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두 기둥 야고도와 요한/갈 2:9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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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장경준목사
본문은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바울과 바나바"를 향해 "기둥같이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기둥으로서 교회에서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합니다.
1. 기도의 기둥 / 야고보
여기에 기록된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입니다. 행15장을 보면 예루살렘 종교 회의가 열릴 때에 야고보는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이었습니다. 어떻게 지도자 자격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기도 때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야고보는 "낙타 무릎을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을 때 야고보는 성의 높은 곳으로 끌려가서 성 밑으로 내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 밑으로 내 버려진 야고보는 성 절벽 저 밑에서 엎드러져 죽은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장사를 하기 위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야고보는 거기에서도 무릎을 꿇고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기도를 실천하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약5:13-14에서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야 교회는 부흥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관상기도, 중보 기도, 능력기도를 작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발전해야 합니다. 당회에서 선출된 모든 임원들이 기도의 기둥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2. 믿음의 기둥 / 베드로
본문에서 두 번째의 기둥은 게바 즉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기둥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눅5:4을 보면 베드로가 밤이 맟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 할 때에 예수님께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이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또한 그는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실 때에 자신도 주님을 의지하면서 물위를 걷게 해달고 말한 사람입니다.
또 오순절 성령의 세례를 받은 베드로는 잡혀가 심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라고 말을 하자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을 합니다. 당시 기독교는 이단으로 몰려서 유대교인들에게 당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박해에도 굴하지 않는 믿음을 보임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정말 초대교회의 믿음의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믿음의 기둥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믿음이 식어지리라"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재림까지를 믿는 믿음입니다. 재림의 믿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재림을 믿고 들림 받는 순결한 신아의 자리에 까지 이르르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기둥이 되어서 그 어떠한 경우에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승리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한우리교인들이 믿음의 기둥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3. 사랑의 기둥 / 요한
교회의 세번째 기둥은 사랑의 기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사랑의 기둥이었습니다. 요한이 쓴 5권의 성경은 그 주제의 핵심 언어가 바로 사랑임을 우리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과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가는 곳마다 사랑을 외치면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을 대단히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기둥도 있어야 하고 믿음의 기둥도 있어야 하지만 사랑의 기둥이 많아야 합니다. 꼬치꼬치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계명을 어기는 사람입니다.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어떻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또 가식이요 위선이요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 어디에 있는가하여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사랑이 결핍되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가정에서 이렇게 되기 시작하니까 사회전체가 불신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진정한 사랑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성도의 교제가 거룩한 사랑의 교제가 아니라 거래와 같은 교제가 너무나도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 중심으로 형제와 자매와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여러가지 범죄나 질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교회가 병드는 원인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요한이 외친대로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거룩한 성도의 교제 속에서 사랑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사랑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기둥이 되기를 원합니다.
4. 진리와 전도의 기둥
여기의 또 하나의 기둥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은 어떠한 기둥입니까? 바울은 진리와 전도의 기둥입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반가량을 집필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세우는 진리의 기둥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을 포기하고 오직 전도하는 일에만 일생을 바친 전도의 기둥이었습니다. 우리는 맡은 직분은 달라고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막1:1:38에서 자신이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그들은 표적을 보고 병 고침을 받았지만 그것만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병을 고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전도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시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오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전도는 해도 그만 한해도 그만인 선택이 아니라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입니다. 전도는 은사를 받은 특정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전도를 해야 하는 의무사항입니다. 바울과 같이 전도의 기둥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 교회가 크게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5. 화평의 기둥 / 바나바
마지막으로 여기 중요한 기둥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바나바인데 바나바라는 위로의 사람이었으며 화평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에서 아주 소중한 화평의 기둥이었습니다. 교회에는 이 화평의 기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나바는 다메섹에서 변화된 사울을 기존의 제제들과 화합시킨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분명히 말씀하기를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Peace Maker입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평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분쟁과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싸움이 있는 곳에 내가 들어감으로써 평화가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가서 "화평케 하는 자"는 Peace Maker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헐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도 헐어버리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의 문제로 인하여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기게 되고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나바와 같은 화평의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내가 우리 교회의 화평의 기둥이 되어서 정말 이 삭막한 세상에 아름다운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튼튼하고 아름다우려면 기둥들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기도의 기둥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기둥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기둥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와 전도의 기둥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나바와 같은 화평의 기둥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