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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다음 세대를 준비하라/삿 2:6-10
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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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양인순목사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가정마다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는 우리 교회의 미래요, 다음 세대의 주역입니다. 한 교회나 나라의 흥망성쇠는 어린이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는 우리는 지금보다 더 좋은 가정, 더 좋은 교회,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을 바르게 양육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현주소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교육비는 매년 약 24조원이 듭니다. 우리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자녀교육에 쏟아 붇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부모들의 심정입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부부가 이산가족이 될 각오를 합니다. 어린 자녀의 유학을 위해 엄마가 따라 나섭니다. 기러기 아빠는 더 이상 낮선 단어가 아닙니다. 자녀를 위해 가정 수입 절반 이상을 지출합니다. 심지어 모자라는 자녀 학비를 위해서 엄마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미국이나 캐나다로 취업이민을 많이 갑니다. 이민 브로커들에게 4-5천만 원씩 주고 취업이민을 간 뒤에 그들이 일하는 곳은 닭 공장입니다. 닭을 잡아서 가공하는 일은 미국 사람들이 꺼리는 3D 업종입니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씩 중노동을 합니다. 손마디에 관절염이 생기고, 서서 일하기에 다리는 퉁퉁 부어오르고, 시간이 지나면 허리 디스크에 걸립니다. 그런데 이들이 못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대기업 임원이나 금융기관의 중역 출신이 대부분입니다. 이 땅에서는 힘주고 살던 엘리트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낯선 땅에서 서러움을 견디면서 죽도록 고생할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빨리 영주권 받아서 좋은 환경에서 자녀 교육을 잘 시켜보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식 하나 교육 잘 시키려고 우리 부모들이 보여주는 희생은 가히 눈물겹습니다. 아마도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자녀교육에 헌신적인 민족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정성을 쏟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의 목표를 바르게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녀교육의 현실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좋은 대학 진학=좋은 직장=돈과 권력=인생의 성공이라는 등식이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저 집 자녀들은 다 성공했어’ 라고 할 때 성공이라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일류대학의 졸업장, 좋은 직업, 넉넉한 수입, 안정된 생활, 이것은 모두 눈에 보이는 가치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들 일류대학이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일 년에 우리나라에 수능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 약 60만 명입니다. 그런데 소위 일류대학의 정원은 몇 만 명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를 위한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기 영재교육에 들어갑니다. 영어의 수준이 그 인생의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어교육이 뜨겁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도 제대로 배우기 전에 영어 단어를 외웁니다.
신앙교육은 어떻습니까? 입시위주의 치열한 경쟁 구조 속에 있다 보니 교회학교역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졌습니다. 교회 내의 콘텐츠 부족이라는 면도 있지만 현실 자체가 아이들이 주일 날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주일이면 학원에 가서 밀린 공부를 해야 합니다. 또 각종 인증시험을 봐야합니다. 내신 성적이나 수능성적만으로도 안심이 안되니까 부모들의 강요에 의해 여러 가지 자격시험을 봅니다. 그러다보니 교인자녀들마저도 주일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오케스트라에서 봉사하는 학생들은 대단한 아이들입니다. 자기 부서에서 일찍 예배를 드리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힘찬 박수로 격려를 해주십시오.
입시위주의 교육이나 자기 이기심을 극대화시키는 교육은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자녀들을 보십시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가장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역경 앞에 너무나 쉽게 자신을 포기하는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책임감이 없고, 의존적인 성인아이의 모습입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이것 오늘 우리가 직면해 있는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군들을 키울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사사시대의 비극의 단초를 보여줍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칩니다. 그 모든 전쟁은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신 승리임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는 백성들 앞에서 고별 설교를 합니다. 애굽에서 섬겼던 신이나 가나안 땅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우상들을 치워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들에게 좋지 않게 보인다면 너희들 스스로 섬길 자를 택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나서 믿음의 고백과 결단을 내립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그 말을 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맹세합니다.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습니다.’(수24:15,21,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앞에서 세 번씩이나 하나님의 말씀만을 청종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모든 백성들의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들은 여호수아는 110세에 죽습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사사시대가 펼쳐집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처럼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수아와 동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이적들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한 세대가 지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다같이 10절 말씀을 읽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전쟁 1세대가 죽고 난 후에 태어난 다음 세대는 하나님이 행하신 능력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사사기의 결론 말씀처럼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음으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삽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암흑기와 같은 사사시대가 펼쳐집니다. 무려 300여 년 동안 범죄에 빠져서 고통 받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비극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가나안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들은 무려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7년 동안 전쟁을 하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의 삶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패역한 길이었습니다. 왜 여호수아가 죽고 한 세대가 지나자마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까요? 왜 이런 사사시대의 비극이 벌어졌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신앙교육의 실패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도 믿음의 유산을 전수하지 못하면 그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신앙교육의 실패는 곧 개인과 민족의 멸망이라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청교도 신앙의 유래는 바로 해적의 대명사였던 바이킹(Viking)이라고 합니다. 바이킹 족은 북게르만 족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AD 8-10세기경 노르웨이, 덴마크, 영국의 템즈강 지역을 점령했고, 후에는 앵글로 색슨족과 합해져 영국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바이킹족들은 머리가 대단히 우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머리 좋은 해적들은 자신들의 후손들을 어떻게 훌륭하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깨끗하고 순결한 여자를 찾아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오직 기독교인들만이 도덕적으로, 육적으로 순결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예수님을 잘 믿는 여성을 잡아다가 강제로 결혼을 시켰습니다. 비록 억지로 끌려와 해적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들은 아이만은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성경을 들려주고, 기도를 가르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로 정성을 다해 양육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자라난 이들이 훗날 청교도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적 출신의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바른 신앙의 교육을 시키면 신사의 나라,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교육은 현명한 악마를 키우는 것과 같다.’
