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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28
우리 사회의 큰 변화를 본다면 외형상으로는 아파트가 거의 모든 사람의 주택이 되었고 승용차가 거의 집집마다 있고 여행도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을 갔다오는 등 정말 일상생활이 과거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편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후반 들어 자살률이 연속으로 증가하면서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2년째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2015년부터 2019년 까지 한 해 자살한 사망자만도 13000명 정도로 하루 35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입니다. 잠정적으로 대략 13,000명 중에는 남자 9,000명 여자 40000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노인 자살률은 54명으로 OECD 평균 세 배에 달했고 청소년층의 자살도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자살하는 노인 세대의 비율을 보면 노인 단독 세대가 70%, 자녀와 동거하는 세대가 30%인 것을 보면 홀로사는 노인들은 가족의 투병생활과 죽음 등으로 인한 상실감과 고립상태에서 우울감을 경험하면서 가족과 같이 사는 노인들보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을 보더라도 무엇보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청소년의 경우도 교육과학기술부가 조사한 지난 5년간 학생 자살자 조사에 따르면, 매년 200명 정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자살을 생각한 이유로는 학교성적, 진학문제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한국의 노인 자살률에 대해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보다 소득이 낮거나 비슷한 나라들의 자살률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를 ‘한국의 수치’라고 보도했다. 이는 정서적 자립이 약해서 나타나는 경우라고 진단하면서 정신적인 건강과 사회적인 건강을 챙기는 것, 자기 계발,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신체적으로 불편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이 가능해진다”고 조언했다.
자살 원인에 대해서는 자살사망자의 80%가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었고 그 중에서 80%-90%는 우울증의 결과로 추산되고 있다. 평생 한 번이라도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5.6%(약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자살하는 범죄는 줄어들기에는 역부족할 것이다.
1. OECD에서 선두를 달리는 한국의 자살률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공직자들도 눈에 띄게 됩니다. 노무현 정부시절 2004년 2월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 중이던 안상영 부산시장이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같은 해 4월에는 박태영 전남지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 시 인사 및 납품 비리로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한강에 투신해 자살했고, 6월에는 전문대 설립과 관련한 뇌물 혐의로 검찰 내사를 받던 이준원 파주시장 역시 한강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가장 충격으로 빠뜨리게 한 자살사건은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검 중수부에서 소환조사를 받은 직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검찰은 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서 640만 달러 뇌물수수 등 혐의로 소환 조사하던 중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를 종결했다. 공직자들의 자살은 잊을만하면 또 이어지는데 2018년 7월 23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드루킹' 김동원씨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노 원내대표가 아파트에서 투신하면서 전국을 떠들썩 했고 그 때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날 밤 노 원내대표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노 원내대표의 정치적 유지를 계승하겠다고 울멱였는데 박 시장과 노희찬 두 사람은 1956년생 동갑내기이면서 경기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지난 40여년간 노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마음을 줄 수 있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모두 비극적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봐야 할까?
2020년 7월 9일 오후 5시 17분 박 시장 딸이 "네댓 시간 전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했고, 이후 전화기가 꺼져 있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지 7시간 만인 10일 새벽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북악산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박원순시장의 자살은 우리들을 더욱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자살한 원인으로는 박원순시장은 2017년부터 전직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한 다음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왜 이런 성추행사건이 그에게 왜 미묘한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인식을 처음 만든 결정적 사건의 변호인이 당시 박원순 변호사였다는 것이다. 1993년 법적으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의 변호인이었던 박원순 시장은 1998년 서울 고법에서 가해자가 우조교의 정신적 피해에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끌어낸 변호사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서울시장이 되니 이번에는 자신이 성폭력 가해자이기 때문에 이번 성추행으로 인한 자살은 쇼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우조교 변호를 통해 그해 여성운동상을 받았고 그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에 기부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면서 성추행 사건하면 2018년 안희정 충남지사가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직접 폭로하면서 미투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현재 복역중이고 2020년 총선 직후에는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성공무원을 추행하면서 시장직에서 사퇴를 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이번에는 서울을 여성중심 노동중심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예방하는게 중요하다고 하면서 세계여성의 날 등 계기가 있을 때 마다 박원순시장은 여성들을 응원하고 성희롱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보냈던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성폭력 가해자로 자살을 했던 것은 세계적인 뉴스거리일 수 밖에 없다. 박원순시장의 이력은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으며 이후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낙천·낙선운동까지 굵직한 시민운동마다 그의 이름 석 자가 등장했고 2005년, 당시 아름다운재단 이사로 우리 사회 속에 기부문화를 확산시켰던 입지적인 인물이었는데 2011년 10월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정계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 그의 정치 여정은 순탄한 길을 걸으면서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임기 약 9년 정확히 말하면 3180일 만에 비극으로 멈췄다. 앞으로 이 기록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고인의 장점도 있었지만 잠시 일반일들이 잘 몰랐던 박원순의 다른 모습을 말하고자 합니다. 지만원씨가 쓴 박원순 가족 전체가 벌여온 난잡한 굿판들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1. 박원순은 1992년 하버드 법대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있었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그의 이력을 검증한 전 강용석 의원이 하버드법대로부터 받은 서신을 공개했다. 하버드대학에는 박원순의 이름을 아무데서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어학연구소에 갔다온 것을 하바드 법대라고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문제가 제기돼서인지 10월 13일, ‘하버드법대 객원연구원’이라는 경력사항이 그의 홈페이지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2. 박원순은 10월 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 거실을 빽빽이 채운 책장 사진을 공개하면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지하에서부터 7층까지의 도서관 책을 모두 읽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가져온 책이 수 만권에 달하는데, 이 책들이 지금 방배동 자택의 아파트 구석구석을 모두 채우고 있다. 하버드대 도서관 장서 수는 약 1,645만권이라 한다. 1년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모두 읽으려면 하루에 쉬는 날 없이 4만권 이상을 읽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정신병에 걸리지 않고서는 이런 뻥을 칠 수 없을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강용석 의원은 “하버드 법대 도서관은 내 기억으로 4층이고, 중앙도서관은 와이드너인데 역시 5층 이하다. 지하 3층에서 7층이란 과연 하버드의 어느 도서관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머리에 빨갱이 사상이 들어가면 우상화 병이 걸리는 모양이다.
