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ㅡ우리詩ㅡ신작소시집
#이령ㅡ환(環)
#해설ㅡ여국현ㅡ우리詩주간
2023.10ㆍ소시집이 나왔다.
생이 모조리 고리(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경계에서 비상을 꿈꾸는 부랑나비일지도 모른다. 미약한 날개죽지를 더듬거리며
낮고 쓸쓸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졸고에 비단 날개를 달아주신 우리詩와 명징한 시안으로 깊이 읽어주신 여국현 주간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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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環) 1/ 이 령
어정칠월 건들팔월, 부랑나비 자개 빛 여름이다
포구나무 갈피 들추며 그늘 늙히고 있다
나비가 그늘에 기대어 저 먼저 그림이 된 까닭 좇아가느라
나 거기서 빛 가림 들추며 그림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반면(反面)
그 경계 필사중이다
#빨강
겁났으니까 기선제압부터 한 거죠. 사상과 혁명과 사랑, 과장된 원색은 실은 견고한 불안 이죠. 광장의 조화가 깨졌다고 봐요. 섞일 수 있어야 평화죠.
#파랑
선택적 출생이 어디 있던 가요? 눈 떠보니 여기구나! 보편적 진실 이죠. 생은 예견된 형벌인가요? 전생과 후생을 모르니 그나마 사는 거죠. 물들기 쉬워야 비교적 안전 하죠.
#초록
섞이면 지저분해지죠. 본색을 고수 한다는 게 어디 그리 쉽던가요. 마땅하다고도 할 수 있나요? 가장 싱그러울 때가 실은 가장 위험 하죠.
#하양
도드라지다 사라지는 밀실 같은 거죠. 밑그림 그릴 때 수월 하죠. 티 나지 않게 이를테면 경계를 경계한다고 봐요.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뭐 그리 흔하던 가요? 결국엔 드러나야 편하죠.
시간의 각질을 반쯤은 품고 반쯤은 밀어내는 칠월 한 낮
바스라 지는 햇살 가닥가닥 말아 쥔 아름드리 포구나무 아래
부랑나비 날아와 꿈인지 꿈 너머인지 생각의 갈피 들추며
이곳저곳 생의 환(環)
경계 더듬거리는 나비, 한 생이 삭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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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環) 2/ 이 령
많은 경우 날개를 키우는 건 발의 소관이죠.
엄마와 난 발가락이 닮지 않았어요.
꽃은 꽃이 되기 위해 제 방을 걸어 나가 스스로 날개가 됩니다.
혼자 피는 꽃이 있던가요.
날개가 돋을까 뒤꿈치를 자주 들썩였죠.
닫힌 대문을 쳐다보며 구부정한 골목 모퉁이에 앉아 아빠를 기다렸어요.
통증은 누르고 누를수록 상처로 덧난다는 건 태생의 문제고요.
탕! 탕! 녹슨 대문을 두드릴 때마다 발가락이 욱신거렸어요.
앞서가는 이의 보폭을 따라 걷다가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니까요
날개를 펼치기란 설운 아빠와 엄마를 기억하는 걸까
울음이 꿈을 키운다면 이런 가정은 가능 합니다
날개를 접는다면 절망이 없다지만 늘 불쑥이는 엉거주춤 뒷걸음이 문제고요
엄마가 데려온 반지빠른 오빠는 알거에요
지르밟는 길, 오줌을 내갈기기 안성맞춤인 어두운 골목 같은 곳에선 꽃피울
꿈조차 사치라는 걸. 발가락이 닮지 않아서 행복 하고 싶던 가족,
선택적 출생이라는 이름의 날개는 어디에도 없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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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環) 3/ 이 령
짧은 안부가 만남의 시작 이었다
사랑을 감내한 자만이 추억을 만들고 그리움으로 아물기도 해서
지상의 모든 기억은 오로지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의 재편성이라는 생각
다가올 것이 사랑이라는
차가울수록 타오를 수 있다는
의도한 적 없는 단 하나의 불씨가 일어
지나간 시간을 새삼 골똘케 한다
밤은 어둠이기 때문에 차갑지 않고
낮 또한 더 깊은 어둠이기에 타오를 수 없는데
나를 훑고 간 자성의 온도를 넘어 다시금
저문 자리마다 눈부신 화인(火印), 미혹의 광도를 노래하는가!
