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 작가의 장편소설 『열세 번째 사도』(푸른사상 소설선 45).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이자 배신자로 낙인찍혔던 가룟 유다의 새로운 이야기가 이 소설집에 펼쳐진다. 한 종교학과 교수가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역사의 뒷전에 감추어졌던 진리를 추적하는 이 소설은 동서고금을 넘어 진정한 영적 거룩함을 찾아 나선다.
2023년 5월 2일 간행.
■ 작가 소개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창비신작소설집에 단편소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일락 향기』, 장편소설 『풋사랑』 『낯선 사람들』 『폭설』, 시소설 『짜라투스트라의 사랑』, 시집 『겨울바다』 『남해엽서』,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 『생의 위안』, 기행문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 철학 산문집 『죽음에 관한 유쾌한 명상』 『그래, 흘러가는 시간을 어쩌자고』가 있으며 1990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명지대, 한신대, 국민대 등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하였고,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과 실천문학 대표를 역임하였다.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거대한 예수 드라마에서 가룟 유다는 과연 어떤 역을 맡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과연 서양의 모든 역사, 교회와 신학과 문학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사탄이나 악령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가룟 유다는 정말 그의 참모습일까? 거기엔 어떤 숨겨진 진실 같은 게 없을까? 이런 오랜 질문은 그 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유다복음』이라는 것을 읽게 되었다. 『유다복음』은 1976년 이집트의 한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되어 200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의해 일부 복원되어 세상에 알려진 기독교의 오래된 저작이다. 첫머리에 ‘예수님이 유월절을 기념하시기 3일 전부터 가룟 유다와 나눈 1주일간의 은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복음서에는, 유다가 다른 사도들에 비해 훨씬 우위에 있고,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예수가 육신을 벗어야 부활할 수 있음을 유일하게 인식한 수제자로 그려지고 있다. 더구나 예수는 직접, ‘너는 열세 번째가 될 것이며 다른 모든 세대들에 의해 저주를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글을 읽고 나서 나의 작가적 상상력은 그의 생애와 그의 있음 직한 후대의 삶에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대민족의 독립을 위해 열심당으로 활동했던 젊은 시절, 그리고 예수와의 극적인 만남과 예수 사후의 활동 등…….
■ 작품 세계 중에서
『열세 번째 사도―배신자 가룟 유다에 관한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이하 『열세 번째 사도』)는 신학과 역사를 가로지르며 금기된 질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실은 예수의 뜻을 가장 충실히 받든 제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불온한 상상이다. 일견 당황스러운 질문인 듯하지만, 이는 실제로 1970년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유다복음』을 비롯하여 기독교 역사의 맥락 속에 기입됨으로써 개연성을 획득한다. 2006년 전 세계에 공개된 『유다복음』은 유다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기에 충분했다. 곧, 유다가 탐욕에 눈이 멀어 예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그 배신마저 예수의 지시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예수의 운명을 완수하는 데 가장 결정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역할을 맡은 이가 바로 유다가 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는 『유다복음』이 이단 집단에 의해 꾸며진 것이라 보고 이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다복음』의 진위를 고증하는 일이 고고학과 신학의 몫이라면, 문학의 심문은 보다 도전적이고 위협적이다. 『유다복음』을 마주한 소설가 김영현은 이렇게 질문한다. 『유다복음』이 ‘이단’이라면, ‘정경(cannon, 正經)’을 정경이게끔 하는 권위의 원천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기독교사를 되짚어볼 때 정경이 신의 뜻만으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학과 역사학 사이의 메꾸어지지 않는 틈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불온하게 피어난다.
『열세 번째 사도』는 ‘인간 역사에 있어 종교란 무엇인가’, 그리고 ‘신학도 역사도 아닌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무겁고도 어려운 주제를 추리소설의 형식을 통해 흡인력 있게 풀어낸다. 어느 종교학과 교수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2천여 년 전 예수와 유다의 밀약이 지금 여기로 호출되는 것이다.
- 이지은(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정신없이 읽었다. 과거와 현대를 바삐 오가고 동서양의 대지를 무른 메주 밟듯 누비는 김영현의 상상력에 몇 번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놀라운 박람강기 앞에서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천 년 이천 년 오직 비난과 매도의 대상이던 가룟 유다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꾀하는 작가의 용기가 퍽 자연스러웠다.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지만, 김영현은 여전히 「포도나무집 풍경」과 「벌레」 시절부터 내가 알고 또 시샘했던 그 이야기꾼에 틀림없다. 그런데, ‘열세 번째 사도’ 유다의 복음서가 뒤늦게 발견되었듯 그의 계시록 또한 언제고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 김남일(소설가)
김영현의 이번 신작 장편은 역사의 뒷전에 감추어진 일말의 진리를 탐문하고 추적하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서사시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인간의 공통된 유한성과 우연성의 운명을 기꺼이 떠맡은 채 영원한 생명의 길, 그러나 그새 잃어버린 영적인 거룩함을 찾아 나선 장엄한 구도 소설에 해당한다. 우린 지금 가룟 유다가 추적자들의 눈길을 피해 도망하거나 은적(隱迹)해야 했던 동방의 길을 따라 그동안 단절된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훌쩍 뛰어넘은 새로운 종교와 문명의 실크로드, 이제껏 아무도 본 적이 없거나 불려본 적 없는 저마다의 소중한 심연의 별을 찾아가는 고독한 순례의 ‘차마고도’에 서 있다. ― 임동확(시인)
■ 작품 속으로
예수께서는 유다를 산 위로 데려가 이 세상의 처음과 마지막에 대해 일찍이 천사들도 보지 못했던 은밀한 비밀들을 모두 보여주셨다. 그것은 존재하는 심원하고 무한한 세계이며, 그 무한한 세계의 넓이는 아직 어떤 천사의 눈도, 어떤 사려 깊은 사람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아직 이름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유다야, 머지않아 이곳에 종말이 올 것이다. 마사다에서 피가 강을 이룰 것이며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하늘에 닿을 것이다. 성전은 무너지고, 집들도 돌멩이 위에 돌멩이 하나 없이 허물어질 것이며, 이 민족은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기약 없이 수천 년간 정처 없는 방랑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유다를 보며 마지막 유언처럼 덧붙이셨다.
“이 일이 모두 끝나면 너는 동방으로 가거라. 동방 끝까지 가서 내 말을 전하고, 나의 나라를 세우거라.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라.” (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