신앙교육은 바로 다음 세대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본주의 교육의 날개는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과과정을 가지고 열린교육을 하고, 평준화 교육을 하고, 3불 정책을 써도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중심의 교육은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개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교육은 신앙교육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믿음의 대를 이어 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한 세대가 지나자 믿음의 단절이라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의 교육이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신앙교육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을 말합니다. 야망은 인간 스스로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갖는 꿈입니다. 비전이란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어떤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비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전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비전은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왜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전은 편협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기심의 성취를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상대적 경쟁에서의 승리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미국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인재를 선발할 때 세 가지를 중시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Competence(능력), Character(인격), Committment(헌신)입니다.
☛첫째로, 능력은 3가지를 갖추어야 하는데,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정할 수 있는 능력, 비전과 방향을 제 시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입니다.
☛둘째로, 인격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태도(compassion)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즉 자존감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셋째로, 헌신은 자신의 야망을 위한 삶이 아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비전입니다.
미국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을 가지며, 자유를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을 통합하고, 세계를 이끌어 가는 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지향하고 있는 교육의 방향은 너무나 협소합니다. 내가 어딴 사람이 되어서, 어떻게 세상을 위해 기여하는 삶을 살 것인가의 비전이 없습니다. 인생의 비전을 위한 교육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을 이기고 자기만 높아지고자 하는 이기적인 교육입니다. 그 결과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높은 지위에 올라도 결국 자기 욕망의 노예로 삽니다. 오히려 능력이 있고, 권력을 가질수록 공동체에 더 큰 실망과 피해를 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교육의 방향이 좀 더 큰 세상을 바라보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자녀로 키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온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를 키워야 합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동양의 문명이 서양보다 훨씬 탁월했음에도 불구하고 뒤쳐진 이유를 자기 자리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더 넓은 세계로 도전했느냐의 차이라고 합니다. 2천 년 전 동양을 대표하던 중국과 서양을 대표하던 로마 제국의 차이를 만리장성과 도로로 설명합니다.
중국인들은 그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반면 로마인들은 점령하는 곳마다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로마인들은 사람과 마차가 다니는 길과 수로를 거미줄처럼 연결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민족의 침입을 도와주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로 끊임없이 도전하며 나아가는 개척정신이 서양문명의 저력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서구문명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땅을 향해 계속 개척해 나가는 모험적인 사고방식을 우리 다음 세대에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물고기도 난류와 한류가 만나 격동하는 지점에서 잡힌 고기가 힘도 좋고 맛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처한 어려움은 오히려 더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위기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그리스도가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위해 계속 전진하고 도전하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둘째로,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자는 실패자입니다. 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했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가로 평가됩니다.
오늘 우리의 교육 현실은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항상 최고의 엘리트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이것은 결국 서로를 라이벌로 여깁니다. 싸움의 대상자로 여깁니다. 여기에는 갈등과 분열, 미움과 증오가 일어납니다. 여기에는 진정한 사랑과 평화, 조화와 협력이 없습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먼저 남을 섬겨라.”
남을 배려하고, 섬길 줄 아는 자녀로 키우는 것이 성공적인 자녀교육의 원리입니다.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집 아이가 잘 되어야 내 아이도 잘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잘못된 이기적인 교육의 태도를 버려야합니다.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 라는 책을 쓴 전혜성 박사의 교육은 귀감이 됩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 고학을 하면서 6남매를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남편을 포함해서 8명의 가족이 받은 박사학위 수가 11개입니다. 이들은 미국 이민 100년사에 가장 미국에 영향력을 끼친 100명 가운데 3사람이 뽑혔습니다. 그 놀라운 비밀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전혜성씨는 자녀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한 두 가지 덕목이 있습니다.
☛“첫째, 재주가 덕을 앞지르면 안된다.”
☛“둘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입니다.
전혜성 박사의 교육의 핵심은 자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래서 한국에서도 세계에서도 환영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자기 이기심의 노예로 사는 자가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덕을 세우는 믿음의 사람으로 교육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훌륭한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본을 보여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말하는 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대로 따라옵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삶은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라 말하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살아라 말하기 전에 정직하게 사는 자의 형통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말하기 전에 계속해서 공부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내 입장에서 자녀를 평가하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책망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지 않습니까?
별로 신통치 않는 성적표를 들고 온 아들에게 ‘야! 링컨은 너만할 때 책도 없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통령이 됐는데 너는 왜 항상 그 모양이냐?’ 가만이 듣고 있던 아들이 아빠를 빤히 쳐다보며 말합니다. ‘링컨은 아빠 나이에 벌써 미국의 대통령이 됐는데 아빠는 지금까지 뭐하셨어요?’
우리들이 교육하는 모든 것은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머릿속에 남습니다. 자꾸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베스트 원(best one)이 아닌 온린 원(only one)의 인생을 살도록 격려해 주십시오. 모두 다 1등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그 분야에서 최고의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온리 원의 인생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사랑으로 기도해주고, 매일매일 축복해 주십시오. 그 속에 다음 세대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한풀이 식의 자녀교육은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성껏 삶의 발자국을 찍고 다음세대에게 그대로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실은 뒤에서 밀면 절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앞에서 끌어야 바르게 따라옵니다. 자녀교육은 실을 앞에서 끄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부모 된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리의 말씀을 좇아서 정성껏 삶의 발자국을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와보라 데이 선포식’을 합니다. 아직 세상의 가치만을 붙잡고 몸부림치고 있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중요함을 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 된 우리의 사명이요, 우리 성지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이 더 이상 세상의 유혹과 욕망의 노예로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고 달려가도록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보다 더 탁월한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방법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로 세워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