3. 박원순은 2011년 2월 tvN에서 백지연이 서울법대 다니시고 엘리트코스 밟으셨네요 하자, 박원순은 “그렇다”고 으시댔다. 강용석 변호사는 박원순의 서울대 입학 이후의 학력이 모조리 거짓이라고 폭로했다.
4. 박원순 딸은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학과 3년차인 2006년 2월에 서울대 법대로 전과했는데 2002~2009년 법학부 전과생 308명 중 미술대학 출신으로는 박원순의 딸이 유일하다고 하며, 미술대에서 일약 법대로 전과한다는 것은 좌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일반사람들은 꿈도 못꾸는 일이다. 서울법대에는 참여연대 출신인 조국, 안경환, 한인섭 등이 활동하고 있고, 딸의 전과 당시 조국 교수는 법대 부학장이었다. 그런데 조전혁 의원은 당시 조국교수가 영향을 미쳤다고 했고, 조국은 당시 자기는 하버드대 근처에 있는 엔칭연구소에 있었다며 소송을 하겠다고 덤빈다. 하지만 딸이 전과한 2006년 2월이면 IT의 발달로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이른바 영 거리(zero distance) 시대였다. 미국에 있었다고 해서 조국교수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사실관계는 알 수 없지만, 조국교수의 답변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초점은 박원순 딸의 시공을 초월하는 영명한 능력이지 조국 교수는 아닐 것이다. 세상에 미술 디자인을 공부하던 대학생이 갑자기 3학년이 돼서 법대로 전과할 수 있다면 서울법대는 쓰레기 법대가 될 것이다. 박원순 일가가 이렇게 굿판을 쳐도 무덤덤한 사회가 바로 지금의 우리 사회인 것이다.
5. 박원순이 이끌던 아름다운재단이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 한다. 아름다운재단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928억3백만원이란 거액의 기부금을 모금했는데 법을 어기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재단이 10억 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으면 행안부에, 1천만원 이상 10억원 미만을 받으면 서울시에 등록해야 해야 하는데 박원순은 이를 전혀 지키지 않았기에 일부 단체들은 검찰 고발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다. 아름다운재단은 본인들이 계약한 민간 회계 법인의 감사를 받았을 뿐 감사원과 같은 공기관으로부터 단 한 번도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참모습을 보아야 그의 내면을 알 수 있다.
박원순시장이 자살한 10일에는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100세를 향수하면서 별세했다. 같은 날 이 두 사람의 죽음은 너무나 비교된다. 한사람은 자살로 마감했고 한 분은 향수를 누리면서 마감했기에 더욱 그렇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사람을 말하자면 미8군 장군 워커장군과 6·25전쟁 때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장군을 몰라서는 안된다, 6·25 전쟁 당시 한달만에 전국토의 90%가 김일성 수중에 있었는데 만약 낙동강 전투에서 패배하였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역사속에서나 존재하는 나라였는데 우리의 영웅이신 백선엽장군이 낙동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워서 승리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백선엽장군은 낙동강 방어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다부동 전투 때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 만약 내가 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며 배수의 진을 쳐 후퇴를 막았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0년 여름 1사단장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 전투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증언했다. 전세가 역전돼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할 때는 "나라의 자존심이 걸렸다"며 행군을 강행해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해 태극기를 꽂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평양에 입성했을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었다"며 "1사단장으로 한미 장병 1만5천여명을 지휘하며 고향(평남 강서)을 탈환했다"고 말했다.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의 방한 때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브리핑해 참모총장 재임 당시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한 일화도 있다.
백 장군은 1960년 대장으로 전역한 뒤 외교관과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일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탓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이 오르며 논란이 되기도 한데 해방되기전 일본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그분의 공을 깍고자 하는 좌파들의 꼭두각시 놀음이라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백선엽 장군이 별세한 데 대해 당 차원의 공식 논평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하는데 고인이 6·25 전쟁에서 세운 공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과거 친일 행적도 분명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였다.
