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27. 여초부지법
참회-용서 통해 갈등 해소하는 화해법
결점 덮어 보완하려는 승가 미덕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는 것과, 자신과 대립하며 비방과 욕설을 늘어놓는 남의 허물을 덮어 진정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용서가 처절한 자기반성을 거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남에 대한 이해라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실현 가능한 후자 쪽이 조금 더 어려울까 싶다.
승가에서 발생한 쟁사를 해결하는 7가지 방법 가운데 여초부지법(如草覆地法, ti?avatth?raka)이라 불리는 멸쟁법이 있다. 마치 바람에 풀이 옆으로 누워 땅을 덮듯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다툼을 가라앉힌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불린다. 풀로 땅을 가려 그 위를 지나다니는 자로 하여금 더러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다툼을 참회로 가려 수행자를 청정하게 하고자 하는 이 방법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남에 대한 용서를 기반으로 서로의 결점을 참회하고, 다툼 그 자체 및 이에 수반되어 발생한 모든 죄를 화해로 해소하고자 하는 일종의 화해법이라 할 수 있다.
범계 여부를 둘러싸고 승가에서 다툼이 발생하여 갈마를 통해 해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원고와 피고, 혹은 쟁론하는 두 파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겨 서로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진 결과, 헐뜯고 비방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 온갖 범계 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태에까지도 이를 수 있다. 이런 경우, 만약 이대로 두었다가는 승가 분열이라는 큰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승가는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 양쪽의 감정을 가라앉혀 양쪽 스님들에게 여초부지법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을 것을 권해야 한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쟁론하던 양쪽 스님들이 모두 한 곳에 모인 후, 한쪽 파의 스님 중에서 대표 격인 한 스님이 나와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고하며 범계 행위를 발로참회하고, 자신을 비롯한 승가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죄를 덮고 이 쟁사를 여초부지에 의해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파의 스님도 마찬가지이다. 이 제안이 양측 스님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풀로 땅을 덮듯이 서로의 결점을 참회함으로써 다투던 전원이 화해를 통해 청정성을 회복하는 여초부지법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승가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대립이 심한 경우, 몇 가지 중죄를 제외한 비교적 가벼운 죄는 양자가 화해하고 모든 것을 불문(不問)에 붙이는 방법으로 다툼을 가라앉히는 것이 여초부지법이다. 여초부지법이 적용될 수 없는 죄란, 바라이나 승잔과 같은 중죄 및 재가상응죄(在家相應罪)라 불리는 일련의 죄이다.
왜냐하면, 바라이나 승잔은 매우 중대한 죄로 각각 부과되는 벌이 있으며, 재가상응죄는 재가자에게 폐를 끼친 죄로 재가자가 문제의 스님의 참회를 인정하고 용서하지 않는 한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경우에는 승가가 마음대로 덮어버리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번 격해진 감정은 마치 마른 장작에 불 옮겨 붙듯 한 순간에 상대방에 대한 정체 모를 미움과 원망으로 온 몸과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번 타오른 불길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욕설과 폭력 등으로 자신과 남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뿐이다. 이때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자신과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여실하게 들여다 본 후, 승가의 안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진심으로 참회하고 수습할 수 있는 자세는 승가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250여개의 조문으로 구성된 비구 바라제목차의 말미를 여초부지법으로 마무리 짓는 이유도, 대립하는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서로의 결점을 덮어 보완해 주는 것이야말로 수행자로서의 인격 완성의 극치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이자랑
(도쿄대 박사)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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