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58)외팔이
오종각은 어릴 적부터 영악스럽고 재발랐다.
서당을 마치고 책 보따리를 허리에 맨 채 친구들을 데리고 장터에 가서 야바위판에 끼어들어
공기 돌리기 하는 야바위꾼의 손놀림을 뚫어지게 보다가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 판돈을 걸어
결국에는 돈을 땄다. 연거푸 돈을 따자 바람잡이가 종각이를 불러내 엽전 몇닢을 찔러주고 보냈다.
야바위꾼의 돈을 따 친구들과 주전부리를 하며 낄낄거리더니 커서도 제 버릇 못 고치고
장터거리 노름판에 들락날락했다. 농사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삼대 부자 없다더니 종각이네도
고을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는데 농사짓던 조부가 생뚱맞게 장사를 한다고 덤벼들다가 재산 반쯤
날리고, 종각이 아버지는 주색에 빠져 남은 재산을 축내더니 삼대째 종각이는 노름에 빠져 두손에
움켜쥔 모래가 솔솔 새듯이 재산이 빠져나갔다. 종각은 노름으로 잃은 재산을 찾으면 노름을 끊고
농사만 짓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하룻밤의 노름 결과를 치밀하게 분석해 깨알 같은
글씨로 치부책에 기록했다.
을사년 삼월 열하루
황 영감이 패를 부를 때 과감하게 찔렀어야 했는데 간이 작아 서른냥밖에 못 먹었다.
헛장을 간파할 일. 개평 세냥. 묵값 두냥.
종각은 그날의 전과를 자세히 기록하고 작전의 잘잘못을 분석했다.
노름판의 골패는 어릴 때 장터의 야바위하고는 수준이 달랐다.
목숨을 걸다시피 치열했다. 어느 날 밤, 그날은 죽어라 끗발이 안 올라 일찌감치 손을 털고 주막에 가서
혼술을 하고 있는데 외팔이가 다가와 앞자리에 앉았다.
노름방에서 얼핏 봤던 사람으로 노름판에 끼어들지는 않고 뒷자리에서 개평이나 뜯던 사람이다.
개평꾼들이야 우글거리지만 외팔이라서 기억하고 있었다.
“한잔 주시오. 백배천배를 갚을 테니.” 삐쩍 마른 얼굴에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연신
“에헴 에헴” 잔기침이다.
종각이 탁배기 한잔을 따르자 마른논에 논물 대듯이 벌컥벌컥 단숨에 마시고 짠지 한점으로
입가심을 하더니 한다는 말이
“그런 골패 솜씨로 어떻게 노름판에 끼어드시오? 친구끼리 묵 내기도 아니고”였다.
종각이 사방을 두리번거리고는 바짝 다가앉았다.
몇마디 소곤거리다 종각이 외팔이의 입을 막았다.
“주모∼ 여기 너비아니 한근하고 청주 한병 주시오.”
종각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호리병을 두손으로 받쳐 들고 공손하게 청주 잔을 올리며
“사부님, 한잔 드시지요” 말했다. 외팔이가 갑자기 사부가 됐다.
주막을 나와 컴컴한 빈 장터를 돌아 종각이 앞서고 외팔이가 뒤따라 도둑질하러 가듯
두리번거리며 동네 골목을 빠져 집으로 갔다. 종각이는 외팔이 사부를 사랑방에 모셨다.
과부 종각어미가 눈이 둥그레졌다.
“누구냐?”
“어머니, 제가 사부님으로 모시는 귀한 분이세요.”
이튿날부터 학습이 시작됐다.
“첫째, 노름꾼은 독심술(讀心術)을 익혀야 혀.”
사부가 부채를 펴더니 콧잔등에 얹어 두눈만 빠끔히 내놓고 종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상대방에게 최면을 걸면 그의 패를 읽을 수 있어.”
삼일 동안 구름 잡는 얘기만 해 종각이가
“사부님, 실전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좀 가르쳐주십시오”
목이 메어 말하자 사부가 한숨을 쉬더니 답했다.
“그려∼ 상수(上手)를 익히려면 세월과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지, 하수(下手)를 가르쳐주지.”
오른팔이 없는 외팔이는 오른발이 팔 역할을 했다.
꼬질꼬질한 버선을 벗어 던지고 투두둑 발가락을 꺾더니 왼손과 짝을 맞춰 골패 서른 두패를
공깃돌 다루듯이 좌르르 폈다가 여섯패씩 돌렸다.
어느새 외팔이 왼 소매에서 패 하나가 나왔다.
마술을 보듯이 종각이는 넋을 잃었다.
“아륙을 잡으면 버선 밑으로 이렇게 넣었다가….”
외팔이를 따라서 종각이 두손도 바쁘기만 하다.
“패를 빼돌려 감출 때는 꼭 내 몸에만 하지 말고 옆 사람 두루마기 자락에도 넣어.”
종각이는 패를 속이는 하고 많은 수법 중에 우선 세가지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마침내 외팔이 사부가 고개를 끄덕여 그날 밤 오랜만에 노름판에 꼈다.
싹쓸이를 했다.
사랑방에 칩거하는 외팔이 사부의 삼시세끼 밥상엔
갈비구이·보리굴비·꼬리곰탕·송이산적에 감로주·소곡주·산삼주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종각이는 낮에는 사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밤이면 노름판에서 긁어모았다.
종각이는 새 세상에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날 밤도 싹쓸이를 하고 묵직한 전대를 차고 노름방을 나서니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꼬끼오∼” 새벽닭이 울었다.
단비를 흠뻑 맞고 휘파람을 불며 집에 왔더니 안방에서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방은 아수라장이고 어머니의 옷은 찢겼다.
종각이가 안마당을 내달려 잠긴 사랑방 문을 부숴버리고 들어가 반 죽도록 외팔이를 짓이겨 쫓아냈다.
며칠 후, 심란한 마음으로 노름판을 찾았다.
잽싼 솜씨로 주륙패를 소매 속에 넣었을 때 맞은편에 앉았던 소장수 황가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종각이를 눌러 덮치고 소맷자락 속에서 주륙을 꺼냈다.
“으아∼악” 밤공기를 찢으며 작두에 종각의 오른 손목이 떨어져 나갔다.
첫댓글 좋 은 아 침 하루는 짧지만 이 짧은
하루가 당신에게 무한한 행복으로
가득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