태극무공훈장(2회),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전쟁一千日'(1988), '軍과 나'(1989), '실록 지리산'(1992), '한국전쟁Ⅰ,Ⅱ,Ⅲ'(2000), 회고록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2010),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2012) 등이 있다. 이런 충성스러운 노병의 죽음이 성폭력 가해자로 자살을 택한 박원순 시장의 자살에 가려지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
성경은 여섯 째 계명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온 천하를 얻는 것 보다도 너무 고귀하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목숨을 살해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목숨을 살해하면 살인이라 하고 자기 목숨을 살해 하면 자살이라고 하는데 분명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자살한 자들의 영혼은 지옥에 가는데 0순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6계명을 범했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을 아무리 미화하더라도 자살하는 순간 그들의 영혼은 불타는 지옥으로 직행하게 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자살하는 자들을 추모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죄를 용서받아야 지옥을 면합니다
어떤 사람이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게 되었는데 그 백화점은 가격 정찰제를 하기 때문에 할인을 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마음에 드는 옷을 보고 가격을 물었습니다. "예, 그 옷은 10만원입니다." "너무 비싸군요. 7만원만 합시다." "안 됩니다. 10만원 주셔야 합니다." "뭘 그러십니까? 그럼 8만원 드리겠습니다" 하며 그 사람은 값을 치르려 했지만 점원은 "그렇게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곳에서는 할인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10만원 주셔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꼭 10만원을 다 내야 합니까?"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제값을 다 주고 그 옷을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교인들중에는 하나님 앞에서도 죄값에 대해 할인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값에 대해 사망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롬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에 대해 치러야 할 값은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므로(롬3:23) 누구나 죄 값을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값을 덜 치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회개하면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지 죄의 삯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서 무더기로 지옥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그 당연한 일을 했다고 해서 죄가 용서되겠습니까? 어떤 강도 짓을 한 사람이 재판을 받게 될 때에 그가 재판장 앞에서 잘못했다고 회개하면 그 죄가 그냥 용서가 되겠습니까?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키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회개했다고 그 죄가 용서되는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회개하는 것과 그 죄에 대하여 벌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그가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죄의 값을 치르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하여 해방을 받으려면 자기의 죄 값을 치르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회개입니까? 새벽기도입니까? 선행입니까? 십일조입니까? 찬송하는 것입니까? 성경공부 하는 것입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것입니까? 주기도문을 열심히 외우는 것입니까? 그렇게 할 때 죄의 값이 치러집니까? 하나님 앞에서 죄값을 할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죄에 대한 판결은 죄인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재판장이 내리는 것입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사망 이외에 죄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결코 죄에 대한 할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자신의 노력을 멈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3.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유일한 길이 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는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렇게 죽어야 했습니까? 성경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들에게 대속물로 주시고자 하였는데 대속물이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어주는 희생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으로서 죽어야 할 그 죄값을 치루기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들 죄악에 대한 대속물이 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믿으면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은 것입니다. 여기 대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던 것은 우리들이 죽은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면 네 사람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식사 후 나올 때 그 중 한 사람이 식대를 지불하였을 때 다른 세 사람도 역시 식대를 지불한 것이 되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다른 세 사람은 식대를 지불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낸 것과 똑 같듯이 주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당신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예수님은 이미 당신의 죄값으로 죽은 것으로 하나님이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서 죄의 값을 다 받으셨고 당신의 죄 값은 지불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다는 것은 "다 갚았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아무 죄도 묻지 않으십니다. 주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주셨는데 무슨 죄가 또 남아 있겠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삯은 이미 지불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치를 죄 값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전부는 주님이 날 위해 죽으셨던 것을 믿고 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정말로 저의 죄의 삯을 대신 갚아 주신 주 예수님 참 감사드립니다"하면서 지금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길은? 은혜로 말미아아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롬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들은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 하였으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일생을 살고 있으면서 신이 어디 있느냐 하며 마음대로 살겠지만, 죽음은 분명히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한번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믿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오직 육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에게 선포하시기를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느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신 것은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인데 모든 인류는 이런 죽음의 두려움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아주 놀라우신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즉 나사로가 죽은지 4일만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현장을 보여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면서 죽음 이후에도 소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엄중하게 선포하신 이 말씀을 전 인류는 두려워하여야 할 줄 믿습니다.
4. 죄용서 받지 못하고 죽으면 둘째 사망을 받습니다
죄용서받지 못하고 죽은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는데 심판 받을 대상이 계시록 21:8에 나와 있습니다.
(계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심판받을 대상들의 명단을 보시오.
(계20:12-15)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여 멸망을 당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생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요, 부활의 생명의 씨앗이 있었기에 죽음에서 최초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들도 생명의 씨가 있다면 몸은 죽어도 영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산자와 죽은 자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에덴동산에 아담을 보십시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을 하셨는데 아담이 먹고 난후 바로 죽었을까요? 아니올시다. 아담은 이 후에도 90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산자와 죽은 자의 개념이 우리 인간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는 생명의 말씀으로 사는 자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배를 위해서 사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또 몸도 영원히 산다고 하니 이 육신이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육신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이계시면서 먹고 마시며 사셨던 그 홀연히 부활한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몸이 영원히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산다는 말씀이 아니라 죽은 이후 부활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장수를 하던가요? 이 말씀을 직역하면 부모 곧 하나님을 공경하면 장수 곧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이 무엇이고 목숨이 무엇입니까?
생명은 영원한 것이요, 목숨은 숨을 쉬고 있는 우리 육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부모공경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이 아니가요?