타오르다 사르는 별처럼
사랑하는 이여! 변함없이 거기 머물러 있으라
피고 지는 꽃 시절, 개맹이 선연할지언정
기다림도 묵히면 불씨가 되는 것
그대 이 적막의 가슴을 무엇으로 불 지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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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環) 4/ 이 령
지금 비 온다,
는 참인가
경험이전에 경험을 노래하는 지금,
은 거짓인가
모든 명제의 끝
은 허무인가
하여 세상을 향한 나의 독법,
은 모두 극치(極侈)의 오독인가?
비를 보고 있었는데
빗물에 젖는다면
비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 연출된 것이겠다.
그리움을 꾸역꾸역 묵히고 나면
어느새 추억이 되어 비가悲歌의 음화로 주저앉는다.
나는 꿈속에서 더러 빛을 연주하곤 하는데
깨고 나면 저 반음의 생, 어느 언저리쯤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는다.
누대(累代)의 울음을 베낀 비는 내리고
나는 이부자리에서 몽유의 길을 헤매지만
사물에 밀려 한 생의 견딤,
으로 단절의 적멸 어느 언저리쯤에서라도 잠들 수 있을까
읽히지 않는 욕망의 갈피가 진종일 비를 불러오고
넘겨도넘겨도 그칠 줄 모르는 기억은 지금인지 어제인지 내일인지
시간의 행간에 괴어 있는 적막 어디쯤 서성이고 있다.
어지간한 다짐으로도 닿을 수 없었던 행간을 넘기자
억수로 내리는 울음 너머 저쪽으로 연주되는 비.
는 여전히 미로처럼 가멸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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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環) 5/ 이 령
그의 미소는 여전한데
나는 지상에 남은 최대의 냉혈을 본다
굳이 말의 밀도가 높다는 건
더 이상 서로에게 따뜻하지 않다는 거라
식은 찻잔을 저으며
행간이 멀고도 먼 질문과 대답사이
그도 웃고 나도 따라 웃었다
벽 액자 속 새의 날개 한 쪽이
액자를 막 벗어나려고 했다
그림자 속에서 몇 개의 그림이 어룽졌다
멈칫, 시간이 얼었다 풀렸다
액자를 벗어난 한 쪽 날개를 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한 새는
날았던 기억만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와 액자 속 새와
액자 밖 새의 날개와 나와
시간과 공간과 침묵
불온의 밀실에서 최대치의 평온을 가장하며
전속력으로 우리를 밀어내고 나와 마주할 때,
거짓말처럼 도드라지는 빛, 드는 창가로 비상하는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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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리미널 스페이스-환(環), 생은 순환한다고 믿는다.
연유와 연결이라는 연속무한의 과정에서 경험을 쌓고 살아가는 동안 새로움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래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다수의 안락과 다소간의 불편함도 감사하고 늘 흥미진진하다.
내가 행하는 의식과 생각과 욕망의 재생은 언제나 현재형이고 매순간 그 경계에서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재고하고 갱신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긍정적 카르마로 더 나은 재생, 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대체로 선하지 못했다. 악이 나쁜 재생을 불러오고 반복되는 생의 고통을 불러올 거라는 확신마저 가끔 흔들리기도 했다. 환(環). 그 경계에서 자꾸만 소멸하는 나를 독려하고 위로하는 건 역시나 시(詩)였다. 가장 얇지만 가장 무거운 책, 시집 속에 많은 시인들의 환(環)에 동참하며 늘 새롭고자 한다. 시인들이 전해준 많은 정보가 내 생의 가치관으로 변환되는 기쁨. 내가 시를 쓰고 시를 읽고 시를 받아들이는 이유다.
어김없이 고리로 창가에 어룽지는 햇살, 몸을 감도는 바람, 그리고 귓바퀴에 맴도는 매미들의 절실한 떼 창, 사람사이 반짝이는 눈빛과 눈빛의 교감마저 그 경계가 모조리 환(環).
또 아침이 열린다. (끝)