 있다
뭐와도 같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려면
허공에 그림을 그리면 그림을 볼 수가 있습니까
스케치북 같은 하얀 바탕이 있어야 하얀 바탕 위에다가 뭔가 그릴 수 있잖아요.
그래야 그림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이 하얀 배경 같은 바탕 같은
생멸법이 사라지는 목전에서
왔다 가는 모든 것들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있으려면
모든 것들을 지탱해 주는 배경과도 같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원자폭탄이 터진다 할지라도
전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그 모든 것의 근원
불생불멸하는 근원이 있다는 것이죠.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보고 듣고 하려면
보고 듣는 이 생각이나 개념이나
뇌나 눈이나 이런 것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니고
모든 보고 듣는 것이 드러나는 바탕이 있다는 것이죠
‘보는 자, 듣는 자’라는 본질이 있다라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앞에서 진실이라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말 그대로 그냥 왔다 가는 것일 뿐
진실은 이면에 드러나 있다.
목전에 드러나 있다.
다만 우리가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앞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생겨났다 사라지는 상에만 관심이 있는 거죠.
금강경의 상을 타파하라는 것
이미지 상을 타파하라는 것
모양 상을 분별하는 데만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상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상 이면에 있는
상을 타파해도 드러나 있는
‘불성’이라고도 하고 ‘본래 면목’ 이라고도 하고 ‘주인공’ 이라고도 하는
제가 ‘첫째 자리’라고 얘기 했던
‘첫째 자리’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간절한 목마름으로
내가 이걸 확인하겠다는 간절한 발심이 있을 때
그것을 확인하게 된다.
마치 매직아이를 볼 때 매직아이를
봐도 나는 숫자나 그림이 안 보이는데
남들은 다 토끼가 있네 하는데 나만 토끼를 못 봐요
남들 다 보는데 나만 못 보다가
눈을 어떻게 하다 보면 갑자기 보이잖아요.
원래 안 보였던 게 아니라
내가 상태를 관점을 의식이라는 관점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의식이 딱 내려놓아지는 순간
확인하는 그 순간에 확인할 뿐이라는 거죠.
그래서 진리는 언제나 목전에 있다
당처(當處), 당장 이 자리에 있다
목전, 눈앞에 있다.
‘조고각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발밑을 봐라 이건 신발정리 잘 하라는 이런 얘기가 아니고요.
바로 발 앞에 있다
언제나 어딜 걷더라도 발 앞에서 함께 걷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의 대상이 아니니까 파악 할 수 없고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죠
표현 할 수 없는 어떤 것이죠
그걸 표현하면 벌써 상이 지어지니까
어떤 것 이렇게밖에 말할 수 밖에 없죠
‘불성’ ‘신성’ 이렇게 하면 벌써 그 말에 오염되니까
말에 오염되지 않는 어떤 진실이 이 앞에 드러나 있을 뿐인데 다만 우리가 못 볼 뿐
오고 가는 여기에 속지 말고
참선입니다.
선에 참여하는 것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도
뭐가 걷고 있는 거지?
발이 걷고 있는 게 아니에요
뭐가 지금 보고 있는 거지?
눈이 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귀가 듣고 있는 게 아니에요
뭔가 오고 가는 것
소리 오고 가잖아요
보이는 거 오고 가잖아요
계속 바뀌잖아요, 풍경이.
바뀌는데 바뀌는 거 이면에 바뀌지 않는 것
불생불멸하는 참된 진실이 있는데
그 진실에 확 규합을 하게 도면 이 세상을 살면서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거죠.
출세간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제 내가 옛날의 세간의 사람이 아니구나
세간 속에 그대로 살지만 더 이상 세간 사람이 아니구나 할 정도의 변화가 있다는 거죠.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공부의 길입니다.
마음공부를 닦아가는 길을 모든 분들께서 발심해서 확인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르겠어요
한 두분 정도가
어떤 분은 댓글로 첫 번째 자리를 본거 같다,
뭔가 변화가 있다 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더라고요.
제가 보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럴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표현을 하셨어요.
일이백명 정도가 모이면 그 가운데 한 두명 정도는 아주 쉽게 깨닫는 사람이 있다.
법문 몇 번 들었을 뿐인데 바로 깨닫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깨닫는다는 것이 완전 도인이 된다는 게 아니라
이제 공부 시작할 수 있는 단계
견성하고 공부 시작할 수 있는 단계가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몇 달 걸리기도 몇 년 걸릴 수도 있죠.
자기가 어떻게 공부에 대한 발심을 하느냐에 따라서 불가능한 게 아니란 말이죠.
오늘은 드디어 우리 식당이 완성이 되어서 법회 후에 공양이 마련되어 있으니
한 분도 빠짐없이 공양을 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와우~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감사합니다 ...
법우님의 수고로움으로 좋은 법문과 늘 함께합니다~~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_()_
감사합니다()()()
법우법우님께서 녹취하시느라 애쓰신 이 법문.
우리 모든 법우님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들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
오랜 시간동안 노력하신 공덕으로 다른 많은 법우님들께 좋은 영향 있을듯합니다.
듣는법문도 좋지만 읽는법문도 참 좋네요..
많이 느끼고 갑니다. 탁 내려놓고 중심이 잡아지는 부분이 있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법문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이순간 눈물납니다!
스님의 법문은 늘 저를 울립니다!
말씀이 그대로 법입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_()()()_
스님 법문 영상으로 듣고
법우님 녹취로 또 읽고
좋고 좋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_()_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