(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들 중에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니라.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고 있으며 그런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는 그냥 은사입니다. 그것이 나타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은사를 행하는 사람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이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기도를 해서 어떤 사람의 병을 고쳤다면 그것은 단지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반드시 구원에 참예한 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병이 나은 사람도 확실하게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은사입니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과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은사주의에 빠져 맹목적으로 쫓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었다고 안 죽습니까? 마치 안 죽는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암병이 걸려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다고 해도 이 육신은 반드시 사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사도바울도 그렇고 디모데도 그렇고 병이 치유되지 않아서 고통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치유는 믿는 사람에게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 가운데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병도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니 자기 병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순교할 수 있겠습니까? 병이 치유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그것을 이길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축복을 받은 성도입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는 어떻든 한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변경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럼 그렇게 정해 놓았으면 병이 걸려서 죽든 순교를 당하든 사고로 죽든 우리는 어차피 죽어야 합니다. 정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하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는데 그 정해 놓으신 것을 성도들에게서 굳이 그것을 막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조금 더 살고 조금 일찍 죽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구원을 내가 이루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 하신다면 어차피 죽을 생명을 굳이 연장 시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필요도 사람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 믿음을 온전히 갖지 못했다면 병을 줘서 그것을 통해 회개하고 고침을 받아서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전한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병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병을 주셨어도 그것을 받아 들이게 하시고 또한 그 병으로 죽게 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병도 받아 들이고 순교도 받아 들인다는 사람이 그깟 병을 못 받아들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은사주의에 빠지지 마세요. 그것도 하나의 율법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은사가 나쁘다는 말씀이 아니라 은사주의에 빠지면 율법주의와 같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내게 신유의 은사가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세요. 그러나 그것이 마치 구원과 연결되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면 그는 은사를 통해 병을 고치고 고침을 받았어도 그 영혼은 사망가운데로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성도는 한번 죽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생에 병을 고치려 하기 보다는 두번째 사망을 당하지 않도록 믿음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조금 아프면 어떻습니까?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기 보다는 영혼을 보고 안타까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5.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 불못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 살았을 때 보다 사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후세계는 살았을 때 행한 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으며,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신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죽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 받아 승천하셨으며 때가 이르면 다시 오셔서 흰 보좌(계20:11-15)에 앉으실 때 지금까지 죽은 자들이 자기의 행위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며(히9:27), 각 사람도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불못에 던지우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지운다(계21:8)는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한번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눅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살아 있는 자에겐 신이 존재’하지만(신의 존재를 믿던지 안 믿던지 상관없이) ‘죽은 자’에겐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 할 수도 없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을지라도 당신을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와 만리장성으로 한때 세상을 제패하며 온 세상을 점령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그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여 서복을 보내어 동해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었습니다. 결국 37년간의 그의 정권도 붕괴되었습니다.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그는 뼈도 남지 않았습니다.
스탈린 역시 죽지 않는 약을 먹고자 갈망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뜻을 받아 과학적인 방법으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의 고향에서 백살이 넘은 노인들을 불러다가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각종 식물 약제를 시험하여 반응을 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노인들 중에는 실험에 의해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수의 방법을 발명해 내기도 전에 스탈린은 죽고 말았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서 죽게 되어 있으나 우리는 죽음으로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고 난 후 우리 속에 있는 영원히 죽어지지 않는 또 다른 나 곧 나의 영혼이 처할 운명을 생각하고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할 때부터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드셨기에 짐승이나 다른 피조물들처럼 죽음으로 그냥 끝나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 가운데 지옥에 떨어져 또 영원한 고통을 당하느냐? 그래서 우리 인간에겐 본성적으로 나를 만들어주고 낳아준 창조주를 그리워하고 찾고자 하는 '선한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구원과 진리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선 지금도 그 분을 대신할 '목자'를 세워서 참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고 많은 사람이 구원으로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을 속여서 죄를 짓게 하고 모든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가고자 했던 저 악한 마귀는 지금도 이 땅에 거짓 목자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참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훼방하며 사람들을 미혹해서 저들이 파놓은 함정(거짓 교리와 인간의 계명, 사상)에 빠뜨려 온갖 궤계와 술책으로 사람들을 멸망으로 몰아가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양심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지금 공중권세를 잡고 인간세계를 이끌어가는 자는 어둠의 세력자요 흑암의 왕인 원수 '마귀' 입니다. 우리가 까딱하면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고 잘못 따라갔다가는 하나님으로 가장한 마귀의 음성(거짓 목자의 음성)을 듣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신다구요?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니므로 구원을 이미 받으셨다구요? 그래서 천국은 당연히 가게 되어 있고 미래는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으시다구요? 그것이 참말인가요? 아닙니다요!!
절대 구원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가는 천국,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천국. 구원의 문은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마7;13-14,눅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십자가의 그리스도'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행 2:36/요 20:31/요일 5:1)
다시 말씀드리자면 '예수'는 십자가 지기 전 인자 사람의 이름이며, '그리스도'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이름. 곧 영광과 승리의 이름인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없는 죄사함과 구원, 영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여기에서, 예수님과 그리스도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고 그의 부활하심이 우리에게는 의가 되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심을 믿는 믿음이어어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어떻게 믿든 믿는 것은 본인 마음대로 믿지만 진리를 믿느냐. 거짓을 믿느냐에 따라 영원 영생의 천국이냐. 아니면 영벌의 불못 지옥이냐가 주어지는데 결과는 극과 극으로 갈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길로 나갈 때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길,진리,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 이외는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의미(도)를 깨닫고 하나님에게로 나가야 합니다. 그 길은 우리에게 열어 놓은 새롭고 보배로운 산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20).
흙에서 난것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당연히 한번은 죽지요. 그래서 부활이 필요한 것이고, 이때 부활을 하지 못하면 영원히 소멸이되는 거구요. 사람이 원래부터 영원히 살게 되어 있다가, 마귀의 유혹으로 인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의 몸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아들처럼 그렇게 되어 같이 사는 것입니다.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리나 끝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나는 죽는다는 것을 얼마나 의식하며 사나 싶습니다.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에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봅니다.죽음도 쉽지 않은 것이지만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이것을 의식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심판을 말입니다.심판의 준비는 우선은 내게 심판이 기다리고 있고 내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이것을 의식하며 살 때 우리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마음에 죄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모셨는지 아닌지 심판하심으로 의인은 영생에 죄인은 영벌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다니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과 다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인이고 출석을 채우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마음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일을 이 세상에서 이루셨을까요? 그 이야기를 하기 앞서 먼저 둘째 사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20:6).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28
우리 사회의 큰 변화를 본다면 외형상으로는 아파트가 거의 모든 사람의 주택이 되었고 승용차가 거의 집집마다 있고 여행도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을 갔다오는 등 정말 일상생활이 과거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편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후반 들어 자살률이 연속으로 증가하면서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2년째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2015년부터 2019년 까지 한 해 자살한 사망자만도 13000명 정도로 하루 35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입니다. 잠정적으로 대략 13,000명 중에는 남자 9,000명 여자 40000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노인 자살률은 54명으로 OECD 평균 세 배에 달했고 청소년층의 자살도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자살하는 노인 세대의 비율을 보면 노인 단독 세대가 70%, 자녀와 동거하는 세대가 30%인 것을 보면 홀로사는 노인들은 가족의 투병생활과 죽음 등으로 인한 상실감과 고립상태에서 우울감을 경험하면서 가족과 같이 사는 노인들보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을 보더라도 무엇보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청소년의 경우도 교육과학기술부가 조사한 지난 5년간 학생 자살자 조사에 따르면, 매년 200명 정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자살을 생각한 이유로는 학교성적, 진학문제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한국의 노인 자살률에 대해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보다 소득이 낮거나 비슷한 나라들의 자살률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를 ‘한국의 수치’라고 보도했다. 이는 정서적 자립이 약해서 나타나는 경우라고 진단하면서 정신적인 건강과 사회적인 건강을 챙기는 것, 자기 계발,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신체적으로 불편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이 가능해진다”고 조언했다.
자살 원인에 대해서는 자살사망자의 80%가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었고 그 중에서 80%-90%는 우울증의 결과로 추산되고 있다. 평생 한 번이라도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5.6%(약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자살하는 범죄는 줄어들기에는 역부족할 것이다.
1. OECD에서 선두를 달리는 한국의 자살률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공직자들도 눈에 띄게 됩니다. 노무현 정부시절 2004년 2월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 중이던 안상영 부산시장이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같은 해 4월에는 박태영 전남지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 시 인사 및 납품 비리로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한강에 투신해 자살했고, 6월에는 전문대 설립과 관련한 뇌물 혐의로 검찰 내사를 받던 이준원 파주시장 역시 한강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가장 충격으로 빠뜨리게 한 자살사건은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검 중수부에서 소환조사를 받은 직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검찰은 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서 640만 달러 뇌물수수 등 혐의로 소환 조사하던 중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를 종결했다. 공직자들의 자살은 잊을만하면 또 이어지는데 2018년 7월 23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드루킹' 김동원씨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노 원내대표가 아파트에서 투신하면서 전국을 떠들썩 했고 그 때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날 밤 노 원내대표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노 원내대표의 정치적 유지를 계승하겠다고 울멱였는데 박 시장과 노희찬 두 사람은 1956년생 동갑내기이면서 경기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지난 40여년간 노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마음을 줄 수 있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모두 비극적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봐야 할까?
2020년 7월 9일 오후 5시 17분 박 시장 딸이 "네댓 시간 전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했고, 이후 전화기가 꺼져 있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지 7시간 만인 10일 새벽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북악산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박원순시장의 자살은 우리들을 더욱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자살한 원인으로는 박원순시장은 2017년부터 전직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한 다음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왜 이런 성추행사건이 그에게 왜 미묘한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인식을 처음 만든 결정적 사건의 변호인이 당시 박원순 변호사였다는 것이다. 1993년 법적으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의 변호인이었던 박원순 시장은 1998년 서울 고법에서 가해자가 우조교의 정신적 피해에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끌어낸 변호사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서울시장이 되니 이번에는 자신이 성폭력 가해자이기 때문에 이번 성추행으로 인한 자살은 쇼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우조교 변호를 통해 그해 여성운동상을 받았고 그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에 기부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면서 성추행 사건하면 2018년 안희정 충남지사가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직접 폭로하면서 미투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현재 복역중이고 2020년 총선 직후에는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성공무원을 추행하면서 시장직에서 사퇴를 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이번에는 서울을 여성중심 노동중심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예방하는게 중요하다고 하면서 세계여성의 날 등 계기가 있을 때 마다 박원순시장은 여성들을 응원하고 성희롱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보냈던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성폭력 가해자로 자살을 했던 것은 세계적인 뉴스거리일 수 밖에 없다. 박원순시장의 이력은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으며 이후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낙천·낙선운동까지 굵직한 시민운동마다 그의 이름 석 자가 등장했고 2005년, 당시 아름다운재단 이사로 우리 사회 속에 기부문화를 확산시켰던 입지적인 인물이었는데 2011년 10월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정계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 그의 정치 여정은 순탄한 길을 걸으면서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임기 약 9년 정확히 말하면 3180일 만에 비극으로 멈췄다. 앞으로 이 기록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고인의 장점도 있었지만 잠시 일반일들이 잘 몰랐던 박원순의 다른 모습을 말하고자 합니다. 지만원씨가 쓴 박원순 가족 전체가 벌여온 난잡한 굿판들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1. 박원순은 1992년 하버드 법대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있었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그의 이력을 검증한 전 강용석 의원이 하버드법대로부터 받은 서신을 공개했다. 하버드대학에는 박원순의 이름을 아무데서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어학연구소에 갔다온 것을 하바드 법대라고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문제가 제기돼서인지 10월 13일, ‘하버드법대 객원연구원’이라는 경력사항이 그의 홈페이지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2. 박원순은 10월 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 거실을 빽빽이 채운 책장 사진을 공개하면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지하에서부터 7층까지의 도서관 책을 모두 읽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가져온 책이 수 만권에 달하는데, 이 책들이 지금 방배동 자택의 아파트 구석구석을 모두 채우고 있다. 하버드대 도서관 장서 수는 약 1,645만권이라 한다. 1년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모두 읽으려면 하루에 쉬는 날 없이 4만권 이상을 읽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정신병에 걸리지 않고서는 이런 뻥을 칠 수 없을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강용석 의원은 “하버드 법대 도서관은 내 기억으로 4층이고, 중앙도서관은 와이드너인데 역시 5층 이하다. 지하 3층에서 7층이란 과연 하버드의 어느 도서관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머리에 빨갱이 사상이 들어가면 우상화 병이 걸리는 모양이다.
3. 박원순은 2011년 2월 tvN에서 백지연이 서울법대 다니시고 엘리트코스 밟으셨네요 하자, 박원순은 “그렇다”고 으시댔다. 강용석 변호사는 박원순의 서울대 입학 이후의 학력이 모조리 거짓이라고 폭로했다.
4. 박원순 딸은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학과 3년차인 2006년 2월에 서울대 법대로 전과했는데 2002~2009년 법학부 전과생 308명 중 미술대학 출신으로는 박원순의 딸이 유일하다고 하며, 미술대에서 일약 법대로 전과한다는 것은 좌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일반사람들은 꿈도 못꾸는 일이다. 서울법대에는 참여연대 출신인 조국, 안경환, 한인섭 등이 활동하고 있고, 딸의 전과 당시 조국 교수는 법대 부학장이었다. 그런데 조전혁 의원은 당시 조국교수가 영향을 미쳤다고 했고, 조국은 당시 자기는 하버드대 근처에 있는 엔칭연구소에 있었다며 소송을 하겠다고 덤빈다. 하지만 딸이 전과한 2006년 2월이면 IT의 발달로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이른바 영 거리(zero distance) 시대였다. 미국에 있었다고 해서 조국교수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사실관계는 알 수 없지만, 조국교수의 답변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초점은 박원순 딸의 시공을 초월하는 영명한 능력이지 조국 교수는 아닐 것이다. 세상에 미술 디자인을 공부하던 대학생이 갑자기 3학년이 돼서 법대로 전과할 수 있다면 서울법대는 쓰레기 법대가 될 것이다. 박원순 일가가 이렇게 굿판을 쳐도 무덤덤한 사회가 바로 지금의 우리 사회인 것이다.
5. 박원순이 이끌던 아름다운재단이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 한다. 아름다운재단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928억3백만원이란 거액의 기부금을 모금했는데 법을 어기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재단이 10억 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으면 행안부에, 1천만원 이상 10억원 미만을 받으면 서울시에 등록해야 해야 하는데 박원순은 이를 전혀 지키지 않았기에 일부 단체들은 검찰 고발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다. 아름다운재단은 본인들이 계약한 민간 회계 법인의 감사를 받았을 뿐 감사원과 같은 공기관으로부터 단 한 번도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참모습을 보아야 그의 내면을 알 수 있다.
박원순시장이 자살한 10일에는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100세를 향수하면서 별세했다. 같은 날 이 두 사람의 죽음은 너무나 비교된다. 한사람은 자살로 마감했고 한 분은 향수를 누리면서 마감했기에 더욱 그렇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사람을 말하자면 미8군 장군 워커장군과 6·25전쟁 때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장군을 몰라서는 안된다, 6·25 전쟁 당시 한달만에 전국토의 90%가 김일성 수중에 있었는데 만약 낙동강 전투에서 패배하였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역사속에서나 존재하는 나라였는데 우리의 영웅이신 백선엽장군이 낙동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워서 승리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백선엽장군은 낙동강 방어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다부동 전투 때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 만약 내가 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며 배수의 진을 쳐 후퇴를 막았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0년 여름 1사단장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 전투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증언했다. 전세가 역전돼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할 때는 "나라의 자존심이 걸렸다"며 행군을 강행해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해 태극기를 꽂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평양에 입성했을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었다"며 "1사단장으로 한미 장병 1만5천여명을 지휘하며 고향(평남 강서)을 탈환했다"고 말했다.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의 방한 때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브리핑해 참모총장 재임 당시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한 일화도 있다.
백 장군은 1960년 대장으로 전역한 뒤 외교관과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일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탓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이 오르며 논란이 되기도 한데 해방되기전 일본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그분의 공을 깍고자 하는 좌파들의 꼭두각시 놀음이라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백선엽 장군이 별세한 데 대해 당 차원의 공식 논평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하는데 고인이 6·25 전쟁에서 세운 공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과거 친일 행적도 분명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였다.
태극무공훈장(2회),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전쟁一千日'(1988), '軍과 나'(1989), '실록 지리산'(1992), '한국전쟁Ⅰ,Ⅱ,Ⅲ'(2000), 회고록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2010),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2012) 등이 있다. 이런 충성스러운 노병의 죽음이 성폭력 가해자로 자살을 택한 박원순 시장의 자살에 가려지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
성경은 여섯 째 계명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온 천하를 얻는 것 보다도 너무 고귀하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목숨을 살해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목숨을 살해하면 살인이라 하고 자기 목숨을 살해 하면 자살이라고 하는데 분명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자살한 자들의 영혼은 지옥에 가는데 0순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6계명을 범했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을 아무리 미화하더라도 자살하는 순간 그들의 영혼은 불타는 지옥으로 직행하게 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자살하는 자들을 추모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죄를 용서받아야 지옥을 면합니다
어떤 사람이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게 되었는데 그 백화점은 가격 정찰제를 하기 때문에 할인을 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마음에 드는 옷을 보고 가격을 물었습니다. "예, 그 옷은 10만원입니다." "너무 비싸군요. 7만원만 합시다." "안 됩니다. 10만원 주셔야 합니다." "뭘 그러십니까? 그럼 8만원 드리겠습니다" 하며 그 사람은 값을 치르려 했지만 점원은 "그렇게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곳에서는 할인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10만원 주셔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꼭 10만원을 다 내야 합니까?"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제값을 다 주고 그 옷을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교인들중에는 하나님 앞에서도 죄값에 대해 할인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값에 대해 사망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롬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에 대해 치러야 할 값은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므로(롬3:23) 누구나 죄 값을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값을 덜 치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회개하면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지 죄의 삯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서 무더기로 지옥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그 당연한 일을 했다고 해서 죄가 용서되겠습니까? 어떤 강도 짓을 한 사람이 재판을 받게 될 때에 그가 재판장 앞에서 잘못했다고 회개하면 그 죄가 그냥 용서가 되겠습니까?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키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회개했다고 그 죄가 용서되는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회개하는 것과 그 죄에 대하여 벌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그가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죄의 값을 치르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하여 해방을 받으려면 자기의 죄 값을 치르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회개입니까? 새벽기도입니까? 선행입니까? 십일조입니까? 찬송하는 것입니까? 성경공부 하는 것입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것입니까? 주기도문을 열심히 외우는 것입니까? 그렇게 할 때 죄의 값이 치러집니까? 하나님 앞에서 죄값을 할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죄에 대한 판결은 죄인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재판장이 내리는 것입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사망 이외에 죄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결코 죄에 대한 할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자신의 노력을 멈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3.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유일한 길이 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는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렇게 죽어야 했습니까? 성경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들에게 대속물로 주시고자 하였는데 대속물이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어주는 희생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으로서 죽어야 할 그 죄값을 치루기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들 죄악에 대한 대속물이 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믿으면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은 것입니다. 여기 대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던 것은 우리들이 죽은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면 네 사람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식사 후 나올 때 그 중 한 사람이 식대를 지불하였을 때 다른 세 사람도 역시 식대를 지불한 것이 되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다른 세 사람은 식대를 지불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낸 것과 똑 같듯이 주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당신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예수님은 이미 당신의 죄값으로 죽은 것으로 하나님이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서 죄의 값을 다 받으셨고 당신의 죄 값은 지불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다는 것은 "다 갚았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아무 죄도 묻지 않으십니다. 주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주셨는데 무슨 죄가 또 남아 있겠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삯은 이미 지불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치를 죄 값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전부는 주님이 날 위해 죽으셨던 것을 믿고 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정말로 저의 죄의 삯을 대신 갚아 주신 주 예수님 참 감사드립니다"하면서 지금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길은? 은혜로 말미아아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롬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들은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 하였으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일생을 살고 있으면서 신이 어디 있느냐 하며 마음대로 살겠지만, 죽음은 분명히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한번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믿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오직 육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에게 선포하시기를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느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신 것은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인데 모든 인류는 이런 죽음의 두려움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아주 놀라우신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즉 나사로가 죽은지 4일만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현장을 보여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면서 죽음 이후에도 소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엄중하게 선포하신 이 말씀을 전 인류는 두려워하여야 할 줄 믿습니다.
4. 죄용서 받지 못하고 죽으면 둘째 사망을 받습니다
죄용서받지 못하고 죽은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는데 심판 받을 대상이 계시록 21:8에 나와 있습니다.
(계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심판받을 대상들의 명단을 보시오.
(계20:12-15)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여 멸망을 당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생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요, 부활의 생명의 씨앗이 있었기에 죽음에서 최초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들도 생명의 씨가 있다면 몸은 죽어도 영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산자와 죽은 자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에덴동산에 아담을 보십시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을 하셨는데 아담이 먹고 난후 바로 죽었을까요? 아니올시다. 아담은 이 후에도 90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산자와 죽은 자의 개념이 우리 인간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는 생명의 말씀으로 사는 자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배를 위해서 사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또 몸도 영원히 산다고 하니 이 육신이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육신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이계시면서 먹고 마시며 사셨던 그 홀연히 부활한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몸이 영원히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산다는 말씀이 아니라 죽은 이후 부활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장수를 하던가요? 이 말씀을 직역하면 부모 곧 하나님을 공경하면 장수 곧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이 무엇이고 목숨이 무엇입니까?
생명은 영원한 것이요, 목숨은 숨을 쉬고 있는 우리 육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부모공경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이 아니가요?
(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들 중에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니라.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고 있으며 그런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는 그냥 은사입니다. 그것이 나타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은사를 행하는 사람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이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기도를 해서 어떤 사람의 병을 고쳤다면 그것은 단지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반드시 구원에 참예한 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병이 나은 사람도 확실하게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은사입니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과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은사주의에 빠져 맹목적으로 쫓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었다고 안 죽습니까? 마치 안 죽는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암병이 걸려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다고 해도 이 육신은 반드시 사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사도바울도 그렇고 디모데도 그렇고 병이 치유되지 않아서 고통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치유는 믿는 사람에게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 가운데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병도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니 자기 병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순교할 수 있겠습니까? 병이 치유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그것을 이길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축복을 받은 성도입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는 어떻든 한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변경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럼 그렇게 정해 놓았으면 병이 걸려서 죽든 순교를 당하든 사고로 죽든 우리는 어차피 죽어야 합니다. 정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하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는데 그 정해 놓으신 것을 성도들에게서 굳이 그것을 막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조금 더 살고 조금 일찍 죽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구원을 내가 이루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 하신다면 어차피 죽을 생명을 굳이 연장 시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필요도 사람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 믿음을 온전히 갖지 못했다면 병을 줘서 그것을 통해 회개하고 고침을 받아서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전한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병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병을 주셨어도 그것을 받아 들이게 하시고 또한 그 병으로 죽게 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병도 받아 들이고 순교도 받아 들인다는 사람이 그깟 병을 못 받아들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은사주의에 빠지지 마세요. 그것도 하나의 율법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은사가 나쁘다는 말씀이 아니라 은사주의에 빠지면 율법주의와 같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내게 신유의 은사가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세요. 그러나 그것이 마치 구원과 연결되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면 그는 은사를 통해 병을 고치고 고침을 받았어도 그 영혼은 사망가운데로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성도는 한번 죽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생에 병을 고치려 하기 보다는 두번째 사망을 당하지 않도록 믿음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조금 아프면 어떻습니까?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기 보다는 영혼을 보고 안타까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5.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 불못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 살았을 때 보다 사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후세계는 살았을 때 행한 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으며,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신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죽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 받아 승천하셨으며 때가 이르면 다시 오셔서 흰 보좌(계20:11-15)에 앉으실 때 지금까지 죽은 자들이 자기의 행위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며(히9:27), 각 사람도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불못에 던지우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지운다(계21:8)는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한번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눅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살아 있는 자에겐 신이 존재’하지만(신의 존재를 믿던지 안 믿던지 상관없이) ‘죽은 자’에겐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 할 수도 없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을지라도 당신을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와 만리장성으로 한때 세상을 제패하며 온 세상을 점령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그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여 서복을 보내어 동해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었습니다. 결국 37년간의 그의 정권도 붕괴되었습니다.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그는 뼈도 남지 않았습니다.
스탈린 역시 죽지 않는 약을 먹고자 갈망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뜻을 받아 과학적인 방법으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의 고향에서 백살이 넘은 노인들을 불러다가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각종 식물 약제를 시험하여 반응을 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노인들 중에는 실험에 의해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수의 방법을 발명해 내기도 전에 스탈린은 죽고 말았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서 죽게 되어 있으나 우리는 죽음으로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고 난 후 우리 속에 있는 영원히 죽어지지 않는 또 다른 나 곧 나의 영혼이 처할 운명을 생각하고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할 때부터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드셨기에 짐승이나 다른 피조물들처럼 죽음으로 그냥 끝나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 가운데 지옥에 떨어져 또 영원한 고통을 당하느냐? 그래서 우리 인간에겐 본성적으로 나를 만들어주고 낳아준 창조주를 그리워하고 찾고자 하는 '선한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구원과 진리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선 지금도 그 분을 대신할 '목자'를 세워서 참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고 많은 사람이 구원으로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을 속여서 죄를 짓게 하고 모든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가고자 했던 저 악한 마귀는 지금도 이 땅에 거짓 목자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참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훼방하며 사람들을 미혹해서 저들이 파놓은 함정(거짓 교리와 인간의 계명, 사상)에 빠뜨려 온갖 궤계와 술책으로 사람들을 멸망으로 몰아가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양심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지금 공중권세를 잡고 인간세계를 이끌어가는 자는 어둠의 세력자요 흑암의 왕인 원수 '마귀' 입니다. 우리가 까딱하면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고 잘못 따라갔다가는 하나님으로 가장한 마귀의 음성(거짓 목자의 음성)을 듣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신다구요?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니므로 구원을 이미 받으셨다구요? 그래서 천국은 당연히 가게 되어 있고 미래는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으시다구요? 그것이 참말인가요? 아닙니다요!!
절대 구원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가는 천국,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천국. 구원의 문은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마7;13-14,눅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십자가의 그리스도'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행 2:36/요 20:31/요일 5:1)
다시 말씀드리자면 '예수'는 십자가 지기 전 인자 사람의 이름이며, '그리스도'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이름. 곧 영광과 승리의 이름인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없는 죄사함과 구원, 영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여기에서, 예수님과 그리스도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고 그의 부활하심이 우리에게는 의가 되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심을 믿는 믿음이어어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어떻게 믿든 믿는 것은 본인 마음대로 믿지만 진리를 믿느냐. 거짓을 믿느냐에 따라 영원 영생의 천국이냐. 아니면 영벌의 불못 지옥이냐가 주어지는데 결과는 극과 극으로 갈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길로 나갈 때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길,진리,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 이외는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의미(도)를 깨닫고 하나님에게로 나가야 합니다. 그 길은 우리에게 열어 놓은 새롭고 보배로운 산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20).
흙에서 난것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당연히 한번은 죽지요. 그래서 부활이 필요한 것이고, 이때 부활을 하지 못하면 영원히 소멸이되는 거구요. 사람이 원래부터 영원히 살게 되어 있다가, 마귀의 유혹으로 인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의 몸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아들처럼 그렇게 되어 같이 사는 것입니다.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리나 끝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나는 죽는다는 것을 얼마나 의식하며 사나 싶습니다.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에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봅니다.죽음도 쉽지 않은 것이지만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이것을 의식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심판을 말입니다.심판의 준비는 우선은 내게 심판이 기다리고 있고 내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이것을 의식하며 살 때 우리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마음에 죄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모셨는지 아닌지 심판하심으로 의인은 영생에 죄인은 영벌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다니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과 다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인이고 출석을 채우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마음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일을 이 세상에서 이루셨을까요? 그 이야기를 하기 앞서 먼저 둘째 사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20:6).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둘째 사망은 내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몸을 입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해서 세세토록 고통받는 것입니다. 이 둘째 사망에 참예하는 자는 너무나도 불행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사함의 진리를 알지 못하여 둘째 사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원래 이 지옥 불못은 범죄한 루시퍼와 그 추종하는 여러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마귀미혹으로 말미암아 범죄하면서 이 세상에서 죄의 종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단에게 조종당하고 사단에게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면서 죄사함을 얻는 회개를 하지 못하고 사단의 종으로 사단을 따라 지옥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었으며 아직은 이 은혜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은혜의 시대가 끝이 나고 천국의 문은 마치 노아의 때에 하나님이 방주를 닫으매 열자가 없었던 것처럼, 구원의 기회가 마감하는 날이 오고 말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얻은 것처럼 천국에 가는 숫자는 극히 적은 숫자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뿐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준비한 자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안에 포함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